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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504화 (504/850)

504화

정성국은 항상 연구청에만 머물던 박기동이 오랜만에 자신의 집무실을 방문하자 읽고 있던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그를 반겼다.

“웬일이냐? 네가 여기까지 다 오고.”

“아. 몇 가지 보고할 게 있어서 말이죠.”

“보고?”

“예. 비행기에 관련된 보고라 원래는 제가 아니라 하얀 수리가 직접 보고하는 것이 맞긴 한데...하얀 수리는 최근 연구로 무척 바쁜 터라 보고하기 위해 새한성까지 방문하는 시간도 아까운 모양이더라고요. 해서 저한테 떠넘겼고...덕분에 이렇게 제가 온 거죠.”

박기동이 투덜거리며 이야기하자 정성국은 이전에 항공기 연구소의 비행장을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피식 웃었다.

“보안과 안전 때문에 항공기 연구소를 외진 곳에 건설했더니 이런 부분에서 조금 귀찮긴 하군.”

“하하하. 뭐 그렇지요.”

“그건 그렇고 무슨 보고?”

정성국의 의문에 박기동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먼저 하얀 수리 급 비행기의 무장과 관련된 보고입니다.”

“무장? 아. 전에 말했던 그 항공 폭탄?”

정성국이야 굳이 하얀 수리 급 비행기를 실전에 투입할 생각이 없었지만, 자유자재로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고 비행기의 군사적 가치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없을 리 없었다.

하얀 수리 급 비행기를 군사적으로 이용하려는 군사청장은 정성국이 진정시켰지만, 군사적으로 이용하려고 연구하겠다는 일부 연구원들까지 막지는 않았고.

이때 항공 폭탄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었기에 정성국이 아는체하자 박기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평화가 80mm 화포에 사용되는 포탄을 개조해 결국 항공 폭탄을 만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비행기에 탑재해야 하는 만큼 무게가 중요해 여러 포탄 중 무게가 15kg 정도인 80mm 화포를 개조해 항공 폭탄으로 만들었다는 박기동의 이야기에 정성국은 나쁘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흠...80mm 화포에 사용되는 포탄을 개조해 만들었다면 위력은 괜찮겠네?”

“그렇죠. 적 지휘관이나 화약통 인근에 떨어뜨리면 확실히 타격을 줄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중량 때문에 여러 발을 실을 수도 없고 이 항공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도 문제입니다. 조종사가 직접 떨어뜨려야 하니까요.”

그 말에 정성국은 전생에서 초창기 비행기들이 하늘에서 폭탄을 투하하기 위해 조종사가 직접 항공 폭탄을 손으로 들어 떨어뜨리는 그림을 기억해내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80mm 화포의 포탄의 무게를 떠올리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항공 폭탄의 무게를 생각하면 비행기를 조종하면서 항공 폭탄까지 떨어뜨리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정성국의 지적에 박기동이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렇죠. 그래서인지 명중률도 무척 안 좋고요. 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얀 수리 급 비행기를 일부 개조했습니다.”

“개조?”

“예. 동체 밑 부분에 항공 폭탄을 장착할 수 있는 장치를 달고 조종사가 기계장치를 작동하면 곧바로 항공 폭탄을 떨어뜨릴 수 있게 말이지요.”

박기동의 설명에 정성국은 나쁘지 않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최소한 조종사가 직접 폭탄을 들고 떨어뜨리는 것보다야 낫겠군.”

“그렇죠. 해서 모든 하얀 수리 급 비행기를 개조해 항공 폭탄을 장착할 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만...”

그 말에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회의적인 표정으로 박기동을 바라보았다.

“흠...그럴 필요가 있어? 솔직히 하얀 수리 급 비행기가 실전에 투입될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지. 비행기 한두 대를 개조하는 거야 연구 차원에서 이해했지만...”

박기동 역시 정성국의 생각에는 동의했지만, 그래도 하얀 수리 급 비행기를 모두 개조해 이 장치를 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입을 열었다.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 개조는 해두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더불어 장치를 장착했다고 명중률이 급격히 오른 것도 아닙니다. 결국, 조종사의 실력에 달려 있지요. 그런 만큼 하얀 수리 급 비행기가 실전에 투입되지 않더라도 미리 조종사들이 폭격에 익숙해지도록 훈련할 필요도 있으니 개조하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만.”

그 말에 정성국은 비행기에서 떨어뜨리는 폭탄은 관성에 의해 포물선에 가까운 궤적으로 떨어진다는 것과 기계식 계산기를 개발하기 전까지는 조종사의 감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중얼거렸다.

“폭격 훈련을 위해서라도 개조할 필요가 있다? 흠...알겠다. 뭐 그럼 그렇게 해라.”

정성국이 하얀 수리 급 비행기의 개조를 허락하자 박기동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가져왔던 보고서를 정성국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리고 이건 이번에 항공기 연구소에서 시범 제작 중인 새로운 비행기의 설계도입니다.”

정성국은 박기동이 건넨 보고서를 받아들고 펼치다가 박기동의 말에 깜짝 놀란 표정으로 박기동을 바라보았다.

“어? 새로운 비행기의 설계도? 그게 벌써 나왔어?”

아무리 정성국이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고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긴 했지만, 고작 1년 만에 새로운 비행기의 설계가 끝났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이 놀란 표정을 짓자 외려 박기동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거기에 투입된 인원이 몇인데요. 오히려 그걸 감안하면 늦은 편이지요. 이제 막 설계가 끝나고 시험기 제작에 들어간 상황이니까요.”

비행기의 존재가 공개된 이후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 매료된 연구원들이 너도나도 항공기 연구소에 지원해 항공기 연구소의 규모가 대폭 커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무려 300명이 넘는 인원이 이번 새로운 비행기 개발에만 매달렸다는 박기동의 설명에 정성국은 다시 한번 놀라며 중얼거렸다.

“아. 그 정도였나?”

“예. 그리고 이번 새한성 대학교의 졸업생들도 상당수는 전공과 상관없이 항공기 연구소로 가고 싶어 하던데요? 인기가 대단해요. 정말.”

“하하하.”

정성국은 박기동의 투덜거림에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인 후 박기동이 건넨 보고서 안에 있는 비행기 설계도를 확인하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흠...이거 생각보다 많이 바뀌었는데? 기껏해야 하얀 수리 급의 재질을 알루미늄 합금으로 바꾸고 새로운 경유기관을 부착하는 정도로 생각했더니만...”

하얀 수리 급 비행기가 복엽기였다면 새로 설계했다는 이 비행기는 단엽기였고, 날개 크기나 동체 크기도 생각보다는 큰 편이라 하얀 수리 급 비행기와는 여러모로 달랐기에 정성국이 이를 이야기하자 박기동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저나 하얀 수리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만...알류미늄 합금을 이용해 더 가볍고, 튼튼한 날개를 만들 수 있는데 굳이 복엽기를 만들 필요가 있나 싶어서 말이지요.”

처음으로 비행기를 만들 때 날개가 2개인 복엽기로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역시 소재 때문이었다.

정성국이 생각보다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해준 덕분에 날개가 길수록, 적당한 두께를 가질수록 양력에 유리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길고 적당한 두께의 날개를 나무와 천을 이용해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던 탓에 트러스 구조의 복엽기로 선회했던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 만큼 알루미늄 합금으로 가볍고도 튼튼한 날개를 만들 수 있게 되자 굳이 복엽기 형태의 비행기를 만들 필요가 있나 싶었고.

특히 정성국이 비행기에 관심을 두고 막대한 지원을 해주는 것이 비행기를 발전시켜 배, 철도 같은 하나의 이동 수단으로 써먹기 위해서라는 것을 박기동이나 하얀 수리도 잘 알고 있는 만큼, 항력이 적게 발생하며 효율적이고 장거리 비행에도 유리한 단엽기 형식을 택했다는 박기동의 설명에 정성국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 잘 생각했어. 훗날을 생각하면 효율적인 단엽기가 더 낫지. 헌데 동체가 생각보다 크네?”

“예. 일단은 4인용 비행기니까요.”

“어? 곧바로 4인용 비행기를 개발한다고?”

정성국이 당황하자 박기동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항공기 연구소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모두 하늘을 날고 싶어 하니 당연히 자신들도 탈 수 있는 비행기를 만드는데 집착할 수밖에 없잖습니까. 그리고 제가 새롭게 만든 경유기관의 출력도 충분해서 4인용 비행기로 선회했답니다.”

“아...”

“일단 기본이 4인용 비행기지만 상황에 따라 의자를 제거하고 항공 폭탄을 가득 싣거나, 혹은 각종 물자를 수송할 수도 있으니 나쁠 것 없다 싶어 별말은 안 했고요.”

확실히 박기동의 말처럼 1인용 비행기보다야 4인용 비행기가 더 효율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만큼 정성국은 나쁠 것 없겠다 싶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자신이 하얀 수리에게 했던 이야기를 떠올리고 움찔했다.

“아...이거 개발되면 하얀 수리의 비행을 허락할 수밖에 없는 건가?”

“하하하. 그래야죠. 물론 제대로 비행기가 만들어지고 100회의 비행에도 별문제 없어야 하긴 하겠지만요.”

“허. 집념이 무섭긴 하네. 이렇게 빠르게 목표를 달성할 줄은 미처 몰랐는데...”

정성국이 새삼 하얀 수리와 항공기 연구소의 연구원, 장인들의 집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박기동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 * *

“그래? 물자 수송 준비가 끝났다고?”

정성국이 자신을 찾아온 개발청장을 보고 확인하듯 질문을 던지자 개발청장이 가져온 보고서를 정성국에게 건네며 보고했다.

“예. 이미 관리청의 협조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선박에 건설 장비를 비롯해 각종 물자를 싣고 있습니다. 물자를 다 실은 배들은 이미 새남포로 이동하기 시작했고...북방 항로가 완전히 열리면 곧바로 바다를 건너 조선에 도착해 물자를 내려놓을 겁니다. 그럼 곧바로 철도 부설을 시작할 수 있겠지요.”

조선 정부는 철도에 무척 관심을 보여 하루라도 빨리 철도를 조선에 설치했으면 했고, 조정에서 나서서 조선철도공사를 물심양면 도왔다.

덕분에 작년 북방 항로가 닫히기 전에 조선철도공사에서 북미왕국으로 올린 보고서에 따르면 철도 부설 용지의 90프로 가까이를 이미 매입했으며 아직 매입하지 못한 용지도 한두 달 안에 모두 매입할 수 있는 만큼 내년에 북방 항로가 열리면 곧바로 철도 부설 공사를 시작하고 싶다는 보고를 올렸고.

어차피 철도 부설 준비야 어느 정도 해둔 만큼 정성국은 조선철도공사의 요청을 승낙했기에 개발청장이 올해부터 조선에 철도를 부설하기 위해 철도 부설에 필요한 각종 물자를 수송할 준비를 끝냈다는 이야기와 물자가 도착하면 곧바로 철도를 부설하겠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개발청장에게 계속 보고하라는 듯 손짓했고.

“전에도 말씀드린 대로 최대한 빠르게 철도를 부설하기 위해 총 4개의 구간으로 나누어 동시에 철도를 부설할 생각입니다. 그에 따라 북미왕국의 수송선들도 조선 곳곳에 물자를 내려놓을 예정이고요.”

조선 정부에선 최대한 빠르게 철도를 부설하길 원했고, 북미왕국에서도 빠르게 철도를 부설하는 것이 나쁠 것 없었기에 최대한 구간을 나누어 동시에 공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해서 평양, 한양, 대전, 부산을 거점으로 물자를 수송하고 부산을 제외하면 다른 3곳의 거점은 남북으로 철도를 건설해 나갈 예정이었고.

이에 정성국은 생각보다 철도 부설 공사가 빠르게 진행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걸리는 점이 있어 질문을 던졌다.

“헌데 이번에 동원하는 선박 중엔 5천 톤급 수송선도 꽤 있지 않나?”

“물론입니다. 5천 톤급 수송선의 비중이 꽤 크지요.”

개발청장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던졌다.

“그래. 헌데 조선에는 개항장을 제외하면 5천 톤급 수송선이 정박할만한 포구가 없지 않나?”

이에 개발청장이 슬쩍 웃으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아니, 그랬었습니다.”

“그랬었다?”

“예. 5천 톤급 수송선에 실은 물자를 손쉽게 내리려면 제대로 된 포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조선 측에 알렸고, 조선도 기존의 포구에는 5천 톤급 수송선이 정박할 수 없다는 사실과 원활한 철도 건설을 위해선 곳곳에 저희 북미왕국의 선박이 정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는 만큼 저희의 요청에 따라 포구를 재개발해 5천 톤급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비교적 수심이 깊은 포구를 만들기로 했었습니다. 다만 금강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달라 대전으로 수송하는 물자는 지급 함선에 실었고 일부는 강경 포구에서 물자를 내리고 조선의 배로 다시 수송할 예정이고요.”

정성국은 개발청장의 보고에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허. 철저히 준비했나 본데?”

“그럼요. 조선에서 철도를 부설하는 거라 더더욱 신경 썼습니다. 그러니 조선에서의 철도 부설 공사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성국은 강한 자신감을 보이는 개발청장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래. 어차피 철도 부설 공사야 큰 문제 없이 몇 번이고 진행한 만큼 믿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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