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6화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5함대가 정식으로 창설되고 정성국이 직접 5함대의 출항을 배웅하기 위해 새김포를 방문할 거라는 소식에 잉글랜드 대사는 에스파냐, 네덜란드 대사와 함께 새김포를 방문했다.
그리고 5함대 소속의 전선들이 선착장에 나란히 정박해있는 모습에 에스파냐 대사는 감탄사를 토해냈다.
“허. 이렇게 보니 꽤 장관이로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처음 5함대의 정보를 접했을 땐 고작 9척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는데...이렇게 가까이서 직접 보니 존재감이 정말 대단하군요. 배가 커서 그런가...”
분명 최근 건조된 거대한 철선보다야 작긴 했지만, 북미왕국 전선들의 크기는 전열함보다는 큰 편이었기에 이렇게 나란히 정박해있는 모습만 하더라도 보는 맛이 있었다.
해서 잉글랜드 대사가 맞장구치자 에스파냐 대사는 전선의 갑판 위에서 하얀 정복을 입고 나란히 서서 선착장 아래에 있는 정성국을 향해 일제히 경례하는 북미왕국 해군 병사들의 모습을 보고 다시 감탄사를 토했다.
“허. 저 모습만 보더라도 북미왕국 해군이 얼마나 정예한지 짐작이 가는군요.”
“확실히...멋지긴 하군요.”
일반적으로 군대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뿐더러 열악한 환경으로 악명 높은 선상 생활까지 해야 하는 해군이라면 더욱 기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만큼 잉글랜드 해군은 해군 지원자들에게 괜찮은 급여와 대우를 해주었음에도 해군 지원자는 항상 부족했고 잉글랜드 해군은 해군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주로 항구에서 뱃사람으로 보이는 건장한 청년들을 강제 징집하던가, 아니면 경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해군 병사로 충원하는 만큼 저런 규율 잡힌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았고.
해서 잉글랜드 대사는 온몸으로 우리는 정예병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은 북미왕국 해군 병사들의 모습을 보고 부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네덜란드 대사가 입을 열었다.
“헌데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이번에 창설되는 저 5함대가 담당하는 구역은 남태평양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헌데 그 넓은 남태평양을 담당하는 함대 치고는 규모가 무척 작은 느낌인데...”
최근 북미신문에 남태평양 지도가 실린 만큼 잉글랜드 대사도 남태평양이 얼마나 광활한지, 그리고 그곳에 얼마나 많은 섬이 존재하는지를 알 수 있었기에 잉글랜드 대사도 네덜란드 대사의 말에 동의했다.
“예. 북미왕국 전선 중 가장 크고 강력하다는 천급 전선이 3척이나 있는 것을 보면 그만큼 북미왕국이 남태평양 지역을 신경 쓰는 것 같기야 한데...제가 보기엔 천급 전선을 건조할 돈으로 차라리 인급 전선을 여러 대 건조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 같기는 합니다만...”
그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네덜란드 대사가 끼어들었다.
“5함대는 굳이 인급 전선이 필요 없지요.”
“예?”
“남태평양에 5함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탐사대 중 가장 규모가 크다는 남태평양 탐사대가 있잖습니까.”
대사들이 북미왕국에 온 지도 많은 시간이 흘렀고 북미왕국의 각종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 만큼, 해군 탐사대의 존재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더불어 최근 북미신문에는 남태평양 탐사대가 발견했다는 수많은 남태평양의 섬들이 소개되고 있는 만큼 그 존재감도 강렬할 수밖에 없었고.
에스파냐 대사가 이를 언급하자 네덜란드 대사가 탄성을 질렀다.
“아...그러고보니 탐사선이 인급 전선과 동급 함이던가요?”
“예. 무장에서 약간 차이가 난다고는 하는데 기본적으로 탐사선은 인급 전선을 개조한 선박이라 해적선 서너 척 정도는 가볍게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북미왕국에서 굳이 5함대에 인급 전선을 배치하지 않은 거겠죠.”
그들이 파악하기로 다른 해군 탐사대와는 달리 남태평양 탐사대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남태평양은 워낙 넓기도 하고 북미왕국 본토와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 상선을 보내기도 쉽지 않아 아예 남태평양 탐사대에서 남태평양의 수많은 원주민 부족과 직접 교역하는 상황이었기에 각종 물자를 운반하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탐사선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북미왕국은 꾸준히 탐사선을 건조해 남태평양 탐사대에 집중배치 한 덕분에 어느덧 인급 전선과 동급이라는 탐사선만 해도 50척이 넘었으니.
다른 해군 탐사대의 규모가 10척 미만이고 다른 해군 함대들도 그 규모가 30척 미만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남태평양 탐사대의 규모는 어마어마한 편이었다.
더불어 탐사선의 기초가 되는 인급 전선이 유럽의 최신 전열함과 비슷한 체급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남태평양에 그 많은 탐사선을 배치한 북미왕국의 국력에 새삼 놀랄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에스파냐 대사의 설명에 잉글랜드 대사가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듣고보니 그럴싸하군요. 허면 남태평양이 생각보다는 안전하겠는데요?”
인급 전선과 전열함의 체급이 비슷하다지만 전투력까지 비슷하지는 않았다.
해서 유럽에서는 인급 전선 한 척을 상대하려면 전열함 3척은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었고.
비록 탐사선이 인급 전선보다 무장은 빈약한 편이지만 북미왕국의 후장식 화포와 작열탄을 생각해보면 전열함도 아니고 해적선을 상대하기에는 충분해 보였기에 이 탐사선들이 돌아다니는 남태평양은 생각외로 안전할 것 같아 이를 언급하자 에스파냐 대사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아마 그럴 겁니다. 해적들은 북미왕국 해군이라면 치를 떠는 만큼 아마 남태평양으로는 얼씬도 안 할 테니까요.”
북미왕국 해군의 강력함은 누구보다 해적들이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서인도제도의 해적들이 북미왕국 해군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북미왕국 해군의 강력하다는 것을 다른 지역의 해적들도 알게 되었고.
그런 만큼 북미신문을 통해 유럽에 남태평양의 지도가 알려진다 하더라도 감히 해적들이 남태평양에 어슬렁거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에스파냐 대사가 이야기하자 잉글랜드 대사는 잠시 입을 다물고 축사를 끝낸 정성국을 향해 다시 한번 절도 있는 모습으로 경례를 하는 5함대 병사들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흐음...그럼 기존의 항로보다는 남태평양을 통해 아시아로 가는 것도 괜찮겠군요. 물론 파나마 운하가 개통될 때의 이야기겠지만.”
“아?! 그거 괜찮군요. 북미왕국이 서인도제도에 진출한 이후 서인도제도에서 활동하던 해적들이 북미왕국 해군을 피해 지중해나 인도양으로 몰려든 덕분에 해적이 극성이니 말입니다.”
네덜란드 대사는 잉글랜드 대사의 말에 반색했다.
네덜란드도 최근 해적들이 기승을 부려 아시아 무역에 타격을 입었을뿐더러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네덜란드 해군이 큰 피해를 보았기에 항로의 안전을 위해 네덜란드 해군을 파견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러한 소식이 아프리카나 인도양 해적들의 귀에 들어가면 이들은 더욱 집요하게 네덜란드 선박을 노릴 테니 아시아 무역이 더욱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고.
네덜란드는 해외무역에서 벌어들이는 돈으로 굴러가는 나라인 만큼 이러한 상황이 장기화되면 결국 네덜란드는 망할 수밖에 없었기에 본국에서는 현 상황을 무척 걱정스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잉글랜드 대사의 말처럼 기존의 아프리카를 우회하는 항로가 아닌, 대서양에서 파나마 운하를 거쳐 태평양을 횡단하는 항로라면 항해 거리는 길어지더라도 안전은 보장되는 만큼 현 네덜란드 상황에서는 이 파나마 운하를 경유하는 항로를 이용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에 밝은 표정을 짓자 잉글랜드 대사는 네덜란드의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했기에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예.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해적들의 습격도 잦고 해적들끼리 손을 잡고 함께 공격하는 통에 아시아 무역이 위축될 정도니까요. 물론 북미왕국의 등장 이후 아시아 무역의 중요성이 떨어지기야 했는데...그래도 차나 향신료를 구하려면 결국 아시아로 가야 하니.”
이러한 두 대사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에스파냐 대사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스파냐야 파나마 운하와 관계없이 태평양을 이용해 아시아 무역을 하고 있었기에 이러한 상황을 잘 몰랐으니까.
“아. 최근에 유럽에서 차와 향신료 가격이 오른 것도 다 그 때문입니까?”
“그렇습니다.”
잉글랜드 대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네덜란드 대사가 조금은 급한 표정으로 에스파냐 대사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말인데 파나마 운하 공사는 어떻게 진행 중인지 알 수 있을까요?”
“제가 듣기로 파나마 운하 공사는 무척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년 정도면 예정대로 운하 공사를 끝내고 운하를 개통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에스파냐 대사의 대답에 네덜란드 대사는 안도하면서도 새삼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허. 정말 놀랍군요. 물론 파나마 지역의 지형을 고려하면 운하의 거리가 짧은 편이긴 한데 고작 3년 만에 운하 건설을 완료할 것 같다니...”
“그러게 말입니다.”
잉글랜드 대사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자 에스파냐 대사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예. 저도 놀랐습니다. 처음에 북미왕국이 3년이면 파나마 운하를 건설을 완료할 수 있다고 말은 했지만, 솔직히 어렵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거야 당연하지요. 비록 거리가 짧다 하나 평야도 아니고 산맥이 가로막고 있잖습니까.”
“그렇지요. 해서 저도 그렇고 누에바 에스파냐의 관리들도 전부 3년 안에 운하 공사를 끝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했는데...최근에 누에바 에스파냐의 관리들의 편지를 읽어보면 파나마 운하 공사의 진행 속도에 경악을 금치 못하더군요. 화약과 각종 건설 장비를 이용해 엄청난 속도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에스파냐 대사가 파나마 운하 공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자 잉글랜드 대사와 네덜란드 대사는 귀를 기울여 이를 듣고 감탄했다.
“허. 엄청나군요.”
“건설 장비가 의외로 대단한가 보군요?”
“예. 일단 그 경유라는 것만 넣으면 계속해서 움직이면서 각종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 말에 잉글랜드 대사는 건설 장비가 무척 탐났지만, 어차피 북미왕국이 건설 장비를 팔지는 않을 것 같아 최근에 한창 연구 중인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건설 장비라도 개발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에스파냐 대사와 협상해서라도 건설 장비의 정보를 최대한 확보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네덜란드 대사가 입을 열었다.
“흠. 그러고 보면 북미왕국은 파나마 운하도 순조롭게 건설 중이니...북미왕국이 나선다면 수에즈 운하도 건설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으음...수에즈 운하라...”
북미왕국이 파나마 운하를 건설 중이라는 소식에 유럽 각국의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은 종종 수에즈 운하의 건설 가능성을 논의하곤 했었다.
수에즈 운하가 건설되면 유럽에서 아시아로 이동하는 거리가 극단적으로 줄어드는 만큼 오히려 파나마 운하보다는 수에즈 운하가 더 매력적으로 보였고.
물론 지금까지야 파나마 운하 공사가 과연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까 싶어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에스파냐 대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북미왕국은 파나마 운하 건설을 성공적으로 완료할 수 있어 보이는 만큼 잉글랜드 대사가 꽤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에스파냐 대사는 회의적인 표정으로 답했다.
“물론 북미왕국의 역량이라면 수에즈 운하를 건설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지야 않는데...파나마 운하와는 사정이 다릅니다. 파나마 운하야 개통되면 북미왕국도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만큼 북미왕국이 파나마 운하 건설 비용까지 떠맡으면서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수에즈 운하는 다르지요. 북미왕국이 굳이 나설 까닭이 있겠습니까.”
에스파냐 대사의 말처럼 북미왕국에 건설 비용까지 감당하며 파나마 운하를 건설하는 것은 파나마 운하가 북미왕국에 무척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대사들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면 해군 함대는 자유롭게 태평양과 대서양을 오갈 수 있다는 것도.
그리고 이 때문에 북미왕국에서 파나마 운하를 건설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기에 잉글랜드 대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흐음...그럼 수에즈 운하를 개통하려면 결국 오스만 제국이 나서야 한다는건데...”
“오스만 제국은 굳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운하를 건설할 생각은 없을 겁니다.”
에스파냐 대사가 고개를 젓자 네덜란드 대사가 의아한 듯 질문을 던졌다.
“운하 건설 비용이야...운하 이용료를 통해 충당할 수 있지 않습니까?”
“글쎄요. 운하 건설 비용을 회수하는 데는 무척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파나마 운하 건설 비용만 하더라도...솔직히 북미왕국이 50년 안에 파나마 운하 건설 비용을 회수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니까요.”
“허. 그 정돕니까.”
네덜란드 대사가 무척 놀란 표정을 짓자 에스파냐 대사가 조금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예. 누에바 에스파냐 관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북미왕국의 공사 현장은 뭐랄까...돈으로 시간을 단축하는 느낌이 강해서 말입니다.”
“끙...”
그 말에 네덜란드 대사가 고개를 저을 때 에스파냐 대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비용을 떠나서 오스만 제국이 굳이 수에즈 운하를 건설해야 할 필요가 없지요. 오스만 제국이야 굳이 수에즈 운하가 없더라도 아시아와 무역하는 것은 어렵지 않고 수에즈 운하가 건설되면 오히려 이곳을 이용하는 외국 선박 때문에 여러 문제가 생길 가능성만 커질 뿐이지요. 그러니 천상 다른 나라가 오스만 제국을 설득해야 하는데...”
어차피 프랑스를 제외하면 유럽 각국은 오스만 제국과 그리 우호적인 관계는 아니었고 프랑스는 북미왕국과 우호적인 관계가 아니었기에 잉글랜드 대사는 아쉬운 한숨을 내뱉었다.
“휴우. 현실적으로 어렵겠군요.”
“예. 파나마 운하처럼 북미왕국이 오스만 제국을 설득해 운하 건설 비용을 감당하고 수에즈 운하를 건설하는 것이 최선이긴 한데...북미왕국이 과연 수에즈 운하를 건설하려 들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오히려 파나마 운하 이용률이 줄어들 텐데요. 물론 중동 지역에 식민지나 영토가 있으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에스파냐 대사의 말에 잉글랜드 대사와 네덜란드 대사는 그건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선착장을 빠져나가는 5함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