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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552화 (552/850)

552화

새진주에 도착한 정성국은 정성국을 기다리고 있던 새진주의 관리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곧바로 대기하고 있던 왕실 전용 기차를 타고 새한성으로 복귀했다.

그 후 잠시 휴식을 취하며 여행의 피로를 푼 정성국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집무실로 향했고, 집무실의 문을 열자 정성국의 책상 위에 빼곡히 쌓인 각종 보고서를 보고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끙...”

정성국이 새한성을 비운 지도 거의 50일 가까이 흘렀으니 쌓여있는 보고서가 많으리라고는 짐작했지만, 정성국의 예상보다도 많은 양의 보고서가 자신을 반기고 있었기에 정성국은 차마 집무실 책상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당분간은 고생 좀 해야겠군.”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대부분의 보고서는 정성국이 결재를 해 줘야 하는 보고서가 아니라 각종 사안을 확인만 하면 그만이었기에 빠르게 보고서를 살피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가 집무실을 방문했고.

“전하?”

시선을 가로막는 보고서 더미 덕분에 누가 왔는지도 알 수 없었던 정성국은 목소리를 듣고서야 집무실을 방문한 상대를 파악하고 입을 열었다.

“아. 조용한 곰. 자넨가?”

“허허허. 거기 계셨습니까.”

보고서 더미에서 정성국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조용한 곰은 웃음을 터트렸고 정성국은 들고 있던 보고서를 내려놓고 일어나 티테이블로 향하며 오랜만에 보는 조용한 곰에게 말했다.

“오랜만이네. 헌데 이 아침부터 웬일인가?”

“몇 가지 보고할 사항이 있어서 전하를 찾아뵈었습니다만...급한 일은 아니니 나중에 보고할까요?”

조용한 곰이 집무실 책상에 쌓인 보고서를 바라보고 조금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며 묻자 정성국이 손을 내저었다.

“됐네. 저기 있는 보고서들은 천천히 확인하면 되니까.”

그러면서 정성국은 커피를 내려 조용한 곰에게 건네며 물었다.

“헌데 보고할 사항이 있다고? 뭔데 그러나?”

정성국이 건네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조용한 곰은 커피잔을 탁자에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 새한성을 떠나신 직후, 북방항로가 닫히기 직전에 쾌속선을 통해 올라온 보고인데...막부의 쇼군이 사망했답니다.”

“음? 막부의 쇼군이 사망했다고?”

“그렇습니다. 전하.”

정성국은 왜국의 지도자라 할 수 있는 막부의 쇼군 도쿠가와 이에츠나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의외라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투로시노를 통해 파악하기로는 도쿠가와 이에츠나가 오랫동안 막부의 쇼군으로 왜국을 통치하기야 했지만, 그의 아버지인 전대 쇼군이 비교적 이른 시기에 사망하고 후계자였던 도쿠가와 이에츠나가 11살 때 쇼군이 되었기에 통치 기간이 길 뿐이지 나이가 많은 편은 아니었기에.

“흐음...내 기억으로 이번에 사망한 쇼군이 나와 연배가 비슷했던 것으로 아는데? 그럼 노환으로 사망한 것은 아닐 테고...”

조용한 곰은 그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병으로 사망한 것 같습니다.”

“병이라...병명은 모르고?”

“그렇습니다. 막부에서도 쉬쉬했고, 투로시노 역시 조선 쪽에 신경을 집중하다 보니...”

확실한 정보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 송구하다는 표정을 짓는 조용한 곰을 보고 정성국은 손을 내저었다.

도쿠가와 이에츠나가 무슨 병으로 죽었든 이미 죽은 이의 사인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 올 한해 투로시노는 조선과 청나라 쪽에 신경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아. 괜찮네. 사인이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그보다는...우리에겐 비교적 우호적인 편이었던 쇼군이 사망한 셈이니 아쉽긴 하군.”

사망한 도쿠가와 이에츠나는 북미왕국에 비교적 우호적인 편이었다.

처음에야 에조치의 아이누인들을 뒤에서 도운 북미왕국을 좋게 바라보기야 어려웠지만, 북미왕국의 국력을 파악한 뒤로는 고작 에조치 때문에 북미왕국과 계속 적대하는 것은 손해라고 판단했던 터라 북미왕국이 먼저 사절단을 보내 자신의 체면을 적당히 세워주자 곧바로 북미왕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교류하기 시작했으니까.

덕분에 교역을 통해 꽤 많은 이득을 챙길 수 있었던 만큼,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도쿠가와 이에츠나가 사망했다는 것에 아쉬움을 표하는 정성국을 보고 조용한 곰이 말했다.

“그렇긴 하지요. 다만 아국과의 거래로 왜국 동북지방의 경제가 활성화되어 왜국도 재정적인 이득을 보고 있는 만큼, 차기 쇼군이라 하더라도 아국과의 관계를 달리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투로시노가 보고했습니다.”

실제로 동북지방의 경우 변방이고 농업 생산력은 떨어져 가난하고 낙후된 지방에 불과했지만, 북미왕국과 정식으로 교역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발전하고 있었기에 아무리 차기 쇼군이라 하더라도 북미왕국과의 관계를 멋대로 단절했다가는 동북지방의 번주들이 격렬히 반발할 테니 그럴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이 조금 안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다행인데...차기 쇼군? 이번에 사망한 쇼군의 자식인가?”

“사망한 쇼군은 자식 복이 없었습니다. 해서 병으로 위독해지자 배다른 막냇동생을 양자로 맞이해 후계자로 삼았다고 하더군요.”

어차피 일본이야 후계를 위해 먼 친척을 양자로 들이는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었기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예. 해서 투로시노는 이번에 사망한 쇼군을 조문하고, 또 이번에 즉위한 차기 쇼군을 축하하기 위한 사절단을 구성해 에도를 방문하겠다고 하더군요.”

“뭐 왜국과의 무역 규모도 점차 커지고 있으니 조문 사절단과 즉위 축하 사절단을 보내는 거야 당연하긴 한데...본국에서 따로 사절단을 보내지 않아도 되려나?”

왜국에서 사들이는 식량과 면직물의 양도 많은 편이었고, 왜국에서 사 오는 구리를 비롯한 각종 현물도 없으면 아쉬울 정도였기에 왜국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본국에서 따로 사절단을 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 정성국의 질문에 조용한 곰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아시아 지역의 외교야 투로시노에게 전권을 맡겼다는 것을 왜국에서도 알고 있고, 이전부터 왜국을 사절단의 대표로 방문한 것이 투로시노였으니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야...”

정성국이 생각하기에 이미 동북아 삼국에서는 투로시노를 북미왕국의 대리인으로 알고 있는 만큼, 조용한 곰의 말처럼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기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왜국과의 보고를 마무리한 조용한 곰은 바로 다른 주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주나라에서 연락을 보내왔습니다.”

“주나라에서? 뭐라고?”

청나라와 관계가 틀어지면서 주나라와도 접촉할 생각으로 접촉을 시도했지만, 거리가 거리였고 송상을 통해 연락을 취한 만큼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 잊고 있었는데 마침내 주나라에서 연락이 왔다는 조용한 곰의 보고에 정성국이 흥미를 나타내자 조용한 곰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주나라 역시 우리 북미왕국과의 교역을 몹시 바라고 있으며 올해 안에 광서성 남쪽의 방성현까지 기필코 진출할 테니 내년에 아국의 상인들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방성현?”

정성국이 생소한 지명에 고개를 갸웃하자 조용한 곰은 이를 예상했던지 품에서 청나라가 그려진 지도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고 한 해안가를 가리켰다.

“이곳입니다. 전하.”

조용한 곰이 가리킨 곳은 중국 남부에 있는 마카오에서 서쪽으로 500km가량 떨어진, 그리고 베트남의 국경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해안가였기에 정성국이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거의 끝이잖아? 멀긴 멀군.”

“그렇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동녕국과 교역 협정을 맺었기에 개항장과 방성현 중간에 있는 대만 섬을 보급 거점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조용한 곰이 대만 섬을 가리키며 보급 거점이 있으니 방성현까지의 거리가 멀긴 해도 배를 보내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자 정성국이 청나라 남부의 지도를 바라보며 조금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건 다행이긴 한데 대만 섬에서 방성현까지 가려면 결국 광동 해안을 지나야 하잖나. 그리고 이곳엔 동녕국의 공격을 견제하기 위해 청나라 해군이 꽤 배치되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청나라는 끊임없이 해안가를 공격하는 동녕국의 공격을 막기 위해 청나라 해안가를 크게 4등분 하고 명나라 해군들을 청나라 해군으로 받아들여 해안가를 지켰다.

그렇기에 조선의 개항장에서 대만 섬까지 항해할 때까지는 청나라 해군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지만, 대만 섬에서 보급받은 후 서쪽으로 항해한다면 청나라 해군까지 고려해야 했기에 정성국이 상선을 보내기 전 3함대를 보내 이곳의 청나라 해군을 모두 박살 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조용한 곰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긴 한데 어차피 청나라 해군의 배는 작은 편이라 먼바다로 나오지는 않잖습니까. 그걸 이용하면 주나라와 교역하는 데는 크게 지장 없을 듯싶습니다.”

“음? 아. 대만 해협 사이로 해서 해안가를 따라 항해하는 것이 아니라 대만 섬 동쪽으로 크게 우회하는 항로를 이용하자?”

정성국이 조용한 곰의 생각을 눈치채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으로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대만 섬의 동쪽에서 남하하다가 서쪽으로 항해해 해남 섬 남쪽을 지나 북쪽으로 항로를 틀면 비교적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에스파냐와의 영토 매매 협상이 끝난다면 필리핀 북부 지역에 아국의 항구가 들어서는 만큼, 나중에는 대만 섬 대신 이 항구를 중간 거점으로 이용하면 될 테고요.”

확실히 조용한 곰이 말한 우회 항로라면 꽤 돌아가는 셈이었지만, 청나라 해군을 신경 쓸 필요는 없었고, 대만 섬 남쪽이 바로 필리핀인 만큼 훗날 이곳에 북미왕국의 항구가 들어서면 동녕국 뿐만 아니라 주나라와도 본토에서 직접 배를 보내 양국과 교역할 수 있는 만큼 주나라가 이야기한 방성현의 위치도 썩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해 지도를 보며 중얼거렸다.

“아. 그렇긴 하군. 흠...뭐 동녕국을 통해 밀무역할 수 있는 터라 주나라와의 교역이 꼭 필요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동녕국에서 소화할 수 있는 물량엔 한계가 있는 만큼 주나라와의 교역도 나쁠 것 없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청나라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상 청나라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주나라와 교역하면서 이들을 지원해줄 필요가 있고요.”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의견에 동의했는데 역사를 보아도 중원을 통일하고 안정시킨 이후의 중원 왕조들은 하나같이 주변의 강성한 세력들을 공격해 약화시키는 데 집중했고, 특히 전생에서 강희제는 내부를 안정시킨 후 청나라에 위협적인 주변 세력들을 모조리 공격해 정복한 인물이니만큼 설사 이번에 예상되는 청나라의 공격을 조선이 막아내고, 북미왕국의 개입으로 청나라가 당장은 화친을 맺더라도 내부가 안정되어 있다면 나중에는 어떻게든 조선에 복수하려 들 것이 뻔했다.

그런 만큼 교역을 통해 주나라를 지원해서 주나라의 생존을 돕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알겠네. 일단 준비해놓고, 저들이 방성현을 확보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곧바로 교역을 진행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전하.”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한 정성국은 조용한 곰이 아까 이야기한 에스파냐와의 영토 매매 협상의 진행 상황이 궁금했기에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에스파냐와의 협상은 어떻게 되어가나? 새진주에 도착했을 때 웅크린 늑대는 별다른 보고를 하지는 않던데?”

이에 계속되는 보고로 목이 말랐던 조용한 곰이 커피로 목을 축인 후 입을 열었다.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단 저들도 상황이 급한 터라 비교적 빠르게 협상을 진행하고 있어서 말입니다. 대략적인 합의야 끝난 상태이고...지금은 웅크린 늑대가 아국이 매입할 마리아나 제도와 필리핀 북부 지역의 가치를 철저히 계산하는 중이지요.”

조용한 곰이 묘한 미소로 이렇게 대답하자, 정성국은 상황을 짐작하고 피식 웃었다.

“웅크린 늑대가 일부러 시간을 끄는 건가?”

“그렇습니다. 아국이야 급할 것은 없으니까요.”

이에 정성국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표정이었기에 조용한 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웅크린 늑대가 전하를 알현했을 때는 다른 관리들도 있었고, 깊은 이야기를 꺼내기엔 적절한 자리가 아니었기에 별말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만...웅크린 늑대는 최대한 시간을 끌며 이번에 아국이 매입하는 영토의 가격을 깎을 계획이며 저도 웅크린 늑대의 의견에 동의했습니다.”

“음?”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정성국이 고개를 갸웃했을 때 조용한 곰이 말했다.

“현 에스파냐의 상황과 유럽의 상황을 고려해보면, 이번에 영토를 판매한다고 해도 당장 에스파냐의 재정 상황이 모두 해결되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야 그렇겠지.”

“그런 만큼 에스파냐는 재정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차후에 더 많은 땅을 아국에게 팔아치울 수도 있겠지요.”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이 신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흐음...그럼 이번 거래가 그 기준점이 될 수 있으니 최대한 값을 깎아 훗날 거래에서 주도권을 잡겠다 이건가?”

“그렇습니다. 전하. 어차피 에스파냐가 땅을 판매할 대상은 저희 북미왕국밖에 없을 테니 말입니다.”

이에 정성국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었다.

“뭐...그 생각이 이해는 되는데, 당장 저들이 급한 상황에서 협상을 질질 끌다가 저들과의 관계가 악화되면 오히려 그게 문제 아닌가. 그러니 적당히 하라고 전하게. 괜히 에스파냐 외교관을 울리지 말고. 어차피 현물로 거래하는 만큼, 조금 더 가격을 쳐주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도 아니고.”

정성국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기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알겠습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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