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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549화 (549/850)

549화

조선을 방문했던 청나라 사신단은 청나라로 돌아가면서 다시 한번 조선의 주변 지역을 상세히 살피면서 느릿느릿 압록강까지 이동했고, 압록강을 넘은 후에는 조금 빠르게 이동해 심양에 도착했다.

그리고 청나라 사신단은 이 심양에 팔기 중 하나인 정백기가 집결해 있다는 사실과 북경에 있어야 할 색액도가 조선 정벌군 총사령관의 자리를 맡아 직접 심양에 와 있다는 이야기에 무척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색액도는 강희제의 권신 중 하나로 그의 조카딸은 강희제의 제1 황후였고, 조카딸이 강희제와 혼인을 치른 후 어린 강희제를 대신해 사병을 양성해 황제인 강희제를 무시하고 전횡을 일삼던 오베를 참살한 이후로는 공신으로 인정받고 강희제의 총애를 받으며 권력을 누려왔던 자였으니까.

그런 이가 이번 조선 정벌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심양에 와 있으니 사신은 새삼 이번 조선 정벌을 강희제가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알게 되었고.

그리고 청나라 사신단이 심양에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았는지 색액도가 자신을 불렀다는 이야기를 듣자 사신은 즉시 관리를 따라 색액도를 만나기 위해 이동했고.

화려한 건물로 들어서자 커다란 탁자 위에 놓인 만주와 조선의 지도를 바라보고 있던 색액도는 조선을 방문했던 사신을 보고 손을 들었다.

“오랜만이군.”

사신은 색액도를 보고 허리를 숙여 인사한 후 허리를 들면서 입을 열었다.

“심양에 도착하고 나서 영시위내대신께서 이번 조선 정벌군 총사령관 자리를 맡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습니다.”

이에 색액도는 허리를 펴고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감히 조선이 우리 대청과 하늘 같은 황상 폐하의 은덕을 잊고 반란군과 손을 잡았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내 어찌 황도에서 뒷짐만 지고 있겠는가!”

“오오! 역시 대인께서는 만고의 충신이시옵니다.”

“암암.”

색액도는 사신의 반응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그의 속내는 복잡했다.

색액도는 오베의 난 이후 명실상부한 이인자나 다름이 없었다.

물론 강희제가 오베의 난을 겪으면서 권신을 경계하는 기색이 있었기에 색액도는 항상 강희제의 눈치를 살피며 행동했고, 그 때문에 강희제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 북경에서 삼번이 점차 세력을 확장하면서 역모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때마침 상가희가 고향인 요동으로 돌아가겠다며 평남왕 자리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상소를 올리자 강희제는 이를 기회로 보고 번을 철폐할 뜻을 내보였고.

이에 색액도는 삼번이 중원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전투에 종사하며 혁혁한 전공을 세웠고, 이후로도 해당 지역을 안정시키고 있는데 번을 철폐하는 것은 혼란을 자초하는 일이라며 반대했다.

하지만 강희제는 또 다른 권신이 될 수 있는 삼번을 절대로 그냥 놔둘 생각이 없어 상가희의 요동 귀환은 허락해도 평남왕작의 세습은 불가하다고 선언하면서 결국 삼번의 난이 발생하게 되고 그러면서 삼번을 옹호한 색액도는 곤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색액도의 공은 크고 강희제 역시 제1 황후의 인척을, 그리고 훗날 자신의 적자인 윤잉에 힘이 되어 줄 색액도를 반란군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가차 없이 쳐내기보다는 영시위내대신으로 임명해 내정을 맡기긴 했지만, 색액도는 강희제의 신임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조선의 내부 사정이 알려지고, 계속되는 반란으로 인해 국력을 소모 중인 대청과는 달리 조선은 착실히 국력을 축적하고 있으며, 내부에서는 북벌론이 거론되고 있었으니 더 성장하기 전에 조선을 밟지 않는다면, 훗날 조선을 정벌하는데 많은 인력과 재물을 소모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고 강희제도 조선 정벌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자마자 색액도는 강희제의 신임을 얻기 위해 조선 정벌을 적극적으로 찬성했고.

그리고 조선 정벌이 결정되자 조카딸인 효성인황후에게 청해 결국 조선 정벌군 사령관 자리까지 얻어내었다.

그러니 색액도로서는 이번 조선 정벌에서 승리해 강희제의 신임을 되찾을 필요가 있었기에 곧바로 조선을 다녀온 사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조선은 어떤 결정을 내렸나? 황상 폐하의 명령을 거역한 것인가?”

“그렇습니다. 황상 폐하께서는 조선에 아량을 베풀어 출병 대신 조선 세자의 입조와 군자금, 식량 지원으로 조선의 결백을 증명할 기회를 주었습니다만...저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협상을 끌다가 결국 자국의 사정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요구라며 거절했습니다.”

“역시 그런가.”

어차피 청나라에서도 조선이 순순히 자신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었기에 겨울이 되기 전에 일단 조선과 가까운 심양에 조선 정벌군을 파견한 만큼 색액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조선 내부의 사정은 어떤가?”

이에 사신은 조금 인상을 굳히며 대답했다.

“확실히 이전과는 많이 다릅니다. 아마 북미왕국과 교류하면서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

“예. 황상 폐하께서 조선을 너무 경계하시는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직접 조선을 다녀오니 과연 황상 폐하는 자금성에서 천하를 세세히 살피시는구나 싶었습니다.”

사신의 말 속에 담긴 감탄을 포착한 색액도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색액도는 조선이 정말 빠르게 성장해 대청에 위협이 될 거라는 생각보다는 강희제의 의중을 파악해 앞장서 나섰을 뿐이었으니까.

“허. 그 정도였나? 조선의 상황이?”

“그렇습니다. 백성들이 공공연히 태평성대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식량이 풍족하고, 도로를 정비해 물산이 돌고 있으며 곳곳에서 광산을 개발 중이더군요. 또한, 북미왕국에서 기차를 도입한다면서 조선 곳곳의 땅을 다지고, 강에는 다리를 놓기 위해 공사 중이며...”

“잠깐. 기차? 그 서양의 선교사들이 이야기했던 물을 끓여 하루에 천 리를 움직인다는 그 북미왕국의 기물 말인가?”

“그렇습니다.”

색액도 역시 북경에 있었기에 서양인 신부들을 간혹 만난 적이 있었고, 이들을 통해 북미왕국의 정보를 일부 접했었기에 사신의 말에 신음을 흘렸다.

“으음...서양인들에게 듣기로는 북미왕국은 그 기차라는 기물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해 다른 나라에는 절대 넘기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걸 조선에 넘긴다? 역시...조선과 북미왕국의 관계는 보통이 아니로군.”

“그렇습니다. 조선인들은 북미왕국을 형제국으로 생각하고 있고 북미왕국 역시 조선을 형제국으로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 때문에 북미왕국은 조선에 기근이 닥쳤을 때는 식량을 지원해주고, 조선이 발전할 수 있도록 이런저런 도움을 주는 모양입니다.”

사신의 대답에 색액도는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럼 우리가 단기간에 조선의 항복을 받아내지 못한다면 분명 개입하겠군.”

강희제가 북미왕국의 외교관을 불러 조선 대신 대청과 손을 잡을 기회를 주었음에도 북미왕국은 대청을 선택하는 대신 조선을 택했기에 청나라에서도 자신들이 조선을 정벌하기 위해 병력을 움직인다면 북미왕국에서 개입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다만 북미왕국 본토는 무척 멀리 떨어져 있었고, 장거리 원정이라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사신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북미왕국이 무조건 개입할 것 같았기에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서양인 신부들은 북미왕국의 국력이 대단하다고 입을 모을 정도였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북미왕국은 태평양이라는 거대한 바다 넘어 존재한다는 것이고, 북미왕국에서 이용하는 항로는 겨울이 되면 일부가 얼어붙어 겨우내 본토와의 연결이 끊기는 만큼, 항로가 다시 열리기 전에 조선의 항복을 받아낸다면 북미왕국이 개입하기 전에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으로 보였고.

물론 고혈도, 이제는 아이누 섬이라고 불리는 곳 역시 북미왕국의 영토이며 이곳에 병력이 일부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은 파악했지만, 고작 섬 일부에 배치된 병력만으로 대청의 군세를 버티지야 못할 테니 말이다.

“예. 확실히 개입할 겁니다. 이번에 각종 다리와 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북미왕국의 기술자들이 대거 조선에 들어오기도 한 터라...”

“음? 북미왕국인들이 조선에?”

색액도가 흥미를 보이자 사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예. 조선은 철도나 다리를 건설할 기술이 부족해서 북미왕국이 직접 기술자를 대거 파견했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조선을 방문하면서 북미왕국인들을 보기도 했고요.”

사신의 보고에 색액도는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북미왕국인들이 조선에 대거 파견되었다면 이들을 포로로 잡아 이용할 수 있었기에.

“흐음...그럼 북미왕국인들은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이야기해둬야겠군.”

“예. 북미왕국인들은 포로로 잡는 것이 나을 듯싶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도로를 정비하고, 또 철도를 부설하겠다고 땅을 잘 다져둔 덕분에 이를 이용하면 예상보다 빠르게 한양에 당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호. 그건 그렇군. 조선의 발전을 위해 건설 중인 철도를 이용해 빠르게 조선을 들이친다라...하하하. 나쁘지 않아.”

이런 색액도의 반응에 사신은 색액도가 조선군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게 아닌가 싶어 조금 걱정스럽기는 했다.

듣자니 조선 역시 내부 사정이 많이 나아지면서 군을 재정비하고 있었다는 정보를 입수했었기에.

하지만 그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고, 색액도를 만나기 전 군관에게 듣기로는 조선 정벌군 규모가 6만에 달했기에 조선을 상대하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으리라 판단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기에 질문을 던졌다.

“헌데 듣기로 출병이 조금 일러질 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이에 색액도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네. 12월이 되기 전에 압록강을 넘을 생각이네.”

“어? 물론 그때 날씨가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색액도는 사신이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안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강과 땅이 얼어붙으면 진격하기 쉬운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조선도 충분히 대비하고 있을 테니...허를 찔러야 하지 않겠나?”

“그렇기야 하지요. 허나 이곳에서 조선의 수도인 한양까지 도달하는데 강이 여럿 있습니다. 그곳에서 도강하느라 시간을 지체하면 조선왕이 수도를 비우고 도망치지 않겠습니까.”

사신의 반문에 색액도는 그런 사항들을 충분히 고려했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조선 출신들에게 정보를 수집한 결과 조선 북부는 가을에 비가 많이 내리는 편은 아니라 11월 정도면 하천의 수량이 꽤 줄어든다더군. 그 정도면 시간을 조금 지체하더라도 도강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을걸세.”

“으음...확실히 제가 한양을 방문했을 때와는 달리 돌아올 때 강의 수량이 줄긴 했었지요.”

사신이 색액도의 말에 수긍하자 색액도가 덧붙였다.

“그렇지. 그리고 봉황성의 보고를 받아보니 최근엔 이상할 정도로 겨울이 춥고 빨리 온다고 하니 시기가 잘 맞는다면 남하할 때쯤 강들이 결빙되었을 수도 있어. 그러면 이전보다도 더 빠르게 한양도 도달할 수 있을걸세.”

“으음...알겠습니다. 하지만 조심하시지요. 조선도 우리 대청의 공격을 예상하고 전쟁을 준비하는 징후가 곳곳에서 보였으니 말입니다.”

협상하면서도 조선은 이미 전쟁이 일어날 거라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 때문에 귀환할 때 더욱 천천히 움직이면서 조선의 각종 정보를 수집한 것이고.

물론 제대로 된 군사 정보를 많이 획득하지는 못했지만, 의주에 있는 백마 산성, 용골 산성 등에는 병력이 꽤 주둔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에 이를 색액도에게 알려주었지만 색액도는 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색액도도 조선군을 무조건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색액도는 이전처럼 조선의 수도인 한양을 향해 전군을 이동시킬 생각이었기에 산성에 틀어박혀 있는 조선군을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하하하. 그래 봐야 전쟁의 경험도 제대로 없는 조선군이 대청의 군대를 막을 수 없을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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