558화
“뭐? 남쪽에서 일단의 병력이 북진하고 있다? 얼마나?”
색액도는 막사에서 점심을 먹다가 급히 막사로 들어온 부장의 보고에 당황해 되묻자 부장이 답했다.
“기병과 보병을 합해 1만 명이 조금 안 되어 보인다는 보고입니다.”
생각외로 부대 규모가 큰 편이었기에 색액도가 표정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으음...탐락극이 지휘한 선봉대와 전투한 그 조선군이 북상하는 건가?”
“아마 남쪽에 배치된 지방군들을 규합해 올라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선봉대가 전투를 벌인 조선군이 3천 명이었는데 지금 북상하는 병력이 거의 1만 명에 달한다는 것은, 그 주변에 그 정도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다는 뜻이었기에 색액도가 새삼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허. 생각보다 조선군의 규모가 꽤 크군.”
이에 막사 안에서 색액도와 함께 식사하던 부장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씩 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원래 의주에 배치되어 있던 병사만 2만 명이고, 의주 대로를 따라 남하할 병력을 막기 위해 배치한 병력이 거의 1만 명에 달한다니...”
“아무래도 예전의 기억이 있는 만큼, 정말 단단히 준비한 모양입니다.”
“탐락극의 부관이 후퇴한 것이 옳았습니다. 괜히 한양으로 남하하려 했다가는 부대가 전멸했겠군요.”
그때 한 부장이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보다 지금 북상하고 있는 조선군과 의주에서 남하하고 있는 조선군을 합하면 대략 2만 명 정도인데 이들 중에 얼마나 많은 병사가 북미왕국의 무기로 무장했을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만약 이들 전부가 북미왕국의 무기로 무장했다고 가정한다면 단순히 2만 명의 보병이라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대인.”
“맞습니다. 기존의 조총보다 재장전이 수배는 빠른 만큼, 저들의 화력을 고려해 수배의 병력으로 생각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 말에 색액도가 인상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허...그럼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병력 규모로 생각해야 한다는 뜻인가?”
이에 막사 안에 있던 부장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선봉대 소속의 병사들을 직접 불러 전투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다시 확인했었지만, 탐락극의 부관이 말했던 것과 일치했기에 북미왕국의 무기로 무장한 조선군의 전투력이 생각보다 대단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물론 지금 조선군이 전부 북미왕국의 무기로 무장했을까 싶긴 했지만, 또 모르는 일이었기에 최대한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자 색액도는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으며 젓가락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으음...지금 이곳에 남은 병사들이 얼마지?”
“1만 5천 명가량 됩니다.”
“오늘은 해가 떨어져도 계속 병력을 수송해서 내일 정오까지는 동로군 전체가 조선 땅을 밟아야 하네. 알겠나?”
“예! 대인!”
부장들이 일제히 대답하자 색액도는 고개를 끄덕인 후 추가로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남쪽에서 북상 중인 조선군을 견제하기 위해 따로 병력을 보내도록 하게. 1만 명 정도면...”
이에 색액도의 오른편에 있던 풍채가 좋은 부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결정은 재고해주셨으면 합니다. 대인.”
“음? 이견이라도 있나?”
“의주에서 남하 중인 조선군은 기병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기동력을 이용해 적들을 견제할 수 있었지만, 남쪽에서 북상 중인 조선군은 기병이 있는 만큼, 섣불리 견제했다가 조선 기병들이 추격해 교전이라도 들어간다면 이쪽이 불리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북진하는 조선군의 존재를 알린 부장이 급히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미처 말씀을 드리지 못했는데, 북상 중인 조선군의 기병은 기존의 기병이 아닌 것 같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음? 그게 무슨 소린가?”
“보통 기병들은 창이나 검, 혹은 활을 장비합니다만...지금 북상하고 있는 조선 기병들은 조총을 장비하고 있었답니다.”
이에 막사 안에 있던 부장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색액도는 고개를 갸웃했다.
“조총을? 말 위에서 조총을 발사할 수가 있나?”
이에 풍채가 좋은 부장이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물론 불가능하지요. 그러니 기병들이 소지한 조총은 기존의 조총이 아니라 북미왕국의 무기일 테고요.”
그제야 색액도는 수천의 기병이 모두 북미왕국의 무기로 무장했다는 사실과 이 조선 기병들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안색을 흐리며 질문을 던졌다.
“으음...그럼 저들이 그냥 북진하는 것을 두고 보라는 뜻인가?”
이에 풍채가 좋은 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어라 대답하려는 찰나 북진하는 조선군의 존재를 알린 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예. 차라리 방어를 단단히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 조선군의 후방에는 기물까지 따라오고 있었다니까요.”
“기물?”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어 색액도가 고개를 돌리자 부장이 정찰병이 파악한 정보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조선 사신단의 정보원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조선에 북미왕국의 기물이 많이 들어왔다는 것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꽤 많은 건설 장비가 조선에 투입되었지만, 청나라 사신이 오는 경로에 있던 건설 장비들은 다른 곳으로 치우거나 천으로 가려두었기에 청나라 사신들이 건설 장비의 존재를 두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었다.
그래서 기물의 정보는 일부 수집했어도, 그 존재를 직접 보지는 못했기에 청나라 사신단의 대표가 무척 아쉬워했던 것을 기억한 색액도가 고개를 끄덕이며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질문을 던졌다.
“그렇지. 헌데 그 기물이 조선군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듣던 대로 힘이 대단한 모양인지 뒤에 짐이 가득 실린 수레를 줄줄이 매달고 이동하고 있다더군요.”
“허...그러니까 마소 대신 기물을 이용해 물자를 운반한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대인.”
“허허허. 이것 참...”
이에 색액도는 말로만 들었던 기물이 정말 유용하긴 한가보다 싶어 놀라다가 문득 의문이 들어 질문을 던졌다.
“헌데 그 기물들은 조선이 아니라 북미왕국의 소유라고 하지 않았나?”
기물의 존재에 놀라면서도 신기해하던 다른 부장들이 색액도의 의문에 입을 열었다.
“북미왕국과 조선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북미왕국이 조선을 돕는 것도 의외는 아니지요.”
“그렇습니다. 그 때문에 저들이 개입하기 전에 전쟁을 끝내려고 한 것 아니겠습니까.”
확실히 북미왕국과 조선의 관계는 보통이 아니었고, 이미 자신들이 조선을 침공할 뜻을 넌지시 밝히며 조선에 손을 떼라고 경고했음에도 조선을 선택한 자들이니만큼, 조선에 파견된 북미왕국인들이 기물을 움직여 조선군을 돕는 것도 크게 의외는 아니었기에 색액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그럼 그 기물이라는 것을 노획해 북경으로 보낸다면 황상 폐하께서 무척 기뻐하실 것 같은데...”
강희제가 서양 신부들이 이야기하는 북미왕국의 기물들에 관심을 보였다는 것을 기억한 색액도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다른 부장들이 혹시 색액도가 기물을 탐내 일을 그르칠까 우려해 급히 만류했다.
“하지만 동로군이 모두 상륙하기 전에 섣불리 북진하는 조선군을 공격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렇습니다. 대인. 어차피 조선에 기물이 많다 하니 남하하다 보면 기물을 확보하기는 쉬울 것입니다.”
부장들이 하나같이 만류하자 색액도는 알겠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아. 알았네. 그럼 일단 북진하는 조선군은 그냥 거리를 두고 정찰만 하도록 하게. 그리고 용대각에게 전령을 보내 이들의 존재를 알려 혹여 협공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게.”
“아예 용대각이 이끄는 군을 회군시키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색액도의 명령에 풍채가 좋은 부장이 의문을 표했지만, 색액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조선군이 합류한다고 하더라도 용대각은 배후에서 조선군의 신경을 끌어줄 필요가 있네.”
“아...확실히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 * *
“허. 이거 검차가 생각보다 힘이 좋군.”
조선 지원군 사령관 카무이쿠르가 밧줄로 연결된 짐을 가득 실은 수레 5개를 쉽게 끌고 가는 모습을 보고 새삼 감탄스럽다는 듯 중얼거리자 특수군과 자주 이야기를 나눴던 굳건한 바위가 옆에서 입을 열었다.
“예. 듣기로 펄이나 모래밭 같은 곳에 빠진다면 같은 검차로 견인해야 하는 만큼 기관의 출력도 높고 견인력도 좋다더군요.”
“아. 그러고 보면 검차의 무게가 있으니 일부 지형에서 운용하기가 쉽지는 않겠군.”
“그렇지요. 다만 저 검차들이 양산된 후 다양한 지형에서 기동 훈련을 하며 개선할 점을 보고했으니, 저 검차가 대량 양산될 때쯤이면 더 나아질 거라고 하더군요.”
굳건한 바위의 이야기에 카무이쿠르는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시선을 돌려 전방을 바라보고 말했다.
“그보다 의외로 청나라군이 조용하군. 우리의 접근을 확인하고 병력을 보낼 줄 알았더니.”
“아무래도 저희가 선봉대를 격파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을 테니 섣불리 공격하겠다고 나서기도 부담스럽겠지요.”
옆에 있던 조병수의 대답에 굳건한 바위가 조심스럽게 자기의 추측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갑오 소총으로 무장한 저희가 부담스럽다고 해도 지금까지 정찰만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저들도 의주에서 남하하는 조선군의 존재를 모르지 않을 테고, 각개격파를 노리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겠죠. 헌데도 지금까지 가만히 있는 것을 보면 아직 적 본대의 상륙이 다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에 카무이쿠르가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뭐 청나라의 본대 규모가 있을 텐데, 하루 이틀 만에 전 병력을 상륙시키기가 어디 쉽겠는가.”
“예. 맞습니다. 그래서 일단 두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카무이쿠르는 지휘관들과 대화를 나누며 계속해서 이동하는 사이 주변 정찰을 마친 탐사대가 돌아와 정찰한 내용을 보고했고, 이를 듣고 카무이쿠르는 미간을 좁혔다.
“조선군이 보이지 않는 다라...어제 출발했는데 아직도 도착하지 못했다는 건가?”
이에 굳건한 바위도 안색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의주까지의 거리를 생각해보면 2일 넘게 걸릴 거리는 아닙니다만...”
“혹시 청나라군이 북쪽의 조선군을 막고 있는 것 아닐까요?”
카무이쿠르는 조병수의 의견이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청나라군 입장에서는 각개격파가 편할 테니까 자신들이 합류하는 것을 막으려 들 수도 있었고, 혹시 상륙한 청나라군이 남하 중인 조선군을 공격할 수도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카무이쿠르는 내심 초조함을 느꼈지만, 자신들에게 호되게 당한 청나라군이 섣불리 조선군을 공격하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에 일단 진정하고 당장은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에 명령을 내렸다.
“...일단 목적지로 빠르게 이동해서 해가 지기 전에 숙영지부터 건설하도록 하지, 그리고 탐사대는 주변을 정찰하고, 특히 적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도록.”
“알겠습니다.”
* * *
조선 지원군은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부랴부랴 숙영지를 건설했고, 해가 진 이후에도 열심히 작업한 끝에 저녁 식사 전에 숙영지 건설을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쯤 다시 주변을 정찰한 탐사대가 복귀했기에 카무이쿠르는 급히 자신의 막사로 다른 총 조장들을 불렀고.
“용암포에 있는 병력이 대략 3만 명 정도로 추산된 다라...”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용암포에는 아직도 수많은 배가 드나들고 있었으니까요.”
아이누 탐사대의 총 조장이 보고하자 고개를 끄덕인 카무이쿠르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흐음. 그리고 조선군의 동향은?”
“북동쪽으로 정찰한 탐사대원이 이쪽으로 남하하고 있는 조선군을 발견했습니다. 문제는 청나라 기병이 조선군을 거의 포위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뭐?! 설마 공격을 받는 건가?”
이에 카무이쿠르가 놀라 질문을 던지자 탐사대의 총 조장이 진정하라는 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건 아닙니다. 청나라군은 어제 일 때문인지 조선군을 공격하지는 못하고 거리를 두고 포위한 모양입니다.”
“아. 그래?”
그 말에 안도한 카무이쿠르를 보고 탐사대의 총 조장이 계속 보고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조선군은 청나라군의 공격을 우려해 마름모 대형을 갖추어 사방을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장은 괜찮을 것 같았지만, 이미 해가 떨어진 저녁에도 그렇게 계속 이동하는 것은 병사들의 피로가 심해질 것 같았기에 카무이쿠르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흠. 선봉대가 맥없이 당한 것이 충격이긴 한 모양이군. 이곳에서 조선군과의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던가.”
“약 8km 내외입니다.”
“그리 멀지 않군. 허면 이미 진영을 구축한 만큼 탐사대가 빠진다고 해도 청나라군을 상대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으니 탐사대를 조선군이 있는 곳으로 보내게. 탐사대가 전부 움직인다면 조선군을 포위 중인 청나라군을 쉽게 내쫓을 수 있겠지?”
이에 탐사대의 총 조장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럼 바로 조선군을 마중하러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부탁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