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8화
정성국은 행정청장의 보고에 무척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옛 아카디아 지역의 항구 개발이 끝났다고? 벌써?”
북미왕국에서 남아도는 식량을 유럽에 수출하고자 비교적 유럽에 가까운 옛 아카디아 지역에 새로운 항구를 건설하기로 한 지 반년 만에 항구 개발을 완료했다고 보고하니 정성국은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어 반문하자 행정청장이 살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예. 믹맥 족뿐만 아니라 주변 다른 원주민 부족과 옛 아카디아 지역에 살던 프랑스인들까지 적극적으로 협조해준 탓에 인력이 충분한 편이었거든요. 아. 물론 기초 공사와 선착장, 몇 개의 창고, 외국인 거주 구역 정도만 만든 셈이지 항구 개발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그 말에 상황을 이해한 정성국이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그야 그렇겠지. 옛 아카디아 지역에 건설한 항구는 대유럽 무역 항구로 개발 중인데 고작 반년 만에 가능할 리가 있나. 거기에 누벨 프랑스 지역과 이로쿼이 지역에서 나오는 식량을 대부분 보관할 창고까지 건설하려면 1, 2년 가지곤 솔직히 안될 것 같은데?”
새롭게 건설된 항구는 북미 북동지역의 남는 식량을 보관하고 유럽에 판매할 예정인 만큼 제대로 된 창고를 수없이 건설해야 하는 만큼 항구 개발을 완전히 완료하려면 못해도 10년은 넘게 걸리지 않을까 생각한 정성국이 이를 언급하자 행정청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긴 합니다만...뭐 계속해서 항구를 증축시켜나갈 생각이니까요. 아무튼, 외국인 선착장과 외국인 거주 구역까지 만들었으니 슬슬 항구를 개방하는 것도 괜찮아 보입니다.”
항구를 완전히 개발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그리고 일단 외국인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은 건설해둔 만큼 항구를 개방하자는 행정청장의 이야기에 정성국은 잠시 고민했지만, 어차피 식량은 넘쳐나는 판국이라 이 식량을 처리하기 곤란해 죄다 주정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보다야 유럽에 팔아 식량 가격을 안정화하는 것이 몇 배는 낫다는 판단에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알겠네. 조용한 곰에게 이야기해 각국 대사들과 협상해보라고 하지. 아. 근데 이 항구의 이름은 뭐로 정했나? 역시 믹맥 항?”
새로 건설되는 마을들은 어지간하면 주변 원주민 부족의 이름을 따서 짓는 만큼 정성국이 묻자 행정청장이 고개를 저었다.
“처음엔 믹맥 족의 이름을 붙이려 했습니다만...이 항구를 건설하는데 다른 부족들도 한 손 보탰기에 다른 부족들을 생각해 믹맥 족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포기했습니다.”
“그럼?”
“이번에 건설한 항구는 대유럽 무역 항구인 만큼 유럽인들에게 익숙하고 이름만 들어도 유럽인들이 항구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는 아카디아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습니다.”
“아카디아 항이라고? 옛 아카디아 지역의 이름을 붙인 건가?”
“그렇습니다.”
행정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유럽인들을 생각하면 유럽인들에게 익숙한 이름을 붙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아카디아라는 지명은 이 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했던 프랑스가 붙인 이름이었기에 원주민들이 불쾌해하지는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거 프랑스가 붙인 이름인데 원주민들은 불만 없다던가?”
이에 행정청장은 이미 다 확인했기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믹맥 족이나 다른 원주민 부족들은 항구의 명칭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더군요. 다른 지역과는 달리 북미 동해안 지역의 경우 대부분은 이름을 바꾸지 않고 유럽인들이 붙인 이름을 그대로 쓰다 보니 익숙한 모양입니다.”
“아...”
귀차니즘과 작명의 어려움, 그리고 북미왕국에 남은 유럽인들의 안정을 위해 북미 동해안 지역의 이름은 대부분 유럽인들이 붙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터라 다른 지역의 원주민들과는 달리 북미 동해안 지역의 원주민들은 유럽의 지명에도 익숙해 별다른 불만이 없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이 묘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행정청장이 덧붙였다.
“그리고 옛 아카디아 지역은 누벨 프랑스 지역에 통합되어 공식적으로는 아카디아라는 이름이 사라진 터라 프랑스인들은 이 이름을 반겼고요. 덕분에 아카디아로 결정되었습니다.”
현지 주민들이 그 이름에 만족한다고 하니 굳이 이름을 바꿀 필요는 없겠다 싶은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야 뭐...알겠네.”
* * *
“오오! 새로운 항구를 개방하신다고요?”
에스파냐, 잉글랜드, 네덜란드 대사들은 조용한 곰의 초청으로 외무청의 접견실에 방문했고, 한창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다가 조용한 곰이 대사들을 초청한 이유를 밝히자 대사들은 반색하며 조용한 곰을 바라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북미왕국과의 교역이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었지만, 북미왕국에선 새진주 외의 항구는 개방하지 않아 여러모로 불편했던 탓이다.
해서 이들은 지속해서 새로운 항구, 특히 유럽에 가까운 북미 동해안 지역의 항구를 개방해달라고 요청했었으니까.
물론 지금까지 북미왕국은 북미 동해안 지역의 안정을 이유로 이 요청을 거부했고, 북미왕국을 화나게 해봐야 좋을 것이 없는 유럽 각국은 아쉬워하고 있었고.
헌데 갑자기 북미왕국에서 새로운 항구를 개방하겠다고 하니 대사들은 공적이 생기는 만큼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대사들의 반응에 조용한 곰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어떤 항구를 개방하실 겁니까?”
대사들이 지금까지 개방하길 원하는 항구는 보스턴 항이었고, 북미왕국에서도 이를 알고 있는 만큼 보스턴 항을 개방하지 않을까 싶어 잉글랜드 대사가 잔뜩 기대한 표정으로 질문하자 조용한 곰이 씩 웃으며 답했다.
“아카디아 항을 개방할 생각입니다.”
“아카디아 항이요?”
대사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혹시 아는 항구냐고 눈으로 질문했고, 다들 모르는 눈치이자 에스파냐 대사가 질문했다.
“아카디아 항이라...처음 듣는 항구 이름인데 혹시 옛 아카디아 지역에 있는 항구입니까?”
“그렇습니다. 최근 새롭게 개발한 항구이지요.”
“호오...그렇습니까?”
이들이 보스턴 항을 개방하길 원했던 이유는 유럽에 가까운 커다란 항구 도시라는 점 때문이었으니, 옛 아카디아 지역에 위치한 항구라면 오히려 위치적으로는 보스턴보다 나았기에 대사들은 묘하게 만족한 눈치였다.
“옛 아카디아 지역에 있는 항구라면 위치는 좋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새진주는 다 좋은데 워낙 멀어서...”
“예. 아카디아 항이 옛 아카디아 지역에 있다면 확실히 새진주보다는 방문하기 편할 것 같군요.”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대사들은 문득 한 가지 의문이 생겨 조용한 곰에게 질문했다.
“아마 아카디아 항에서 파는 교역품 가격은 새진주보터 비싸겠지요?”
그들이 알기로 새진주에서 구할 수 있는 대다수의 교역품들은 결국 기차로 새진주까지 운반되는 터라 이 교역품들을 다시 아카디아 항으로 운반하는데 들어가는 비용까지 생각하면 아카디아 항에서의 교역품 가격은 확실히 비쌀 것 같아 질문하자 조용한 곰이 대답했다.
“아. 아카디아 항에서는 오로지 식량만을 판매할 겁니다.”
“예?”
“식량만요? 다른 교역품들은?”
그 말에 놀란 대사들이 급히 질문을 던지자 조용한 곰은 묘하게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다른 교역품들은 아카디아 항에서 판매하지 않을 겁니다. 이전처럼 새진주에서만 판매할 생각이고요.”
“아...”
이에 다른 대사들은 조금 아쉬워하긴 했지만 최근 유럽의 식량 가격이 폭등한 것을 떠올리고, 애써 아쉬움을 털어냈다.
“뭐 다른 교역품을 사지 못한다는 것은 조금 아쉽긴 합니다만...북미왕국의 식량 가격이 싼 편이라 이 사실이 알려지면 아국의 상인들이 무척 좋아하겠군요.”
“예. 최근 식량 가격이 꽤 올랐으니까요. 그리고 새진주에 비하면 아카디아 항은 오가는데 시간이 덜 소요되는 만큼 더 많은 식량을 거래할 수 있으니 식량 가격이 조금은 안정되겠군요.”
“확실히...최근엔 흉년이 잦아져서 조금 걱정이었는데 다행입니다.”
그때 잉글랜드 대사가 접견실을 방문했을 때부터 묘하게 시선을 끌던 접견실 한쪽에 놓인 거대한 나팔 모양의 금속관이 붙어있는 상자를 보고 질문을 던졌다.
“헌데 저건 뭡니까? 못 보던 물건 같은데?”
“아. 저건 축음기라는 기물입니다.”
“축...음기요?”
생소한 이름에 고개를 갸웃하는 대사들에게 조용한 곰이 덧붙였다.
“예. 일종의 소리를 저장하는 장치라고 해야 할까요?”
“소리를 저장한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는 대사들이었고, 조용한 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날 설명해봐야 대사들이 축음기의 원리를 이해할 것 같지도 않았고, 어차피 대사들을 초청하는 접견실에 아직 판매도 하지 않은 축음기를 가져다 놓은 것은 대사들에게 축음기를 알려 비싸게 팔아먹기 위함이었으니 축음기를 작동시켜 대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줄 생각으로 말이다.
“뭐 이렇게 설명해봐야 이해하기 어려우실테니...”
그러면서 조용한 곰은 축음기에 다가가 개폐기를 작동했고.
동시에 원통이 회전하면서 거대한 나팔에서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조용한 곰이 축음기를 조작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대사들은 기겁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헉!”
“이게 무슨?!”
“지금 저 장치에서 소리가 흘러나오는 겁니까?”
조용한 곰은 그런 대사들을 보고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꽤 신기하지요?”
“허...”
대사들은 멍한 표정으로 피아노뿐만 아니라 각종 악기 소리가 흘러나오는 나팔 모양의 금속관을 바라보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 북미왕국의 기술이 대단하긴 하지만 소리를 저장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싶어서.
“아니...어떻게 소리를 저장할 수가 있는 겁니까?”
“글쎄요. 연구청장이 열심히 설명하긴 했는데 딱히 이해가 가지 않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서 말입니다.”
조용한 곰의 대답에 대사들은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북미왕국이 새로운 발명품의 보안에 신경 쓰는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으니.
해서 다른 대사들은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오는 축음기를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에스파냐 대사가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요청했다.
“조금...자세히 살펴볼 수 있겠습니까?”
“아. 그러시지요.”
“어? 괜찮으십니까?”
조용한 곰이 흔쾌히 승낙하자 에스파냐 대사뿐만 아니라 다른 대사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그런 대사들을 보고 조용한 곰이 슬쩍 미소지으며 답했다.
“아. 조만간 판매할 제품이니 상관없습니다.”
“아...”
어차피 판매할 제품이고, 너희가 어떻게든 구해서 뜯어 볼 거라는 것쯤은 짐작하니 상관 없다는 뜻이었기에 대사들은 조금 민망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축음기로 몰려들었고.
“으음...이것도 전기가 필요한 모양이군요.”
“아...정말 아쉽군요.”
“예. 대사관은 전기가 들어오니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이건 본국에서도 잘 팔릴 것 같은데...”
이 축음기라는 기계로 연주자를 대신할 수 있다면, 음악가나 연주자들을 고용하기 힘든 하급 귀족들은 앞다투어 이 축음기를 구하려 할 것은 뻔했고, 이를 이용하면 막대한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네덜란드 대사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말하자 조용한 곰이 끼어들었다.
“제가 듣기로 전기가 필요 없는 축음기도 있다고 합니다.”
“어?! 그렇습니까?”
“전기가 없이 음악이 나온다고요?”
다른 대사들도 눈을 빛내며 조용한 곰에게 질문하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다만 한 곡 들을 때마다 태엽을 감아야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아...시계처럼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그 말에 대사들은 자신과 연줄이 있는 상인들에게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어느덧 멈춰버린 축음기를 보고 중얼거렸다.
“대체 무슨 원리인지 보고도 모르겠군요.”
“예. 그러게 말입니다.”
이에 조용한 곰이 축음기 중앙 부근의 원통을 가리키며 말했다.
“연구청장이 설명하길 저 회전하는 원통에 소리가 기록되어 있답니다.”
“이 원통이 말입니까?”
“예. 해서 이 원통을 교체하면...”
조용한 곰이 축음기로 다가와 연구청장에게 배운 대로 원통을 교체하고 다시 축음기를 작동하자, 이전과는 다른 연주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
“이렇게 다른 곡이 나오게 되지요.”
“맙소사...”
잉글랜드 대사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을 때 네덜란드 대사가 눈을 강하게 빛내며 질문했다.
“이거 판매할 제품이라고 했지요? 언제 판매하는 겁니까?”
“축음기를 개발한 지는 조금 되었고 축음기를 생산할 공방을 짓고 있다고 들었으니...뭐 조만간 북미신문에 기사나 광고가 나가겠지요.”
“그럼 축음기뿐만 아니라 이 원통도 따로 파는 겁니까?”
여러 홈이 파여있는 원통을 가리키며 묻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뭐 자세한 사항은 듣지 못했지만 아마 그렇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아름다운 곡이라 하더라도 한 곡만 계속 듣게 되면 조금 질리잖습니까.”
그 대답에 확실히 돈이 되겠다 싶은 네덜란드 대사는 잔뜩 기대 섞인 얼굴로 중얼거렸다.
“빨리 판매했으면 좋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