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1화
정성국이 한창 보고서를 살펴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집무실의 문을 두드린 후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전하.”
정성국은 고개를 들어 집무실로 들어오는 군사청장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으로 티테이블을 가리켰다.
“아. 왔나? 앉게.”
그리고 정성국은 냉장고로 가서 최근 왕실 숙수의 자신 작인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꺼내 군사청장에게 주었다.
“급한 일이 아니니 일단 먹고 이야기하지. 왕실 숙수가 최근 새로 개발한 아이스크림일세.”
“감사합니다. 전하.”
군사청장은 황송한 듯 정성국에게 아이스크림이 담긴 접시를 건네받은 후 갈색빛이 감도는 아이스크림을 숟가락으로 듬뿍 떠 입에 넣고는 빙그레 미소지었다.
“오! 초콜릿이 듬뿍 들어간 아이스크림이로군요.”
“그렇네. 달달하니 괜찮지? 뭐 치아 건강에는 썩 좋지 않겠지만...”
“아이스크림은 그걸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특히 여름에는요.”
“큭큭. 그렇긴 하지. 병사들도 무척 좋아한다면서?”
작년에 아이스크림을 개발한 이후 아이스크림의 인기가 늘어나자 이에 관한 북미신문의 기사를 접한 다른 지역의 백성들도 아이스크림을 맛보고 싶어 했다.
새한성이나 다른 도시들의 경우 아이스크림을 개발한 직후 제조법을 공개했기에 하나둘 아이스크림 전문점이 들어섰지만, 다른 지역의 경우는 상황이 달랐다.
아이스크림을 만들려면 전기가 필요했는데 아직 모든 북미왕국의 백성들이 전기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나마 예전부터 대대적으로 건설했던 수력 발전소들이 올 초부터 하나둘 완공되기 시작하면서 북미 동해안 지역까지 전기가 공급되기 시작했지만, 아직 미시시피 강 동쪽부터 애팔래치아 서쪽까지는 일부 도시에 건설된 화력 발전소를 제외하면 수력 발전소를 건설 중이라 이런 지역들에는 당연히 아이스크림 전문점 등이 들어설 수 없었다.
해서 이들은 전기가 들어오는 다른 지역을 무척 부러워하고 일부는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원하기도 했다.
이를 알게 된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가 왕실 상단에 명령을 내렸다.
해서 왕실 상단에서는 자체적으로 발전기를 돌려 아이스크림을 생산할 수 있는 비교적 규모가 큰 아이스크림 전문점을 아직 전기가 공급되지 못한 지역 곳곳에 건설해 아이스크림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더운 여름에 처음으로 시원하고도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맛본 북미왕국의 백성들은 그 맛에 감탄하면서, 다른 지역에 대한 부러움을 조금이나마 털어낼 수 있었다.
더불어 정성국은 병사들의 사기를 위해 군에도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 있는 설비와 원료를 제공했고.
덕분에 올해 여름부터는 병사들도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게 되었고 반응이 무척 열광적이라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기에 정성국이 이를 언급하자 군사청장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그럼요. 아이스크림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퍼주는 취사병들을 항상 닦달해서 취사병들은 무척 고생이지만 말입니다.”
“큭큭큭.”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보급한 것으로 병사들의 사기가 크게 오른 것을 생각하면 겨울에도 이를 대체할만한 후식을 개발하는 것이 무척 중요할 것 같습니다.”
처음 군사청장은 굳이 병사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보급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생각보다 사기 증진 효과가 컸기에 이런 기호품을 계속 보급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자 정성국은 처음 자신의 명령에 의문을 보였던 군사청장을 떠올리고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겨울에는 커피에 어울리는 달콤한 후식을 제공하면 되지 않을까 싶네. 아니면 유럽의 귀족들이 먹는다는 카카오 음료나. 다만 후식까지 취사병이 만들기는 어려울 테니 왕실 상단에 이야기해두겠네. 왕실 상단에서 후식을 대량으로 생산해 군에 보급하면 되겠지.”
“그거 괜찮군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병사들의 사기를 위한 기호품에 관한 대화를 나누며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모두 해치운 정성국은 군사청장을 부른 용건을 꺼냈다.
“그보다 자네도 조선에서 탐사대를 추가로 파병해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은 들었겠지?”
“아. 외무청장에게 들었습니다. 해서 이미 준비 중이고요.”
“그런가. 그 부분은 자네에게 일임하지. 헌데 슬슬 조선 지원군의 사령관을 정해야 할 것 같은데?”
그 말에 군사청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조선 지원군의 사령관은 아이누 경비대장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아이누 탐사대장이 저 시베리아에 가 있는 만큼, 아이누 경비대장 외엔 조선 지원군의 사령관 자리를 맡을 만한 지휘관이 없잖습니까?”
북미왕국 육군의 계급 중 가장 높은 계급이 대장이었기에 당연히 조선 지원군 사령관 역시 아이누 경비대장에게 맡기는 것이 당연한 데 뭘 논의할 것이 있느냐는 군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매끈한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흐음...역시 그러는 것이 나으려나?”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군사청장이 조금 놀란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어? 설마 전하께서는 다른 대장급 지휘관을 파견하실 생각이셨습니까?”
그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다른 대장급 지휘관이라고 해봐야 호위대장과 탐사대장, 경비대장뿐이었는데 이들은 함부로 자리를 비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북미왕국의 육군 가운데 고급 지휘관이 대장만은 아니었다.
“총 조장 정도만 해도 고급 지휘관이잖나. 오히려 총 조장은 일선에서 병사를 지휘하는 만큼, 총 조장 중에서 한 명을 조선 파병 사령관으로 임명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었네. 그리고 조선에 파병하는 만큼 조선의 지리와 사정을 잘 아는 조선 출신을 선임하는 것도 괜찮아 보이기도 했고.”
정성국의 대답에 군사청장은 조금 회의적인 얼굴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으음...총 조장 중에 과연 북방의 지리를 잘 아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군요.”
“아. 그것도 그런가...?”
생각해보니 조선 출신이라고 조선 지리에 해박한 것은 아니었다.
조선의 농민들은 살기 바빠 밤늦게까지 땅을 일구고 작물을 키워야 했으니 고향의 지리가 아니라면 오히려 주변 지리에 어두울 것이 분명했고.
지금 총 조장들은 대부분 초창기에 북미왕국으로 이주해 군사청에 들어간 인물들이다 보니 북방, 정확히는 함경도 출신이 과연 있을까 싶었달까.
해서 정성국이 군사청장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군사청장이 덧붙였다.
“그리고 조선에 파병할 병력이 1만 1천 명에 달하는데...과연 총 조장급이 이들을 제대로 지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요.”
“음...”
북미 대륙에 주둔하는 탐사대나 경비대의 경우 주로 1천 명에서 3천 명 단위로 주둔해 있었기에 총 조장 정도만 되어도 조선 지원군 사령관 자리를 충분히 맡을 수 있다고 생각한 정성국이었지만, 군사청장의 말을 듣고 보니 많아 봐야 3천 명 정도를 지휘하던 총 조장에게 거의 4배에 해당하는 조선 지원군의 사령관 자리를 맡기는 것은 조금 위험할 결정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한 정성국이었다.
“또한, 전하께서도 아시다시피 현 아이누 경비대장은 16년 전 아이누 독립 전쟁을 경험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물론 본국의 총 조장들도 경험이 없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만 대규모 전투를 치른 적은 없으니...”
물론 총 조장들도 예전 프랑스와의 전쟁에 참여하긴 했지만, 육군이 참여한 전투는 기껏해야 퀘벡 전투였는데 이건 전투라고 붙이기도 민망한 전투였으니 총 조장들의 대규모 전투 경험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그런 만큼 그나마 아이누 독립 전쟁을 경험한 아이누 경비대장을 조선 지원군의 사령관으로 임명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군사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생각해보면 아이누인들도 북미왕국어에 능숙하니 조선인들과의 의사소통은 크게 문제없을 테고 지리 문제야 조선에서 길잡이를 붙여주겠지.’
“그것도 그렇군. 알겠네. 그럼 아이누 경비대장을 조선 지원군 사령관으로 임명하도록 하지.”
그 말에 군사청장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다만 전하의 말씀도 일리는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아이누 탐사대나 이이누 경비대의 총조장 가운데 조선 출신이 2명가량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들이 함경도 출신은 아닌 것으로 기억하는지라 총조장 가운데 함경도 출신이 있다면 조선 지원군 사령관을 보좌하도록 조선에 파견하겠습니다.”
그 말에 정성국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아. 꼭 함경도 출신만 보내지 말고 다른 친구들도 적당히 파견하는 것이 어떤가.”
“음...육군 지휘관들의 경험을 쌓기 위해서 말입니까?”
“그렇지. 해군과는 달리 육군의 경우, 특히 본국의 지휘관들은 대규모 전투에 참여한 경험이 거의 없지 않나.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전쟁을 경험할 일이 거의 없을 테고.”
지휘관의 육성은 무척 중요한 문제였다.
아무리 병사들의 훈련과 장비에 심혈을 기울이더라도 원균 같은 지휘관에게 병력을 쥐여준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 때문에 군사대학을 설립해 체계적으로 지휘관을 육성하고는 있었지만, 실전 경험이 적은 것이 흠이었고.
특히나 북미왕국이 북미 대륙을 완벽히 장악한 이상 해군은 몰라도 육군의 경우 실전을 경험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 분명했기에 이번 전투를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나아 보였다.
이런 정성국의 의견에 군사청장 역시 동의했다.
“흠...그건 그렇지요.”
“그리고 검차나 기관총 같은 신무기도 투입될 예정이니만큼 미래를 위해서라도 싹수가 보이는 괜찮은 친구들을 좀 많이 보내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군사청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이 덧붙였다.
“그리고...외무청과 의논해 유럽에 지휘관을 파견하는 것도 생각해보게.”
정성국의 이야기에 군사청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유럽에...말입니까?”
“그래. 유럽은 대규모 전투가 많이 벌어지지 않나. 그 때문에 유럽의 전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그러니 유럽의 전장에 지휘관들을 파견해 대규모 전투가 어떤 형식으로 흘러가는지 관찰한다면 배울 것이 많을 것 같은데? 그리고 전투의 진행 상황을 면밀하게 파악해 연구하면 육군 지휘관들의 전술적인 소양도 기를 수 있을 것 같고.”
정성국이 전생의 관전무관을 떠올리고 이렇게 이야기하자 군사청장은 조금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무척 괜찮은 방법 같긴 합니다만...파견된 지휘관들이 위험하진 않겠습니까? 전장에 보내는 것인데요.”
“물론 각국에 통보하고 허락을 받아 내야지.”
전쟁을 치르는 각국에 미리 양해를 구한다면, 전쟁을 지휘하는 각국의 지휘관들도 관전무관의 존재를 알게 될 테고, 이들은 북미왕국과의 외교 관계를 위해 북미왕국의 지휘관들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지는 않을 테니 조금은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에 군사청장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흐음...나쁘지 않군요. 각국은 신식 소총 수입 때문이라도 저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으니까요. 물론 눈먼 총알이나 포탄에 맞을 확률이 없지야 않겠습니다만...”
그건 어쩔 도리가 없었기에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안전을 위해 최대한 후방에서 관찰하고, 전쟁터에서도 우리가 파견한 지휘관들을 알아볼 수 있도록 화려한 정복을 입는다면 그나마 안전할 것 같은데?”
“흐음...확실히 그렇겠군요. 알겠습니다. 일단 외무청에 협조를 구하겠습니다.”
“그리고 특수군의 창설을 준비하도록 하게.”
뜬금없는 정성국의 말에 군사청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예? 특수군이요?”
“그래. 원래는 바로 공군을 창설할까 싶었는데...조금은 시기상조인 것 같기도 하고 검차도 개발된 터라 차라리 특수군을 만드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말이네.”
처음에는 특수군을 창설하라길래 육군, 해군과 동급이라고 생각해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던 군사청장은 정성국의 이야기에 특수군의 성격을 짐작하고 탄성을 질렀다.
“아. 주로 신무기를 운용하는 군입니까?”
“그렇지. 일단 신무기를 특수군에 배치해 운용하면서 장비를 개량하는 데 도움을 주고 전투 교리를 연구하는 군이라고 해야 할까?”
“확실히...신무기를 전장에서 어떻게 운용해야 할지 연구할 필요가 있긴 하지요. 현재는 하얀 수리급 비행기나 검차들의 경우 연구청 소속이다 보니 그 부분을 연구청에게 맡긴 터라 군사청 소속으로 바꿀 필요가 있긴 했고요.”
“그래. 특히 검차의 경우는 곧 조선에 투입될 테니 소속을 바꾸는 것이 나아.”
이에 군사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특수군을 창설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