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3화
다음 날, 북미왕국에서 마련해 준 기차를 타고 운하를 따라 이동해 3시간 만에 태평양 방면 파나마 항구에 도착한 에스파냐 귀족들은 기차에서 내리면서 잔뜩 흥분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다른 귀족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허. 기차란...정말 대단하군요.”
“예. 예전에 기차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무척 놀라긴 했습니다만...”
그때 풍채가 좋은 귀족이 입을 열었다.
“듣자니 이곳의 기차는 북미왕국에서 운영되는 기차와는 조금 다르답니다.”
“다르다고요?”
“예. 북미왕국의 기차는 이보다 훨씬 빠르다는군요. 이곳에 가져온 기차는 주로 화물을 실으려고 가져온 기차라 속도가 느린 편이라고 하더이다. 아마 북미왕국에서 운용되는 기차였다면 이곳에 도착하는데 한 시간 정도면 충분했을 거라고 하던데요?”
북미왕국에서 철도를 깔고 기차를 운용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게 흐른 만큼 기차의 성능도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그렇기에 최근 생산되는 기관차의 경우, 처음 개발했던 기차보다 성능이 월등했다.
다만 파나마 지역에 배치되는 기차의 경우 짧은 거리다 보니 속도가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았고, 보안 우려 때문에 신형 기관차를 보내기보다는 이제는 만약을 대비해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초기형 기관차를 다시 정비하고 적당히 개조한 후 보냈고.
그런 만큼 북미왕국 본국에서 실제 운용되고 있는 기차와 파나마 지역에서 운용되고 있는 기차는 전혀 달랐지만, 에스파냐 측에서는 북미왕국의 설명대로 단순히 화물용이라 기차가 느리다고 알고 있었다.
그리고 풍채 좋은 귀족은 기차에서 파나마 지역의 관리가 에스파냐 부왕에게 이러한 설명을 해주는 것을 슬쩍 들었기에 이를 설명하자 이를 듣지 못했던 귀족들은 새삼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기차의 가치가 생각보다 대단했기에.
“허...”
“그것참...”
대다수 귀족들이 풍채 좋은 귀족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을 때 키가 큰 귀족이 뒤를 돌아 정차해있는 기차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증기기관 연구에 더 많은 지원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에 한 고위 귀족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지요. 돌아가면 그래야겠어요. 헌데 이 기차도 파나마 운하 운영 회사에서 관리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운하 공사가 다 끝났으니 이 기차는 다시 북미왕국으로 가져간다고 하더군요.”
“다시 가져간다고요?”
“예. 그리고 저 철도도 모두 뜯어간다고 하더군요. 해서 부왕 전하께서도 무척 아쉬워하셨고요.”
“끙...”
그 이야기에 다른 귀족들은 무척 아쉬워했다.
자신들의 영토 내에서 계속 기차가 운용된다면, 이를 관찰함으로써 얻는 것이 많을 테니까.
실제로 에스파냐는 북미왕국의 건설 장비와 기차가 움직이는 모습을 계속해서 관찰한 덕분에 얻은 것이 적지는 않았고.
하지만 이 철도는 북미왕국이 파나마 공사를 위해 설치했을 뿐이라 공사가 끝났으니 다시 회수하겠다는 북미왕국의 행동을 자신들이 막을 수도 없었다.
해서 귀족들은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면서 몸을 돌려 눈앞을 가득 메우는 거대한 바다를 바라보았고.
“이곳이 바로 그 태평양이로군요.”
“흐음...대서양과는 확실히 느낌이 조금 다른 것 같은데...”
“그렇지요?”
아무래도 이 자리에 있는 귀족들은 그동안 지도로만 봐오던 태평양을 실제로 보는 셈이었기에, 그리고 이 태평양이 얼마나 넓은지를 머리로 알고 있었기에 감회가 새롭다는 표정으로 옆에 있는 귀족들과 바다를 보고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키가 큰 귀족이 시선을 돌려 선착장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그보다 저기 커다란 배들은 대체...”
그때 안토니오 부왕이 마지막으로 기차에서 내리면서 걷다가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저게 바로 북미왕국의 배입니다. 5천 톤급 수송선이지요.”
“아. 그 철선 말입니까?”
“예.”
안토니오 부왕의 이야기에 다른 귀족들도 하나둘 선착장에 정박해 있는 5천 톤급 수송선을 바라보고 감탄사를 토해냈다.
이들이 배를 타고 대서양 방면의 파나마 항에 도착했을 때는 타이밍이 맞지 않아 가끔 방문하던 북미왕국의 배는 한 척도 없었기에, 처음으로 북미왕국의 배를 본 귀족들은 새삼 북미왕국 배의 크기에 놀랄 수밖에 없긴 했다.
특히나 5천 톤급 수송선 근처에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태평양 방면 파나마 항구를 지키기 위한 에스파냐의 갤리온이 2척 정박해 있었던 탓에 더욱 비교될 수밖에 없었고.
“허. 어제 부왕 전하께서 이야기하셨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 옆에 정박해 있는 갤리온을 보니...”
“예. 갤리온이 정말 작군요. 그것참...”
“저건 마닐라 갤리온은 아니지요?”
“그렇습니다. 마닐라 갤리온은 아카풀코에 정박해 있으니까요. 저건 단순히 이 태평양 방면 파나마 항을 경비하기 위해 배치된 갤리온일 뿐이지요.”
부왕아 대답하면서 아카풀코를 언급하자 한 귀족이 조금 안색을 흐리며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면 파나마 운하가 완공된 이상 아시아 무역의 경로도 조금 바뀔 수밖에 없겠군요.”
“예. 아무래도 이전처럼 아카풀코에서 교역품을 내린 후 힘들게 육로로 이동시킬 필요 없이 파나마 운하를 통해 대서양으로 이동한 후 곧바로 세비야로 향하면 되니까요.”
부왕의 대답에 귀족들이 소곤거렸다.
“그러면 자연히 아카풀코 항은 쇠퇴할 테고...이 태평양 방면의 파나마 항이 급격히 발전하겠군요.”
“그렇지요. 그나마 베라크루즈의 경우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산출되는 각종 자원과 물품이 집산하는 항구이니 큰 상관은 없겠지만...”
“쩝...아카풀코 항에 사둔 상관이나 땅을 빨리 처분해야겠군요.”
“허? 아직도 그걸 팔지 않으셨던 겁니까? 저는 파나마 운하 공사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팔았는데 말입니다.”
“끙...파나마 운하 공사 이야기야 종종 나오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도 비슷할 줄 알았지요. 특히 북미왕국이 3년 만에 파나마 운하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었기에...”
“그건...그렇긴 하지요. 그보다 태평양 방면과 대서양 방면의 파나마 항구에 땅을 왕창 사둬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귀족들이 돈을 벌 기회에 눈을 빛내며 파나마 항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한 병사가 급히 뛰어와 파나마 지역의 관리에게 무어라 보고하기 시작했고, 관리는 순간 안색이 굳어지며 목소리를 높이다 주변에 안토니오 부왕과 본국의 귀족들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 즉각 목소리를 낮췄다.
“뭐?! 그게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알겠네. 일단 계속 주시하고 이변이 있다면 즉각 보고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관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병사가 급히 몸을 돌려 선착장으로 달리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안토니오 부왕은 항구를 보며 한참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는 귀족들을 바라본 후 슬쩍 발걸음을 옮겨 관리에게 다가가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인가.”
안토니오 부왕의 물음에 관리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보고했다.
“그게...서쪽에서 대규모 함대가 나타났다는 보고입니다.”
“대규모 함대라고?”
“그렇습니다. 돛이 없는 것을 보면 북미왕국의 함대로 짐작되기는 하는데...”
“아. 내일이 개통식이니 슬슬 푸른 안개가 도착할 때가 되긴 했지.”
북미왕국의 함대로 짐작된다는 이야기에 안토니오 부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관리는 불안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그렇기는 한데...”
하지만 안토니오 부왕은 개의치 않고 선착장에서 시선을 돌려 광활한 태평양의 수평선을 바라보다가 조그마한 배들을 발견하고 입을 열었다.
“흠. 저건가? 혹시 망원경 있나?”
“여기 있습니다. 부왕 전하.”
이에 관리가 즉각 품에서 망원경을 꺼내 안토니오 부왕에게 건넸고, 안토니오 부왕은 이 망원경을 눈에 가져다 대고 함대를 관찰한 후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음? 북미왕국의 배가 한두 척이 아닌데?”
“예. 10척가량은 되어 보인다고 합니다.”
그제야 관리가 병사의 보고에 놀란 까닭을 이해한 안토니오 부왕은 혹시나 해 질문을 던졌다.
“10척 규모의 함대라니...북미왕국에서 미리 이야기했었나?”
“아닙니다. 아무런 이야기도 없었었지요. 그래서 파나마 항의 경비대가 혹시나 싶어 보고한 겁니다.”
그 말에 안토니오 부왕은 잠시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옆에 있던 보좌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파나마 운하 공사가 끝났으니 각종 장비와 기술자들을 북미왕국으로 실어나르기 위한 수송선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 일리가 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