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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536화 (536/850)

536화

정성국은 하선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토니오 부왕에게 양해를 구한 후 배에서 내려 자신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구름같이 몰려든 북미왕국 백성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고생을 위로했다.

더불어 돌아가면 특별 상여금과 휴가를 지급하겠다고 알리고, 가져온 위문 물품들을 풀어 북미왕국인들을 환호하게 만들었고.

그 후 정성국은 이번 파나마 운하 공사의 실질적 책임자인 개발청 관리를 따라 파나마 운하에 가까운 바닷가 인근의 공원으로 이동해서 질문을 던졌다.

“이건...기념비인가?”

정성국이 배 위에서 파나마 항구를 관찰하다가 이 공원과 공원 중앙에 있는 큼지막한 석비를 보고 대체 저게 뭔가 싶었는데 앞쪽에 새겨져 있는 글귀를 보아하니 북미왕국이 1677년 8월 25일에 파나마 운하 공사를 시작해 1680년 9월 2일에 결국 파나마 운하 공사를 끝냈다는 기록이 적혀 있었고 그 밑에는 이 파나마 운하 건설 결정을 내린 자신과 실제로 산 위에 운하를 건설한 북미왕국 개발청의 능력을 찬양하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기에 정성국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묻자 개발청 관리가 답했다.

“그렇습니다. 아국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파나마 운하 기념비이지요. 더불어 추모비이기도 하고요.”

“추모비라...”

이에 개발청 관리는 조금 굳은 얼굴로 정성국에게 설명했다.

“개발청을 통해 보고를 올렸던 것처럼 비교적 순조로운 공사이긴 했습니다만...그렇다고 사망자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뭐 그렇겠지. 최대한 안전을 생각하며 공사를 진행하라고 이야기하긴 했겠지만...현장의 상황은 또 다를 테니까. 더불어 이곳은 환경이 다르기도 하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곳까지 파견된 북미왕국 백성들은 북미왕국의 뛰어난 인재나 다름없었기에 풍토병 등으로 인해 사망한 것이 못내 아쉬웠던 정성국이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개발청 관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우려했던 대로 말라리아나 황열병에 죽은 자들은 거의 없었습니다만...다른 풍토병에 걸려 사망한 인원이 34명이고, 공사 도중 사고로 인해 사망한 인원이 11명입니다.”

이는 개발청을 통해 올라온 보고서로 정성국도 대충은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한 조처도 따로 했었기에 슬쩍 물었다.

“그들의 시신은 모두 잘 수습했지?”

“물론입니다. 전하께서 명령하신 대로 잘 수습해서 새김포의 국립묘지에 안장시켰습니다.”

일단 파나마 운하 공사의 경우 북미왕국의 국익을 위한 공사에 가까웠기에, 파나마 운하 공사로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시신을 북미왕국으로 옮겨 새김포의 국립묘지에 안장하라는 명령을 내렸었다.

그리고 자신의 명령대로 했다는 개발청 관리의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가면 새김포의 국립묘지를 참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개발청 관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이 기념비 뒤쪽에 이름을 새겨 두었고요.”

이에 정성국을 발걸음을 옮겨 기념비 뒤쪽을 확인했고, 앞쪽과는 달리 이번 공사에 참여했다가 죽은 이들을 위로하는 글귀와 그 밑에 사망한 이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기에 정성국은 자신이 따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아서 이런 추모비를 세운 개발청 관리의 행동이 만족스러웠다.

“잘 했네.”

그러면서 정성국은 잠시 눈을 감고 목을 숙이면서 북미왕국의 발전을 위해 먼 타지까지 와서 사망한 북미왕국 백성들을 잠시 애도했다.

그리고 눈을 떠서 사망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확인하다 문득 이상하다 싶어 고개를 갸웃했다.

“헌데...이름이 다 우리 북미왕국의 백성들 같은데? 설마 공사 현장에서 우리 측 인원만 사망한 것은 아닐 텐데?”

“예. 저희가 고용한 파나마 지역의 원주민들도 죽었지요.”

“얼마나?”

이에 개발청 관리는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머뭇거리다가 결국 답했다.

“어...지금까지 약 350명가량이 사망했습니다.”

“허. 사망자가 왜 이렇게 많아?”

나름 안전을 신경 써서 공사했는데도 불구하고 거의 400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에 정성국이 꽤 놀랐다.

물론 전생에는 파나마 운하 공사로 죽은 사람이 거의 3만에 달하긴 했지만,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한 그때와는 상황이 또 달랐기에.

더불어 북미왕국인들이 죽은 것은 정성국에게 계속 보고가 올라갔었지만, 원주민들이 사망한 것은 보고에서 제외되었었기에 그 놀라움은 더욱 컸고.

이런 정성국의 반응에 개발청 관리는 정성국이 오해라도 할까 봐 급히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초기에 저희가 알린 안전 수칙을 무시했다가 죽은 원주민들이 꽤 됩니다. 다만 저 사망자 전부가 그런 경우는 아니고 대부분은 자연사에 가까운 죽음도 꽤 있습니다.”

“자연사라고?”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정성국이 개발청 관리의 말을 듣겠다는 제스쳐를 취하자 개발청 관리가 빠르게 이곳 상황을 설명했다.

“예. 아시다시피 저희가 꽤 풍족하게 일당을 지급하다 보니 나이든 자들도 나이를 속이고 꽤 지원했었거든요. 그리고 저희도 그 사실을 알았지만, 그런 이들은 따로 빼서 운하 공사에 맡기기보다는 각종 보급 업무에 맡겼었고요.”

“보급 업무? 아. 농사나 닭을 키우는 일 같은?”

“그렇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눈을 감은 노인들도 꽤 있는 터라...”

“그래서 사망자 숫자가 그렇게 많다?”

“예. 죽은 이들 중 절반가량은 그런 자들입니다. 그래서 본청에서도 고민하다가 전하께 올라가는 보고에는 제외한 것으로 알고 있고 저희도 이 기념비를 건설할 때 고민하다 아예 원주민들의 이름은 뺀 거지요.”

개발청 관리의 해명에 정성국은 원주민들의 사망 소식이 자신에게 전해지지 않은 것을 이해했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저 추모비에도 이름을 적지 않은 것은 조금 아닌 것 같아 말했다.

“분명 그들이 직접적으로 운하 공사에 참여한 것은 아니네만...그들의 업무도 분명 운하 공사의 한 부분이었지 않나.”

“허면...?”

“뒤쪽에 우리에게 고용되었다가 사망한 파나마 원주민들의 이름도 모두 새겨두게. 그나마 기념비가 커서 다행이군.”

정성국이 보고 누락 문제를 굳이 문제 삼지는 않을 것으로 보였기에 개발청 관리는 안도하면서 급히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리고 사망한 원주민들의 가족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 주었지?”

이번 공사에 동원되었다가 사망한 북미왕국인들의 경우에는 그 가족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었지만, 원주민들의 경우는 그냥 무시했을 수도 있었기에 정성국이 혹시나 해서 묻자 개발청 관리는 곧바로 답했다.

“물론입니다. 전하께서 파나마 원주민들을 우호적으로 대하라고 명령하셨는데 어찌 그냥 모른 척했겠습니까. 그 가족들에게 충분한 보상금을 지급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족 중 자식들은 우선적으로 파나마 운하 운영 회사에 일자리를 마련해 주었고요. 그러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개발청 관리의 말에 만족한 정성국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이번 파나마 운하 공사를 실질적으로 책임진 개발청 관리를 보고 말했다.

“아무튼...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정말 고생 많았네.”

이에 개발청 관리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주체하지 못하면서 답했다.

“아닙니다. 제 손으로 이러한 역사를 건설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념비에도 제 이름이 쓰여 있는 만큼, 제 이름이 후대에도 알려지게 될 테니 오히려 영광이지요.”

“하하하.”

* * *

정성국이 파나마 운하 개통식에 참석하면서 일정이 많이 바뀌었다.

특히나 개통식이 끝나고 연회를 열 생각이었지만, 정성국의 허락으로 곧바로 북미왕국의 배에 탑승해 운하를 이용해야 했으니.

해서 에스파냐 측에서는 미리 준비한 연회를 저녁에 열었고 정성국을 초청했다.

그리고 정성국은 이 연회에 참석해 에스파냐의 연회를 경험하고 에스파냐 본국의 고위 귀족들과 안면도 틀 수 있었고.

밤늦게까지 계속된 연회가 마침내 끝나고 정성국은 1만 톤급 철선으로 돌아와 잠시 눈을 붙인 후 파나마 운하 개통식에 참석했다.

다만 개통식 자체는 그렇게 화려하지 않았고, 개통식에 참석한 에스파냐 본국의 귀족들도 어제 변경된 예정을 전달받았기에 빨리 안토니오 부왕의 축사가 끝나고 북미왕국의 배에 탑승하기만을 학수고대했고.

파나마 운하 건설이 자신의 업적이라고 생각해 잔뜩 흥분한 안토니오 부왕의 길고 긴 무척 장황한 축사와, 이에 대비되는 정성국의 짤막한 축사로 개통식이 마무리되었고, 에스파냐 귀족들은 곧바로 북미왕국의 1만 톤급 철선에 올라탈 수 있었다.

“허어...이거 정말로 철선이로군요.”

갑판에서 배의 외벽을 두드려본 한 귀족의 감탄에 다른 귀족 역시 마찬가지의 심정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예. 놀랍습니다. 거기에 이 정도 두깨의 강철이면 어지간한 포탄은 그냥 튕겨낼 것 같은데...이게 정말 여객선이 맞는 겁니까?”

“그렇답니다. 제가 듣기로는 운영 인원들까지 합치면 거의 1800명 가까이를 태울 수 있다더군요.”

풍채 좋은 귀족이 그렇게 아는 체 하자 이를 듣고 다른 귀족들은 오히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 이 큰 배에 말입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이 정도 크기면 4, 5천 명은 족히 태울 수 있을 것 같은데...”

갤리온만 하더라도 500명은 태울 수 있었는데 갤리온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이 배에 고작 2천 명도 태우지 못한다는 것이 의아한 표정이자 이 배에 탑승할 때 에스파냐 관리를 통해 이 배의 선원들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던 풍채 좋은 귀족이 웃으며 답했다.

“아. 무작정 태운다면야 충분히 그 정도 인원을 태울 수야 있겠지요. 다만 제가 이야기한 것은 객실을 이용할 수 있는 인원수입니다.”

“객실이라...”

“아까 안내를 도운 선원에게 묻자니 객실 수준도 괜찮은 모양입니다. 침대도 있고 공간도 넓은 편이라 쉬는데는 큰 지장이 없다더군요.”

“허...”

배의 선장이나 일부만 사용할 수 있는 선실을 이 배에 탑승하는 모든 인원이 이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귀족들이 놀라고 있을 때 모든 인원을 태운 북미왕국의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착장을 빠져나와 천천히 이동해 파나마 운하의 입구 부분의 통로를 항해하기 시작했고, 곧 귀족들은 거대한 갑문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허.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저 내측 갑문이 새삼 대단하군요.”

“예. 저희가 대서양 방면에서 본 갑문들은 물이 가득 차 있어서 몰랐는데...”

“어? 드디어 갑문이 열리는군요!”

북미왕국의 배가 다가오자 육중한 강철로 만들어진 갑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고, 이 광경을 바라보던 에스파냐 귀족들은 일제히 그 장면에 탄성을 내질렀다.

“오오! 이거 장관입니다!”

더불어 갑문 안쪽의 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선거를 보고 다시 한번 놀랐고.

“허. 이렇게 보니 확실히 운하가 거대하긴 하군요. 이 커다란 배가 들어가도 공간이 엄청 남는데요?”

“예. 그리고 이 공간에 물을 채워 상승한다는 건데...이거 물을 채우는 데만 하더라도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지 않습니까?”

확실히 이 거대한 선거에 물을 모두 채우자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기에 다른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였을 때 풍채 좋은 귀족이 고개를 저었다.

“듣자니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는답니다. 한 30분 정도면 된다더군요.”

“오. 그래요? 생각보다 빠른데요?”

“그렇지요. 물론 이 태평양 1번 갑문 뒤에 2번 갑문도 있는 만큼 갑문 전체를 통과하기까지 시간은 조금 더 걸리겠지만 말입니다.”

“어? 점차 물이 차오릅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중 어느덧 갑문이 닫혔는지 물이 조금씩 차오르면서 선거 안쪽에 표시된 눈금을 통해 수면이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한 귀족이 소리치자 다른 귀족들도 설명은 들었지만 실제로 물이 차오르며 배가 상승하는 것을 보고 신기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계속 갑판 위에서 이를 구경했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선거 안쪽에 물이 거의 다 차서 이 배의 갑판 위에서도 주변 경치가 보이기 시작하자 한 귀족이 입을 열었다.

“허허허. 처음 이 갑문에 들어왔을 때는 오로지 벽만 가득했는데 이젠 주변의 경치가 보이기 시작하는군요.”

“예. 저기 보십시오. 파나마 항이 저 밑에 있군요. 이것 참...”

한 귀족이 이야기한 것처럼 어느덧 수면이 상승해 파나마 운하가 배보다 아래쪽에 있었기에 귀족들은 꽤 흥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고.

어느덧 선거에 물을 다 채웠는지 내측 갑문이 열리면서 다시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귀족들은 설명대로 배가 산 위로 올라왔다는 생각에 연신 감탄사를 토해냈다.

그리고 잠깐의 항해 후 다시 재평양 2번 갑문 안으로 들어와 물이 갑문을 채우기를 기다리는 동안, 북미왕국의 선원들이 가져다준 얼음을 가득한 유리컵에 담긴 매실차를 홀짝이면서 이 무더운 날씨에 차가운 음료를 마실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며, 북미왕국의 발전을 조금이나마 따라잡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교육 시설을 건설하고 국가에서 운용해 국가에서 필요한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양성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그러다 다시 선거에 물이 거의 다 채워지자 귀족들은 선원들의 안내를 받아 뒤쪽 갑판으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저 멀리 태평양을 바라보고 탄성을 내질렀다.

“허. 이곳에서 보니 산 위에 있다는 것이 정말 실감 나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하. 이거 정말 놀랍습니다. 1시간 만에 이 커다란 배가 이곳까지 올라올 줄은.”

그때 한 귀족이 뒤쪽에 자리한 북미왕국의 인급 전선들을 확인한 후 입을 열었다.

“몰랐는데 북미왕국의 저 인급 전선들도 함께 온 모양이군요.”

“뭐 갑문 자체가 넓으니 굳이 한 척씩 이용할 필요야 없지 않겠습니까.”

“예. 그건 낭비지요. 물론 충돌의 위험이 있을 테니 숫자야 조절해야겠지만.”

그때 내측 갑문이 열렸는지 다시 배가 움직이면서 저 멀리 보이는 태평양이 멀어지는 것을 보고 귀족들이 조금 아쉬워하고 있을 때 그동안 선실 안에서 정성국과 다른 나라의 대사들과 대화를 나누던 푸른 안개가 뒤쪽 갑판으로 나와 에스파냐 귀족들에게 이야기했다.

“이제 대서양 방면의 갑문까지 이동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리니 북미왕국에서 준비한 연회장으로 이동하시지요. 그곳에도 커다란 창문이 있으니 바깥 풍경을 감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오. 그럼 그러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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