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7화
색액도는 선봉대로 남하했던 청나라 기병대가 철산 인근에서 조선군과 전투해 패배하고 새벽에 용암포로 복귀했다는 보고에 기함했다.
“뭐?! 선봉대가 조선군에 패배하고 본대로 복귀했다고?”
“그렇습니다. 대인.”
병사들의 상륙을 지휘하다가 용암포로 돌아온 선봉대의 소식을 접하고 이를 전한 색액도의 부장 용대각이 고개를 숙이자 색액도가 분노를 터트렸다.
“아니! 조선의 주력군이 모두 압록강에 있는데 고작 잡병들을 상대로 깨지고 돌아와?! 탐락극은 지금 어디 있나!”
이에 용대각과 함께 막사로 들어온 탐락극의 부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게...장군께서는 병사들을 지휘하다가 조선군의 총탄에 맞아 그만...”
“어? 그래? 으음...”
분노를 터트리던 색액도는 자신의 부장이 전투 중 사망했다는 이야기에 순간 움찔했고, 그래도 남쪽의 반란군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기에 믿고 선봉대를 맡긴 탐락극이 고작 조선의 지방군을 상대하다 사망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아 탐락극의 부관에게 전투 당시의 상황을 캐물었고.
“뭐? 조선군이 계속해서 사격했다고?”
색액도를 비롯해 막사에 있던 모든 이들이 경악하자, 탐락극의 부관은 한 치의 거짓도 없다는 표정으로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조선군이 2열로 길게 늘어서 있었고 조총의 사격 속도야 뻔했기에 장군께서는 최대한 빠르게 말을 달려 조선군에 접근하기까지 딱 2번의 일제 사격만 버티면 된다고 판단하셨습니다. 저 역시 그 의견에 동의했고요. 헌데 저희가 조선군을 향해 돌격했을 때, 조선군의 일제 사격이 시작되었고, 2번째 일제 사격이 끝난 후에도 조선군들은 끊임없이 조총을 발사했습니다.”
“으음...혹시 대열만 2열로 하고 수작을 부린 것 아닌가? 일부만 발사하는 식으로?”
막사에 있던 색액도의 부장 하나가 탐락극의 부관에게 물었지만, 부관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보기엔 저들이 일제 사격할 때마다 전열의 수많은 기병이 그 자리에서 낙마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것을 생각해보면...”
탐락극의 부관이 말을 흐리자 색액도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미 조선군은 북미왕국의 무기로 무장했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해서 장군께서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으시고 급히 병력을 후퇴시키기 위해 애쓰셨습니다만 갑자기 날아든 여러 발의 총탄에 그만...”
“으음...”
“해서 소장은 장군의 유지를 이어받아 어떻게든 병력을 퇴각시키고, 이를 수습한 이후 행보를 고민했습니다만...이미 병력의 절반을 잃은 상황에서, 그리고 후방에 있는 조선군도 북미왕국의 무기로 무장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한양으로 진군하는 것은 선봉대가 전멸할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본대에 이 사실을 빠르게 알릴 필요도 있었고요.”
탐락극의 부관은 선봉대의 역할은 빠르게 남하해 한양을 위협해, 혹시 모를 조선왕의 피신을 막는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우회도 쉽지 않은 상황이고 잘못하다간 중간에 전멸할 위험성이 너무 크기에 결국 본대로 후퇴했다는 이야기까지 마치자 색액도는 전체적인 전략이 어그러졌기에 골치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부여잡으면서 심양에서 만났던 청나라 사신단을 떠올리고 이를 갈았다.
“젠장. 조선을 방문한 사신단의 보고로는 조선이 아직 북미왕국의 무기로 무장하지는 않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분명 그리 보고했습니다. 더불어 서양 신부들을 통해 확보한 바에 따르면, 북미왕국의 무기는 무척 비싸고 유지비도 많이 들어 강력하기는 한데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지요.”
청나라 역시 서양의 신부들을 통해 유럽에 알려진 북미왕국의 정보를 수집했기에 북미왕국의 무기, 빠른 재장전이 가능한 조총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조선 정벌군의 총사령관인 색액도가 조선군이 북미왕국의 무기로 무장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은 청나라 사신단의 보고 때문이었고.
이는 조선에서 흘린 역정보가 제대로 먹혔기 때문이다.
조선은 훈련도감 병사들에게 신식 소총을 보급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일단은 청나라의 제후국이었고, 청나라는 조선이 군비 증강을 하는 것을 신경질적으로 반응했기에 병사들에게 신식 소총의 존재를 철저히 함구하도록 명령했다.
물론 아직 보안 의식이 투철하다고 이야기하긴 힘들었던 병사들은 술을 마시고 슬쩍 신식 소총의 존재를 언급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노력 덕분에 저잣거리의 소문으로만 떠돌 뿐이었고.
또한, 청나라 사신단이 한양에 온 후 사신단의 일원이 조선의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것과 이들이 세계신문의 존재를 파악하고 매주 발행되는 세계신문을 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유철은 투로시노가 이야기해준 대로 세계신문을 통해 역정보를 흘렸다.
세계의 정세가 혼란하니 정예병을 육성할 필요가 있고, 그를 위해서 북미왕국과 협상해 북미왕국의 무기를 수입해야 한다는 기사를 싣기도 하고, 북미왕국의 무기가 비싼 만큼,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을 더 거두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는 기사들을.
청나라 사신단은 이런 기사들을 보고 아직 조선은 북미왕국의 무기를 대량 수입하지는 않았으리라고 추측했고, 이를 보고했기에 색액도는 조선이 북미왕국의 무기로 무장했을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헌데 그게 조선의 수작이었다고 생각하니 색액도는 다시 열이 올랐지만, 지금은 분노할 때가 아니라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상황이라고 생각한 색액도가 애써 분노를 가라앉히며 머리를 굴리다 입을 열었다.
“헌데 철산에 있는 조선군조차 북미왕국의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 그럼...생각보다 많은 북미왕국의 무기들이 조선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뜻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최근 조선의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는 보고가 있었으니 그것을 종합해 생각해보면...”
용대각이 색액도의 말에 동의하자 색액도는 탄식하며 중얼거렸다.
“하. 그럼 지금 의주에 있는 조선군 역시 북미왕국의 무기로 무장했을 가능성이 크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대인. 그러니 전략을 변경해야 할 것 같습니다.”
조총으로 무장한 조선군과 재장전이 빠른 북미왕국의 무기로 무장한 조선군의 전투력은 전혀 달랐다.
특히 선봉대가 같은 병력의 조선군을 상대로 돌격에 성공하지도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북미왕국의 무기가 위력적이라는 뜻이었으니.
해서 용대각이 전체적인 전략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자 막사 안에 있던 다른 색액도의 부장들이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조선의 주력군이 생각보다 강한 화력을 지녔을 가능성이 있는 이상 이들을 그냥 무시하고 남하했다가 자칫 포위될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남하하는 조선의 주력군을 상대하느라 시간을 지체한다면 조선은 후방에서 병력을 모집해 그 규모를 키울 겁니다! 그러면 조선을 정벌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만큼, 기존의 전략대로 최대한 빠르게 남하해야 합니다.”
“어차피 현재 남하하고 있는 조선의 주력군은 1만 명이잖소! 전군을 동원하면 이들을 정리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요!”
“그만!”
색액도는 손을 들어 서로 의견을 제시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부장들의 입을 막은 후 잠시 탁자 위에 놓인 지도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미 선봉대를 남하시켜 한양을 위협하고 조선왕의 도주를 막는다는 작전이 수포로 돌아간 상황이니만큼, 안정적으로 병력을 운용하도록 하겠다. 그러니 용대각!”
“하명하시지요!”
용대각이 고개를 조아리자 색액도가 말했다.
“자네는 곧바로 압록강을 건너 용암포에 있는 병력 중 1만 명을 이끌고 현재 조선 주력군의 남하를 견제하고 있는 병력을 지원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대인.”
“다만, 절대 조선군이 자리 잡은 곳으로 돌격하지 말게. 최대한 피해를 줄이면서 본대의 상륙이 끝날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라는 뜻일세. 더불어 저들이 쉬지 못하도록 몰아붙이고. 알겠나?”
현재 남하하고 있는 조선군 역시 북미왕국의 무기로 무장했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어설프게 병력을 동원해 공격하기보다는 전군을 상륙시킨 후 병력의 우위로 남하하고 있는 조선군을 전멸시킨 후 힘으로 밀고 내려가겠다는 색액도의 뜻에 용대각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대인!”
그 후 용대각은 바로 압록강을 건너기 위해 막사를 나갔고, 색액도는 물자를 담당하는 부장을 보고 질문을 던졌다.
“후우...그리고 만약을 대비해 챙겨온 방패가 몇 개나 되지?”
일단 조선군은 총병의 비율이 높았고, 조총도 꽤 위협적이었기에 온몸을 방어할 수 있는 커다란 방패를 조금이나마 챙겨왔었기에 색액도가 묻자 부장이 곧바로 대답했다.
“5천 개 정도 됩니다.”
“흠. 그 정도면 조금 부족하긴 해도 당장 추가로 방패를 만들 필요는 없겠군.”
동로군이 모두 압록강을 건넌 이후 조선군과의 전투를 고려하는 색액도의 이야기에 부장이 슬쩍 의견을 제시했다.
“그렇지요. 하옵고 대인. 이왕 조선의 주력군을 격멸하실 생각이라면 수군함대에 있는 홍이포를 빌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적들의 대형을 흐트러뜨리는 데는 화포만한 것이 또 없잖습니까.”
청나라의 수군은 홍이포를 운용했다.
물론 이를 가지고 거리를 두고 포격전을 하는 것은 아니고 적을 위협하는 용도에 불과해 그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빠르게 남하하기 위해 화포는 가져오지 않았던 조선 정벌군의 상황을 생각하면 얼마 안 되는 홍이포 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수밖에 없었다.
“아! 그게 있었지! 알겠네. 바로 이야기하도록 하지.”
* * *
“훈련대장님! 청나라군이 또 접근합니다!”
어쩌면 급박한 보고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훈련대장인 유혁연은 그저 한숨을 내쉬며 명령을 내렸다.
“후우. 이동을 멈추고 바로 전투 준비를 하게.”
“예!”
유혁연이 명령을 내리자마자, 1만 2천 명의 조선군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전투 대형을 이루고 자신들에게 빠르게 달려오고 있는 청나라군을 향해 무기를 겨냥했고.
이에 청나라군은 점차 속도를 줄이다가 멈추고 주위를 잠시 배회하다 물러났다.
“청나라군! 퇴각합니다!”
“끙...바로 진군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청나라군이 저렇게 위협만 하고 돌아간 것이 8차례나 되었기에 유혁연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이것 참...기병들을 데리고 올 것을 그랬나.”
북방이다 보니 지방군 중에는 기병도 일부 있었다.
다만, 주력인 훈련도감의 병사들과 어영청 병사들을 대부분 자신의 지휘하에 넣고 이동하는 상황에서 기병까지 가져오면 그만큼 평야에서 청나라군과 대치해야 하는 어영대장이 힘들어지기에 이들을 의주에 놓고 왔었지만, 계속해서 기병들이 조선군 주변을 배회하다 기회가 되면 찔러오는 행태에 질려 저들을 추격할 기병이라도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까 싶어 유혁연이 후회하자 부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 봐야 수가 얼마 되지 않아 저들을 견제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렇긴 하지만 저들의 견제가 너무 심해 이동 속도가 반으로 줄어들었으니...”
그때 한 병사가 유혁연에게 소리쳤다.
“훈련대장님! 저기 보시지요!”
“음?”
병사가 가리킨 방향은 의주 방향이었는데, 이곳에서 몇 기의 기병이 말을 달리며 다가오고 있었기에 유혁연이 이를 확인하고 중얼거렸다.
“의주에서 오는 거면...전령인가?”
그러면서 망원경을 꺼내 자신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기병들을 확인했고, 이들이 자신이 어제 철산도호부로 보낸 전령들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전령이 전해준 이야기에 기쁨과 안도를 감추지 못했고.
“오! 그게 정말인가? 청나라군의 남하를 조선 지원군이 막아냈다고?”
“그렇습니다. 해서 남하하던 청나라 선봉대는 퇴각했고, 그렇기에 저들은 신식 소총의 존재를 파악하고 더 교묘하게 압박할 수 있으니 이를 꼭 염두에 두라는 것이 조선 지원군 사령관님의 전언입니다.”
“으음...그렇겠군.”
그 말에 유혁연은 청나라군이 절대 정면승부에 나서지는 않으리라 생각해 한숨을 내쉬었을 때 전령이 덧붙였다.
“그리고 조선 지원군은 오늘 새벽부터 이동해 늦어도 오후 3시까지는 용암포 인근으로 진격할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유혁연은 카무이쿠르가 선물로 건네준 회중시계를 품 안에서 꺼내 시간을 확인하고 중얼거렸다.
“오후 3시? 지금이 11시 30분이니...앞으로 3시간 30분 안에 용암포까지 진격할 수 있을까?”
“청나라군이 없다면야 가능합니다만, 지금처럼 계속해서 저희가 대열을 풀 때마다 공격해 들어온다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부관이 그건 어렵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하자 유혁연은 고심 어린 표정으로 턱수염을 매만지다 입을 열었다.
“으음...이동 속도를 올려야 하나.”
카무이쿠르가 정확한 시간을 알려준 것은 조선군도 이동 속도를 맞춰 그때 합류했으면 좋겠다는 뜻이 분명했고, 빠르게 조선 지원군과 합류할수록 안전해지는 만큼 유혁연이 조금 무리해서 이동할까 고민하는 와중에 전령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조선 지원군 사령관님께서는 조선군이 최대한 안전하게 남하하는 것에 집중하라고 하셨습니다.”
“음...그런가.”
그때 한 병사가 유혁연에게 다급히 보고했다.
“훈련대장님! 저길 보십시오!”
“음? 허억!”
청나라군이 퇴각한 것과는 다른 방향에서 이전보다 훨씬 많은, 못해도 5천 명은 가볍게 넘어 보이는 기병들이 등장하자 유혁연이 기겁했을 때, 다른 병사가 급히 보고했다.
“좌측에도 퇴각했던 청나라군이 다시 접근하고 있습니다! 모두 합하면 1만 명은 가볍게 넘어 보입니다!”
이에 유혁연은 자신들을 견제하던 청나라군을 지원하기 위해 용암포에 상륙하고 있다는 청나라군이 움직였음을 직감하고 급히 명령을 내렸다.
“당장 전투 대형을 갖춰라! 어서!”
1만 명이 넘는 기병이 전방과 좌측에서 달려오고 있었으니 그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해서 얼어붙은 병사들을 군관들이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겨우 전투 대형을 이루었고.
그러자 청나라군은 점차 속도를 줄이다가 멈췄고, 이를 보고 유혁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허. 우리가 대형을 제대로 갖추자마자 멈추다니...”
“아마 저들은 우리의 무기가 신식 소총이라는 것을 짐작한 모양입니다. 해서 돌격하지 않는 모양이군요.”
“그렇겠지. 헌데 이렇게 되면 이동하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유혁연이 인상을 찌푸리자 부관이 조심스럽게 조언했다.
“이 대열을 유지하며 천천히 이동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리고 청나라군도 조선 지원군이 용암포 인근으로 북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연히 회군하지 않겠습니까.”
“하긴...”
“그리고 저들이 계속 저희를 포위한다 하더라도 조선 지원군엔 총기병이 존재하는 만큼, 저희가 용암포에 도착하지 않는다면 조선 지원군은 분명 저희를 구원하기 위해 병력을 보낼 겁니다. 허니 일단 안전에만 신경을 쓰시지요.”
확실히 유혁연이 생각해봐도 부관의 말이 일리가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음...알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