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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495화 (495/850)

495화

정성국은 한창 늦더위가 기승을 부릴 시기에 집무실을 방문한 해군 탐사대장을 보고 활짝 웃으며 반겼다.

“이야. 이거 오랜만이네. 해군 탐사대장. 아니. 이젠 5함대 사령관이라고 불러야겠지?”

해군 탐사대장이 평소보다 이르게 새한성에 도착한 것은 조만간 남태평양을 담당하는 5함대가 창설되고 이 5함대의 사령관으로 낙점된 것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었다.

해서 정성국은 이제부터 해군 탐사대장을 5함대 사령관으로 부르겠다고 이야기하자 해군 탐사대장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직 공식적으로 5함대가 창설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남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오늘은 해군 탐사대의 일로 전하를 찾아뵈었으니 이전처럼 해군 탐사대장이라고 불러 주시지요.”

“하하하. 알겠네. 일단 앉지.”

정성국은 자리에서 일어나 티테이블로 이동해 아이스크림을 꺼내 건네주었고 해군 탐사대장은 아이스크림을 맛보며 감탄했다.

“허. 젤라토도 맛있었는데 이것도 무척 맛있군요. 남태평양의 원주민들이 무척 좋아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러고 보니 남태평양의 원주민들은 젤라토나 빙수를 무척 좋아했지?”

탐사선에 발전기와 냉장고와 냉동고를 설치하게 되면서 남태평양 탐사대는 이를 이용해 원주민들에게 시원한 빙수나 젤라토 등을 대접해 손쉽게 원주민들의 호의를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이전에 지나가듯 했었기에 정성국이 다시 웃음을 터트리자 해군 탐사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무래도 더우니까요. 해서 나중에 은퇴하게 되면 발전기를 장착한 조그마한 배를 사서 남태평양의 섬들을 돌아다니며 빙수 장사나 할까 생각했는데...이것도 괜찮겠는데요?”

해군 탐사대장의 말에 정성국은 피식 웃었다.

“아직 한창때인데 벌써 은퇴를 생각하다니. 큰일 날 소리. 70살 이전엔 꿈도 꾸지 말게.”

“그건 조금...”

“하하하.”

정성국은 웃음을 터트리며 다시 근황에 관해 대화를 나누다가 슬쩍 질문을 던졌다.

“그래. 북미왕국의 사정에 따라 자리를 옮기는 것이 아쉬워서 은퇴를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

이런 정성국의 질문에 해군 탐사대장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그동안 몸담았던 해군 탐사대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아쉽기는 했습니다만...오히려 5함대를 맡게 되면 남태평양을 떠날 일은 없으니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니 전하께선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하. 남태평양에 오래 있다 보니 그곳에 푹 빠진 모양이군.”

정성국의 말에 해군 탐사대장은 다시 남태평양을 풍광을 생각하는지 미소를 감추지 못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정말 아름다운 풍경만이 가득한 곳이니까요. 아. 물론 북미왕국도 다양하고 장엄하며 경이로운 풍경이 곳곳에 존재하긴 합니다만...”

“아. 느낌은 좀 다르지. 나도 이전에 하와이 제도를 가본 적 있으니 무슨 느낌인지 알고. 하. 나도 다시 하와이나 다른 남태평양 섬을 방문하고 싶긴 한데 거리가 너무 멀어서 문제야.”

물론 정성국은 북미 대륙의 자연경관 쪽이 더 취향이긴 했지만, 이전에 하와이를 방문했을 때도 그렇고 남태평양 탐사대가 찍어오는 사진을 볼 때마다 한 번쯤은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만큼 투덜거리자 해군 탐사대장이 웃으며 대꾸했다.

“아무래도 그렇지요. 그래서 가까운 하와이조차 관광객이 많지 않고요.”

“엉? 많지 않다고? 있긴 있다는 거네?”

“예. 하와이의 풍광이 이국적이고 아름답다는 것이 점차 알려지면서 최근엔 하와이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종종 보입니다. 그 때문에 관광객들이 머물 근사한 숙소도 여럿 건설 중이고요.”

정성국은 새삼 북미왕국 백성들이 꽤 여유롭게 사는 것 같았기에 뿌듯하기도 했고 또 부럽기도 해 묘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해군 탐사대장이 덧붙였다.

“그리고 최근 오하우 섬의 노인과 여성들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이런저런 전통 세공품이나 전통 음식 등을 팔고 이게 관광객들에게 꽤 호평이라...관광객들이 계속 늘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하하. 그것 참...”

그렇게 정성국은 해군 탐사대장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남태평양의 분위기를 파악하다가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난 후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보다 호주의 금광 개발은 어떻게 되어가나?”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일전에 보고한 것처럼 호주의 금들은 비교적 지표면에 가깝게 묻혀있어서 별로 어려울 것도 없지요. 덕분에 분어룽 인근의 금광은 벌써 4개월 전에 채굴을 시작했고 미안진 인근의 금광은 저번 달에 채굴을 시작했습니다.”

“호오. 그래?”

순조롭게 채굴 중이라는 해군 탐사대장의 보고에 정성국이 기뻐하자 해군 탐사대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예. 해서 제가 복귀할 때 두 곳에서 캔 금을 가져왔는데...두 금광에서 나온 금을 합치면 약 10톤 정도 됩니다.”

그 말에 정성국은 새삼 놀랍다는 듯 탄성을 질렀다.

“와. 얼마 캐지도 않았는데 그 정도라고?”

전생의 가치로 따져봐도, 현재의 가치로 따져봐도 금 10톤은 엄청난 금액이었다.

헌데 이걸 1년도 아니고 몇 달 만에 캤다는 소리는 그만큼 호주에 많은 금이 묻혀있다는 뜻이었기에 정성국이 감탄을 금치 못하자 해군 탐사대장이 웃으며 대꾸했다.

“예. 그리고 아직은 금광에서 일하는 원주민의 숫자가 많지 않을 것을 감안하면...나중엔 한해에 100톤 정도는 거뜬히 채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정성국은 100톤의 가치를 빠르게 셈해보고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미소를 감추지 못하며 중얼거렸다.

“크으. 그렇게만 된다면야...당분간 금이 부족해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겠군.”

“그렇지요. 그리고 호주의 원주민들도 이 금이라면 충분히 자립할 수 있을 테고요.”

그 말에 정성국은 금을 생각하며 히죽거리던 것을 멈추고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해군 탐사대장을 바라보았다.

“그렇지. 다만 금이 무한하게 묻혀있지는 않을 테니 금을 캐서 우리에게 팔아 생긴 자금을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할 테고...그러자면 제대로 된 정치 세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

정성국은 슬슬 호주의 원주민 부족들을 통합해 부족 연합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해 이렇게 이야기하자 해군 탐사대장은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저번 달에 남쪽의 쿨린 연맹부터, 북쪽의 만바라 족까지 호주 동해안에 사는 모든 원주민 부족의 족장들이 미안진에 모여 회합을 가졌습니다.”

“어? 무슨 일로?”

정성국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해군 탐사대장인 조금은 짓궂은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그동안 저희가 호주 바깥의 사정을 열심히 이야기했거든요. 특히 저 가까운 동남아시아의 원주민들은 향신료를 탐낸 유럽인들이 쳐들어와 대부분은 노예가 되어 하루종일 향신료를 재배하느라 쉬지도 못한다는 뭐 그런 이야기를요.”

이에 정성국은 대소를 터트렸다.

“푸하하. 동남아시아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번에 금광이 개발되면서 본격적으로 금을 채굴하기 시작하자 불안해졌다 이건가?”

“예. 이제 원주민들도 금의 가치를 알게 되었고...유럽인들이 호주에 금이 많이 묻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들이 호주로 쳐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물론 유럽인들이 호주에 집적댄다면야 저희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는 사실은 아직 모르니까요.”

물론 에스파냐, 네덜란드와 남태평양 문제를 논의해 협정까지 맺었지만, 이 협정을 아직 공개하지는 않았다.

남태평양 지도를 정식으로 공개한 이후에나 협정 내용을 알릴 생각이었고 남태평양 지도 공개는 5함대 창설과 함께 알릴 예정이었기에 지금까지 미뤄졌던 것이다.

그러니 원주민들이 이 사실을 알 리가 없었고.

“그래서?”

“미안진의 족장이나 쿨린 연맹의 족장들에게 지나가듯 시베리아 부족 연합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부족끼리 연합해 힘을 합쳐 자신들을 지배하던 러시아 차르국을 물리쳤다는 식으로. 그러니 이에 흥미를 보였고...뭐 저희가 원하는 대로 호주 동해안 부족들이 미안진에 모여 부족의 미래에 관해 격론을 거친 후에 결국 호주 연합을 결성했습니다.”

해군 탐사대장의 말이 끝나자 정성국은 탄성을 지르며 중얼거렸다.

“허. 물론 그런 식으로 흘러가게끔 유도하긴 했지만, 우리가 직접 개입하기도 전에 연합을 결성할 줄은 몰랐네.”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연합을 결성하고 족장들이 모여 합의한 것이 바로 시베리아 부족 연합처럼 연합 직속 군대를 만드는 문제였고 일단 각 부족에서 남성들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규모는?”

“3천 명 정도지요. 다만...이들은 화약 무기에 익숙하지도 않고 단체 행동이나 훈련 경험도 없는 터라 저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머스킷 3천 자루와 이들이 머물 병영 건설, 그리고 병사들의 훈련도 일단 저희가 맡기로 계약했습니다.”

정성국은 그 말에 전생의 석유가 펑펑 나와 돈으로 인프라를 건설하고 군대를 훈련시켰던 중동의 부국들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잘 했네. 물건을 팔아 저들이 캐는 금을 사는 건 한계가 있을 테니까.”

“예. 다만 이런 식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아예 발전기나 증기기관을 비싸게 팔아먹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흠. 그건 조금 고민해보자고.”

정성국이 기술 유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은 해군 탐사대장도 잘 알고 있었지만, 조선에 넘긴 것처럼 막대한 돈을 받고 초기 증기기관을 팔거나, 혹은 호주 연합과 협상해 호주에 발전소를 건설해 전기를 파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나중에 슬쩍 이를 이야기해봐야겠다 생각하고 일단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정성국은 티테이블 인근에 있는 지구본을 돌려 남태평양 지역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호주 원주민들은 연합을 결성했고...지금이야 연합의 영역이 호주 동해안에 불과하지만, 어차피 유럽 세력은 우리 때문이라도 호주를 탐내지는 못할 테니 결국 연합이 호주를 장악하게 되겠군.”

“예.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럼 호주는 그렇다고 치고. 다른 지역들은?”

그 말에 해군 탐사대장은 품에서 지도를 꺼내 정성국에게 조심스럽게 건넸고, 정성국은 지도를 펼쳐 티테이블에 올려두자 해군 탐사대장이 말했다.

“이게 올해 우호적인 관계를 맺은 부족들입니다.”

작년과는 달리 더 많은 섬에 빗금이 처져 있었다.

“휘유. 꽤 많네? 이 정도면 거의 남태평양의 부족 가운데 80프로 정도는 되나?”

작년보다 거의 2배에 달하는 영역이 빗금 처져 있었기에 정성국이 감탄사를 토하자 해군 탐사대장은 조금 지친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나머지 부족도 어떻게든 설득해보려 했지만...”

“아. 괜찮네. 내가 작년에도 이야기하지 않았나. 어차피 상관없다고. 이미 에스파냐나 네덜란드와도 비밀리에 협정을 체결했네. 그러니 이번에 5함대를 창설하고 남태평양 지도를 공개하면서 이들과 모두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고 우리가 이들을 보호할 거라고 선언하면...어차피 해적 말고는 섣불리 이 지역에 접근하진 못할 거야.”

어차피 모든 남태평양의 원주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야 없었다.

일부는 북미왕국이 자신들을 억압한다고 느낄 수도 있었고.

특히 통가 왕국의 경우가 그랬다.

주변 부족들이 북미왕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북미왕국은 통가 왕국에게 이들을 건드리지 말아 줄 것을 요청하면서 사이가 틀어진 셈이었으니.

다만 이 정도면 남태평양의 원주민 대부분은 북미왕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다고 봐도 되었고, 국력은 북미왕국이 월등한 만큼 어쩌면 유럽은 이들을 보호국으로 인식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유럽의 각국은 결코 남태평양에 식민지를 건설하겠다고 나대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해 괜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지만, 해군 탐사대장은 조금 걱정이라는 듯 말했다.

“그래도 북미왕국의 영토가 아닌 이상 상인들은 드나들테고...그러다보면 모두가 북미왕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텐데요?”

이에 정성국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다고 이미 남태평양 곳곳에 우리의 전선들이 순찰하는데 일부 섬들을 점령해 식민지를 만들겠다고 해군을 보내겠나. 우리가 무슨 딴지를 걸 줄 알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게.”

“아. 그건 그렇군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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