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4화
북미왕국의 여객선을 타고 무척 쾌적하게 개항장에 도착한 조선 사절단 일행은 개항장에서 원상이 준비한 배를 타고 한양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번 사절단의 정사였던 병조판서는 대전에서 조선의 국왕인 이연에게 북미왕국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히 이야기했고 가져온 여러 물건과 사진들을 이연에게 바쳤고.
그렇게 대전에서 나온 병조판서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오랜만에 보는 가족들과 잠시 회포를 풀고 휴식을 취한 후 늘 그랬듯 다른 신하들이 퇴청할 시간이 되자 정태화의 저택으로 향했다.
역시나 정태화의 사랑방은 조정 대신들로 가득했고 병조판서가 나타나자 다들 반기며 질문을 던져대기 시작했다.
“대전에서 한 이야기가 정말 사실입니까? 정말로?”
“그럼요. 어찌 국왕 전하께 허튼소리를 하겠습니까. 비행기라는 기물이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모습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지요.”
이들이 대전에서 병조판서의 이야기를 듣고 가장 놀란 것이 바로 비행기라는 하늘을 나는 기물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무리 북미왕국의 기술 수준이 높다 한들 사람이 하늘을 나는 것이 가당키나 하던가.
그건 이연도 마찬가지여서 계속 비행기에 관해 묻다가 일단 그가 가져온 북미신문을 비롯한 각종 보고서, 그리고 사진 등을 직접 확인한 후에 다시 병조판서를 불러 질문을 할 생각으로 일단 넘어갔을 정도였으니.
그렇기에 병조판서가 제발 믿어달라는 어투로 대답했을 때 사절단의 부사로 함께 북미왕국을 방문했던 예조참판이 사랑방을 들어오면서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아쉽게도 새나주-새목포 구간 철도 공사 현장을 방문하느라 첫 공개 시범 비행을 놓치기는 했습니다만...저희가 떠나기 전까지 2, 3일에 한 번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자유롭게 창공을 누비는 비행기가 보였지요. 그것도 여러 대의 비행기가 대열을 이루며 나란히 비행하는 모습이란...”
그 말에 예조판서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얼굴로 탄식하며 중얼거렸다.
“허. 아무리 북미왕국의 기술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그렇지...어찌 인간이 하늘을 자유자재로 난다는 말씀입니까.”
예조판서의 탄식에 다른 조정 대신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리 병조판서와 예조참판이 직접 목격했다고 해도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는 와중에 유철이 인상을 찌푸리며 무언가를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생각해보니 임진년에 그런 이야기가 있지 않았습니까? 하늘을 나는 기물이 있었다는?”
“예? 그게 무슨...”
일부는 유철의 말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일부 나이가 지긋한 조정 대신들은 유철의 말에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다가 탄성을 터트렸다.
“아! 기억납니다. 비차...였던가요?”
이에 유철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지금까지는 그저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여겼는데...북미왕국에서 개발했다는 비행기라는 기물을 생각해보니 실제로는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말에 일부는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증기기관을 만들고 북미왕국의 과학 기술을 발전시켰던 것이 조선에선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조선의 장인들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만큼, 비차를 개발한 인물도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싶어서.
그때 유철의 말을 듣고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정태화가 입을 열었다.
“흐음...제 기억으로 그 이야기는 영남 지방에서 돌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예. 저도 그렇게 기억합니다. 영남 지방에서 왜적이 읍성을 포위했을 때 그 비차를 타고 도망칠 수 있었다고 들었지요.”
유철이 맞장구치자 병조판서가 조선에도 비행기와 비슷한 기물이 만들어졌었다는 이야기에 꽤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사람을 보내 자세히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물론 임진년 때의 일이니 이미 비차를 만든 이는 죽었을 것 같긴 합니다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물론 하늘을 난다는 것이 신기한 일이기는 한데...”
호조참판이 병조판서의 말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딴지를 걸자 병조판서는 호조참판이 비행기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봤던 비행기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 군사 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 비행기가요?”
호조참판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병조판서를 보자 병조판서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호조참판을 비롯한 사랑방의 여러 조정 대신들을 한번 쓱 훑어본 후 입을 열었다.
“예. 하늘에서 비격진천뢰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해보시지요.”
“헉!”
“아!”
비격진천뢰는 임진왜란 중에 화포장인 이장손이 개발한 무기로 도화선을 사용하는 일종의 지연 신관 폭탄에 가까웠다.
보통은 중완구로 발사하지만, 병조판서의 말처럼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 수 있다면 굳이 화포로 발사할 필요 없이 하늘에서 원하는 곳에 비격진천뢰를 떨어뜨리면 그만이라는 병조판서의 말에 호조참판이 그 광경을 상상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그렇군요. 거기에 하늘에 있으니 적 장수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곳에 비격진천뢰를 떨어뜨린다면...”
“예. 적은 혼란에 빠질 테니 손쉽게 승리를 얻을 수 있겠지요.”
병조판서의 대답에 조정 대신들은 신음을 흘리며 비행기가 생각보다 군사적인 가치가 높다는 것을 인정하고 비행기를 개발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으음...비차와 비행기가 과연 같은 기물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비차에 대해 알아볼 필요는 있겠습니다그려.”
“예. 비차와 비행기가 다른 기물이라 하더라도 비차도 하늘을 날 수 있으니 비행기처럼 사용할 수도 있겠지요.”
“그게 어려워도 비차를 연구해 비행기를 개발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도 있을 테고요.”
그렇게 결론을 내린 조정 대신들은 내일 대전에서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논의하기로 했을 때 누군가가 병조판서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 그러고 보면 비행기도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기물입니까?”
“분명 기관을 탑재한 것 같기는 한데...그게 증기기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병조판서의 대답이 끝나자 예조참판이 덧붙였다.
“예. 자세한 정보는 거의 함구하는 분위기였고 멀리서 하늘을 나는 비행기만 봤을 뿐이지 가까이 접근조차 할 수 없어서 말입니다.”
그 말에 조정 대신들은 비행기에 대한 정보가 빈약해 조금 아쉬워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럼 혹시 모르니 증기기관의 연구도 더 박차를 가해야겠군요.”
“예. 그래서 비행기를 개발할 수 있다면...더는 청나라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을 것 같고요.”
“맞습니다. 그리고 고민 없이 주나라와 손을 잡을 수도 있겠지요.”
이에 병조판서와 예조참판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예? 그게 무슨...”
“지금 주나라라고 하셨습니까?”
둘의 반응에 예조판서가 입을 열었다.
“아. 모르시겠군요. 최근 주나라에서 밀사를 보내왔습니다.”
“...예?!”
* * *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이야기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되물었다.
“주나라에서 조선에 밀사를 보냈다고? 오삼계가 건국했다는 그 주나라?”
“그렇습니다. 전하.”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허. 대체 무슨 수로 조선까지 밀사를 보낸 거지? 이미 해안가는 청나라가 거의 장악하고 있지 않나?”
삼 번 중 두 번이 청나라에 항복하면서 해안에 접한 절강, 복건, 광동과 광서의 해안가를 청나라가 장악했고, 주나라는 내륙인 운남, 사천, 귀주, 호북, 호남, 광서 내륙 지역을 영역으로 삼아 청나라와 맞서 싸우고 있었다.
그런 만큼 청나라도 국경 통제를 철저히 하고 있을 텐데 용케도 밀사를 조선까지 보냈다는 생각에 정성국이 감탄하자 조용한 곰이 답했다.
“상인으로 위장해 어떻게 배를 구해 조선으로 온 모양입니다.”
“허. 밀사의 수완이 놀라울 정돈데?”
이에 조용한 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확실한 것은 아닌데...송상이 이 일에 관여한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뭐?! 송상?”
“예.”
정성국이 무척 놀란 표정이자 조용한 곰은 개항장에 파견된 관리와 원상을 통해 파악한 정보를 정성국에게 보고했고 정성국은 이를 듣다가 의외의 내용에 입을 열었다.
“허. 그러니까 그동안 송상과 밀거래하던 상단 중에 오삼계와 연결된 상단이 있었다는 소린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오삼계는 조선의 인삼을 무척 좋아한다더군요. 그래서 송상은 최상품의 인삼을 이용해 그의 환심을 산 듯하고요.”
그 말에 정성국은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어? 인삼 때문에 전생보다 오래 사는 건가? 설마...아니겠지?’
전생이라면 이미 노환으로 죽었어야 하는 오삼계가 아직도 정정하게 살아있어 청나라는 몇 번이고 주나라의 수도가 위치한 호북을 공격했지만, 계속 실패했다.
헌데 이러한 변화가 송상이 오삼계의 환심을 사기 위해 넘긴 최상품의 인삼 때문이라면 인삼이 중국의 역사를 비틀고 있는 셈이었기에 정성국은 묘한 표정을 지었고.
그러다 정성국은 잡생각을 멈추고 조용한 곰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송상의 사정이 그렇게 안 좋은가? 잘못하면 상단이 공중 분해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밀거래야 다른 상단들도 알음알음했던 일이고 작년에는 조정에서 인삼을 전매품으로 지정한 대가로 대외무역을 허락한 만큼 이제 와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지만 송상이 주나라와 연결되었다는 소문이 퍼지기라도 한다면 청나라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헌데도 셈이 빠른 송상이 이런 위험을 감수하며 주나라와 연결된 상단과 계속 거래했다는 것이 의아해 질문을 던지자 조용한 곰이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원상의 실체를 모르는 조선의 상단들은 원상이 저희와의 무역을 독점하며 막대한 이득을 챙기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삼계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무역을 독점하겠다 이건가?”
“그런 셈이지요. 그리고 처음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킬 때만 하더라도 그 기세가 대단했잖습니까. 장강 이남은 거의 반란군의 영역에 가까웠으니. 그러다 보니 잘만 하면 대륙과의 무역을 독점해 막대한 이문을 챙길 수 있을 것으로 보였나 봅니다.”
조용한 곰의 설명에 정성국은 확실히 송상이 욕심에 눈이 뒤집힌 것 같아 혀를 찼다.
“쯧쯧. 그래도 상황이 바뀌었으면 바로 털고 나올 것이지...”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튼, 주나라는 송상을 통해 이런저런 정보를 조금 들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조선이 청나라를 썩 탐탁지 않아 한다는 사실과 조선이 청나라와 전쟁을 벌인다면 저희 북미왕국도 이 일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까지 알고 어떻게든 조선을 회유하기 위해 별에 별소릴 다 한 모양입니다.”
그러면서 주나라는 밀사를 통해 조선이 자신들의 손을 잡고 청나라에 반기를 든다면 조선에 몇 개의 항구를 완전히 개방해 조선의 상인들이 직접 청나라 상인들과 거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과 동등한 외교 관계를 수립하겠다는 것을 이야기하자 정성국은 자신이 들은 것이 정말인지 무척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허. 동등한 외교 관계? 주나라에서 정말 그런 소리를 했다고? 주나라가 황제국인데 동등한 관계를 맺겠다면...조선이 칭제해도 묵인하겠단 소리나 다름이 없는데?”
“그만큼 주나라의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뜻이겠지요. 이미 두 번은 반란에서 이탈하고 6개 성만 어떻게든 지키고 있는 형국이니까요. 오삼계로서는 청나라를 어떻게든 흔들 필요가 있는데 조선이 황제국을 칭한다면 청나라는 조선을 신경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밀사는 칭제를 논하며 조선 국왕의 야심을 부추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말에 정성국은 조금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았다.
“으음...그럼 조선의 반응은?”
지금 조선 조정을 장악한 소위 개화파들은 반청에 가까웠기에 정성국이 조금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짓자 조용한 곰은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물론 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정예병이 있긴 한데...그 수가 적을뿐더러 아직 호란의 기억이 있는 조선으로선 섣불리 청나라와 적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거기에 주나라의 밀사가 조선에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조선은 꽤 곤란해지고요. 해서 별다른 답을 주지 않고 추방 형식으로 곧바로 돌려보낸 모양입니다.”
비록 조선이 신식 소총으로 무장해 나름의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들 현시점에서 청나라와 대놓고 적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일부는 이 기회에 조선도 칭제하기를 원했지만, 다수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었다.
일단 조선 조정의 재정을 늘리기 위해 북미왕국에서 차관을 얻어 수리시설을 정비하고 염전을 개발하고 있었지만, 아직 재정에 여유가 있는 편은 아니었으니.
물론 북미왕국이 자신들을 도와준다면 해볼 만은 한데 아무리 북미왕국이 형제국에 가깝다고 한들 북미왕국만 믿고 청나라와 전쟁을 결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이런 분위기를 조용한 곰이 정성국에게 자세히 설명하자 정성국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다행이군. 만약 조선이 칭제할 뜻을 우리에게 밝혔다면 여러모로 곤란했을 거야. 일단 3년간 신식 소총 생산 물량은 모두 유럽으로 보낼 예정이었으니 당장 전쟁이 벌어져도 조선에 신식 소총을 넘기기도 어렵고.”
“그렇지요.”
“다만...밀사가 조선 정부와 접촉했다는 사실을 가지고 주나라가 장난칠 수도 있어. 물론 밀사라 하더라도 일단 한 나라의 사신이라 밀사를 건드리지 않고 돌려보낸 것을 이해는 하는데 청나라가 이 사실을 알면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스럽군.”
정성국의 지적에 조용한 곰은 신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으음...주나라에서 떠벌릴 수도 있을 거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래. 저들이 상황이 안 좋다면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다 이용하려 들 테니 말이야.”
조용한 곰이 생각하기에도 주나라는 청나라의 공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라도 조선에 밀사를 보낸 사실과 조선이 긍정적으로 반응했다는 거짓 소문을 퍼트릴 가능성이 충분했기에 조금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만약을 대비할 필요가 있겠군요.”
“그래. 물론 조선과 우리의 관계를 잘 아는 청나라가 곧바로 조선을 압박할까 싶기는 한데...항상 최악을 대비해야 어떤 일에도 대응할 수 있으니 이 부분은 내가 군사청장에게 따로 이야기해두지.”
“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