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8화
조용한 곰은 자신을 찾아온 에스파냐, 잉글랜드, 네덜란드 대사들에게 커피를 대접하며 갑자기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를 물었고.
“파나마 운하 지역으로 향하는 배를 구하신다고요?”
잉글랜드 대사의 대답에 조용한 곰이 고개를 갸웃하자 옆에 있던 네덜란드 대사가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파나마 운하 공사가 거의 완료 되었고 곧 파나마 운하의 개통식이 열린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참석하고 싶은데...이곳에서 저희가 따로 배를 구하기는 영 어려워서 말입니다.”
“아...”
대사들은 북미왕국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이곳에 파견된 만큼, 북미왕국이 건설한 파나마 운하도 직접 방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정보수집의 목적보다는 산을 깎아 만들었다는 파나마 운하에 대한 호기심이 더 크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대사들은 파나마 운하 개통식 날짜를 파악한 후 곧바로 파나마 운하로 이동하기 위한 교통편을 알아보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어선을 제외한 대다수의 배는 관이나 국영 상단, 왕실 상단의 소속이었기에 아무리 대사라 하더라도 외무청의 도움 없이 북미왕국의 배를 용선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를 파악한 대사들은 급히 외무청장인 조용한 곰을 찾아올 수밖에 없었고, 이에 관해 이야기하자 조용한 곰은 상황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에스파냐 대사가 입을 열었다.
“예. 차선으로 새진주로 이동해 에스파냐의 배를 타고 베라크루즈로 이동해 거기서 다시 파나마 지역으로 가는 배를 알아보자니 번거롭기도 하고 시간이 오래 걸려 개통식에 참석은 어려울 것 같고 말입니다.”
그리고 에스파냐 대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네덜란드 대사가 말했다.
“헌데 생각해보니 북미왕국에서도 개통식에 참석하기 위해 파나마 운하로 배를 보낼 것 아닙니까? 그러니 가능하다면 그 배에 자리를 좀 마련해주셨으면 합니다만...”
그 말에 조용한 곰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이들이 탑승할 배를 따로 준비해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다.
이번 파나마 운하 개통식에는 정성국이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보안을 이유로 이를 철저히 숨기고 있던 만큼 이들을 파나마 운하로 향하는 함대에 동승시키면 정성국이 직접 움직인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알려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다만 조용한 곰이 생각하기에는 큰 상관은 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저들이 함대에 동승한 이후에 정성국이 함께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다른 곳에 이 사실을 알릴 방법이 없었으니까.
해서 조용한 곰은 자신을 잔뜩 기대하며 바라보고 있는 유럽의 대사들을 보고 웃으며 답했다.
“흐음...알겠습니다. 일단 자리를 마련해보도록 하지요.”
그 말에 대사들은 반색했다.
아무래도 유럽의 배를 이용해 장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생각보다 고될 수밖에 없었는데 북미왕국의 배는 빠르고 쾌적한 만큼 비교적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기에.
“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어차피 파나마 운하 개통식에 푸른 안개님께서 참석하기로 예정되어 있어 파나마 운하로 배를 보낼 계획이었으니까요. 다만 배에 자리가 많지는 않을 거라 수행원들을 대거 태우기는 힘들어보입니다만...”
“아. 수행원은 없어도 됩니다.”
어차피 호기심에 가는 건데 수행원을 줄줄 매달고 갈 생각은 없었기에 대사들이 괜찮다는 듯 손을 내젓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출항 준비가 되면 연락을 드리지요.”
* * *
외무청에서 배에 탑승하라는 연락을 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유럽 대사들은 마침내 파나마 운하로 향하는 배의 출항 준비가 끝났으니 새김포로 이동하라는 외무청의 연락에 미리 싸두었던 짐을 챙겨 배를 타고 새김포로 이동했고.
새김포의 선착장에 정박해 있는 한 척의 거대한 선박을 보고 유럽의 대사들은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최근 북미왕국에서 5천 톤급보다 더 큰 배를 건조했다는 소문을 떠올리고 사실이었구나 싶었고.
그렇게 1만 톤급 철선에 눈을 떼지 못하던 대사들은 타고 있던 배가 선착장에 정박하고, 마침 그 위치가 1만 톤급 철선 근처였기에 배에서 내렸을 때 1만 톤급 철선의 크기를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이에 잉글랜드 대사는 가까이서는 선체 전체가 다 보이지도 않는 거대한 선박에 기가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허. 이건 정말...”
이에 옆에 있던 네덜란드 대사가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북미왕국의 기술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저런 것을 볼 때마다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대체 어떻게 저렇게 거대한 배를 건조할 수 있는건지...”
“예. 특히 저기 보십시오. 저 옆에 있는 선박은 5천 톤급 수송선 아닙니까?”
네덜란드 대사가 옆에 있는 5천 톤급 수송선을 가리키자 에스파냐 대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렇게 보니 그 크기가 확연하게 차이 나는군요. 허. 처음 저 5천 톤급 수송선을 봤을 때도 거대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 큰 배라니...북미왕국의 발전 속도는 정말 무섭군요.”
저 5천 톤급 수송선의 존재를 처음 파악했을 때만 하더라도 유럽 각국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다.
배의 크기도 크기였지만, 정보를 수집해보니 기존의 배처럼 나무가 아닌 강철로 만든 배였으니까.
해서 각국은 북미왕국처럼 철선을 건조해보려고 시도했었지만, 철선 건조는 아직 자신들의 기술력으론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만 깨닫게 되었고.
허나 유럽 각국은 어떻게든 북미왕국의 기술 발전을 조금이라도 따라잡기 위해 학자들과 장인들을 대우해주며 노력하고 있었는데 5천 톤급 철선을 건조한지 채 5년도 되지 않아 다시 저런 거대한 철선을 건조한 것을 보니 유럽이 한 발자국 걸을 때 북미왕국은 서너 발자국을 걷는 느낌이라 에스파냐 대사가 탄식하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대사들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다들 여기서 뭐 하십니까.”
“아. 푸른 안개님.”
일단 대외적으로는 푸른 안개가 이번 파나마 운하 개통식에 참석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푸른 안개는 주로 누에바 에스파냐와의 외교를 도맡아 오고 있었던 만큼.
다만 정성국은 이렇게 둘러대기만 할 생각이었는데 푸른 안개는 개발청에서 건설한 파나마 운하를 직접 보고 싶어하는 눈치였기에 정성국은 푸른 안개 역시 이번 파나마 운하 행에 동행시켰고.
그렇기에 선착장에 도착한 푸른 안개는 유럽의 대사들이 1만 톤급 철선 근처에서 가만히 서 있자 무슨 일인가 싶어 말을 걸었고 이에 네덜란드 대사가 대답했다.
“저 배를 보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저희 네덜란드는 해양 국가이다 보니 저런 배를 보고 감탄할 수밖에 없어서 말입니다.”
이에 푸른 안개는 이해한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하. 하긴 저도 처음에 저 배를 보고 그 거대함에 조금 놀라라 한참을 바라보긴 했었지요. 다만 곧 있으면 파나마 지역으로 배가 출항할 테니 일단 배에 오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대사들은 정신을 차렸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빨리 타야겠군요.”
“예. 이쪽으로 오시지요.”
대사들은 푸른 안개의 뒤를 따라가다가 거대한 배와 연결된 철제 계단을 오르는 푸른 안개를 보고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어? 설마 이 배에 탑승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 배는 대서양 항로에 투입될 예정이라서 말입니다. 이번에 개통되는 파나마 운하를 통해 대서양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푸른 안개의 설명에 대사들은 이 거대한 배에 탑승한다는 사실을 기뻐하기보다는 푸른 안개의 설명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맙소사. 이런 거대한 배도 파나마 운하를 이용할 수 있는 겁니까?”
“그럼요. 이것보다 몇 배는 큰 배도 운하를 이용할 수 있을 겁니다.”
“허...”
푸른 안개의 대답에 파나마 운하의 규모가 생각보다 더 대단하다는 것을 깨달은 대사들은 다시 한번 감탄을 터트렸고.
하지만 푸른 안개는 대사들을 재촉해 발걸음을 옮기게 했고, 대사들은 푸른 안개를 따라 배 뒷편의 갑판에서 가까운 선실을 배정받아 짐을 풀 수 있었다.
그렇게 짐을 푼 대사들은 선실을 나와 뒤쪽의 갑판으로 이동해 대화를 나누었다.
“배가 커서 그런지 객실도 꽤 넓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거기에 침대뿐만 아니라 옷장, 책상 등등 각종 가구까지 들어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뭐 덕분에 쾌적하게 파나마 운하까지 이동할 수 있으니 나쁠 것 없잖습니까. 거기에 창문도 꽤 커다란 편이라 그리 답답하지도 않고.”
“예. 뭐 답답하면 이 넓은 배를 산책하며 돌아다니면 될 테고요.”
“하하하. 배가 워낙 넓으니 그래도 되겠군요.”
그렇게 대사들이 갑판 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뿌우우우우우우우!’
대사들이 탑승하고 있던 1만 톤급 배에서 우렁찬 기적이 울린 후 배가 선착장을 조금씩 빠져나와 이동하기 시작하자 대사들이 다시 떠들어댔다.
“허. 이 거대한 배가 정말 움직이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 거대한 쇳덩이가 움직인다니...”
“최근 유럽에서는 200톤급 선박을 증기기관으로 움직여 기뻐하고 있는데 너무 비교되는 것 같습니다.”
유럽에서도 북미왕국을 따라 증기기관을 연구한 지는 꽤 시간이 흘렀기에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주로 정찰에 투입되는 조그마한 프리깃에 증기기관을 장착해 증기기관의 힘만으로도 움직일 수 있게 되어 한층 고무되어 있었고.
헌데 북미왕국에선 이렇게 거대한 쇳덩이를 기관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니 새삼 비교되어 잉글랜드 대사가 탄식하자 네덜란드 대사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거야 어쩔 수 없겠지요.”
“이러한 기술의 차는 역시 교육 시스템의 차이일까요?”
“그게 크지 않겠습니까? 물론 북미왕국처럼 모든 백성을 가르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긴 합니다마는...”
“예. 그 문제로 유럽에서도 말이 많긴 하니까요.”
그렇게 갑판 위에서 대사들이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 1만 톤급 철선은 어느덧 선착장을 빠져나와 항해하고 있었고, 점차 멀어지는 새김포를 바라보던 네덜란드 대사가 주변을 둘러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헌데 바다에서 대기 중이었던 저 배들. 1함대 소속 전선 아닙니까?”
그 말에 에스파냐 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묘하게 이 배와 함께 움직이는 것 같은데요?”
네덜란드 대사의 말에 잉글랜드 대사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본 후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마치...이 배를 호위하는 느낌이로군요. 그것도 10척에 가까운 전선들이 말입니다.”
잉글랜드 대사의 말처럼 선착장과 조금 거리를 두고 내해에서 정선하고 있던 1함대 전선들은 자신들이 탄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곧바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이동하고 있었기에 다른 대사들도 의아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설마 푸른 안개를 호위하기 위해 1함대가 함께 움직이는 걸까요?”
“설마요. 물론 푸른 안개가 왕실의 일원이기는 합니다만...”
푸른 안개가 왕실의 일원이라고는 하나 푸른 안개를 호위하겠다고 저 많은 전선이 함께 움직이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아 에스파냐 대사가 고개를 젓자 네덜란드 대사가 자신의 추측을 말했다.
“아마 이곳을 방비 중인 1함대가 파나마 운하로 떠나는 이 배를 잠시 배웅해주기 위해 함께 움직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네덜란드 대사의 추측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대사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뒤쪽에서 푸른 안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닙니다. 저 1함대는 저희와 함께 파나마 운하까지 이동할 겁니다.”
대사들이 뒤를 돌아보자 푸른 안개가 웃으면서 대사들에게 다가오고 있었기에 대사들이 입을 열었다.
“아. 오셨습니까?”
“헌데 그게 정말입니까? 1함대가 파나마 운하까지 이동한다는 것이?”
1함대가 남하해 파나마 운하까지 이동한다는 이야기에 예전 북미왕국의 함대가 멕시코 서해안을 이동하면서 항구란 항구는 모조리 불태웠던 기억을 떠올린 에스파냐 대사가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지자 푸른 안개는 그 속내를 대충 짐작하고 별일 없을 거라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장거리 항해 능력과 운하 이용 경험을 쌓기 위해 1함대가 함께 움직이는 겁니다.”
“아...그렇군요.”
대사들이 푸른 안개의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푸른 안개가 짓궂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이 배에는 전하께서도 타고 계십니다. 해서 전하의 호위도 할 겸 함께 움직이는 거지요.”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