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497화 (497/850)

497화

‘타타타타탕!’

아이누 탐사대장은 시베리아 부족 연합 병사들의 사격 훈련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살펴보다가 병사들이 일제히 머스킷을 내리고 재장전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흠. 죽어라 훈련시킨 보람이 있군. 다들 머스킷에 익숙해진 모양인데?”

아이누 탐사대장의 혼잣말에 옆에 있던 부관이 웃으며 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특히 야쿠트 족이나 오목 족은 비교적 최근에 머스킷을 받은 터라 머스킷을 다루는 데 애를 먹었고, 그 때문에 이들은 포로 관리 업무도 제외하고 죽어라 훈련만 시켰으니까요.”

이에 아이누 탐사대장은 미소를 지우고 조금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뭐 연합의 병사들을 철저히 훈련시킨 것까지는 좋은데...훈련이 너무 빠르게 끝난 것 같아 조금 걱정스럽군.”

부관도 현재 연합의 분위기를 모르지 않기에 아이누 탐사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아. 훈련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이상 분명 연합 소속의 여러 족장님이 다시 연합의 확장과 러시아 차르국의 거점을 공격하자고 강하게 주장하겠군요.”

“그렇지. 지금까지야 훈련을 핑계로 어떻게든 시간을 끌었지만 이젠 그것도 어려울 것 같고.”

올봄에 러시아 차르국의 공격을 손쉽게 물리친 이후 연합의 일부 족장들은 꾸준히 포로를 통해 알아낸 시베리아 지역의 러시아 차르국 거점을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연합에 패퇴한 토벌대의 패잔병들이 도망치면서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몇몇 원주민 마을을 약탈했다는 것과 러시아 차르국이 연합을 토벌하기 위해 토벌대까지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연합이 손쉽게 토벌대를 격파했다는 것까지 알게 된 시베리아의 여러 원주민 부족들은 너도나도 사람을 보내 연합에 조공을 바칠 테니 적당한 하사품과 더불어 연합이 자신들을 보호해주길 원했고.

그러다 보니 연합의 분위기는 당연히 이를 받아들여 영역을 확장하자는 의견이 무척 강할 수밖에 없었고.

하지만 아직 본국에 훈령을 받지 못한 아이누 탐사대장은 연합이 영역을 확장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러시아 차르국과 여러 전투를 벌여야 하는 만큼 연합의 병사들이 머스킷과 각종 전술에 익숙해지도록 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연합의 족장들 역시 지금까지의 승리는 연합의 병사들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북미왕국에서 빌려준 화포 덕분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고, 이 화포는 북미왕국에서 빌려준 물건이니만큼 상황에 따라서는 북미왕국에서 회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아이누 탐사대장의 주장처럼 일단 연합의 병사들이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에 동의했다.

그리고 연합의 병사들이 어느덧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대열을 바꾸고 분당 2발을 발사할 정도로 익숙하게 머스킷을 다루기 시작한 만큼 더는 훈련을 빌미로 시간을 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이누 탐사대장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자 부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겠지요. 훈련은 끝났고 한두 달 후면 레나 강이 슬슬 얼어붙을 테니...아마 그때쯤이면 레나 강을 따라 이동하자고 강력히 주장하겠군요.”

“그래. 헌데 아직 본국에서 아무런 연락도 없으니 내가 임의로 행동하기도 어렵...”

그때 한 탐사대원이 급히 아이누 탐사대장에게 뛰어오며 소리쳤다.

“대장님!”

“음? 무슨 일 있나?”

“레나 강 북쪽에서 탐사선들이 남하하고 있습니다!”

“오! 드디어 온 건가! 알겠네.”

아이누 탐사대장은 그토록 기다리던 탐사선이 마침내 보인다는 탐사대원의 보고에 반색하며 일단 부관에게 훈련의 참관 업무를 떠넘기고 선착장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저 멀리서 천천히 선착장으로 다가오는 탐사선의 숫자가 무려 8척이나 되었기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더욱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고.

아이누 탐사대장이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는 탐사선 일부는 이미 선착장에 정박한 상태였고, 배에서 내린 쿠나킨이 선착장의 관리에게 무어라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였기에 아이누 탐사대장은 쿠나킨에게 다가갔다.

“아. 탐사대장님. 오랜만입니다. 제가 좀 늦었지요?”

“얼마 안 있으면 강이 얼어붙을 시기라 조금 걱정하긴 했지요. 그보다 저 대규모 함대는 뭡니까?”

아이누 탐사대장이 힐긋 뒤쪽의 탐사선을 보고 질문을 던지자 쿠나킨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본국에서 연합에 지원할 각종 물자를 보냈거든요. 거기에 본국의 명령에 따라 병력도 추가로 수송해야 하는지라 북태평양 탐사대가 모두 카무이 항으로 집결할 때까지 기다리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지요.”

“예? 그럼...”

“예. 본국에서는 연합의 뜻을 존중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러면서 쿠나킨은 아이누 탐사대장에게 본국에서 지원해 준 수많은 물자의 목록이 적혀 있는 문서를 아이누 탐사대장에게 건넸고, 아이누 탐사대장은 이를 보고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 본국에서 이렇게까지 지원해줄 줄은 미처 몰랐군요. 아이누 탐사대 1800명을 추가로 보내고 방한 장비와 식량, 화약 등을 추가로 지원해주다니.”

“예. 저도 본국의 결정에 조금 놀라긴 했는데...생각해보면 만약 연합이 러시아 차르국의 요새를 공격하다가 패배하기라도 하면 이곳의 상황이 또 달라지잖습니까. 그 때문에 추가로 병력을 보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누 탐사대장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솔직히 이동형 60mm 화포만 있어도 어지간해선 패할 것 같지 않은데...”

아이누 탐사대장은 쿠나킨에게 본국에서 허락이 떨어지면 카무이 항에 남겨두었던 이동형 60mm 화포 15문을 추가로 수송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것만 하더라도 빈약한 러시아 차르국의 거점 요새를 함락시키는 것은 충분하다고 판단했기에 그렇게 중얼거리자 쿠나킨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뭐 병력이 많아서 나쁠 것은 없지 않겠습니까.”

“흠. 뭐 그렇기야 하지요. 헌데 이들도 모두 용병으로 소개할 겁니까? 상단에서 고용한?”

그 말에 쿠나킨은 고개를 돌려 탐사선에서 내리고 있는 아이누 탐사대원들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한 3, 400명 정도라면 어떻게 믿는다 쳐도 이 정도 규모의 용병을 데려왔는데 그걸 믿겠습니까. 유럽도 아니고. 다만 현재 런던에서는 러시아 차르국의 외교관과 협상 중이라 일단 대외적으로는 계속 용병으로 활동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아. 연합의 족장님들에게만 사정을 이야기할 생각이시군요.”

“예. 그럴 생각입...어?”

쿠나킨이 아이누 탐사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아이누 탐사대장 뒤편에서 느긋한 표정으로 걸어오는 에벤 족 족장인 투란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고.

투란은 그런 쿠나킨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말을 건넸다.

“여어. 쿠나킨. 오랜만이군.”

“예. 오랜만입니다. 족장님. 헌데...여기 계실 줄은 몰랐군요.”

이 거점에서 에벤 족 마을까지는 꽤 먼 편이라 쿠나킨은 투란을 이곳에서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기에 조금 놀란 표정으로 묻자 투란이 피식 웃었다.

“뭐 가끔 들리곤 하네. 이 레나 요새가 빠르게 발전하는 것이 꽤 신기해서 말이네. 그리고 건축물도 꽤 이국적이라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족장들도 가끔은 여길 들르곤 하네.”

“예? 레나 요새요?”

쿠나킨이 고개를 갸웃하자 투란은 최근 이 거점의 이름을 정했다는 것을 떠올리고 입을 열었다.

“아. 자네는 아직 모르겠군. 언제까지 이곳을 그저 연합 거점 요새라고 부를 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최근에 이름을 붙였네.”

“아. 레나 강의 이름을 따서요?”

“그렇지. 자네들을 새로 도시나 요새를 건설하면 주변 지형의 이름을 따거나 부족 이름을 따서 짓는다면서. 헌데 이 주변에 사는 야쿠트 족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으면 결국 야쿠츠크 요새와 비슷해지니 어쩌겠나.”

“하하하. 그건 그렇군요.”

쿠나킨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을 때 투란이 슬쩍 고개를 돌려 선착장을 가득 메운 수많은 사람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단순한 선원이라고 보기에는 그 수가 너무 많았기에.

“헌데...평소와는 달리 배가 여러 척이군? 거기에 지금 배에서 내리는 저 사람들은 또 뭐고?”

“아. 본국에 이 시베리아 지역의 상황과 시베리아 부족 연합의 방침에 대해 알렸습니다.”

그 말에 투란은 묘하게 긴장했다.

처음에 레나 강을 경계로 삼은 것도 북미왕국의 뜻이었고 연합이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을 때 쿠나킨이나 용병 대장은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인 것을 모르지는 않았기에.

“음...그래? 뭐라던가?”

“본국에서는 영역이 넓어지면 그만큼 방어하기도 어렵고 발전하기도 쉽지 않은 만큼 연합의 확장에는 조금 우려를 표하기야 했습니다만...여러 족장님들께서 주장하시는 것처럼 연합이 레나 강 서쪽으로 영역을 확장하지 않는다면 레나 강 서쪽에 사는 원주민 부족들이 또다시 러시아 차르국에 공물을 바치고 노예처럼 살아야 한다는 사실과 그렇기에 연합이 레나 강 서쪽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가능한 한 많은 시베리아 원주민들을 연합의 품으로 끌어들이고 러시아 차르국의 세력을 몰아내야 한다는 연합의 대의에는 공감했습니다.”

투란은 쿠나킨의 말이 끝나자 표정이 밝아지며 급히 되물었다.

“오! 그래? 그게 정말인가?”

“예. 해서 본국에서는 연합을 지원하기 위해 저렇게 지원병력과 각종 물자를 보낸 거죠.”

지원병력이라는 이야기에 투란은 저 선착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정체를 깨닫고 새삼스럽다는 듯 시선을 뒤쪽에 고정하며 물었다.

“으음...그럼 저들은 북미왕국의 병사들인가?”

“그렇습니다. 아이누 탐사대죠.”

“아이누 탐사대라...아. 그 이름만 탐사대고 실제는 기병 부대라는?”

투란은 쿠나킨에게 북미왕국에 대해 여러 정보를 접한 만큼 아는체하자 쿠나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더불어 이동형 60mm 화포도 추가로 가져온 만큼...더 손쉽게 러시아 차르국의 요새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겁니다. 아니면 부대를 나눠 2방향으로 진격해도 되겠지요.”

북미왕국 상단이 고용한 용병들은 갑오 소총이라는, 머스킷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무기로 무장한 만큼 저기 보이는 탐사대도 갑오 소총으로 무장했을 것이 확실했다.

거기에 노획한 러시아산 화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북미왕국산 화포까지 추가로 가져왔다는 이야기에 투란은 반색했다.

“허. 그래? 이거 전략의 폭이 넓어진 셈이로군.”

“그렇습니다.”

쿠나킨의 대답에 투란은 다시 선착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들이 북미왕국의 병사라면 저들의 지휘관은 어디 있나? 통성명도 하고 앞으로의 일도 의논해야 할 것 같은데?”

그 말에 쿠나킨은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누 탐사대장을 보고 슬쩍 미소지으며 말했다.

“아. 저들의 지휘는 여기 용병 대장께서 맡으실 겁니다.”

“응? 그게 무슨 소린가?”

쿠나킨은 당황한 투란에게 그동안 숨겼던 용병의 정체와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고, 투란은 이러한 설명을 듣고 신음을 흘리며 놀랍다는 표정으로 아이누 탐사대장을 바라보았다.

“허. 용병 대장...자네가 원래는 아이누 탐사대의 지휘관이었다고?”

“그렇습니다. 비록 본국의 명령이라고는 하나 그동안 정체를 밝히지 못한 것은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아닐세. 사정은 이해하니.”

투란은 괜찮다는 듯 아이누 탐사대장의 사과를 받아들이면서도 용병 대장이 실제로는 아이누 탐사대장이며 그가 지휘하던 아이누 탐사대의 규모가 5천 명에 가깝다는 사실에는 새삼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기병 5천 명의 지휘관이라면 북미왕국에서도 꽤 높은 직위일 텐데 북미왕국이 그런 고위급 지휘관을 이곳에 파견할 정도로 이 지역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고.

“그럼...이제부터 자네를 아이누 탐사대장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

그 말에 아이나 탐사대장이 무어라 이야기하기도 전에 쿠나킨이 급히 입을 열었다.

“아. 방금도 말씀드렸다시피 저희가 직접 개입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일이 커질 수 있습니다. 더불어 연합이 러시아 차르국의 세력을 공격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남쪽에 있는 청나라와도 국경을 맞대게 될 텐데 저희가 직접 개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여러모로 곤란해서 말입니다.”

“그런가? 허면 지금처럼 용병 대장으로 불러야겠군.”

“예.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더불어 저들도 모두 공식적으로는 북미왕국 상단에서 고용한 용병으로 취급해주셨으면 하고요.”

“알겠네. 연합의 족장들에게만 슬쩍 이야기해두고 다른 병사들에겐 북미왕국 상단에서 고용한 용병이라고 알리겠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한 투란은 어느덧 선착장 관리의 안내를 받아 레나 요새 안쪽으로 이동하는 아이누 탐사대원들을 바라보다가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보다 북미왕국에서도 저렇게 병력과 물자를 지원해주었고 연합 병사들의 훈련도 거의 끝났으니...더는 주저할 이유가 없군. 바로 회의를 열고 연합의 방침을 결정해야겠어. 자네는 출정 준비를 해주게.”

거리가 거리였고 교통도 불편한 터라 연합의 족장들은 자신의 대리인을 이곳 레나 요새에 남겨두었다.

그런 만큼 곧바로 회의를 열 수 있었고, 대다수는 이미 야쿠트 족 족장의 말에 동의했기에 대리인들도 반대하지 않을 테니 이번에 열리는 회의는 거의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아이누 탐사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곧바로 준비하도록 하지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