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2화
정성국은 조금은 굳은 표정으로 집무실을 들어오는 행정청장을 보고 무슨 일로 그러는지 질문을 던졌고.
“뭐? 미시시피 남부 지역에 가뭄이 들었다고?”
행정청장의 대답에 놀란 정성국은 들고 있던 보고서를 내려놓고 급히 되묻자 행정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벌써 4달 가까이 비가 오지 않아 땅이 바싹 말라붙었답니다. 그 때문에 꽤 큰 피해가 예상되고요.”
“어...설마 미시시피 강이 말라붙은 건 아니겠지?”
정성국이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질문을 하자 행정청장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 정도는 아닙니다. 물론 계속해서 비가 내리지 않고 있어 수량이 줄긴 했습니다만...아직까지 배로 미시시피 강을 이용하는 것도 크게 지장은 없고요.”
그런 행정청장의 반응에 정성국은 안도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크게 상관은 없지 않나? 일단 개발청이 나서서 개간한 농지들은 전부 관개시설을 정비해두었잖나? 물론 그래도 한계가 있으니 미시시피 지역의 수확량이 꽤 줄어들긴 하겠지만...”
“예. 물론 아국의 백성들은 크게 상관이 없지요. 미시시피 지역의 수확량이 줄어든다 한들 다른 곳에서 식량은 넘쳐나게 생산되고 있으니까요. 문제는 아직 아국에 합류하지 않은 원주민들이 문제입니다.”
정성국이 행정청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아...오세이지 족 말이지?”
오세이지 족은 예전 미주리 족, 아이오와 족과 함께 북미왕국을 적대한 미시시피 강 서쪽의 대부족 중 하나였다.
그러나 미주리 족, 아이오와 족이 북미왕국에 합류하면서 홀로 남게 되었고.
외무청에서는 다른 두 부족이 북미왕국에 합류한 이상 오세이지 족도 결국 북미왕국에 합류하리라고 보았지만, 의외로 오세이지 족은 북미왕국에 합류하지 않고 계속해서 북미왕국을 적대하며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영역이 바로 가뭄이 발생했다는 미시시피 남부 지역이었기에 정성국이 오세이지 족을 언급하자 행정청장이 덧붙여 말했다.
“오세이지 족뿐만 아니라 쿼포 족도 키우던 작물 대부분이 말라붙어 피해가 큰 것 같다는 치카소 행정청 관리들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쿼포 족까지? 으음...”
쿼포 족은 미시시피 강 남쪽의 거점 중 하나인 치카소의 맞은 편에 위치한 부족으로 이들의 영역은 미시시피 강 서쪽에서 강을 따라 길게 자리한 부족이었다.
쿼포 족 역시 미시시피 강 서쪽의 다른 부족들과 비슷한 언어를 사용한 터라 처음에는 이들과 말이 통하지 않아 약간 거리를 두었었고.
다만 이들은 미시시피 강을 따라 농사를 짓는 농경 부족이었던 터라 미주리 족, 아이오와 족, 오세이지 족처럼 북미왕국에 적대적이지는 않았고, 치카소가 건설되면서 이곳에서 북미왕국과의 교역을 통해 철제 농기구 등을 구할 수 있게 되면서 북미왕국을 좋은 이웃 부족처럼 여기고 비교적 우호적으로 교류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정성국은 쿼포 족의 상황을 행정청장에게 전해 듣고 곧바로 입을 열었다.
“쿼포 족은 우리와 우호적으로 지내고 있는 만큼, 바로 식량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보내게. 그리고 오세이지 족이 조금 문젠데...”
오세이지 족은 북미왕국에 날을 세우고 있는 만큼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행정청장이 고민할 필요가 있느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내버려 두면 오세이지 족도 식량난이 발생해 미주리 족이나 아이오와 족처럼 우리 북미왕국에 합류할 테니 모르는 척하는 것이 나아 보입니다만...”
“흠...순순히 우리에게 합류하면 모를까 식량을 구하겠다고 동쪽이나 서쪽으로 향하면 그것도 골치일 것 같은데?”
정성국의 대답에 행정청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요. 서쪽이라고 식량이 있겠습니까? 미시시피 강에서 서쪽으로 연결된 지류들의 수량이 공통적으로 줄어들었다는 보고가 있었으니 서쪽도 상황은 비슷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세이지 족의 동쪽은 결국 쿼포 족의 영역인데...쿼포 족은 저희와 우호적이라는 것을 오세이지 족도 알고 있기에 섣불리 건드리지는 못할 겁니다. 그리고 쿼포 족에 넘어간 철제 농기구가 꽤 되는 것으로 아는 만큼 오세이지 족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테고요.”
행정청장의 말도 일리는 있었지만 정성국은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 썩 달갑지 않았다.
물론 북미왕국에 식량이 부족하다면야 또 다른 문제였겠지만, 식량이 넘쳐나는데 오세이지 족을 압박하겠다고 이를 방치했다가 원주민들의 피를 뿌릴 필요가 있나 싶었달까.
그리고 오세이지 족도 북미왕국의 강력함을 아는 터라, 북미왕국의 행동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할 뿐이지 직접적으로 북미왕국을 공격한 적은 없었고.
해서 정성국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어쨌든 피가 흐르는 것은 자명한 일 아닌가.”
“허면...”
“일단 관리청에 이야기해 치카소와 타마로아에 최대한 많은 식량을 운반해 쌓아두도록 하고...일단 쿼포 족에겐 바로 식량을 건네주도록 하게. 그리고 오세이지 족의 경우 그나마 예전에 교류했고 가까운 미주리 족 출신들을 보내 오세이지 족에게 식량 지원 의사를 밝히도록 하지.”
정성국이 오세이지 족을 지원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 같았기에 행정청장은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건 외무청에 협조를 구하도록 하지요. 그리고 이건 다른 보고인데...”
“다른 보고?”
“현재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는 유럽인 가운데 위그노들의 수가 급격히 줄고 있습니다.”
프랑스와의 전쟁 이후 프랑스인 포로들을 풀어주면서 프랑스에는 북미왕국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퍼져 나갔고.
프랑스인 개신교도들은 이 북미왕국의 소문을 듣고 계속해서 프랑스에 머물며 핍박받거나 믿음을 바꾸기보다는 종교의 자유를 위해 프랑스를 탈출해 북미왕국으로의 이주를 택했다.
해서 이들은 프랑스를 탈출해 가까운 에스파냐의 바스크 지역으로 이동해 배를 기다렸고, 덕분에 요 몇 년간 바스크 지역은 위그노들로 항상 북적였는데, 올 초부터 바스크 지역으로 유입되는 위그노들의 수가 급감했고, 위그노들을 북미왕국으로 이주시키기 위해 투입한 여객선도 그동안은 사람을 가득 태워 왔었지만, 최근에는 절반도 차지 않는다고 설명하자 정성국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흐음...그건 프랑스인들 가운데 개신교를 믿는 자들은 대부분 북미왕국으로 이주했다는 뜻인가?”
그동안 위그노들의 탈출을 방관했던 프랑스가 이제 와서 이들의 탈출을 막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는 위그노들이 급감한 것은 결국 탈출할만한 이들은 모두 프랑스를 탈출했다는 결론에 도달해 정성국이 묻자 행정청장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에 정성국은 더 많은 프랑스인을 이주시키지 못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지금까지 이주한 프랑스인들의 숫자만 해도 충분했기에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프랑스인들을 받아들인 지도 벌써 4년 가까이 흘렀고 그동안 수많은 배를 이용해 이들을 북미왕국으로 실어 날랐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겠지. 지금까지 한 35만 명가량 이주했나?”
정성국의 질문에 행정청장이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지금까지 약 43만 명가량의 프랑스인들이 북미왕국에 이주했습니다.”
처음 프랑스 포로들을 풀어주면서 절반 정도만 가족과 함께 북미왕국에 이주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었고 외무청에서는 그렇게 북미왕국으로 이주할 인원을 약 3만 명 정도로 예상했었는데, 예상했던 인원의 10배가 넘는 대규모 인원이 이주해온 만큼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며 감탄했다.
“휘유. 어마어마하군. 이들 덕분에 오대호 인근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니 루이 14세에게는 정말 감사의 편지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야.”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물론 이들의 이주로 오대호 인근 지역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행정청의 관리들은 격무에 시달려 죽을 맛이긴 했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프랑스인들의 대규모 이주로 북미왕국의 발전이 빨라진 것은 사실이기에 행정청장이 미소를 짓자 정성국이 입을 열었다.
“그보다 이전과 달리 바스크 지역으로 찾아오는 위그노인들도 거의 없고, 뉴펀들랜드 섬에서 바스크 지역을 왕래하는 여객선의 선실이 겨우 3할 정도만 채워진 채로 운행되고 있다면 계속해서 바스크 지역에 여객선을 투입하는 것은 낭비인 것 같은데?”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차라리 아일랜드로 투입하는 것이 낫지요.”
“흐음...아일랜드로 여객선을 2대나 투입하자고? 그것도 낭비 아닌가?”
잉글랜드와 협상해 아일랜드의 리머릭 항에 전용 선착장을 건설한 후 이주를 원하는 아일랜드인들을 북미왕국으로 이주시키고 있었지만, 의외로 아일랜드인들은 바깥소문에 어두워 북미왕국으로의 이주를 미심쩍게 바라보았고, 그 때문에 아직까지는 이주민의 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정성국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행정청장이 빙긋 웃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북미왕국으로 이주한 아일랜드인들이 북미왕국에서의 생활에 무척 만족하면서, 그리고 연금 제도를 알게 되면서 앞다투어 고향에 남아 있는 가족, 친척,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고, 외무청에서는 최선을 다해 이 편지를 아일랜드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전달했다고 합니다. 듣자 하니 리머릭 항에는 북미왕국으로 떠난 이주민들의 편지를 고향에 전달해주며 먹고 사는 아일랜드인들이 꽤 많다고 합니다.”
“허. 그래?”
정성국이 처음 듣는 이야기에 놀란 표정을 짓자 행정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리고 이들 덕분에 북미왕국에 대한 정보가 점차 아일랜드에 퍼지면서 그동안 잉글랜드인들에 의해 핍박받고 굶주리던 아일랜드인들이 대거 리머릭 항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하더군요. 해서 최근엔 여객선 한 척으로는 슬슬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다보니...”
아일랜드인들이 리머릭 항으로 대거 몰려들었지만, 이들을 모두 태울 배가 부족해 대다수는 리머릭 항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으며, 이렇게 아일랜드인들이 리머릭 항으로 몰려들자 잉글랜드에서는 혹시 이들이 폭도로 변할까 봐 무척 우려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정도라는 설명에 정성국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허. 그 정도였다고? 그럼...”
“외무청에서도 이를 걱정해 수송선을 긴급 투입해 식량을 대거 리머릭 항으로 보낸 것을 압니다.”
“아. 일단 식량을 풀어 아일랜드인들을 진정시키겠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배가 부르면 사람이 조금은 풀어질 테니까요. 더불어 현지에 나가있는 관리들이 리머릭 항의 통제를 위해 용병도 일부 고용한 것으로 압니다. 그렇게 저희가 리머릭 항의 상황을 통제하려 하기에 잉글랜드에서도 일단 지켜 보고 있다고 하더군요.”
정성국은 행정청장의 설명에서 리머릭 항의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고 혀를 차며 명령을 내렸다.
“리머릭 항의 상황이 그렇다면야 마다할 이유가 없겠지. 알겠네. 바스크 지역으로 투입하던 여객선을 바로 리머릭 항으로 보내도록 하게. 그리고 부족하다면 여객선을 추가로 투입하도록 하고.”
이미 이주할만한 프랑스인들이 대부분 북미왕국으로 이주해 이주민이 줄어든 상황에서 아일랜드인들의 이주가 늘어난 것은 나쁠 것이 없었다.
더불어 오대호 인근에 프랑스인들, 정확히는 개신교도들인 위그노들이 대거 이주한 덕분에 종교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독실한 가톨릭교도들인 아일랜드인들을 최대한 많이 데려와 오대호 인근에 정착시킬 필요가 있었고.
또한, 현재는 잉글랜드가 이득 때문에 아일랜드인들의 이주를 허가했지만, 언제까지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런 만큼 잉글랜드가 이주를 제한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아일랜드인을 이주시킬 필요가 있었기에 정성국이 이렇게 명령하자 행정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