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3화
정성국의 명령에 따라 군사청에서는 지휘관으로 분류되는 총 조장과 선임 조장 중 젊고 유망한 이들 30명을 선발해 조선으로 떠나는 수송선에 태워 조선으로 보냈고.
3주가 넘는 항해 끝에 수송선이 평양에 도착하자, 배에 탑승한 지휘관들은 조선의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일제히 갑판으로 나왔다.
포로나이에서 마지막으로 정박해 보급한 이후에는 곧바로 목적지인 평양으로 이동했고, 안전하고 빠른 항해를 위해 암초를 피해 먼바다로 이동했기에 지휘관들은 먼발치서 남해의 섬 일부를 본 것 외에는 조선 본토를 보지 못했으니까.
더불어 북미왕국인들은 조선을 강력한 동맹국이자 형제국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이들이 머나먼 조선까지 온 이유도 경험도 쌓고 조선 지원군 사령관을 보좌해 조선을 돕기 위함이었으니 당연히 조선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무덤덤할 수야 없었고.
이에 북미왕국의 지휘관들은 갑판 위에 올라 멀리 보이는 조선의 풍경을 감상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어휴. 드디어 도착인가?”
“예. 드디어 조선에 도착했습니다.”
굳건한 바위가 선임의 말에 대꾸하자 선임이 대동강 주변의 조선 풍경과 수송선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조선인들을 보고 중얼거렸다.
“조선이 진짜 멀긴 멀구나.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것 같아 지원하긴 했는데 이렇게 힘들 줄이야. 소문으로는 나중에 유럽에도 지휘관들을 파견할 거라던데 그때는 지원하지 말아야겠다.”
그런 선임의 투덜거림에 굳건한 바위는 엄살이 심한 것 아니냐는 표정으로 선임을 바라보고 슬쩍 타박했다.
“힘들긴요. 여유로워서 좋지 않습니까?”
“여유롭긴. 선실에서 뒹굴거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게 벌써 며칠째야. 그나마 배가 큰 편이라 돌아다닐 수 있고 중간중간 들른 항구를 돌아다닐 수 있어서 버텼지, 아니었으면 지루해서 죽었을 거야.”
선임의 이야기에 굳건한 바위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전 나쁘지 않던데요. 그동안 못 읽었던 책들도 읽다 보면 시간도 금방 가고.”
자신과는 달리 굳건한 바위는 선실에 틀어박혀 책만 봤다는 것을 잘 아는 선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난 책만 보면 진정됐던 뱃멀미가 다시 나는 기분이라 책을 읽지 못하겠더라고. 그래서 그냥 멍하니 있으려니 죽을 맛이었고. 그보다...탐사대장님의 이야기를 들어 짐작은 했지만, 확실히 북미왕국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네.”
탐사대장은 조선 출신이었고 동료나 부하 중에도 조선 출신이 없지는 않았기에 조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고 북미왕국과 다르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이렇게 실제로 조선에 도착하고 보니 확실히 낯설었기에 선임이 중얼거리자 굳건한 바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나마 조선 복식은 익숙하긴 한데...저 건물들은 확실히 특이하네요.”
굳건한 바위가 가리킨 초가집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 선임은 커다란 수송선을 보고 환호하며 손을 열심히 흔드는 아이들을 보고 피식 웃으며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더불어 배에서 들었던 대로 조선의 백성들은 아직 전쟁이 일어날 거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뿐더러 철도 부설 공사로 시중에 돈이 돌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희망이 가득한 표정들이었기에 저 근심 없어 보이는 조선 백성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전쟁에서 꼭 승리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러다 문득 선착장 주변에 보이는 건설 장비를 보고 굳건한 바위를 보고 말했다.
“그보다 도착하면 그 검차라는 신무기를 구경할 수 있으려나?”
이들은 새한성에 도착해 여러 정보를 접할 수 있었고, 이 정보 중에는 검차의 존재와 특수군이 창설되어 검차를 운용하는 인원이 특수군에 배속되었고, 이들은 자신들보다 한발 먼저 조선으로 떠났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그런 만큼 선임이 저 뒤쪽에서 움직이는 건설 장비를 보고 검차를 떠올려 굳건한 바위의 의견을 묻자 굳건한 바위는 잠시 생각해보다가 대답했다.
“아마 구경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만 검차야 그렇게 특별할 것은 없잖습니까. 건설 장비를 개조한 이동 수단에 불과하니까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시 새로 개발했다는 그 기관총일 텐데...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진 후방에서 일꾼으로 위장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기관총의 발사 모습을 보거나 직접 사용해보지는 못할 것 같아 그게 조금 아쉽긴 합니다.”
굳건한 바위는 검차보다 기관총을 더 높게 평가하고 이렇게 이야기하자 선임은 흥미와 의구심이 뒤섞인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기관총이라...그게 정말 그렇게 대단할까?”
연구청에서는 단기간에 기관총 10정을 양산한 후 검차와 함께 조선으로 보내고 그동안 기관총을 개발하기 위해 밤낮없이 연구한 연구원들과 장인들을 장기 휴식을 주었기에 이들이 새한성에 도착했을 때는 기관총의 소문만 듣고 실물은 보지 못했었다.
그렇기에 선임이 조금 못 미더운 듯 이야기하자 굳건한 바위가 고개를 저었다.
“실제 시연 장면을 봤었던 군사청의 친구들이 침을 튀기면서 극찬하고, 군사청에서도 기관총을 장착한 검차를 조선에 보냈으니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는 확정적이고 본국에서 추가로 병력을 보낼 필요 없다고 단언하는 것을 보면 소문대로 위력은 대단할 것 같습니다.”
“흐음...”
굳건한 바위의 이야기에 선임이 신음을 흘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을 때 옆에 있다가 이들의 대화를 듣게 된 경비대 소속의 총 조장이 슬쩍 이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난 군사청의 그러한 분위기가 조금 의문스러워. 아. 물론 기관총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지. 회전 단총만 해도 그렇게 위력적이었는데 한번 장전하면 고작 6발이 아니라 무려 250발을 발사할 수 있으니까. 다만 듣기로 분당 500발을 발사할 수 있다고 했으니 결국 갑오 소총으로 무장한 병력 50명의 화력 수준이잖아? 그리고 조선에 파견된 검차에 기관총이 부착되어 있다고 했으니 기관총은 총 10자루라는 소리고 이건 갑오 소총으로 무장한 병력 500명에 해당한다는 건데...500명으로 승리를 확신한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아.”
“아.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근처에 있던 다른 선임 조장마저 끼어들자 갑판 위에 나와 있던 지휘관들은 검차와 기관총의 효용성에 관해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고.
그때 굳건한 바위가 슬쩍 자신의 의견을 내비쳤다.
“물론 검차와 검차의 무장인 기관총만으로 청나라군을 막기는 어렵겠죠. 이전에 청나라가 조선을 침공한 기록을 살펴보니 그 규모가 꽤 큰 편이었고, 지금은 저 중국을 장악하면서 동원할 수 있는 병력 규모는 더욱 커졌으니 아무리 이들 중 상당수가 주나라를 상대하기 위해 남쪽에 배치되었다고 해도 조선 정벌을 위해 예전처럼 4, 5만 명은 충분히 동원할 수 있을 테니까요.”
굳건한 바위의 말에 다른 지휘관들 역시 배 안에서 군사청이 준비해 준 여러 자료들을 읽어보았기에 고개를 끄덕이자 굳건한 바위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다만...이미 아이누 탐사대 일부와 아이누 경비대가 조선에 파견되었고, 또 파견될 예정이잖습니까. 거기에 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조선군도 있고요. 이들만으로도 청나라군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여기에 검차와 기관총이 추가되는 겁니다. 그리고 청나라는 아국의 기계 장치에 익숙하지도 않을 테니 검차가 움직이는 모습에 당황하거나 혼란에 빠질 수도 있고요. 그러니 군사청에서 승리를 자신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굳건한 바위의 말에 일부는 수긍했다.
조선군은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지만, 신식 소총으로 무장했다는 훈련도감의 병사들과 아이누 탐사대, 아이누 경비대만 모두 합쳐도 1만 6천 명은 되는 터라 냉병기로 무장한 청나라군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었기에.
다만 일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반문했다.
“물론 다른 병사들까지 생각해보면 청나라군을 막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이기는 하는데...내가 새한성에 잠시 들렀을 때 느꼈던 군사청의 분위기로는 그게 아닌 것 같던데...?”
“맞습니다. 이번에 창설된 특수군이 엄청난 활약을 보일 것처럼 생각하더군요.”
이에 굳건한 바위는 다시 입을 열었다.
“특수군만으로 청나라군을 상대하지는 못할 테지만 저도 군사청의 생각처럼 이번 전쟁에서 특수군이 꽤 활약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관총이 분당 500발을 발사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연사속도가 빠르다는 의미이고, 이건 기병이 주인 청나라군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오히려 유리한 점 아니겠습니까.”
“아...하긴 표적이 넓은 편이니...”
“예. 그리고 단 한 정의 기관총이 50명분의 화력을 담당하니 저지력도 더 강할 것으로 예상되고, 청나라군에 사기에도 영향을 줄 테지요. 그런 것을 고려해 군사청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겠습니까.”
이러한 굳건한 바위의 이야기에 지휘관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선임이 손뼉을 치며 주위를 환기한 후 말했다.
“자자.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하선 준비부터 하자고. 조선 지원군 사령관님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특수군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지휘관들이 탄 배는 선착장에 도달했고, 선임의 말처럼 상급자를 기다리게 할 수야 없는 노릇이었기에 지휘관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급히 선실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 * *
조선 지원군 사령관인 카무이쿠르는 조선에서 마련해 준 건물 안에서 유혁연이 보내온 서찰을 읽고 있다가 본국에서 보낸 수송선이 도착했다는 소식과 그 배에 본국에서 보낼 거라고 이야기했던 본국의 지휘관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부관에게 전해 듣고 곧바로 지휘관들을 불렀고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지휘관들을 보고 질문을 던졌다.
“아. 본국에서 보낸다는 지휘관들이 자네들인가?”
카무이쿠르의 질문에 이곳에 들어온 지휘관 중 가장 선임인 조병수가 대표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사령관님.”
이에 카무이쿠르는 조금 애매하다는 표정으로 지휘관들을 한번 둘러본 후 중얼거렸다.
“흠. 생각보다 적은데? 8명이라니.”
“아. 물론 저희들이 전부는 아닙니다. 이 건물이 그리 큰 편은 아니라 모두 들어오기는 조금 힘들 것 같아 일단 총 조장들만 먼저 신고하러 왔을 뿐이지요. 밖에 선임 조장 22명도 대기 중입니다.”
“아. 30명인가? 잘 됐군. 그 정도면 따로 전령을 두지 않아도 되겠어.”
카무이쿠르는 조선 지원군 사령부를 구성하고 이전보다 더 많은 전령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누 탐사대나 조선군과 긴밀히 소통할 필요가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잔뼈가 굵은 총 조장들과 선임 조장을 전령으로 사용하는 것이 조금 낭비이기는 한데 이미 지휘관이 존재하는 다른 부대에 배정해봐야 혼란만 일어날 테고, 이들은 자신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고 휘하 부대에 명령을 전달할 테니 나쁠 것 없다고 여겼고.
해서 카무이쿠르는 슬쩍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지휘관들에게 말했다.
“일단 이곳까지 오느라 고생했을 테니 쉬도록 하게. 다만 북쪽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너무 긴장을 풀지는 말고.”
“북쪽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뇨? 그게 무슨 뜻입니까?”
카무이쿠르의 이야기에 뒤쪽에 있던 굳건한 바위가 질문을 던지자 카무이쿠르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북쪽에 배치된 조선군이 보낸 전령에 따르면 봉황성에 청나라군이 모여들고 있다고 하네.”
이에 앞쪽에 있던 조병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봉황성이면...국경 근처에 청나라군이 집결하고 있다는 뜻입니까?”
“그렇지. 물론 저들이 안정적으로 압록강을 도하하려면 압록강이 꽝꽝 얼어붙는 12월은 되어야 할 것 같기는 한데...혹시 모르니 대비는 해야지.”
예전과는 달리 청나라는 중원을 차지하면서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이 늘어나기도 했고, 동녕국 때문에라도 해군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으며 청나라 해군이 많이 배치되어 있는 발해만과도 가까운 터라 만약을 대비해야 한다는 카무이쿠르의 이야기에는 다른 지휘관들도 수긍했다.
그런 지휘관들의 반응에 카무이쿠르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뭐 조선에 온 만큼 주변을 돌아다니고 싶기도 하겠지만, 그건 전쟁에 승리한 후의 즐거움으로 남겨두도록 하고 지정된 장소에서 대기하도록 하게.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