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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525화 (525/850)

525화

“찾으셨습니까. 사령관님.”

“아. 오셨습니까. 여기 앉으시지요.”

크라스니야르 요새의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아이누 탐사대장은 나이가 지긋한 네네츠 족 족장이 집무실로 들어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족장에게 자리를 권한 후 커피를 대접했다.

네네츠 족의 족장은 아이누 탐사대장이 건네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미소를 지었다.

“허허허. 좋군요. 커피라고 했지요? 처음에는 그냥 그랬었는데 그 이후로도 가끔씩 생각나는 것이 참으로 요상한 차입니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따로 커피를 내리는 도구와 커피를 챙겨드리겠습니다. 가끔 생각나실 때 드시지요.”

네네츠 족 족장은 이 커피라는 차가 저 멀리 있는 북미왕국에서 가져온 것이고, 무척 비싸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아이누 탐사대장의 이야기에 반색했다.

“오. 감사합니다.”

“헌데 네네츠 족의 분위기는 좀 어떻습니까?”

아이누 탐사대장이 슬쩍 질문을 던지자 네네츠 족 족장은 아주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주 좋습니다. 거래에 제한은 있습니다만 이곳에서 필요한 여러 물자를 무척 싼 값에 구할 수 있으니까요. 덕분에 부족원들의 생활이 많이 나아졌지요.”

“그렇습니까?”

“예. 아시다시피 러시아인 상인들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생필품들의 가격을 비싸게 책정해 팔았던 터라...”

처음에야 사냥을 통해 모피를 확보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사냥감이 줄어들었는데도, 물건의 가격은 더욱 오르고 모피값을 제대로 쳐주지 않다 보니 네네츠 족의 생활은 무척 고달플 수밖에 없었다.

해서 혈기 넘치는 청년들은 간혹 러시아인 상인들을 습격하기도 했고, 나중에 이를 알고 러시아 차르국 병사들이 네네츠 족을 보복하는 일이 잦았고.

이 러시아 차르국 병사들은 모두 크라스니야르 요새 소속이었기에 지금까지 네네츠 족은 이 크라스니야르 요새를 무척 두려워했다.

그러나 연합이 이 크라스니야르 요새를 점령한 후에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연합은 러시아인 상인들과 다르게 모피 가격을 제대로 쳐 주었고 그동안 사용해왔던 생필품의 품질보다 훨씬 좋은데도 가격은 저렴했다.

물론 연합의 물자도 많은 편은 아니라 거래량에 제한을 두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었고.

그러니 연합이 등장한 이후 네네츠 족들의 상황은 확연히 나아졌고 이를 체감하고 있는 네네츠 족 족장은 무척 호의적인 표정으로 아이누 탐사대장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리고 전에도 이야기한 것 같지만, 이 근방의 부족원들은 대부분 잔혹한 러시아인들에 의해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습니다. 헌데 연합이 크라스니야르 요새를 점령한 이후로 그동안 패악만 부리던 러시아인들은 모두 포로가 되어 강제로 노역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꼴 좋다고 여길 수밖에 없지요. 더불어 연합을 도와 러시아 차르국에 복수하겠다고 생각하는 부족원들도 꽤 많고 아직 러시아 차르국의 지배를 받는 다른 부족들을 해방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우는 부족원들도 있습니다. 그러니 사령관님께서는 저희 네네츠 족이 혹여 연합을 부정적으로 바라볼까 걱정하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허허허.”

그렇게 이야기하는 네네츠 족 족장을 바라보고 아이누 탐사대장은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네네츠 족을 설득하기 위해 족장에게 했던 말들이 그대로 다른 부족원들에게도 퍼진 모양이었는데, 상황이 변했으니까.

다만 곤란하다고 이를 숨길 수야 없는 노릇이었으니 아이누 탐사대장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족장님. 그게...”

아이누 탐사대장은 네네츠 족 족장에게 연합에서는 앞으로 러시아 차르국과 화친을 맺을 예정이라고 이야기하자 족장은 커다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아이누 탐사대장을 바라보았다.

“그런...이전에 사령관님께서 하신 말씀과는 조금 다르지 않습니까.”

“죄송합니다. 상황이 바뀌었고 연합에서 일단 결정을 내린 터라...”

그러면서 아이누 탐사대장은 현 연합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고, 이를 듣고 네네츠 족 족장은 음울한 시선으로 아이누 탐사대장을 보고 입을 열었다.

“저희가 뭐라고 한들 연합은 이미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이 바뀔 일도 없을 거라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아이누 탐사대장의 대답에 네네츠 족 족장은 탄식했다.

자신도 그렇고 일부 부족원들은 연합을 통해 러시아 차르국에 제대로 복수할 수 있다고 여겼는데 그게 무산된 셈이었으니.

다만 이건 연합의 결정이고, 눈앞에 있는 연합의 사령관은 그저 명령을 따르는 것이 다라는 것을 이해한 네네츠 족 족장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우. 알겠습니다. 다만...”

“다만?”

“연합은 이 크라스니야르 요새에서 철수하는 겁니까?”

이에 아이누 탐사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요. 러시아 차르국과의 협상 결과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습니다만...이미 점령한 이 크라스니야르 요새에서 철수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크라스니야르 요새가 연합의 영토여야 예니세이 강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을 테니까요.”

예니세이 강은 남쪽의 몽골에서 발원해 북쪽으로 흘러 결국 북극해로 빠져나가는 강으로, 이 크라스니야르 요새는 예니세이 강 중상류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크라스니야르 요새를 연합이 소유해야 예니세이 강 전체의 지배권을 확보할 수 있었고.

또한. 연합의 남서쪽에는 중가르가 있었는데, 중가르와의 대규모 교역을 위해선 육로보다는 수로가 나았고, 이 예니세이 강을 거슬러 상류로 이동하다 보면 중가르와 접촉할 수 있는 만큼, 중간에 교역 거점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크라스니야르 요새의 가치는 생각보다 컸다.

그런 만큼 연합은 결코 이 크라스니야르 요새를 포기하지 않으리라고 판단한 아이누 탐사대장이 그렇게 대답하자 긴장하고 있던 네네츠 족 족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그나마 다행이군요.”

그런 반응에 아이누 탐사대장은 어리둥절하다가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음? 아. 혹시 족장님께서는 네네츠 족의 안전을 걱정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연합이 이 크라스니야르 요새에서 철수하면, 러시아인들이 연합에 협조한 우리 네네츠 족을 가만둘 리 없으니까요.”

네네츠 족이 연합을 돕고 있다는 사실은 러시아 차르국도 잘 알고 있는 만큼, 연합이 크라스니야르 요새에서 철수하고 크라스니야르 요새에 다시 러시아 차르국의 병사들이 진주한다면 네네츠 족은 가혹한 보복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연합이 러시아 차르국과 화친을 맺고 철수하기라도 하면 부족의 앞날이 어두워 걱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사령관은 이곳에서 철수할 생각은 없다고 하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아이누 탐사대장이 괜한 걱정이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책임지고 네네츠 족 전체의 안전을 보장하겠습니다.”

“으음...”

“정말입니다. 믿어주시지요.”

아이누 탐사대장은 왠지 못 미더워하는 표정을 짓는 네네츠 족 족장에게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이야기하자 네네츠 족 족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령관님은 믿습니다만...연합에서 어떻게 저희의 안전을 보장하겠습니까.”

물론 연합이 이 크라스니야르 요새에서 철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네네츠 족 전체가 안전을 보장받을 수는 없었다.

네네츠 족은 예니세이 강과 서쪽에 있는 오비 강 사이의 넓은 영역에서 살고 있었기에 연합이 러시아 차르국과 화친을 맺으며 하는 영토 협상에 따라 부족 중 상당수는 계속 러시아 차르국의 통치하에 살아가야 했으니까.

다만 네네츠 족 족장은 네네츠 족 전체의 족장이라기보다는 이 크라스니야르 요새 주변의 네네츠인들의 지도자였기에 연합이 크라스니야르 요새에서 철수하지만 않는다면 자신들은 괜찮을 거라 여겼을 뿐이고.

이런 사정을 아이누 탐사대장도 모르지 않을 텐데 어떻게 연합에서 네네츠 족 전체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겠느냐고 네네츠 족 족장이 의문을 표하자 아이누 탐사대장은 뭐가 그리 문제겠냐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거야 간단하지요. 족장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저희 연합의 영토는 어마어마합니다. 헌데 네네츠 족이 정착할 곳이 없겠습니까?”

어차피 네네츠 족은 정주 민족이라기보단 유목 민족에 가까웠다.

그런 만큼 정주 민족이 갖는 고향 땅에 갖는 애착 같은 것도 거의 없었고.

그러니 네네츠 족 전체를 연합의 영역으로 이주하면 그만 아니겠냐는 이야기에 네네츠 족 족장이 신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그건...저희 부족 전체가 연합의 땅으로 이주하라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연합은 영토에 비해 인구가 무척 희박한 편이지요. 그 때문에 연합의 땅을 개발하기도 쉽지 않고. 그러니 네네츠 족이 연합의 영역으로 이주한다면 연합은 환영할 겁니다.”

“으음...”

네네츠 족 족장이 아이누 탐사대장의 이야기에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아이누 탐사대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말입니다. 상황이 바뀌었으니 한티 족, 만시 족, 셀쿠프 족과의 접촉은 중단해야 하지 않습니까.”

“아. 그래야지요. 셀쿠프 족과는 이야기가 꽤 진행된 것으로 아는데...이 소식을 듣게 되면 셀쿠프 족이 참 안타까워하겠군요.”

셀쿠프 족은 다른 부족들과는 달리 이곳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다른 부족들과는 달리 이야기가 꽤 진행되었다고 이야기하자 아이누 탐사대장은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어쩌겠습니까. 아무튼, 러시아 차르국에 저항하는 이들 부족에게도 소문을 퍼트려 주십시오. 연합은 시베리아 원주민들의 이주를 환영한다고 말입니다.”

아이누 탐사대장은 이들 부족에게 조금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네네츠 족을 통해 이들과 접촉해서 이들이 다시 러시아 차르국과 적대하라고 부추기고 있었는데, 사정이 변해 러시아 차르국과 화친을 맺기로 했었으니.

해서 아이누 탐사대장은 최소한의 책임감으로 네네츠 족과 마찬가지로 예니세이 강과 오비 강 사이의 지역에서 사는 이들 부족도 연합으로의 이주를 권했고 이를 전해 듣고 네네츠 족 족장은 무척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허. 러시아 차르국의 통치를 못마땅해하는 부족들을 모두 연합에 이주시킬 생각입니까?”

“인구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러시아 차르국과 어떤 협상을 맺느냐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연합에서 이 크라스니야르 요새를 점령한 이상, 어지간하면 예니세이 강 동쪽은 연합의 땅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되면 예니세이 강을 기준으로 동시베리아의 광활한 영역이 모두 연합의 영역이 되어 버리는데, 시베리아 원주민들의 수는 무척 적은 터라 이 지역의 개발이 더딜 수밖에 없었고.

그런 만큼 러시아 차르국에 적대적인 부족들을 연합으로 모두 이주시킨다면, 연합의 인구가 늘어나며 연합의 발전은 빨라지고, 반대로 러시아 차르국이 장악한 서시베리아 지역은 땅을 개발할 인구가 부족해 발전이 더뎌질 테니 나쁠 것 없다고 판단했다.

해서 아이누 탐사대장은 네네츠 족 족장에게 연합으로 이주한다면 연합 차원에서도 최대한 정착을 돕겠다고 이야기하자 네네츠 족 족장은 고민이 많은 얼굴로 대답했다.

“흐음...일단 다른 부족들에게 연합의 정보를 알려, 현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러시아 차르국에 무력으로 저항하는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연합의 영역으로 이주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정도만 해도 나쁘지는 않았기에 아이누 탐사대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예.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우리들의 이주는 일단 다른 족장들과도 상의 후에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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