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4화
플로리다의 산아구스틴에서 머물며 일정을 마무리한 정성국은 정성국의 얼굴을 먼발치서나마 보겠다고 해변가로 몰려든 백성들의 배웅을 뒤로하고 북쪽으로 향했다.
다음 행선지는 바로 캐롤라이나 지역의 거점 항구인 야마세 항이었는데 이 야마세라는 이름은 거점 항구 주변의 원주민 부족의 이름으로 이 지역에 항구를 건설한 후 개발청에서 항구 건설에 일부 도움을 준 야마세 족을 기리기 위해 이러한 이름을 붙였고.
야마세 족은 북미왕국에서 건설한 항구의 이름에 자신의 부족 이름이 붙자 무척 기뻐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야마세 항에 드나들다 결국 북미왕국에 합류했고, 이를 조용한 곰에게 전해 듣고 정성국은 도시 이름을 주변 원주민 부족의 이름으로 지어줘서 그 부족을 북미왕국에 합류시킬 수 있다면 남는 장사라면서 웃은 적이 있었다.
아무튼, 다음 날 아침 캐롤라이나 지역의 야마세 항에 도착했고 이 소식을 접한 정성국은 가족들과 함께 갑판 위로 나와 야마세 항을 구경했는데, 야마세 항 자체는 다른 북미왕국의 항구와 같았지만, 인근에 보이는 커다란 고층 건물의 존재감이 야마세 항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를 보고 정성국이 새삼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이야. 이렇게 보니 정말 높은데?”
“그러네요. 저 건물이 지금 북미왕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죠?”
하얀 들꽃이 하늘 높이 솟은 건물에 눈을 떼지 못하며 정성국에게 묻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물론 지금 새진주에서 짓고 있는 건물이 완공되면 그 자리를 내어줘야 하겠지만 말이야.”
정성국의 대답에 옆에 있던 전아라가 끼어들었다.
“아. 그거 말이죠? 절반 정도 지었다고 하던데 그 옆에 있는 관공서 건물보다 높아서 조금 놀라긴 했어요.”
정성국은 전아라의 대답에 자신과는 다르게 가족들은 새진주에서 배를 타고 왔기에 현재 새진주에서 건설 중인 고층 건물을 봤다는 것을 깨닫고 말했다.
“아. 여기 오면서 봤겠구나. 맞아. 그 건물이 완공되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도 북미왕국에 있게 되는 거지.”
정성국은 지금 저기 보이는 100m 높이의 고층 건물만 하더라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개발청 소속의 건축가들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타국에 있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고, 그보다 높은 건물을 건설할 능력이 되는 만큼 150m에 달하는 고층 건물을 건설하자고 졸라댔고.
고층 건물을 건설하고 보니 의외로 주민들도 이런 대단한 건물마저 지을 수 있을 정도로 북미왕국의 기술 수준이 대단하다는 것에 실감하며 자부심을 품었기에 세상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라는 타이틀을 가져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겨 결국 이를 승낙했다.
해서 새진주에서는 관공서 건물 인근에 새로운 고층 건물을 건설 중이었고 이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내년 말이면 완공될 것이라는 보고를 받았었기에 가족들에게 이를 설명하자 정성국의 앞에서 고층 건물에 시선을 떼지 못하던 정나리가 몸을 돌려 정성국을 바라보고 눈을 반짝였다.
“아빠! 새로운 건물이 완공되면 구경하러 가도 되죠?”
평소에는 아버지라고 불렀지만, 정성국이 아빠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렇게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아빠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이 사랑스럽고도 영악한 자신의 딸을 보고 정성국은 미소지으며 답했다.
“하하하. 그래. 그러자꾸나.”
그렇게 정성국은 가족들과 대화를 나눈 후 배가 선착장에 정박하고 계단이 연결되자 곧바로 배에서 내리자 선착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야마세 항의 주민들이 정성국을 보고 환호하기 시작했다.
이미 정성국이 가까운 산아구스틴을 방문했다는 소문과 정성국이 이번 기회에 북미 동해안 지역을 시찰한다는 소문이 이 야마세 항에 퍼진지 오래였기에, 주민들은 혹시나 하고 기대하고 있다가 쉽게 보지 못한 대규모 함대가 등장하고, 처음 보는 커다란 선박에 왕실기가 휘날리자 정성국이 이 야마세 항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던 일까지 접고 정성국의 얼굴을 보기 위해 몰려든 것이다.
특히 캐롤라이나 지역의 경우 흑인 노예 출신이 무척 많았고, 이들은 자신들을 사들여 해방해 노예의 굴레를 벗어나게 만들어 준 정성국을 무척 각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정성국으로 짐작되는 화려한 복장의 인물이 계단을 통해 배에서 내리자 주민들을 열광하며 환호했고 정성국은 이곳의 주민들이 왜 이런 열정적인 반응을 보이는지 어느 정도 짐작했기에 밝게 웃으면서 백성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후 선착장 앞쪽에서 자신을 마중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캐롤라이나 지역 관리들의 환대를 받았다.
“캐롤라이나의 거점인 야마세 항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하옵니다. 전하.”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인 후 슬쩍 관리들을 살펴봤는데 흑인들의 숫자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이곳에 나올 정도라면 고위급 관리라는 소린데 그 비율이 적지 않았기에 정성국은 몹시 만족하며 대답했다.
“나도 이렇게 아름다운 항구 도시를 방문하게 되어 영광이네.”
허허벌판에서 야마세 항을 건설하고 이렇게 발전시켜나가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관리들은 이 정성국의 이야기가 칭찬으로 들렸기에 무척 기뻐하며 앞으로의 일정을 대략적으로 설명했고.
정성국은 이를 듣다가 조금 의문이 들어 질문을 던졌다.
“음? 관사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저 고층 건물로 간다고?”
보통 관리들을 위해 관사를 충분히 지어두는 편이었기에 산아구스틴에서도 남는 관사에서 머물렀었는데 이곳에선 관사가 아닌 저 고층 건물 내에 마련된 숙소에서 머무른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이 의아해하자 행정청 관리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곳의 관사는 작고 누추한 편이라 전하께서 머무시기에는 불편함이 예상되었기에 숙소로 사용되고 있는 저 고층 건물의 숙소를 임시 거처로 사용하시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사옵니다. 더불어 저 건물은 캐롤라이나 주민들의 자랑거리이자 명물이니 전하께서 저곳에 머무시는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고 생각했사옵니다.”
다른 지역에 건설한 고층 건물은 지역 주민들의 자랑거리이기는 했지만, 이곳에 건설된 고층 건물은 북미왕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는 상징성이 있었기에 주민들이 저 고층 건물에 갖는 자부심은 더욱 컸다.
특히 이들 중 상당수는 북미 동해안 지역의 백인들에 의해 노예 생활을 해왔었는데 이 백인들이 자신들이 건설한 저 건물을 보기 위해 캐롤라이나 지역을 방문하고 건물의 위용에 감탄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속의 응어리가 조금 풀리는 느낌이기도 했고.
그렇기에 캐롤라이나 지역의 주민들은 저 고층 건물에 무척 자부심을 품고 있다는 이야기는 행정청장에게 얼핏 들었었기에 행정청 관리의 말처럼 저곳에 머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그때 뒤쪽에서 호위대장이 정성국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만약을 대비해 저 건물 전체를 비워두었고, 캐롤라이나에 배치된 경비대에서 철저히 검사하고 경비하고 있으니 안심하시고 지내셔도 됩니다.”
이에 정성국은 호위대장에게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행정청 관리를 보고 말했다.
“알겠네. 어차피 며칠 머무는 만큼 좁은 곳에 머물러도 크게 상관은 없었는데 그렇게 신경 써주니 고맙군.”
“아니옵니다. 전하.”
그후 정성국은 행정청 관리가 준비한 뚜껑이 없는 마차를 타고 고층 건물로 이동했고 도로 양쪽에서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백성들에게 열심히 손을 흔들어 주었다.
* * *
고층 건물에 도착한 정성국과 왕실 가족은 곧바로 승강기를 타고 숙소가 마련되었다는 25층으로 이동했고, 숙소의 문을 열자 기다란 복도 넘어 보이는 넓은 유리창의 풍경에 정안문이 탄성을 내질렀다.
“와...아버지! 저 커다란 유리창을 보세요!”
“그래. 놀랍구나. 가보렴. 위험하니 창문에 절대 기대지는 말고.”
““네!””
정성국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정안문은 정나리의 손을 잡고 창문으로 다가가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데 여념이 없었고 그런 아이들의 뒷모습을 정성국이 미소지으며 바라보고 있을 때 옆에서 전아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의 풍경은 정말 멋지네요.”
정성국이 양옆을 바라보니 전아라와 하얀 들꽃도 창문 밖의 대서양의 모습에 압도된 듯 보였기에 정성국이 슬쩍 웃으며 정신 차리라는 듯 두 아내의 허리를 팔로 두르며 말했다.
“그러게. 산아구스틴에 있는 고층 건물 꼭대기의 전망대 풍경도 괜찮았는데 이곳 풍경은 더 좋네. 평국이에게 듣기로 다른 숙소와는 다르게 숙박료가 훨씬 비싼데도 불구하고 항상 예약이 가득 찰 정도라고 하던데...그 이유를 알겠네.”
“어머. 그래요?”
정성국이 팔을 두르자 배시시 웃던 전아라가 반문하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득이 생각보다 커서 지금 새진주에 건설 중인 고층 건물도 대부분을 숙소로 전용하자고 조르더라. 그럼 10년 안에 건설비를 모두 회수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하던데?”
정성국의 말에 옆에 있던 하얀 들꽃이 놀란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와아...이득이 크긴 하네요. 그럼 전하께서는 이를 허락하실 생각이세요?”
“그럴 생각이야. 숙소가 아닌 다음에는 그 넓은 건물의 면적을 모두 활용하기는 어렵기도 하고, 고층 건물 대부분을 숙소로 이용하게 되면 숙소 부족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될 테니 말이야. 그리고 다른 백성들도 이런 근사한 풍경을 경험할 수 있을 테고.”
보통 이런 고층 건물의 경우 전생에서야 사무실로 이용했지만, 북미왕국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국영 상단, 왕실 상단을 제외하면 커다란 기업체가 없다 보니 고층 건물을 짓고 안쪽을 사무실로 만들어두어도, 비싼 임대료를 내면서 사무실로 사용할만한 이들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정성국은 이 고층 건물들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국가에서 관리하기보다 임대료를 받고 건물 전체를 왕실 상단에 떠넘겼고, 왕실 상단은 뒤에서 조언해주는 정성국의 말대로 저층은 여러 상가를, 중층은 사무실로, 고층은 대부분 숙소로 만들어 운영해 값비싼 임대료를 내고도 짭짤한 수익을 얻고 있었다.
그런 만큼 왕실 상단에서는 새롭게 건설 중인 새진주의 고층 건물도 눈독 들일 수밖에 없었고.
어차피 국가에서 호텔과 상가를 직접 운영하기도 어려운 만큼 정성국은 새로 건설 중인 건물도 왕실 상단에 떠넘길 생각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설명하자 전아라가 질문을 던졌다.
“그럼 지금 이 숙소의 모습도 다 전하께서 조언하신 건가요?”
“그렇지?”
“헌데 숙소가 너무 넓지 않아요? 오히려 작은 숙소를 여러 개 만드는 것이 나아보이는데...”
“아무리 경치가 좋다고 해도 가격이 가격인데 너무 방이 작으면 좀 그렇잖아. 그리고 이곳은 숙소 중 가장 높은 층이다 보니 특별히 더 큰 편이야. 그만큼 비싼 방이지만.”
“아하.”
그렇게 정성국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호위 대장이 조심스럽게 방문을 두드린 후 정성국에게 보고했다.
“전하. 식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점심은 관리들과 함께 식사하기로 했었기에 정성국이 조금 미안한 얼굴로 전아라와 하얀 들꽃에게 살짝 입을 맞춘 후 말했다.
“함께 식사하지 못해서 미안. 그럼 다녀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