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6화
정성국이 파나마 운하 개통에 맞춰 파나마 지역을 방문할 계획이라는 것이 개발청장에 의해 다른 청장들에게도 알려지면서, 그리고 정성국이 이왕 움직이는 김에 파나마 운하만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북미 동해안 지역까지 방문해 그곳의 발전 상황을 확인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청장들은 정성국의 안전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북미왕국의 구심점은 국왕이자 건국왕인 정성국이었는데, 아무리 우호국이라지만 타국의 영토를 그것도 날씨에 따라 위험할 수도 있는 뱃길을 이용해 방문한다고 하니.
다만 정성국이 이미 마음을 굳혔다고 하니 청장들은 정성국을 말리기보다는 만반의 준비를 갖춰 이동하길 원했고, 정성국 역시 무모하게 움직일 생각은 없었고 청장들의 걱정도 해소할 겸 자신의 호위 문제는 군사청장과 호위대장에게 일임했다.
그리고 군사청장과 호위대장이 정성국의 호위 계획을 세워 정성국에게 보고하자 정성국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음? 1함대의 절반을 내 호위로 돌리겠다고?”
군사청장은 정성국을 호위하기 위해 1함대의 전선 가운데 노후화되지 않은 상태가 괜찮은 전선들을 모조리 동원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이 전선들을 모두 합하면 1함대의 절반에 달하는 10척에 가까웠기에 정성국이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표정을 짓자 군사청장이 그게 왜 과한 것이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전하께서 직접 움직이시는데 그 정도는 따라붙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서너 척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그리고 1함대의 절반을, 그것도 쓸만한 전선은 모두 내 호위로 돌리면 1함대가 관할하고 있는 영역은 어쩌고?”
정성국의 지적에 군사청장은 전혀 문제 될 것은 없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태평양에는 저희와 에스파냐의 배 정도가 전부이잖습니까. 의례적으로 해오던 순찰의 횟수가 줄어든다고 크게 문제가 생길 일은 없지요. 그리고 노후화된 전선이라 하더라도 범선을 상대하는 덴 큰 지장 없고요.”
“그건 그런데...”
애당초 1함대가 관할하는 구역은 후방에 가까웠고, 남태평양을 담당하는 5함대가 창설되면서 사실상 1함대는 남쪽만 경계하면 되었다.
그런 만큼 1함대의 전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져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는 군사청장의 대답에는 정성국도 딱히 할 말이 없었고.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군사청장이 덧붙였다.
“그리고 전하께서는 이번 기회에 북미 동해안 지역까지 방문하실 예정이시잖습니까. 그러니 1함대도 전하를 호위하면서 이 기회에 장거리 원정을 대비한 훈련도 겸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해서 가능한 한 많은 배를 전하의 호위로 배정했습니다.”
군사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1함대가 북미 서해안을 방어하기 위한 함대이기는 한데, 3함대와 5함대가 있는 이상 적들이 1함대가 관할하는 영역까지 올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런 만큼 만약의 경우가 발생한다면 다른 함대를 지원하기 위해 움직일 수 있는 함대는 1함대일 것이 분명했기에 1함대도 장거리 항해 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는 군사청장의 말에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장거리 원정을 대비한 훈련이라...뭐 만약의 경우 1함대는 다른 함대를 지원하는 위치이니 필요한 훈련이긴 하군. 알겠네. 그럼 임시 호위함대는 그렇게 구성하도록 하고...호위대는 얼마나 동원할 생각인가?”
정성국의 질문에 군사청장 옆에 있던 호위대장이 대답했다.
“일단 2500명 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중 2000명은 이곳에서 전하를 호위하고 500명은 육로로 이동하는 왕실 가족을 호위할 예정이고요.”
“뭐? 2500명? 무슨 호위대를 그렇게 많이 동원해?”
그동안 북미왕국의 영역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육군의 규모는 꾸준히 커져 왔다.
다만 이건 경비대나 탐사대에 해당하는 이야기였고, 호위대는 예전에 규모를 2배로 늘린 이후로 계속 3000명의 규모를 유지해왔었다.
헌데 여기서 500명을 제외한 2500명을 자신의 호위로 돌리겠다고 하니 정성국이 너무 많이 동원하는 것 같아 고개를 저었지만, 호위대장은 동원하는 호위대의 규모를 줄일 생각이 없는지 조심스럽게 반박했다.
“전하의 안전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 아닙니까?”
“아니. 그래도 그렇지. 내가 지금 전쟁터에 가는 것도 아니고 우호국인 에스파냐의 식민지를 가는 건데 호위대 2000명은 너무 과한 것 같지 않나? 거기에 임시 호위함대의 규모도 큰 편이라 호위대를 많이 대동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그냥 나한테 500명, 가족들에게 500명 정도 붙이면 되는 것 아닌가?”
정성국은 이번 파나마 운하를 가족과 함께 방문할 생각이었다.
다만 청장들은 정성국과 후계자로 생각하는 정안문이 함께 타국을 방문한다는 이야기에 질색하며 절대로 안 된다고 결사반대를 외쳤고.
특히 파나마 지역의 경우 각종 풍토병도 존재했고, 개발청에서도 이 풍토병에 대비했지만 파나마 지역에 파견된 기술자들이나 병사 중 일부는 풍토병에 의해 사망하기도 했었으니 혹시라도 정성국과 정안문이 함께 파나마 지역을 방문했다가 변고라도 당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정성국은 가족들과 함께 파나마 운하를 구경하고 싶었지만, 청장들의 걱정도 일리가 있다고 판단해 일행을 둘로 나누어 자신은 뱃길로 파나마 운하를 통해 플로리다 지역의 거점 도시인 산 아구스틴으로 이동하고, 가족들은 나중에 기차를 타고 새진주로 이동한 후 뱃길로 산 아구스틴으로 와 만나 함께 북미 동해안 지역을 방문하기로 했고.
그런 만큼 정성국은 500명씩 붙이면 충분히 호위할 수 있느냐는 입장이었지만 호위대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전하께서 계속 배에서 머무신다면야 모를까, 파나마 운하 개통식에 참석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충분한 숫자의 호위대를 대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함대의 병사들은 해군이자 선원이지 육지에서 전하를 호위하는 임무에는 맞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확실히 호위대장의 말처럼 1함대 소속 병사들은 호위대원들처럼 육지에서 정성국을 호위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외곽에서 경비하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할 테니 근접 경호는 호위대원들이, 외곽 경호는 1함대 소속 병사들이 맡으면 되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은 북미왕국에 무척 우호적인 인사였으며 에스파냐는 북미왕국의 국력을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 잘 파악하고 있었기에 은근히 북미왕국을 두려워하며 눈치를 보고 있기도 했고.
특히 최근에 북미왕국이 흑룡강에서 러시아 차르국과 분쟁이 일어난 것을 계기로 시베리아 지역에 개입해 원주민들을 규합해서 연합이란 세력을 만들고, 이들을 지원해 그동안 러시아 차르국이 힘겹게 개척한 시베리아 지역을 상당수 잃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는 혹시 자신들이 북미왕국과 충돌했다가 같은 절차를 밟을까 더욱 북미왕국의 눈치를 보기도 했고, 북미왕국과 우호적으로 지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전과는 다르게 멕시코 원주민들의 불만을 줄이기 위해 조금은 유화적으로 대하기도 했다.
그런 만큼 에스파냐는 오히려 자신이 파나마 지역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혹시라도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 모를까 자신을 공격할 리는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파나마 지역의 방문을 결정한 것이고 말이다.
그런 만큼 정성국이 호위대장에게 무어라 이야기하려 할 때 호위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 저도 파나마 지역의 원주민들이 북미왕국에 무척 우호적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고, 에스파냐가 전하를 공격할 가능성은 무척 낮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전하께서도 항상 최악을 대비하고 준비하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끙...”
“그리고 전하의 안전뿐만 아니라 위엄을 생각해서라도 최대한 많은 호위대를 대동하고 움직이시는 것이 맞습니다.”
호위대장의 말은 정성국이 청장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말이었기에 별말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옆에서 군사청장이 호위대장을 지원하기 위해 끼어들자 정성국은 손을 들어 항복의 의사를 밝혔다.
“휴. 알겠네. 알겠어. 그러도록 하게. 헌데 나를 따라 호위대 2000명이 움직이려면 따로 배를 준비해야 할 것 같은데?”
비록 1함대의 절반인 10척이 함께 움직인다고는 하나 이 1함대에 추가로 호위대 2000명을 태울 수는 없을 것 같아 정성국이 의문을 표하자 군사청장이 이미 다 준비해 두었다는 듯 자신 있는 미소로 대답했다.
“아. 그건 문제없습니다. 호위대장에게 이야기를 듣고 이미 커다란 배를 준비해 두었으니까요.”
“커다란 배?”
“예. 지금 조선소에서 개조 중인 1만 톤급 철선이 있잖습니까. 그걸 사용하면 될 것 같아서 이야기했고, 조선소에서는 아예 전하께서도 탑승할 수 있도록 편의 시설을 대폭 추가해 개조 중입니다.”
최주명과 조선 장인들이 시험 삼아 건조했던 1만 톤급 철선은 성공적으로 시범 운항까지 마쳤다.
해서 북미왕국은 1만 톤급 철선 제작 기술과 회전 포탑 기술을 확보했고.
그 후 이 1만 톤급 철선을 어떻게 이용할지 논의했었는데, 배의 크기가 크기였던지라 여객선으로 사용하자는 의견이 다수여서 결국 다시 조선소로 들어가 한창 개조 작업 중이었다.
이를 떠올린 정성국은 군사청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아...그게 있었지? 그거 결국 여객선으로 개조 중이었으니 잘하면 배 한 척에 호위대원들을 모두 태울 수 있겠는데?”
“예. 가능은 합니다. 다만 1만 톤급 철선은 더 쾌적한 환경을 위해 기존의 대형 객실은 없애고 소형 객실 위주로 개조한 터라 호위대원들을 모두 1만 톤급 철선에 탑승시키려면 기존에 배치한 가구들을 다시 빼내거나, 아니면 선실 바닥에서 자야 하는 터라 일부는 1함대의 전선에 분산 배치해야 할 것 같기는 합니다만...”
“아. 그래? 뭐 호위대원들은 내가 항구에 들를 때마다 꽤 고생할 테니 배 위에서 그나마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게 맞겠지. 알겠네. 그러도록 하게.”
호위대원들도 꽤 오랫동안 배 위에서 생활해야 하는 만큼, 배 위에서 지낼 때만이라도 편하게 지냈으면 하는 마음에 정성국이 이렇게 이야기하자 군사청장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때 옆에서 호위대장이 입을 열었다.
“그보다 전하. 이번에 전하께서 외유를 결정하시면서 깨닫게 된 건데 호위대의 규모가 너무 적은 것 같습니다. 이제라도 호위대의 규모를 더욱 늘리시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참에 호위함대도 창설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만...”
호위대장의 의견에 군사청장은 아예 한술 더 떠서 호위함대까지 창설하자고 주장하자 정성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호위대를 추가로 늘리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호위함대까지 창설하겠다고? 그건 좀 낭비 아닌가 싶은데?”
“하지만 전하께서는 앞으로 가끔은 이번처럼 순행을 다니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때를 대비하면 미리 호위함대를 창설하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그동안은 각종 보고서를 통해서 북미왕국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가끔은 직접 각 지역을 방문해 실상을 파악할 필요도 있다고 판단했다.
해서 정성국은 파나마 지역뿐만 아니라 북미 동해안 지역도 방문하겠다고 한 것이고, 앞으로도 종종 다른 지역들을 방문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고.
청장들도 다른 나라라면 모를까 북미왕국의 영토를 순행하는 것에는 딱히 반대하지 않았다.
섬이 아니고서야 북미왕국 전체에 통신망을 설치하고 있었기에 급한 일이 생기면 전화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터라 정성국의 부재로 생기는 문제는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더불어 정성국은 각 지역을 방문한다면 정성국이 그만큼 그 지역을 신경 쓰고 있다는 의미도 되는 만큼 오히려 백성들은 좋아할 테고.
그렇기에 정성국이 가끔 북미왕국 전역을 돌아다닌 것은 사실상 확정되었는데 북미 대륙 내에서만 돌아다니면 모를까 바다 건너 북미왕국의 영토도 들를 것이라고 귀띔한 만큼 군사청장은 아예 호위함대를 새로 창설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이를 이야기하자 정성국은 잠시 생각해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글쎄? 물론 언젠간 바다 건너 아국의 영토들을 방문할 생각이기는 한데...그건 먼 훗날의 일이기도 하고, 조만간 기존의 전선들을 신규 전선으로 교체하는 사업을 진행하면 몇 년간 새로운 함대를 창설할 여유는 없을 것 같은데?”
“아. 그러고 보니...”
프랑스가 작열탄을 개발함으로써 정성국은 최주명에게 명령을 내려 신규 전선을 개발하도록 했고, 곧 신규 전선이 건조되는 만큼 당분간은 새롭게 함대를 창설할 여력이 없긴 했다.
이를 떠올린 군사청장이 수긍하자 정성국이 덧붙였다.
“그리고 호위함대까지 따로 창설하면 1함대가 너무 소외당하는 느낌이기도 하니까 일단은 호위대만 늘리는 것으로 하지. 한 5천 명 수준으로.”
확실히 1함대는 후방에 위치하다 보니 홀대받는 느낌이 없지 않은데, 여기서 호위함대를 따로 창설하면 1함대의 사기는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해서 군사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