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9화
정성국이 탄 1만 톤급의 철선과 임시 호위 함대는 새김포에서 출항한 지 하루 만에 새목포에 도착했다.
그리고 어제 유럽 대사들을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해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느라 피곤했던 정성국은 선실의 커다란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다가 함대가 새목포에 도착했다는 호위대장의 이야기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갑판으로 이동했고, 갑판 위에서 새목포의 풍경을 바라보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이전에 보았던 새목포의 허허벌판과는 180도 달랐기에.
“이야. 여기도 많이 발전했네? 예전에 방문했을 때와는 천지 차이인데?”
“그러게 말입니다. 뭐 그때는 제대로 된 도시라고 보기도 어려울 정도였지만 말입니다.”
호위대장도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빙긋 웃으며 맞장구쳤을 때 새목포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갑판으로 나오던 푸른 안개가 말했다.
“아. 이전 에스파냐와의 전쟁 당시 전하께서 잠시 이곳에 들르셨었지요?”
“그랬습니다. 장인어른. 뭐 당시에는 통바 족이 북미왕국에 합류한 지도 얼마 되지 않던 시점이었기에 볼 것은 거의 없었지만 말입니다.”
정성국의 대답에 푸른 안개가 새목포를 가리키며 말했다.
“뭐 그 이후로도 비슷했습니다. 이곳은 새진도로 가기 위해 들르는 중간 보급 항구에 불과했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전하께서 북미 서해안 지역의 개발을 위해 대대적으로 새목포를 재개발하면서 최근 급격히 발전한 편이지요.”
“아. 그렇습니까?”
푸른 안개는 꽤 오랫동안 새한성에서 외교 업무를 맡고 있었지만, 가끔은 새진도를 방문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곳 새목포를 들렀기에 이곳의 사정을 꽤 잘 알고 있었고.
해서 정성국이 자세한 설명을 해줬으면 하는 눈빛을 보내자 푸른 안개가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예. 그리고 새목포가 재개발되면서 면직물 제조 공방이 들어서고, 또 새나주-새목포 구간 철도가 개통되면서 기차를 통해 목화가 대량으로 운반되고 이곳에서 면직물로 가공되어 누에바 에스파냐로 판매되면서 이 근방의 주민 대부분이 새목포로 몰려들었고 말입니다. 제가 새목포 행정청 관리에게 듣기로는 최근 2년 사이에 새목포 주민들이 3배 가까이 늘어났답니다.”
“3배요? 허. 주변의 주민들이 모두 새목포로 몰려온 모양이군요.”
2년 사이에 주민이 3배나 급증했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이 놀라 혀를 내두르자 푸른 안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니 개발청에서는 계속 새목포 확장 공사와 함께 주민들이 살 집을 짓느라 바쁘고 일자리가 엄청나게 생기면서 그 일자리를 노리고 다시 주변의 주민들이 몰려오는 상황이랄까요? 아마 당분간은 계속 주민이 늘어나고 저 새목포는 더욱 발전하리라 봅니다.”
“호오...북미 동해안 지역에 비해 북미 서해안 지역의 개발은 새한성과 새김포에 너무 집중된 느낌이라 아쉬웠는데 상황이 그렇다니 참으로 다행이군요. 다만 나중이 문제일 것 같긴 한데...”
정성국이 조금 복잡한 표정으로 새목포를 보고 중얼거리자 푸른 안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일자리 문제 때문에 말씀이십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개발이 끝난다 하더라도 오히려 일자리는 넘쳐날 테니까요.”
“예?”
“최근에 연구청에서 재봉틀이라는 손쉽고 빠르게 바느질할 수 있는 기물을 개발하지 않았습니까.”
“아. 그렇지요.”
북미왕국에서는 목화 수확 기계를 이용해 목화를 수확하고, 조면기를 이용해 씨를 분리한 후 방적, 방직 기계를 이용해 면직물을 대량생산했다.
하지만 면직물을 만든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조선에서야 면직물을 아직도 화폐로 이용하고 있기는 하나 북미왕국에서 면직물은 옷을 만드는 재료에 불과했으니까.
그런 만큼 연구청에서는 옷을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바느질 부분을 기계로 대체하기 위해 연구해오고 있었고.
최근에 재봉틀을 개발하면서 옷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 때문에 국영 상단과 왕실 상단에서는 곳곳에 봉제 공방을 세우고 옷을 대량으로 생산할 예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자 푸른 안개가 말했다.
“그리고 이곳 새목포는 면직물을 대량 생산하고 있는 터라 아예 이곳에 옷을 만드는 봉제 공방마저 대거 세울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봉제 공방마저 이곳에 주로 세운다면 당분간 일자리가 부족해질 염려는 없겠군요.”
“예. 그렇지요. 그리고 직접 옷을 만드는 것보다야 조금 더 돈을 주더라도 완성된 옷을 사는 게 편할 테니 아마 봉제 공방은 계속 늘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성국은 전생에선 첨단 기술의 메카라 할 수 있는 로스앤젤레스에 경공업 단지가 들어서는 것이 조금 아이러니해 피식 웃으며 배 위에서 면직물 제조 공방으로 짐작되는 커다란 공방들을 바라보다 호위대장에게 물었다.
“이보게. 호위대장. 이곳에서 오래 정박하지는 않지?”
“예. 함대장에게 듣기로는 식수와 식량 일부를 보급받고 바로 새진도로 남하할 예정이라 기껏해야 몇 시간 정도만 정박할 거라고 들었습니다만...일정을 변경할까요?”
정성국은 저 공방들을 잠시 들러볼까 싶었지만, 괜히 자신이 움직이면 유럽의 대사들도 따라붙을 것 같았기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럼 됐네. 뭐 철도로 연결되어있으니 다음번에 기차를 이용해 느긋하게 방문하도록 하지.”
* * *
조정의 명령을 받고 북방으로 올라가던 훈련도감 병사들과 어영청 병사들은 안주에 도착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훈련대장은 어영대장에게 잠시 병사들의 관리를 부탁한 후 이 안주에 있다는 북미왕국의 조선 지원군 사령관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물어물어 선착장 인근에서 방금 도착한 북미왕국 선박을 바라보고 있는 조선 지원군 사령관을 만날 수 있었고.
“반갑습니다. 훈련대장 유혁연이라고 합니다.”
“아. 반갑습니다. 조선 지원군 사령관 카무이쿠르라고 합니다.”
카무이쿠르가 유혁연을 보고 빙긋 웃으며 인사하자 북미왕국 사람들이 조선말에 능숙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는 있었던 유혁연이었지만. 조선인과는 확실히 다른 겉모습의 카무이쿠르가 능숙하게 조선말을 하는 것이 신기하기는 했기에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허. 조선말을 잘 하시는군요. 발음도 그렇고.”
그런 유혁연의 반응에 카무이쿠르가 웃음 지으며 대답했다.
“뭐 조선말이 공용어니까요. 물론 저는 오랫동안 모셨던 제 상급자께서 조선 출신이셨기에 더 익숙한 편이고요.”
“어? 그렇습니까?”
유혁연이 듣기로 눈앞의 조선 지원군 사령관은 아이누 경비대장이었다고 알고 있었고 그가 알기로 아이누 경비대장은 아이누 탐사대장과 함께 저들이 이야기하는 이 아시아 지역에서는 최고위 무관으로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갸웃하자 카무이쿠르가 그런 의문을 눈치챈 것인지 건강의 악화로 요양을 위해 아이누 경비대장에서 물러나 본토로 떠난 박경수를 떠올리며 답했다.
“제가 아이누 경비대장이 된 것은 3년 전의 일입니다. 이전의 아이누 경비대장은 조선 출신이셨고, 그분이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지요.”
“아. 그랬군요.”
그때 선착장이 소란스러워져서 유혁연은 잠시 고개를 돌려 선착장을 바라보았고.
“야! 야! 천천히 움직여! 천천히! 잘못해서 물에 처박히면 어쩌려고 그래!”
선착장에 설치된 거중기를 통해 북미왕국의 배에서 커다란 기물을 꺼내는 모습과 그 기물이 이곳으로 오면서 보았던 북미왕국의 건설 장비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것을 떠올린 유혁연이 카무이쿠르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건...새로운 건설 장비입니까? 이전부터 혹여 전투에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건설 장비들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만 저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유혁연은 철도 부설 공사를 위해 북미왕국에서 가져온 건설 장비를 꽤 유심히 관찰했었다.
그가 보기에 건설 장비는 강철로 만들어졌고 무게나 크기가 큰 편이라 잘만 이용하면 청나라 기병의 돌격을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기에.
물론 그러려면 북미왕국의 협조가 필요한데 북미왕국에선 이에 부정적이었기에 결국 포기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때 관찰했었던 건설 장비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고, 외관만 보자니 무슨 일을 하는 건설 장비인지 짐작하기 어려웠기에 유혁연이 카무이쿠르에게 질문하자 카무이쿠르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일단 대외적으로는 건설 장비입니다.”
유철연은 그런 카무이쿠르의 대답에 진지한 표정으로 카무이쿠르를 바라보았다.
“대외적으로는? 그럼 실제로는...?”
이에 카무이쿠르는 주변을 둘러보았고, 주변에 자신들 말고는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번에 본국에서 새롭게 개발한 신무기라고 들었습니다.”
“...신무기요?”
유철연이 카무이쿠르의 대답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짓자 카무이쿠르가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예. 훈련대장께서 건설 장비를 보고 그러셨잖습니까. 전투에서 써먹을 수 있겠다고. 훈련대장께서도 건설 장비를 보고 그렇게 생각하셨는데 군사청에서 그런 생각을 안 했겠습니까?”
“...그럼?”
“예. 건설 장비와는 달리 저 신무기는 전장에 투입되기 위해 설계되었다는군요. 아. 물론 저 신무기는 아직 개발이 완료된 것이 아니다 보니 정식 명칭이 없긴 한데 연구청에서는 저 신무기를 검차라고 부른다고 하더이다.”
카무이쿠르의 대답에 유혁연은 검차라는 신무기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검차는 수레에 방패와 검을 꽂아 기병의 돌격을 저지하기 위해 만든 무기인데 지금 저기 보이는 검차는 외형이 많이 달랐으니까.
물론 저 육중한 무게와 크기로 기병의 돌격을 저지할 수 있을 것 같긴 했지만.
“검차라...하지만 외형은 뭉뚝한 것이 적들에게 타격을 주기는 힘들어 보이는데 혹시 기병의 돌격을 저지하는 용도로 만든 기물인가요?”
“그거야 보는 눈이 있으니 무기를 뗀 거지요.”
“아...”
그렇게 유철연이 카무이쿠르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거중기에 의해 선착장에 내려진 검차는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지켜본 유철연이 기겁했다.
“헉!? 저거 설마 스스로 움직이는 겁니까?!”
그런 유철연의 반응에 카무이쿠르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럴 리 있겠습니까. 저 안쪽에 검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탑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검차 앞쪽에 작은 구멍이 있고 그 구멍을 통해 전방을 보고 움직이는 거지요.”
이에 유철연은 조금 멋쩍다는 듯 웃었다.
“그렇습니까? 허허허. 북미왕국의 기술력이 대단해서 스스로 움직이는 기물이라도 만든 줄 알았습니다. 아무튼, 저 검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검차 안쪽에 있다면 전장에 돌격하더라도 안전하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물론 저 위쪽에도 사람이 탑승해 무기를 조작해야 하는 터라 무턱대고 돌격하긴 어렵지만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흐음.”
그렇게 유철연은 카무이쿠르와 검차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검차 10대를 내린 북미왕국의 배가 출항할 준비를 하는 터라 유철연이 카무이쿠르에게 질문했다.
“그보다 저 검차의 수가 많지 않은데 나눠서 이동되는 겁니까?”
비록 검차의 크기가 크긴 했지만, 고작 10대만으로는 기병의 돌격을 막는 데 한계가 있을 것 같아서 질문을 던지자 카무이쿠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 10대가 다입니다. 아직 검차는 시범적으로 운용하면서 생기는 여러 문제를 개선하는 단계이지 정식으로 배치되어 양산되는 단계가 아니라서요.”
“아...”
카무이쿠르의 대답에 조금은 불안한 기색으로 검차를 바라보는 유철연이었고, 그런 유철연을 보고 카무이쿠르가 자신감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다만 저 10대만으로도 전장을 뒤흔들 수 있을 테니 믿어 주시지요.”
군사청을 통해 전해진 보고서에 따르면 저 검차보다 더 대단한 것은 바로 기관총이었고, 기관총을 잘만 이용한다면 청나라 기병을 상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았기에 카무이쿠르가 장담하자 유철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처음 건설 장비들을 본 조선인들이 겁에 질렸던 것을 생각해보면 검차를 처음 본 청나라인들이 혼비백산할 수도 있을 것 같았기에.
해서 유철연은 이야기의 주제를 돌렸다.
“그보다 지금 기술자로 위장한 북미왕국 병사들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계속 철도 부설 현장에만 있는 겁니까?”
“아닙니다. 약속된 모든 물자와 병력이 수송되면 미리 기초 공사를 한다는 핑계로 북진해 철산도호부에서 대기할 예정입니다.”
철산도호부는 의주에서 약 80리 정도 떨어져 있는 만큼, 지금 조선에 들어와 있는 북미왕국 병사들이 철산도호부에서 대기한다면 청나라군이 움직였을 때 바로 후방에서 지원해줄 수 있다는 이야기였기에 유철연은 안도하며 중얼거렸다.
“기병인 탐사대는 가도에, 총병인 경비대는 철산도호부라...그럼 청나라군이 기습해온다고 해도 하루만 버티면 되겠군요. 잘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