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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498화 (498/850)

498화

정성국은 티테이블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관리청장이 가져온 보고서를 훑어보다 조금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 의외로...식량 수출량이 생각보다 많이 늘었는데? 수출 비중도 생각보다 늘어났고?”

12월 말이 되자 청장들은 한 해를 정리한 각종 보고서와 함께 정성국을 방문하기 시작했고, 오늘은 관리청장이 방문해 각종 통계가 담긴 보고서를 정성국에게 건넸다.

올해부터 연금 제도를 시행하기도 했고 북미왕국 전역을 미친 듯이 개발 중이라 재정 상태를 조금 걱정했지만, 점차 북미왕국이 발전하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세수가 늘고 외국과의 무역량마저 대폭 증가하며 무역 흑자가 증가했기에 예상대로 북미왕국의 재정 상태는 탄탄한 편이었고.

해서 정성국은 안도하면서 대외 무역 통계가 담긴 보고서를 확인했고 수출품목과 그 비율이 적힌 표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북미왕국의 주요 수출품은 사치품 계열이었다.

최상품의 도자기, 검은담비 모피보다도 한 단계 윗급으로 인정받는 해달 모피, 완벽한 구형이라 부르는 것이 값인 진주, 중국산 비단과 비교해도 품질이 떨어지지 않는 최상품의 비단, 북미왕국의 기술력을 상징하는 조그마한 회중시계나 자전거 등등.

물론 최근에는 북미왕국산 커피나 모직물, 면직물의 비중이 점차 늘어나곤 있었지만, 식량의 경우는 그 비중이 항상 미비했었다.

헌데 갑자기 이 식량 수출량이 대폭 증가했기에 정성국이 의아해하자 관리청장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올해 식량 수출량이 급증했지요. 그리고 이 식량들은 모두 유럽으로 판매되었고요.”

“대체 왜? 비록 우리 북미왕국의 식량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식량 가격이 점차 낮아지긴 했지만...그래도 운송비까지 고려하면 실익이 적은 편이라 그동안은 부피를 많이 차지하는 식량보다는 돈이 되는 다른 물품들을 주로 수입하지 않았나?”

이에 관리청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정성국이 내려준 커피로 잠시 입을 축인 후 설명을 시작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첫째는 유럽의 식량 가격이 대폭 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 전쟁 때문인가?”

현재 유럽은 한창 전쟁 중이었다.

프랑스와 반프랑스 동맹 간의.

그리고 프랑스는 유럽의 대표적인 곡창 지역이자 식량 수출국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전쟁이 식량 가격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보았고.

해서 정성국이 전쟁을 거론하자 관리청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전쟁의 영향이 없진 않겠지요. 다만 그보다는 유럽의 곡창 지역 중 한 곳인 동유럽의 작황이 무척 좋지 않다는 소식입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럽의 식량 가격이 폭등했고요.”

지금은 소빙하기였고, 기상이변은 꼭 아시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지구 전체에서 일어났다.

그렇기에 정성국은 동유럽의 작황이 무척 좋지 않아 곡물 생산량이 줄었다는 보고에 크게 놀라지는 않고 그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흐음...그러니 식량을 수입하더라도 짭짤한 이득을 볼 수 있기에 식량을 사들인다 이거군. 그럼 다른 이유는?”

“2함대가 서인도제도로 진출하면서 서인도제도에 득실거리던 해적들이 모두 사라졌지요. 거기에 북미왕국의 부유함이 알려지면서, 그리고 북미왕국산 물품이 무척 뛰어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이 물품을 어떻게든 구하기 위해 새진주를 방문하는 외국 배들이 점차 많아지기 시작했고요.”

이런 새진주의 상황은 최근 행정청장과 개발청장에게도 들었기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들었네. 요새 새진주의 외국인 선착장은 항상 배들이 가득하다면서? 그리고 외국인 거주 구역도 사람이 넘쳐나고 숙소가 모자랄 정도라 추가로 대규모 확장 공사를 고려 중이라던데?”

“예. 그렇습니다. 헌데 문제는 아무리 저희가 공방을 추가로 건설해 각종 물품을 증산한다 하더라도...새진주를 방문한 외국 상인들이 모두 만족할 만큼의 물품을 생산하긴 어렵다는 점입니다.”

정성국은 관리청장의 말에 현 상황을 이해했다.

북미왕국에서 계속해서 공방을 증축하며 각종 물품의 생산량을 늘리고는 있었지만, 유럽에서 인기 있는 사치품들은 북미왕국 내에서도 인기가 있었다.

그리고 가뜩이나 북미왕국 백성들은 부유한 편이었는데 연금 제도까지 시행되자 경제 사정이 더욱 여유로워진 북미왕국 백성들도 이런 사치품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덕분에 늘어난 물량 중 상당수는 외국에 수출하기보단 국내에 팔아야만 했으니.

“아. 그렇겠군. 늘어나는 물품을 모두 외국에 넘길 수도 없고 특히 유럽에 인기 있다는 값비싼 상품들 상당수는 이미 에스파냐, 잉글랜드, 네덜란드 3국에 배정해버린 상태이니...”

“예. 해서 새진주에 도착한 외국 상인들은 최상품 도자기나 모피, 비단, 진주 등 유럽에서 팔리는 값비싼 상품으로 배를 가득 채워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만...현실적으론 물량을 구하기가 어렵지요. 뭐 배를 가득 채울 정도의 돈도 없긴 합니다만. 아무튼, 그렇기에 식량으로 눈을 돌린 겁니다.”

“하긴...식량이야 넘쳐나는 판국이니...”

“예. 해서 최대한 값비싼 상품을 구하고 남는 공간은 식량으로 채워 돌아가는 터라 식량 수출량이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관리청장의 설명이 끝나자 정성국은 한참 보고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흐음...나쁘지 않네. 계속해서 북미왕국 곳곳이 개발되며 농지가 늘어나고 있어서 슬슬 식량 보관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는데 말이지. 이 기회에 직물과 더불어 식량도 주요 수출품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정성국이 기억하기로 17세기는 소빙하기의 절정인 시기였고, 그 때문에 식량 생산이 원활하지 않아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갈등, 충돌과 불안정이 가득한 시기였던 만큼, 식량이 안정적으로 공급된다면 이러한 갈등과 충돌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다.

해서 더 많은 수송선이 건조되면 북미왕국에서 생산되는 식량을 직접 유럽에 판매할 생각이었고.

허나 유럽의 상인들이 북미왕국으로 몰려 들어와 식량을 사 가는 것도 나쁠 것은 없어 보여 정성국은 어떻게 더 많은 유럽의 배들을 불러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관리청장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북쪽에 새로운 무역항을 건설하고 이를 개방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습니다.”

“음? 북쪽에?”

“예. 최근 프랑스인들과 아일랜드인들이 누벨 프랑스 지역과 이로쿼이 지역, 일리노이 지역에 정착하면서 이 지역들의 식량 생산량이 급증하고 있지 않습니까. 더불어 북미 동해안 지역의 식량 생산량도 꽤 높은 편이고요.”

“아하. 그러니 북쪽에 새로운 무역항을 건설해 그곳에 북쪽 지역에서 나는 식량을 집결시켜 보관하면서 일부는 유럽 상인들에게 팔자?”

정성국이 관리청장의 의견에 흥미를 보이자 관리청장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운송비가 더욱 줄어드는 만큼 식량 가격을 더욱 떨어뜨릴 수 있고 그러면 충분히 가격 경쟁력이 생길 테니 아마 유럽의 상인들이 오로지 북미왕국의 식량을 수입해 팔기 위해 기꺼이 대서양을 횡단하리라 봅니다.”

관리청장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괜찮은 방책이었기에 정성국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던졌다.

“좋은 생각이야. 하지만 굳이 새로운 무역항을 건설할 필요가 있나? 기존의 항구를 개방하면 그만이지?”

“개방할만한 항구가 딱히 없어서요. 물론 누벨 프랑스 지역의 퀘벡이나 매사추세츠 지역의 보스턴을 개방하는 것도 나쁘진 않은데 퀘벡의 경우 세인트로렌스 강 깊숙이 자리한 만큼 외국 상선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을 용인하기 어렵고 보스턴의 경우 이로쿼이 지역이나 누벨 프랑스 지역의 식량을 배로 운반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잖습니까. 그러니 옛 아카디아 지역 동쪽에 새로운 무역항을 건설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만...”

관리청장의 말도 일리는 있었기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흠...난 훗날을 생각해 뉴욕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자네 말을 들으니 그게 나을 듯싶군.”

매사추세츠 지역도 아니고 뉴욕 지역의 항구를 개방할 생각이었다는 정성국의 말에 관리청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예? 뉴욕이요? 아. 철도를 염두에 두신 겁니까?”

“그렇지. 언젠가 이로쿼이 지역과 뉴욕을 연결하는 철도를 부설할 생각이었거든. 하지만 철도를 부설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테니...자네 말대로 옛 아카디아 지역 동쪽에 새로운 무역항을 건설하는 것도 괜찮아 보이네. 어디보자...”

정성국은 고개를 돌려 티테이블 근처의 커다란 지구본을 돌려 아카디아 지역이 보이도록 회전시킨 후 관리청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옛 아카디아 지역이라 해도 무척 넓은데 자네는 어디에 무역항을 건설했으면 하나?”

이에 관리청장은 선뜻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옛 아카디아 지역에 새로운 항구를 건설하는 문제는 일전에 행정청장과 개발청장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나온 결론은 옛 아카디아 지역에 대유럽 무역 항구를 건설할 생각이라면 이곳이 최적이라는 결론을 내렸지요.”

관리청장이 가리킨 곳은 바로 전생의 캐나다 대서양 항구 도시인 핼리팩스였기에 정성국은 역시나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항구를 건설하기 꽤 적합한 장소로군.”

“그렇습니다. 더불어 이곳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이 적지 않아 항구를 개발하기도 쉬울 테고요.”

관리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잠깐 지구본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가 결정을 내렸다.

“흐음...알겠네. 자네 말대로 이곳을 개발하는 것이 괜찮아 보이는군. 일단 개발청장에게 이곳에 새로운 무역항을 건설하라고 명령을 내리도록 하지.”

* * *

“사령관님!”

이르쿠츠크 요새 사령관은 새해를 맞이해 가족들과 아침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부관이 나타나자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슨 일인가. 새해부터. 급한 일이 아니라면 나중에 보고하지?”

이에 부관은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사령관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조용하게 보고했다.

“급보입니다. 시베리아 부족 연합이 레나 강을 따라 남하하고 있답니다.”

“헉! 그게 정말인가?!”

사령관이 기겁하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자 사령관의 가족들은 불안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고 이를 눈치챈 사령관은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부관에게 눈치를 주며 서재로 이동했고.

서재에 도착하자 문을 닫고 부관을 바라보며 급히 질문을 던졌다.

“자. 이제 자세히 이야기해보게. 연합이 남하하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머스킷으로 무장한 연합의 병사들이 레나 강 상류에 있는 거점 마을인 키렌스크에 나타났다는 보고입니다.”

“뭐?! 연합이 키렌스크에 나타났다고? 그럼 올료크민스크는 이미 점령당했다는 뜻인가?”

키렌스크는 레나 강 상류에 있는 조그마한 거점 마을로 이곳 이르쿠츠크에서는 약 600k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다른 지역이었다면 엄청 먼 곳에 위치한 마을이었겠지만 시베리아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더불어 연합의 병사들이 키렌스크까지 나타났다는 뜻은 키렌스크와 야쿠츠크 사이에 있는 올료크민스크가 이미 점령당했다는 뜻이었기에 사령관이 기겁하자 부관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렇지 않겠습니까. 올료크민스크는 작은 거점 마을에 불과한데 연합이 동원한 5천 명의 병사를 막기는 어려웠겠지요.”

“허...5천? 지금 머스킷으로 무장한 연합의 병사가 5천 명이나 된다고 이야기한 건가?”

병력 규모도 놀랍지만 한창 추운 한겨울에 그 먼 거리를 이동한다니 제정신인가 싶어 사령관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되묻자 부관은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답니다. 그러니 올료크민스크와 마찬가지로 작은 거점 마을에 불과한 키렌스크도 얼마 버티지 못하겠지요.”

여기에 부관은 연합의 병사들은 순록과 썰매를 타고 이동하는지라 진군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고 덧붙이자 사령관이 머리를 부여잡고 중얼거렸다.

“미치겠군.”

부관은 그런 사령관의 심정은 이해했지만, 키렌스크 역시 1, 200명의 작은 마을이라 연합의 공격을 하루나 버티면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연합의 이동 속도를 생각하면 언제 이 이르쿠츠크에 들이닥칠지 몰랐기에 조급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이제 어찌할까요.”

그 말에 사령관은 짜증을 부리며 말했다.

“뭘 어찌하나. 당장 연합이 남하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리고 주민들도 방어에 참여하라고 하게. 더불어 주변 거점 마을과 요새에도 즉각 전령을 보내도록 하고!”

“아...알겠습니다.”

부관이 급히 서재를 나가자 사령관은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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