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1화
정성국은 개발청장이 집무실을 나간 후 곧바로 호위대장에게 지혜로운 나무가 현재 어디 있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지혜로운 나무가 지금 연구청 연구소에 있다는 호위대장의 보고에 곧바로 연구소로 향했고.
자신의 연구실에서 한창 다른 연구원들에게 무어라 지시하던 지혜로운 나무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정성국을 보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오셨습니까. 전하.”
“오랜만이군. 지혜로운 나무.”
정성국은 지혜로운 나무와 잠시 대화를 나누다 주변을 살펴보고 입을 열었다.
“그보다 연구원이 갑자기 꽤 늘어난 모양인데? 이전보다 무척 북적거리는 느낌이야.”
이에 지혜로운 나무는 빙긋 웃으며 답했다.
“제가 새한성 대학교에서 전기공학을 가르친 지도 벌써 4년이 흘렀잖습니까. 해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첫 졸업생들을 모두 연구청으로 데려왔으니 좀 북적이긴 하지요.”
“아. 참. 벌써 그렇게 되었나.”
수력 발전소를 건설하고 이곳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실생활에 사용하게 되면서, 전기공학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정성국은 새한성 대학교에 전기공학과를 신설하라고 지시했고, 덕분에 지혜로운 나무는 새한성 대학교와 연구청 연구소를 오가며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환한 빛으로 어둠을 물리치는 가로등에 매료되어 전기에 흥미를 보여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던 대학생들이 어느덧 졸업생이 되어 연구청으로 들어왔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새삼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생각에 묘한 표정을 지었고.
“그리고 처음에는 오히려 연구에 방해만 되었는데...반년이 지난 지금 한 사람 몫은 어려워도 반사람 몫은 충분히 해주는 느낌이라서 말입니다. 덕분에 각종 연구 개발에도 진척이 있었고요.”
지혜로운 나무가 웃으며 그렇게 이야기하자 정성국은 정신을 차리고 기대가 잔뜩 섞인 눈초리로 지혜로운 나무를 바라보았다.
“호오. 그래? 그럼...”
정성국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지혜로운 나무가 먼저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예. 일단 자동 교환기의 시제품은 만들었습니다.”
“오!? 그게 정말인가?”
정성국이 오늘 지혜로운 나무를 만나러 발걸음을 옮긴 까닭이 바로 자동 교환기 개발의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자 함이었기에 이미 시제품을 만들었다는 지혜로운 나무의 대답에 반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지혜로운 나무가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예. 전류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고 그 전류 신호로 직접 장치를 조작해 회선을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그렇기에 이 자동 교환기를 사용하면 더는 교환원이 직접 회선을 연결할 필요가 없게 되겠지요. 그러니 통신 보안 문제도 해결될 테고요.”
현재는 수동 교환기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 수동 교환기는 교환원이 직접 회선을 연결해야 했기에 회선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교환원이 필요했다.
비용 문제야 어차피 전화를 사용하게 될 가입자들에게 추가로 돈을 받으면 그만이라지만 문제는 바로 통신 보안이었다.
수동 교환기의 경우 교환원이 직접 수동 교환기를 조작해 회선을 연결하는 구조였고, 처음 전화를 거는 사람은 교환원과 통화해 회선을 연결해달라고 요청해야 했기에 교환원이 사용하는 회선도 수동 교환기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교환원이 이 회선을 차단하지 않는다면 교환원도 통화를 그대로 들을 수 있었고 전생에서는 교환원도 통화에 끼어들어 함께 수다를 떨기도 했었다.
물론 원칙적으로야 통화를 원하는 두 회선을 연결한 후에는 교환원의 회선을 차단하게 되어 있었지만, 교환원이 마음만 먹는다면 손쉽게 통화를 들을 수 있었고 현재는 관리들만 전화를 사용하는 터라 교환원이 마음만 먹는다면 각종 고급 정보를 손쉽게 파악할 수도 있다는 점은 분명 문제였다.
해서 정성국이나 청장들이 사용하는 회선의 경우 보안을 위해 호위대원이 통신국에 상주하며 교환원이 회선을 차단하는지 감시하고 있을 정도였으니.
그리고 교환원이 필요 없는 자동 교환기는 이러한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만큼 정성국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며 연구실을 둘러보았다.
“그렇지! 헌데 그 자동 교환기는 어디 있나?”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지혜로운 나무는 못 말리겠다는 듯 웃으며 다른 방을 가리켰다.
“저 연구실에 있습니다.”
그 말에 정성국은 급히 발걸음을 옮겼고.
문을 열자 연구실 가운데 있는 커다란 책상 위에 사람 머리통만 한 크기의 장치를 보고 정성국이 지혜로운 나무를 바라보았다.
“오. 저건가?”
“예. 저 가운데 있는 장치가 바로 자동 교환기입니다. 물론 시제품이라 볼품은 별로 없습니다만...”
“외형이 무슨 상관인가. 작동만 잘하면 그만이지. 그보다 이게 자동 교환기면 저 장치는 전류 신호를 보내는 장치인가?”
정성국은 자동 교환기를 자세히 살펴보다 이 자동 교환기와 전선으로 연결된 전구와 원판이 장착된 장치를 보고 저 원판이 마치 전생의 옛날 전화기에 붙어 있는 회전 다이얼과 비슷해 보여 묘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지자 지혜로운 나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원판이 장착된 장치 쪽으로 이동하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걸 전화기에 장착해 사용자가 직접 전류 신호를 보내는 거죠. 그리고 저기 연결된 전구는 5번 회로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 장치를 회전시켜 5번 숫자가 적혀 있는 곳까지 움직인 후에 손을 떼면...”
지혜로운 나무는 원판을 5라는 숫자가 적혀 있는 부분이 중앙에 놓일 때까지 회전한 후 손을 떼었고 원판은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며 5번의 기계음을 냈다.
‘틱.틱.틱.틱.틱’
그러자 자동 교환기에 있는 톱니바퀴 모양의 판이 회전하기 시작했고.
‘철컥.’
회전하던 톱니바퀴 모양이 멈추자 다른 쪽에 연결되어 있던 전구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오?!”
그 광경에 정성국이 놀라자 지혜로운 나무가 설명했다.
“이렇게 5번의 전류 신호가 발생하고 이 신호로 자동 교환기가 움직여 회선이 연결됩니다. 지금이야 단순히 장치와 전구와 연결했기에 전구가 켜졌지만...”
“회선이 연결되었다는 뜻이니 저기에 전구가 아닌 전화기가 연결되어 있다면 통화를 할 수 있다는 뜻이지?”
“그렇습니다.”
지혜로운 나무가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은 눈앞의 이 자동 교환기를 자세히 살펴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설마 했지만 자동 교환기를 벌써 개발할 줄은 몰랐는데? 이거 계획을 좀 수정해야겠어.”
“예?”
“이미 보스턴까지 통신망 구축 공사가 완료되었다네.”
“어? 그렇습니까?”
어차피 통신망 구축은 개발청에서 진행하는 사업이었기에 지혜로운 나무는 상황을 잘 몰랐던지 정성국의 말에 꽤 놀란 표정을 지었고.
“그래. 해서 계획을 수정해 3차 공사는 미시시피 강을 따라 북쪽으로, 그리고 오대호를 따라 동쪽으로 통신망을 구축하기로 했지.”
“허. 대공사가 되겠군요.”
“그렇지. 그만큼 시간도 오래 걸릴 테고. 그러니 3차 공사와는 별도로 그동안 구축한 통신망을 제대로 이용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네.”
“흐음...민간에도 통신망을 개방하실 생각이시군요?”
“그렇지. 헌데 이 자동 교환기를 사용하게 되면 기존의 전화기는 무용지물이 되지 않나. 그러니 새로운 전화기를 개발할 때까지는 민간에 통신망을 개방하는 것을 조금 미루는 게 낫겠어.”
정성국이 기억하기로 전생에서 장의사였던 스트로저가 자동 교환기를 개발하긴 했지만, 이 자동 교환기가 곧바로 보급된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전화기를 사용했던 사람들은 이미 교환원에 익숙해졌기에 교환원에게 번호만 이야기하면 알아서 연결해주는 시스템에서 자신이 직접 다이얼을 돌려 전화를 연결해야 한다는 것을 불편해했고 또 이 간단한 조작마저 어려워했다.
이 때문에 스트로저와 손을 잡은 벨 연구소는 다이얼 사용법을 광고하면서 사람들이 다이얼 전화기에 익숙해지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이를 알고 있는 정성국은 아직 자동 교환기를 개발하기 전이라면 모를까 이미 시제품까지 나온 만큼 처음부터 다이얼 전화기를 민간에 보급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어디든 새로운 것을 쫓아가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존재했으니까.
이런 정성국의 이야기에 지혜로운 나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으음...새로운 전화기의 개발은 그리 어렵진 않을 겁니다. 저 장치와 전화기를 결합하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자동 교환기의 경우 아직 개량할 부분이 많은 터라 언제까지 개발을 끝낼 수 있다고 확답하긴 어렵습니다만...”
“개량?”
“예. 이 시제품의 경우 고작 10개의 회선이 전부입니다. 이걸 어디다 쓰겠습니까. 특히 민간에 통신망을 개방한다면 지금보다 필요한 회선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테니...”
“아. 자동 교환기의 회선 용량을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겠군.”
생각해보면 전생의 기계식 자동 교환기인 스트로저 교환기도 점차 발전해 교환기 하나에 1만 회선을 담당하게 되었던 만큼 그 정도까지는 개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정성국이 일리가 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지혜로운 나무가 덧붙였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자동 교환기를 크게 만든다 하더라도 회선 용량을 무한대로 키울 수야 없을 테니 자동 교환기끼리도 연결하기 위한 연구도 필요하지요. 그러자면 시간이 꽤 필요할 것 같습니다만...”
정성국은 지혜로운 나무의 이야기에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흠. 일단 전화기 공방을 확대하고 새한성 곳곳에 전화선을 설치하는 것만 하더라도 꽤 시간이 걸릴 걸세. 그러니 그때까지 연구를 진행해보고...개발 진행 상황을 보고 결정하자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자동 교환기와 새로운 전화기 문제를 마무리한 정성국은 슬쩍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무선 통신의 연구는 잘 되어가나?”
전화기를 개발한 이후 정성국은 지혜로운 나무에게 여러 가지 연구 과제를 던져주었는데 무선 통신도 그중 하나였다.
처음 정성국이 무선 통신의 개념을 이야기했을 때만 하더라도 황당한 표정을 지었던 지혜로운 나무였지만, 이미 정성국이 건네준 책에는 전자기파의 존재도 쓰여 있었고, 이미 음성 신호를 전기 신호로 바꾸어 전선을 통해 전달하는 방식 대신, 전자기파를 이용하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라는 정성국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고, 북미왕국의 땅덩이가 워낙 넓은 탓에 곳곳에 전화선을 설치해 통신망을 구축하는 것이 생각보다 막대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는데 이 무선 통신을 개발한다면 최소한 전화선을 곳곳에 설치할 필요는 없는 만큼 통신망 구축이 생각보다 쉬울 거라는 생각에 지혜로운 나무는 무선 통신의 연구도 함께 진행했었고.
“어느 정도 성과는 있습니다. 다만 전파를 송수신하는 장치를 개발하는 부분에서 조금 막혀있기는 한데...”
그러면서 지혜로운 나무는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정성국에게 보고했고, 이를 듣고 정성국은 생각보다 빠르게 무선 통신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계속 연구하게. 그러다 보면 실마리가 잡히겠지.”
“예. 그래야지요. 아. 그리고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
정성국이 고개를 갸웃하자 지혜로운 나무가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전하께서 일전에 언급하셨던 진공관을 개발했습니다.”
“헉?!”
진공관은 진공 속에서 전자의 움직임을 제어함으로써 전기 신호를 증폭시키는 장치인데 이 진공관은 전구를 개발하면서 만들어지게 되었다.
에디슨이 전구를 실험하는 과정에서 전구에 전극을 하나 추가해 보았는데 전극이 양전하를 띄면 전구에 불이 들어올 때 필라멘트에서 전극으로 전류가 흐르는 현상을 발견했고 이 현상을 이용한 것이 바로 진공관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미왕국은 이미 전구를 대량 양산하고 있었으니 정성국은 북미왕국에서도 진공관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 슬쩍 이야기했었지만, 벌써 진공관을 개발했다는 이야기에는 무척 놀랄 수밖에 없었고.
진공관의 개발로 전자제품이 만들어지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도저히 평온한 표정을 지을 수 없는 정성국이었다.
이에 정성국은 지혜로운 나무를 따라 다른 연구실로 이동했고 전구와 비슷해 보이는, 전생에서 사진으로 보았던 진공관을 보고 감회가 새로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게...이번에 개발한 진공관인가?”
“그렇습니다. 전하.”
지혜로운 나무는 정성국에게 이번에 개발한 진공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고 정성국은 이를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 스위치로 사용할 수 있는 2극관이로구나.’
진공관은 안쪽의 구조에 따라 분류되었는데 이번에 지혜로운 나무가 개발한 진공관은 필라멘트와 플레이트로만 이루어진 단순한 구조의 2극 진공관이었고, 이 2극 진공관은 플레이트에 음의 전압이 걸리면 전류가 흐르지 않고 양의 전압이 걸리면 전류가 흐르는 일종의 스위치 역할을 하게 되고, 이 스위칭 기능으로 훗날 진공관 컴퓨터가 탄생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성국은 눈앞의 진공관이 보물처럼 느껴졌기에 입이 귀에 걸릴 정도였다.
그리고 지혜로운 나무의 설명이 끝났을 때 정성국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허. 정말 고생했네.”
“아닙니다. 아직 부족하지요. 이 진공관은 전기 회로의 개폐기 역할은 할 수 있어도 전하께서 말씀하신 원리대로 전류를 증폭할 수는 없으니까요. 해서 계속해서 진공관 개량 연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3극 진공관부터는 전류를 증폭할 수 있고 전류를 증폭하는 것은 전기 신호를 증폭한다는 의미였기에 통신 기술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컴퓨터가 개발되기 전까지 진공관의 가장 주된 용도가 바로 이 증폭 기능이었고.
그렇기에 정성국은 지혜로운 나무를 보고 말했다.
“그래. 다른 연구도 중요하지만, 신호를 증폭할 수 있는 진공관의 개발은 통신 기술에 무척 요긴하게 쓰일걸세. 그러니 진공관 연구를 소홀히 하지 말아주게.”
“물론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새한성 대학교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졸업생들이 연구청에 들어올 테니 연구 인력도 늘어날 테고...이들을 이쪽에 투입할 예정이니 전하께서 말씀하신 증폭 기능을 하는 진공관도 곧 개발할 수 있을 겁니다.”
이에 정성국은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믿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