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503화 (503/850)

503화

슬슬 봄바람이 불어오는 4월의 어느 날.

정성국은 잠시 자리를 비웠던 개발청장이 새한성에 돌아왔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즉각 그를 집무실로 불렀고.

정성국은 집무실로 들어오는 개발청장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반겼다.

“오. 개발청장. 파나마 지역에 다녀오느라 고생 많았네.”

파나마 운하 공사의 완공 예정일은 올해인 만큼, 그동안 보고서를 통해 운하 공사의 진행 상황을 보고받던 개발청장은 직접 현지의 사정을 확인할 겸 파나마 지역을 방문했었기에 정성국이 먼 길을 다녀온 개발청장의 고생을 짐작해 환대하자 개발청장은 빙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고생은요. 배를 타고 다녀온 터라 오히려 휴식에 가까웠지요.”

“하하하. 그래?”

“예. 전하께서도 아시다시피 배에 발전기가 설치된 이후로는 선상 생활이 무척 쾌적해져서 말입니다.”

“그거 다행이군. 다른 청장들도 그렇지만 자네는 워낙 여러 곳을 다니는지라 몸이 축날까 걱정이었는데 말이지. 일단 차나 한잔하지.”

그러면서 정성국이 자리에서 일어나 티테이블로 향하자 개발청장도 정성국을 따라 티테이블로 이동했고.

정성국은 커피를 내리며 질문을 던졌다.

“그래. 파나마 운하 공사는 보고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던가?”

“그렇습니다. 전하. 큰 사고 없이 무난하게 진행되고 있고 공사의 진행 상황도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해서 예정대로 5개월 후엔 운하 공사가 완료되고 파나마 운하가 정식으로 개통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발청장이 씩 웃으며 대답하자 정성국은 새삼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허. 그런 대공사를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물론 순조롭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들 자잘한 사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파나마 운하 공사는 공사 규모가 크고 워낙 많은 일꾼을 동원한 탓에 아무리 철저히 일꾼을 통제하고 감독했어도 자잘한 사고가 발생해 부상자나 사망자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고.

그나마 파나마 운하 공사 지역의 인근 나무를 모조리 베어버리고 웅덩이란 웅덩이는 다 메우는 것도 모자라 석유도 뿌리곤 했기에 모기가 옮기는 각종 전염병에 의한 피해는 거의 없다는 것이 다행이었을 뿐.

다만 전생에는 이 파나마 운하를 건설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를 기억하는 정성국으로서는 파나마 운하를 3년이라는 단기간에, 그것도 이렇게 적은 피해로 공사를 완료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개발청장의 말에 새삼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고.

그런 정성국의 감탄에 개발청장이 웃으며 답했다.

“물론 아직 공사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긴 한데 현장의 진행 상황을 보고 에스파냐 관리들도 경악한 기색이 역력하더군요. 아무리 화약이나 신기한 건설 장비를 이용한다 하더라도 3년 안에 운하를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하하하. 그럴 테지. 나도 놀랐는데 에스파냐인들이야 오죽할까.”

정성국이 에스파냐인들의 심정을 짐작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개발청장이 덧붙였다.

“예. 그리고 이렇게 순조롭게 공사가 진행된 것은 건설 장비의 공이 크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멀리서 건설 장비를 집요하게 관찰하는 에스파냐 학자들이 더 늘어났답니다.”

처음 건설 장비를 파나마 운하 지역에 가져갔을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그리고 이를 대비해 경비대원들을 배치했고 북미왕국과의 분쟁을 우려한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의 명령 덕분에 에스파냐인들도 건설 장비에 가까이 접근하지 않는 상황이었으니 그 정도만 하더라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정성국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멀리서 바라보는 것 정도야 내버려 두게. 그것까지 막을 수야 없는 노릇이니. 그보다 올 9월에 파나마 운하가 개통된다면...한번 방문해볼까?”

호위대장이 들었다면 기겁할만한 소리를 내뱉는 정성국을 보고 개발청장이 웃으며 말했다.

“전하께서 한번 방문하시는 것도 나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산 사이에 존재하는 운하가 무척 장관이라서 말입니다. 물도 없는 단순한 통로에 불과한 운하였는데도 무척 장관이었으니 개통되면 더 대단하겠지요. 거기에 단순히 계곡에 불과한 지역도 물을 채워 산중 호수로 만들 예정이니만큼 운하가 개통되면 볼만 할 겁니다.”

정성국은 개발청장의 말에 파나마 운하를 방문할 뜻을 굳히고 중얼거렸다.

“미리미리 최대한 업무를 줄여둬야겠군.”

“아. 전하께서 방문하신다면 에스파냐인들도 무척 좋아하겠군요. 오히려 개통식에 맞추는 것도 괜찮아 보이고요.”

“개통식?”

정성국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개발청장은 에스파냐 관리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정성국에게 보고하기 시작했다.

“예. 운하 공사가 끝나면 성대하게 개통식을 열 생각인 모양입니다. 해서 누에바 에스파냐에서는 북미왕국의 고위급 인사가 이 개통식에 참석해주길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고요.”

이런 개발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상황을 파악하고 피식 웃었다.

“아마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의 생각인 모양이군?”

“아무래도 그렇지요. 파나마 운하 건설은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의 치적이나 다름없으니까요. 그래서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이 직접 개통식에 참석할 예정이랍니다. 듣자니 본국의 관리나 외국 사절도 부를 생각인 모양이고...이 자리에서 북미왕국과의 친분을 과시하기 위해 고위급 인사가 참석해주길 바랐거든요. 뭐 저들이야 저나 외무청장인 조용한 곰, 혹은 푸른 안개 님의 참석을 바라는 눈치였습니다만...”

“내가 나타나면 기겁하긴 하겠군. 다만 일정도 조율해야 하고 호위 문제도 있으니 일단 내가 직접 방문한다는 것을 미리 알리지는 말게.”

“물론입니다.”

그렇게 파나마 운하의 대화를 마치고 정성국은 다 내린 커피를 개발청장에게 건네주며 북미왕국에 건설 중인 여러 경기장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개발청장은 뜬금없이 공놀이 경기장을 묻는 정성국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도 일단 정성국의 질문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정성국은 커피를 마시며 이런 개발청장의 보고를 주의 깊게 듣고 개발청장의 보고가 끝나자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문을 열었다.

“흐음...북미왕국 곳곳에 지어진 다른 경기장의 상황도 다 비슷하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전하. 축구장, 야구장, 농구장, 배구장 등등. 각종 공놀이 경기장을 건설할 때만 해도 경기장 규격에만 신경 썼을 뿐이지, 경기를 구경하는 사람들까지 신경 쓴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면서 개발청장은 커피로 목을 축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다만 각종 공놀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이 공놀이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보다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고, 그러면서 일부 개발청 관리들은 경기장에 관람석을 설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긴 했었습니다. 다만 논의 끝에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는 판단을 내리긴 했습니다만...”

그 말에 정성국은 의아한 표정으로 개발청장을 바라보았다.

“응? 관람석을 설치할 필요가 없다고?”

“예. 새한성처럼 사람이 많은 도시를 제외한다면 경기장이 큰 편이라 관람석이 없어도 구경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거든요. 그리고 보통은 땅바닥에 앉아서 구경하는 것이 관례이기도 하고요.”

그 말에 정성국은 잠행에 나섰을 때 목격했던 축구장의 풍경을 떠올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어? 내가 봤던 축구장의 경우 구경꾼들이 죄다 서서 구경하던데?”

그러면서 정성국은 개발청장에게 자신이 보았던 축구장의 모습을 이야기하자 개발청장이 웃으며 말했다.

“물론 땅에서 찬 기온이 올라오는 겨울이야 예외지요. 마찬가지로 비 온 다음 날처럼 땅이 제대로 마르지 않은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아...하긴...”

정성국이 수긍하자 개발청장이 덧붙였다.

“또한, 북미왕국 내에서의 각종 공놀이의 인기가 무척 급증한 것은 마을 곳곳마다 경기장을 건설해두어 손쉽게 공놀이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경기장 건설이 비교적 간소한 편이었기 때문입니다. 적당한 공터에 땅을 제대로 다지고 잔디를 심고 문이나 바구니, 그물 등의 시설물을 설치하기만 하면 끝이니까요. 하지만 여기에 관람석을 설치하게 되면 공사 규모가 커지고 시간과 비용이 늘어나게 되니...”

“아. 그래서 관람석 설치는 그냥 넘어갔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전하.”

생각해보면 개발청의 판단이 옳았을 수도 있다.

괜히 처음부터 정성국이 생각하는 관람석이 완비된 경기장을 만들겠다고 공사 규모를 키워봐야 좋을 것은 없었으니까.

다만 일반인들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경기장은 충분히 건설한 만큼, 이젠 제대로 된 경기장도 몇 개 건설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정성국이 개발청장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흠...뭐 상황은 이해했네. 하지만 슬슬 관람석을 비롯해 각종 부대 시설까지 존재하는 대형 경기장도 건설할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예? 부대 시설이요?”

정성국은 자신의 말에 의아해하는 개발청장에게 전생의 경기장에 존재하는 여러 부대 시설을 설명하기 시작했고.

물론 정성국은 이번에 건설하는 경기장에 상점이나 음식점들이 들어설 공간까지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건 경기장의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 만든 시설이니만큼 현 상황에선 중요하지 않다고 보았고, 정 경기장 관리 비용이 많이 나온다면 주변 땅에 상가를 짓고 이곳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경기장 관리 비용을 보태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기에.

해서 정성국이 설명한 것은 주로 경기장을 이용하는 선수들의 편의를 위한 시설들이었고.

“허. 탈의실은 그렇다 치더라도 목욕탕까지 말입니까?”

“뭐 한참을 뛰고 나면 땀 범벅이 될 텐데 아예 씻을 공간을 만들어두는 것도 나쁠 것 없겠지.”

정성국의 이야기에 개발청장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었다.

어차피 경기가 끝나면 집에 돌아가거나 목욕탕을 방문해 씻으면 그만이었으니.

다만 정성국의 말처럼 경기장 내에 목욕탕이 있다면 선수들의 처지에서야 편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까지 경기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봐줄 필요가 있나 싶긴 합니다만...알겠습니다. 그런 부대 시설도 모두 설치하도록 하지요. 헌데 관람석은 어느 정도 설치하면 되겠습니까?”

그 말에 정성국은 잠시 고민했다.

가장 편한 것은 역시 경기장 주변에 관람석을 설치하는 건데, 그러자면 경기장의 크기에 따라 설치할 수 있는 관람석의 숫자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단적으로 탁구 경기장과 축구 경기장의 크기는 차원이 다르지 않던가.

해서 정성국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입을 열었다.

“흠. 뭐 관람석이 경기장 주변에 설치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관람석의 규모는 결국 경기장의 규격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 그래서 뭐라고 딱히 이야기하긴 어려운데...아무리 작은 경기장이라 하더라도 2천 석 이상은 되었으면 하네. 뭐 축구장 같은 경우는 최소 1만 석 정도?”

“예? 그렇게나 많은 관람석을 설치하란 말입니까? 물론 여러 공놀이 가운데 축구가 제일 인기가 있긴 합니다만...”

개발청장은 조금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각종 공놀이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공 하나만 있어도 할 수 있는, 그리고 직접 몸을 부딪치는 만큼 치열해 보는 맛이 있어 무척 인기 있는 공놀이가 축구긴 한데, 이를 보겠다고 과연 1만 명씩이나 오겠느냐는 표정이었다.

이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물론이네. 오히려 부족할 수도 있어. 그러니 나중에 관람석을 추가로 설치할 수 있도록 공간을 충분히 확보해두도록 하고.”

“으음...알겠습니다.”

정성국의 말에 조금 반신반의하는 개발청장이었지만, 정성국의 이런 예측은 틀린 적이 없었기에 개발청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이 덧붙였다.

“그리고 이제부터 건설하는 다른 일반 경기장들도 훗날을 생각해서 영역을 가능한 한 넓게 잡게.”

“훗날 관람석을 추가해 대형 경기장으로 개조하시려고요?”

정성국의 생각을 짐작한 개발청장이 이를 확인하듯 묻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 지금이야 민간에 동력 자전거를 풀지 않고 있네만...나중가면 또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을 거야. 그러면 다들 개인용 동력 자전거나, 혹은 다른 이동 수단을 가지고 생활할 수도 있겠지. 그러자면 이 이동 수단을 주차할 공간도 필요할 테고.”

지금이야 동력 자전거를 민간에 풀지 않고 있었지만,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

그리고 경운차를 민간에 판매하고 있는 만큼, 동력 자전거도 언젠간 민간에 판매할 거라 예상하는 청장들이 많았고.

그렇기에 정성국이 이를 거론하자 개발청장은 즉각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허면 그것까지 고려해 최대한 넓은 공간을 확보해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하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