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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554화 (554/850)

554화

초조한 기색으로 막사를 어슬렁거리던 색액도는 막사의 문이 열리면서 부관이 밝은 표정으로 들어오자 마음이 놓였고, 보고를 듣고는 입꼬리가 씰룩이기 시작했다.

“그래? 상륙 작전이 성공했다고?”

“그렇습니다. 총사령관님의 계책대로 조선은 봉황성에 있던 서로군을 신경 쓰느라, 그리고 우리 대청이 배를 이용해 상륙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압록강 하류 부근의 경계는 느슨했고, 용암포를 지키는 병력도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우리 대청의 수군함대가 나타나자 조선인들은 잔뜩 겁에 질렸고, 얼마 안 되는 병사들은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합니다. 덕분에 별다른 저항 없이 용암포에 상륙할 수 있었다는군요.”

색액도는 6만 명에 달하는 조선 정벌군을 둘로 나누었다.

조선의 시선을 끌기 위해 봉황성으로 보냈던 만주 주변의 병사들로 구성된 서로군과 조선 정벌군의 주축인 정백기로 구성된 동로군으로.

그리고 약속된 시일이 되자 색액도는 서로군에 전령을 보내 조선이 압록강 너머의 사정을 파악하지 못하도록 최대한 많은 정찰병을 풀어 조선의 정찰병을 차단하라는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심양에서 동로군을 이끌고 남하해 압록강 하류에서 약 60리 정도 떨어진 해안가에 진을 쳤고.

그렇게 이틀 정도 흘렀을 때 계획대로 서쪽에서 청나라의 수군함대가 등장하자 색액도는 즉각 동로군 일부를 수군함대에 탑승시켜 가까운 압록강 하류인 용암포로 보냈고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계책대로 조선은 동로군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채, 서로군을 조선 정벌군의 선발대라고 인식하고 이들의 움직임에 신경 쓰느라 압록강 하류인 용암포를 거의 비워두었고 덕분에 청나라 수군함대가 별다른 저항 없이 병력을 상륙시킬 수 있었다는 보고에 색액도는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그런가? 내 계책이 제대로 먹혀들어 갔다고?”

“그렇습니다. 작전 성공을 경하드립니다.”

“경하드립니다! 대인!”

작전의 첫 단추인 상륙 작전이 손쉽게 성공했다는 이야기에 막사 안에 있던 다른 부관들도 앞다투어 색액도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고, 색액도는 입을 귀에 걸면서 말했다.

“푸하하. 이거 고생하면서 등주에 있던 수군함대를 끌고 온 보람이 있군.”

조선도 전쟁이 곧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 색액도는 조선의 허를 찌르기 위해 발해만에 있는 여러 청나라 수군함대 가운데 등주에 있는 수군함대에 연락을 보내 조선 정벌군의 상륙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렇게 동원한 수군함대 덕분에 첫 단추를 잘 끼웠으니 색액도는 기뻐하면서도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허면 용암포는 점령한 상태라는 소리고...상륙한 병력은?”

이에 부관이 상세한 보고를 시작했다.

“작전대로 3천 명은 그대로 남하하고 있고 3천 명은 주변에 배치된 조선군을 공격하고, 곧 의주에서 남하할 조선군을 견제하기 위해 떠났으며 남은 1천 명은 용암포를 지키고 있습니다.”

“으음...그럼 우리 동로군이 전부 용암포에 상륙하기까지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 것 같은가?”

“예상했던 대로 2일은 걸릴 것 같습니다.”

부관의 보고에 색액도가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저들의 허를 찌른 것은 좋지만, 상륙에 너무 시간을 소비하는 것 같았기에.

“끙...그렇게 준비했는데도 2일이나 걸리다니...”

이에 부관이 색액도를 위로하듯 말했다.

“그렇게 준비했기에 고작 2일 만에 5만 명에 달하는 동로군을 용암포에 상륙시킬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부관의 말마따나 2일 만에 5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도하시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색액도도 모르지 않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그렇긴 하지. 알겠네. 그럼 용암포를 점령한 만큼 이곳을 떠나 동쪽으로 진군할 테니 곧바로 준비하도록 하지.”

이곳은 압록강과 거리가 떨어져 있는 만큼, 그리고 이미 전쟁이 시작된 이상 조선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는 없었기에 일부 병력을 제외하면 압록강 맞은편으로 이동해 수군함대의 배와 뗏목 등을 이용해 압록강을 도하할 예정이었기에 색액도가 명령을 내리자 막사 안에 있던 부관들이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총사령관님.””

* * *

평양에 주둔하고 있던 조선 지원군은 청나라 사신단이 떠난 이후 일꾼으로 위장해 의주 남쪽에 있는 철산도호부로 이동했다.

당연히 조선에 도착해 조선 지원군 사령부에 합류한 북미왕국의 지휘관들도 함께 이동해 철산도호부에 도착해 인근에 막사를 치고 숙영하기 시작했고, 이들 중 일부는 조선의 혹독한 추위에 혀를 내둘렀다.

“어휴. 더럽게 춥네. 아직 11월 초라면서 뭐 이리 추워?”

굳건한 바위는 막사에서 나오다 몸을 부르르 떠는 자신의 선임을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미시시피 남부 지역의 기후에 너무 익숙해지신 것 아닙니까?”

굳건한 바위는 선임이 그동안 겨울에도 날이 온화한 편인 미시시피 남부 지역에 배치되어 활동한 만큼, 아무래도 이런 추위에는 익숙하지 않은 것 아니냐면서 그렇게 추우면 얼굴도 가리라는 듯 방한 복면을 건넸고, 선임은 귀찮아서 쓰지 않았던 복면을 받아들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끙...고맙네.”

그리고 선임이 방한모를 잠시 벗고 복면을 쓰는 동안 굳건한 바위가 입을 열었다.

“뭐 아까 나가서 조선 군관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작년에도 그랬지만 올해도 겨울이 무척 빠르게 찾아온 것 같다고 하더군요. 아직 9월인데도 웅덩이나 개천에는 살얼음이 끼었다면서요.”

“9월? 아. 참. 조선은 우리와는 역법 체계가 조금 다르다고 했던가?”

“예. 이들은 음력을 사용하는지라 저희하고 차이가 좀 나더군요.”

굳건한 바위의 말에 복면과 방한모를 쓴 선임이 고개를 갸웃했다.

“흠. 듣자니 연합은 우리의 역법과 도량형을 받아들였다고 하던데...조선은 도량형은 받아들여도 역법은 그대로 고수하는 모양이군.”

연합뿐만 아니라 북미왕국과 교류한 수많은 남태평양의 부족들도 북미왕국의 역법과 도량형을 받아들였고, 조선 역시 그동안 사용하던 도량형과 북미왕국의 도량형을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북미왕국에서 건네준 이런저런 설계도라던가, 몇 안 되는 기술 서적이나 북미왕국의 교과서는 모두 북미왕국의 도량형으로 쓰여 있었기에 이를 접하도 보니 조선인들도 북미왕국인들이 사용하는 도량형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던 탓이다.

하지만 역법은 기존의 역법을 고수하고 있었고, 선임이 듣기로 조선의 역법 체계는 실제 계절과 오차가 커서 농사를 짓기에 불리해 따로 24절기를 사용하는 만큼, 편하게 북미왕국의 역법을 사용하는 것이 낫지 않나 싶어 중얼거리자 굳건한 바위가 고개를 저었다.

“그거야 어쩔 수 없습니다. 일단 조선은 청나라의 제후국이니까요.”

“음?”

“동양에서 역법을 제정하고 반포할 권리는 오로지 황제에게 있다더군요. 그래서 제후국은 청나라에서 반포한 역서를 받아 사용하고요. 그러니 조선이 우리의 역법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거지요.”

굳건한 바위의 설명에 선임은 얼굴이 답답한지 복면을 매만지면서 말했다.

“근데 청나라와의 전쟁은 기정사실 아닌가? 그럼 전쟁 이후에 조선이 우리의 역법을 받아들일 수도 있겠네?”

그동안이야 청나라와의 분쟁을 우려해 청나라의 역법을 따랐지만, 전쟁 이후에는 그럴 필요가 없지 않나 싶어 선임이 말하자 굳건한 바위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동양에서 역법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면 전쟁 이후에는 조선이 독자적으로 역법을 만들 것 같습니다만...”

“아. 그럴려나?”

생각해보니 동양에서 역법을 제정하는 의미를 생각하면 조선도 독자적으로 역법을 제정할 가능성이 컸기에 선임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남쪽의 입구가 소란스러워서 둘은 고개를 돌렸고.

관복을 입은 이들이 급히 달려오는 모습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음? 저건 도호부사 아닌가?”

“복식을 보니 그런 것 같은데요? 헌데...”

도호부사와 일행들은 급히 중앙에 위치한 조선 지원군 사령관의 막사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굳건한 바위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흐리자 선임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도호부사와 관리들이 저렇게 헐레벌떡 뛰어온다는 것은 큰일이 발생했다는 소리겠지.”

“예. 바로 사령관님께 가야겠습니다.”

“그러자.”

* * *

조선 지원군 사령관인 카무이쿠르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철산 도호부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는 것을 보고 전쟁이 일어났음을 직감하고 표정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전쟁이 일어난 겁니까?”

“맞습니다! 사령관! 지금 청나라군이 의주 대로를 따라 남하하고 있답니다!”

카무이쿠르는 철산 도호부사의 이야기에 당황했다.

분명 의주에 배치된 병력이 2만에 가까운데 청나라군이 남하하고 있다니.

“예? 청나라군이 지금 남하하고 있다고요? 의주가 뚫렸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청나라군이 배를 이용해 용암포로 상륙했고, 처음 상륙한 청나라군이 곧바로 남하를 시작했답니다!”

설마 청나라군의 기습에 전령도 보내지 못하고 의주에 배치된 병력이 전멸한 것은 아닐까 걱정했던 카무이쿠르는 철산 도호부사의 이야기에 현 상황을 파악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현재 남하하고 있다는 청나라군의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얼마나 말입니까?”

“대략 3천 명으로 추산된답니다! 그리고 모두 기병이라 빠르면 한 시진 후면 이곳으로 들이닥칠 거랍니다!”

이에 카무이쿠르는 기겁하며 반문했다.

“한 시진? 그럼 두 시간 후에 청나라군이 이곳에 도착한다는 소립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이들의 남하를 막기 어렵다 보니...”

철산 도호부사 역시 의주 대로를 방어하기 위해 지방군 일부를 지휘하고 있긴 했지만, 이들로 청나라 기병대를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철산 도호부사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곧바로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을 깨달은 카무이쿠르가 더 말할 필요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아. 잘 알겠습니다. 상황이 급한 만큼 더 이야기할 시간이 없겠군요. 바로 병사들을 준비시켜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오오! 감사합니다!”

철산 도호부사는 카무이쿠르의 대답에 무척 기뻐하면서 감사의 뜻을 표한 후 곧바로 병사들을 지휘하겠다며 막사를 나갔고 그때까지 지도를 살피면서 생각을 정리한 카무이쿠르는 상황을 전해 듣고 모여든 지휘관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들 상황은 전해 들었지?! 상황이 급하다! 선임 조장들은 곧바로 아이누 경비대의 지휘관들에게 상황을 설명해서 병사들을 집합시키고 무기와 탄약을 나눠주도록! 딱 20분 주겠다!”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카무이쿠르의 명령에 선임 조장들이 일제히 막사에서 빠져나갔고, 카무이쿠르는 막사에 남은 총 조장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굳건한 바위.”

“예! 사령관님!”

“자네는 특수군으로 가게. 가서 기관총을 장착하고 전투 준비를 하되...일단은 대기하라고 전하게.”

이에 막사 안에 있던 총 조장들은 카무이쿠르의 생각을 눈치챘다.

카무이쿠르는 이번 전투에서 특수군을 배제할 생각이라는 것을.

아이누 탐사대가 아직 가도에 있는 만큼, 현재 이곳으로 남하하고 있는 청나라 기병대의 퇴로를 차단해 전멸시킬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 비장의 한 수인 특수군을 아끼겠다는 뜻이었다.

특히나 청나라군의 주력이 조선이나 자신들의 예상과는 달리 용암포에 상륙하고 있는 만큼, 자신들이 북진하고, 의주에 있는 병력이 남하해 용암포로 진군, 이들을 포위한다면 청나라군의 주력을 완벽히 섬멸할 수도 있는 만큼, 특수군의 존재를 최대한 숨기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 배치된 병력은 아이누 경비대 5천 명이었기에 청나라군 3천 명을 상대하는 것이 크게 어려울 것 같지도 않았기에 총 조장들은 별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고.

굳건한 바위 역시 비슷한 결론을 내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자신이 별말 하지 않았음에도 상황을 이해한 듯 보였기에 카무이쿠르는 미소지으며 고개를 돌려 입을 열었다.

“그리고 조병수.”

“예! 사령관님!”

“자네는 즉각 가도로 가게! 가서 아이누 탐사대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내일까지 아이누 탐사대를 이곳으로 데려오게!”

청나라에서 수군을 동원했다는 이야기에 카무이쿠르는 순간 가슴이 철렁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청나라 수군이 남하했다면, 가도에 있는 아이누 탐사대가 고립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청나라 수군이 당장은 병력을 수송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만큼, 카무이쿠르는 저들이 모든 병력을 수송하기 전에 가도에 있는 아이누 탐사대를 철산 반도로 이동시킬 필요가 있어 명령을 내리자 조병수 역시 상황을 짐작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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