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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507화 (507/850)

507화

표도르 3세는 갑작스럽게 알현을 청한 총신인 외무장관을 만나기 위해 알현실로 향했고.

창백한 얼굴의 외무장관을 보고 불길한 예감이 든 표도르 3세는 급히 입을 열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 알현을 청한 건가.”

“그게...”

하지만 외무장관은 좀처럼 말을 잇지 못했고, 그런 외무장관을 보고 표도르 3세는 점차 굳은 얼굴로 외무장관을 재촉했고 외무장관은 어렵게 입을 뗐다.

“이르쿠츠크 요새가 함락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

그 말에 표도르 3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뭐?! 이르쿠츠크 요새가 함락?!”

연합이 성립하는데 일조한 외무장관은 즉각 머리를 조아렸다.

“송구하옵니다. 차르시여.”

“하아...”

표도르 3세는 상아 옥좌에 쓰러지듯 앉아 머리를 부여잡았고 외무장관은 잠시 표도르 3세의 눈치를 보다가 이왕 보고한 김에 마저 보고할 생각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르쿠츠크 북쪽의 거점인 키렌스크가 함락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르쿠츠크 요새 사령관이 인근의 거점 마을에 지원병력을 요청한 모양입니다. 해서 이르쿠츠크 요새 북서쪽에 자리한 브라츠크에서도 지원병력을 보냈는데...그 후로 지원병력이나 이르쿠츠크 요새와의 소식이 완전히 끊겼답니다. 해서 브라츠크에서는 혹시나 해 일부 병사들을 이르쿠츠크로 다시 보냈지만 돌아오는 이는 없었고요.”

우려했던 대로 시베리아 부족 연합이 남하했다는 보고에 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표도르 3세는 외무장관이 자세한 사정을 보고하기 시작하지 귀를 기울이던 표도르 3세는 즉각 외무장관을 재촉했다.

“그래서?”

“그래서 주변 원주민들을 고용해 정찰을 맡겼고 원주민들이 돌아와 이야기하길, 이르쿠츠크 요새에는 못 보던 깃발이 걸려 있었고, 이르쿠츠크 요새의 병사들이나 주민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생소한 복식을 한 사람들이 가득했답니다. 더불어 부랴트 족도 상당수 존재했다고 합니다.”

하얀 바탕에 화려한 뿔이 인상적인 순록의 얼굴이 그려진 깃발이 러시아 차르국의 국기 대신 걸려 있었다는 이야기에 인상을 찌푸리던 표도르 3세는 외무장관이 부랴트 족을 거론하자 고개를 갸웃했다.

“부랴트 족?”

“이르쿠츠크 요새 인근의 원주민들입니다.”

“그 소리는 시베리아 부족 연합이 이미 이르쿠츠크 요새 주변의 원주민들도 회유했다는 소린가?”

“...그런 것 같습니다.”

“후우...”

물론 원주민들이 의리를 지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손쉽게 연합의 편에 붙었다니 속이 쓰렸던 표도르 3세는 문득 이르쿠츠크 요새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떠올리고 급히 질문을 던졌다.

“이르쿠츠크 요새가 함락되었다면 이르쿠츠크 요새 동쪽 지역의 거점들과도 연락이 모두 끊긴 건가?”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젠장...”

이르쿠츠크 요새가 연합에 넘어간 이상 이르쿠츠크 요새 동쪽 지역인 바이칼 호 인근부터 한창 청나라와 국경분쟁 중이었던 아무르 강 일대까지 연결이 끊긴 셈이고, 이르쿠츠크 요새를 탈환하지 못한다면 자연스레 이 지역의 지배권은 잃어버리는 셈이라 낭패스럽다는 표정을 지은 표도르 3세였다.

더불어 본국과의 연결이 끊긴 이르쿠츠크 요새 동쪽 거점의 러시아 차르국 병사들이 어떻게든 이르쿠츠크 요새를 탈환하기 위해 연합을 공격하긴 하겠지만, 북미왕국의 무기로 무장하고 이미 주변의 부족까지 포섭한 연합이 점령하고 있는 이르쿠츠크 요새를 탈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였기에 표도르 3세의 안색은 더욱 안 좋아질 수밖에 없었고.

그때 외무장관이 표도르 3세의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더욱 문제인 것은 시베리아 부족 연합이 서진하면 이를 막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르쿠츠크 요새를 함락시킨 시베리아 부족 연합의 전력이라면...다른 요새들도 충분히 함락시킬 수 있을 테니까요.”

이르쿠츠크 요새를 탈환하기는커녕 연합의 군세를 막지 못해 더 많은 시베리아 지역을 잃을 수 있다는 외무장관의 이야기에 열이 오른 표도르 3세가 소리쳤다.

“런던에 가서 북미왕국과 협상 중인 외교관은 대체 뭘 하는 건가! 벌써 반년이 지났는데!”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북미왕국과 하루라도 빨리 협상을 끝내고 조약을 체결하길 원했는데 성과가 없었기에 표도르 3세가 화를 내자 외무장관은 움찔하며 변명했다.

“그게...저들이 은근히 협상을 질질 끄는 터라...”

“그렇다고 저들에게 끌려가면 어쩌자는 건가! 협상하겠다면서 시간을 질질 끄는 사이 연합은 계속해서 서쪽으로 영역을 넓힐 텐데!”

표도르 3세의 호통에 외무장관이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아...알겠습니다. 다시 런던에 사람을 보내 어떻게든 영토 협상을 진행하라고 독촉하겠습니다.”

외무장관의 말에 조금 흥분을 가라앉힌 표도르 3세가 덧붙였다.

“그리고 협상과는 별개로 시베리아에 병력을 파견해야겠어.”

“하지만...”

외무장관은 무어라 이야기하려 할 때 표도르 3세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 물론 나도 현 상황에서 시베리아로 많은 병력을 파견하기 어렵다는 것은 잘 알고 있네. 다만 연합이 확장을 멈출 거라는 보장도 없으니 최소한의 병력이라도 지원해 연합의 확장을 최대한 지연시켜야지.”

표도르 3세가 즉위했을 당시 오스만 제국이 폴란드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우크라이나 중부인 포돌리아까지 영역을 넓혔고, 표도르 3세의 아버지인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시절에 폴란드를 공격하고 협상을 통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을 얻게 된 러시아 차르국은 우크라이나의 지배권을 두고 오스만 제국과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만큼 시베리아 문제는 외교적인 협상으로 해결하려 했던 표도르 3세였지만, 이대로는 시베리아 지역 전체를 잃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최소한의 병력을 파견하겠다고 결정했고.

이에 외무장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으음...보급 문제도 있고 해서 잘해봐야 3천 명 정도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 정도면 충분하지. 어디 보자...연합의 병력을 막을 만한 요새가...”

표도르 3세가 시베리아 지도를 살피기 시작하자 외무장관이 슬쩍 예니세이 강을 가리키며 말했다.

“3천 명의 지원병력까지 고려해보면 크라스니야르 요새 외엔 없습니다.”

이르쿠츠크 요새와 가장 가까운 거점 요새는 크라스니야르 요새가 유일했기에 표도르 3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확실히 그렇군. 허면 곧바로 크라스니야르 요새로 병력을 파견하도록 하게, 그리고 요새 사령관에게는 만약 연합이 크라스니야르 요새까지 진격한다면 어떻게든 막으라고 전하고.”

“알겠습니다. 차르시여.”

* * *

‘콰콰쾅!’

포탄이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러시아 차르국의 작은 거점 마을인 브라츠크 외곽에 방어시설인 나무 울타리가 박살 나면서 파편이 흩날리는 모습을 먼발치서 지켜보던 아이누 탐사대장의 귓가에 탐사대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장님! 거점이 무너집니다!”

“전투는 끝이겠군.”

아이누 탐사대장이 덤덤하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부랴트 족의 대족장인 바하르는 울타리가 부서지는 광경을 보고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아이누 탐사대장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허어...이건...이건 정말 놀랍군요. 왜 그 오만한 이르쿠츠크 요새의 러시아인들이 순순히 항복했나 했더니...”

북미왕국의 이동형 60mm 화포의 위력에 놀란 모습이라 아이누 탐사대장은 씩 웃었고, 그런 아이누 탐사대장의 반응을 눈치채지 못한 바하르는 박살 난 울타리를 보고 우왕좌왕하는 러시아인들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중얼거렸다.

“저것만 있으면 러시아 차르국을 상대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겠군요.”

“그렇지요.”

그때 탐사대원이 소리쳤다.

“대장님! 백기가 올라왔습니다!”

이에 아이누 탐사대장은 시선을 돌려 거점 마을에서 휘날리는 백기를 보고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명령을 내렸다.

“확인했네. 그럼 자네가 일부 병사를 데리고 저 거점을 점령하도록 하게. 무장은 모두 해제시키고.”

“알겠습니다.”

아이누 탐사대장이 연합의 일부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동안 이동형 60mm 화포에 시선을 떼지 못하던 바하르는 아이누 탐사대장이 명령을 모두 내리자 즉각 질문을 던졌다.

“전에 이야기하셨을 때 연합은 결국 고향으로 철수할 거라고 하셨지요?”

이에 아이누 탐사대장이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연합이 철수하는 것은 아니지요. 부랴트 족도 이제 연합의 일원이잖습니까.”

“아. 그건...”

바하르가 당황해 무어라 이야기하려 할 때 아이누 탐사대장이 빙긋 웃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예.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저 병사들은 러시아 차르국을 이 시베리아 지역에서 몰아낸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이 지역들은 결국 부랴트 족을 비롯해 연합에 합류한 이 지역 부족들이 지키게 될 테지요.”

“허면...저희도 저 화포를 갖게 되는 겁니까?”

바하르가 흥분과 기대감이 섞인 목소리로 질문하자 아이누 탐사대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흠...그 부분은 모르겠습니다. 본국의 결정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다만 지금 저 화포도 엄밀히 따지면 연합의 소유는 아니라...아마 당장은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습니까?”

바하르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기에 아이누 탐사대장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방금 보셨겠지만, 포탄의 위력도 대단하고 빠르게 장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화포가 다른 곳으로 유출되어 복제되기라도 하면 여러모로 곤란해 본국에선 화포를 철저히 관리하고 있어서요.”

이에 바하르는 아쉬움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아쉽긴 하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결정이군요. 다만 러시아 차르국이나 중가르, 다른 몽골 부족들을 생각하면 저희도 화포가 필요할 것 같은데...”

“아마 북미왕국에서 동맹인 연합과 협상해 화포를 대여해주고 화포를 운용하는 병력까지 파견하거나...연합 자체적으로 화포를 만들어 배치할 테니 그 부분은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 연합에서도 화포를 만든다고요?”

이에 바하르는 눈을 크게 뜨고 아이누 탐사대장을 바라보았고 아이누 탐사대장은 바하르가 무슨 오해를 한 것인지 짐작하고 착각을 정정해주었다.

“아. 저런 화포는 아니고...러시아 차르국이 사용하는 화포 있잖습니까.”

“아...그 쇠구슬을 날리는 화포 말이군요.”

“예. 그걸 전장식 화포라고 하는데 러시아 차르국의 포로 중 전장식 화포에 지식이 있는 자들은 따로 빼서 전장식 화포를 개발 중입니다. 그리고 전장식 화포가 개발된다면 전방인 이곳에 먼저 배치될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연합에서도 자체적으로 화약 무기를 생산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았던 북미왕국은 포로가 된 러시아인들 가운데 이에 관련된 기술이 있는 자들을 따로 빼서 무기를 개발하게 했다.

어차피 북미왕국은 머스킷이나 전장식 화포를 생산할 생각이 없기도 했고 이를 기반으로 야금 기술을 발전시킬 수도 있었으니.

해서 현재 기술자들이 레나 요새에서 전장식 화포를 만드는 중이며 이렇게 생산된 전장식 화포는 이르쿠츠크에 우선 배치될 거라는 설명에 바하르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으음...알겠습니다.”

그때 브라츠크로 입성했던 탐사대원이 마을에서 나와 아이누 탐사대장에게 보고했다.

“대장님. 마을을 접수했습니다.”

“그래? 그럼...뭐 오늘은 쉬자고. 내일은 아침부터 이동해야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아이누 탐사대장의 명령을 병사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탐사대원이 물러가자 바하르가 아이누 탐사대장을 보고 질문했다.

“내일 바로 이동하실 생각이십니까?”

“예. 그래야죠. 갈 길이 머니까요.”

이르쿠츠크 요새를 점령한 아이누 탐사대장은 즉각 레나 요새로 연락했고, 이르쿠츠크 요새 사령관의 항복으로 다른 거점 요새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알게 된 연합의 족장들은 러시아 차르국의 본국에서 추가로 병력을 지원하기 전에 최대한 러시아 차르국의 거점 요새를 점령하길 원한다는 뜻을 아이누 탐사대장에게 전했다.

이에 아이누 탐사대장은 잠시 고민했지만, 다른 거점 요새는 몰라도 이르쿠츠크 요새에서 배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크라스니야르 요새는 점령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원정대의 절반을 이끌고 배에 보급 물자를 싣고 안가라 강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고.

중간의 거점 마을인 브라츠크 마을을 함락했으니 이제 크라스니야르 요새로 이동해야 했고, 강을 따라 이동해야 하는 터라 이동 거리가 더욱 늘어난 만큼 하루라도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아이누 탐사대장의 말에 바하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허면...저도 함께 이동해도 되겠습니까?”

“예? 하지만 대족장께서는 이곳을 관리하셔야지요?”

바하르와 부랴트 족이 원정대를 따라 함께 이동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중간의 거점 마을을 관리하기 위해 원정대를 따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기에 이를 부랴트 족에서 대신 맡아주기로 했던 것이다.

헌데 바하르가 원정대를 따라 이동한다고 하니 아이누 탐사대장이 당황해 바하르를 바라보자 바하르가 말했다.

“큰 마을도 아니고 이런 작은 거점 마을을 관리하는데 제가 꼭 있을 이유는 없잖습니까. 이 정도면 제 셋째 아들에게 잠시 맡기면 될 겁니다.”

“하지만...”

“크라스니야르 요새는 이르쿠츠크 요새에 버금가는 러시아 차르국의 거점 요새라고 하니...연합의 병력이 크라스니야르 요새를 함락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그 말에 아이누 탐사대장은 잠시 고민했지만, 바하르에게 연합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도 나쁠 것은 없겠다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알겠습니다. 그럼 함께 가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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