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9화
공개 시범 비행이 끝났지만, 유럽의 대사들은 쉽사리 귀빈석을 떠나지 못했다.
방금 보았던, 하늘을 자유자재로 나는 비행기의 존재는 솔직히 충격적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지 비행기가 착륙 후 들어간 거대한 천막을 응시하며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고.
하지만 경비대원들이 돌아다니며 오늘의 시범 비행은 모두 끝났고 더는 비행할 계획이 없다고 알리자 사람들은 아쉬움을 머금고 하나둘 발걸음을 옮겼고.
그렇게 사람들이 해산하면서 조금씩 조용해졌을 때 흥분을 완전히 가라앉힌 에스파냐 대사가 입을 열었다.
“북미신문 광고에 나온 것처럼 오늘은 정말 역사에 남을 것 같군요.”
그 말에 계속해서 굳게 닫힌 거대한 천막을 계속 응시하고 있던 네덜란드 대사가 대꾸했다.
“그렇지요. 아무리 기물의 도움을 받았다고는 하나 사람이 자유자재로 하늘을 날다니...”
“예. 북미왕국의 기술력이야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솔직히 하늘마저 정복할 줄은 몰랐습니다.”
잉글랜드 대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드넓은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를 보고 사람들은 새처럼 하늘을 날고자 하는 욕망을 품었다.
그렇기에 많은 천재나 괴짜들이 하늘을 날기 위해 연구하고 도전했지만 실제로 이에 성공한 사람은 전무했고.
해서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하늘을 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는데 북미왕국은 이러한 불가능을 현실로 만들어버렸으니 새삼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잉글랜드 대사는 이번 시범 비행을 보고 북미왕국의 기술력에 새삼 놀랐고, 또 당장은 북미왕국을 경계하는 것보다는 최대한 우호적으로 지내면서 이들의 기술을 어떻게든 훔쳐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고.
“그보다 새야 날개를 움직여 하늘을 난다지만...비행기는 날개가 고정되어 있지 않았습니까? 헌데 대체 어떻게 움직이는 걸까요?”
처음 비행기를 보았을 때만 해도 생김새가 이상하다고 여겼지만, 실제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니 비행기가 새의 모습에 가까웠기에 하늘을 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네덜란드 대사였다.
다만 하늘을 날기 위해 열심히 날갯짓하는 새와는 달리 비행기의 날개는 고정되어 있었기에 대체 어떻게 자유자재로 하늘을 나는지 의문이었기에 이를 이야기하자 에스파냐 대사가 고개를 갸웃하며 답했다.
“뭐 북미왕국의 움직이는 기물들이 다 그렇듯 기관을 장착해 움직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 비행기도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걸까요?”
이에 에스파냐 대사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거야 모르지요. 증기기관일 수도 있고 아니면 경유기관일 수도 있고.”
지금껏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역시 증기기관이었다.
북미왕국이 자랑하는 선박에도, 기차에도 모두 증기기관이 장착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에스파냐는 파나마 운하에 있는 건설 장비를 보고 북미왕국에 존재하는 기관이 증기기관뿐이 아니라는 사실을 파악했고.
최근 말을 대체해버린 동력 자전거의 존재로 인해 경유기관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렇기에 에스파냐 대사가 영유기관을 언급하자 잉글랜드 대사는 앓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끙. 그럼 부디 증기기관이길 바라야겠군요. 아니라면 비행기를 개발하기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릴 것 같으니까요.”
증기기관과는 달리 경유기관의 경우 유럽에서는 그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관의 구조뿐만 아니라 경유기관의 연료라는 경유라는 물질조차 기름이라는 것만 파악했을 뿐 정확히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그러니 비행기가 경유기관으로 움직이는 거라면 비행기를 개발하기 전에 경유기관부터 개발해야 했고, 북미왕국이 경유기관에 관한 정보를 철저히 통제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경유기관을 개발하는 것이 무척 험난해 보였기에 잉글랜드 대사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네덜란드 대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건 그렇군요. 비행기의 군사적인 가치는 생각보다 높은 것 같으니까요.”
“예. 하늘 위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만큼 전쟁이 벌어졌을 때 상대를 정찰하는데 무척 쓸모 있을 것 같습니다.”
에스파냐 대사의 말에 네덜란드 대사는 그뿐만이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리고...비행기와 작열탄이 결합하면 정말 무서울 것 같고요.”
“어?! 그렇군요! 비행기에 작열탄을 싣고 하늘 위에서 작열탄을 떨어뜨리기만 해도...”
에스파냐 대사는 머릿속으로 그러한 광경을 상상하고 안색이 창백해지자 네덜란드 대사가 씁쓸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걸 대체 무슨 수로 상대하겠습니까. 아까 보아하니 무척 높게 날 수도 있던데 말입니다.”
이에 잉글랜드 대사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끼어들었다.
“흐음...비행기의 재질이 금속이 아닌 천처럼 보였고 새보다야 비행기가 훨씬 크기에 머스킷으로도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군요. 머스킷의 총알이 닿지 않을 정도의 높이에서 작열탄을 떨어뜨린다면...”
“예. 일방적으로 작열탄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비행기는 하늘을 날면서 부대 배치를 확인하기도 쉬우니 화약 창고나 지휘관 근처에 떨어뜨리면 무척 손쉽게 승리를 거둘 수 있겠지요.”
그 말에 에스파냐 대사는 기가 찬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허. 그 정도면 비행기의 존재가 승리와 직결된다는 뜻이잖습니까. 이거 비행기의 존재가 유럽에 알려지면 무척 시끄럽겠군요.”
에스파냐 대사의 말에 두 대사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시선을 돌려 거대한 천막만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해가 질 무렵에서야 귀빈석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 * *
“허. 비행기를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새한성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청장 회의를 주관하던 정성국은 최근 새한성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무척 늘어났다는 행정청장의 보고와 이 관광객들이 오로지 비행기를 구경하기 위해 새한성으로 방문하고 있다는 보고에 정성국이 그게 정말이냐고 되물었다.
물론 비행기의 존재가 놀랍기는 한데 이걸 보겠다고 저 멀리서 새한성을 방문할까 싶어서 말이다.
하지만 행정청장은 그런 백성들의 반응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혹시 새한성에 오면 먼발치서나마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새한성을 방문하는 관광객들로 인해 이미 새한성의 숙소에 빈방은 없고 기차표의 예약분마저 모두 팔린 탓에 새진주의 숙소마저 거의 다 찼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기차표가 매진되면서 새한성을 방문하려던 북미 동해인 지역의 백성들이 그대로 새진주에 묶였고, 덕분에 새진주의 수많은 숙소도 거의 다 찼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혀를 내둘렀다.
“허. 내 생각보다 비행기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이로군. 실제 새한성을 방문한다고 해도 직접 비행기를 볼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데 이렇게 몰려들다니.”
실제로 북미신문에 또 비행기의 시범 비행이 있다는 기사라도 났다면 모를까, 북미신문에는 비행기에 관련된 기사와 저번 주에 있었던 시범 비행에 관한 기사 외엔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혹시 새한성에 오면 비행기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하나로 새한성을 방문한다니.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행정청장이 덧붙였다.
“예. 거기에 지금은 한창 농번기라는 것을 고려하면...지금 이렇게 새한성으로 몰려드는 관광객의 수는 무척 이례적이지요.”
생각해보면 지금이 농번기라 농부들은 감히 자리를 비우지 못한다는 사실까지 떠올린 정성국은 신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흐음...그런 상황이라면 당분간은 시범 비행을 계속해야겠군.”
원래야 시범 비행을 계속 진행할 생각은 없었지만, 비행기 하나 보겠다고 새한성으로 몰려든 북미왕국 백성들을 생각하면 아예 새한성에서 시범 비행 겸 비행 훈련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정성국이 이야기하자 행정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러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새한성에는 구경할 것이 많기야 한데...”
“그래도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을 보기 위해 새한성까지 방문한 관광객들을 생각하면...아. 차라리 다른 지역에서도 시범 비행을 진행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군.
비행기야 이동할 수 있는 만큼 굳이 새한성에서만 시범 비행을 할 이유가 없었기에 정성국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행정청장이 반색했다.
“아. 그거 좋군요. 그리고 그 사실을 알린다면 지금 새한성으로 몰려드는 관광객들도 좀 줄어들 테고.”
그때 관리청장이 입을 열어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고 보면 하얀 수리도 20대나 양산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여러 대가 동시에 하늘을 난다면...더 볼만할 것 같습니다만...”
“오. 그거 괜찮군요.”
다른 청장들도 여러 대의 하얀 수리가 하늘을 나는 모습을 상상한 듯 탄성을 지르며 기대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교육청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충돌이라도 하면...”
이에 연구청장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괜찮을 겁니다. 최근엔 적당한 거리를 두고 대열을 이루어 단체 비행하는 연습도 하고 있으니까요.”
하얀 수리가 양산되기 전에는 하얀 수리 1호를 타고 다른 조종사들도 조종 기술을 익혀나갔고, 하얀 수리가 양산되어 점차 그 숫자가 늘어나면서부터는 비행시간이 늘어난 터라 조종 기술을 더욱 갈고 닦을 수 있어 최근에는 단체 비행 연습까지 하고 있다는 연구청장의 이야기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괜찮겠군. 바로 시범 비행을 준비하도록 하게. 단체 비행에 익숙한 조종사들을 선발해 적당히 2, 3개 조로 나누어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시범 비행을 진행하도록.”
“알겠습니다.”
연구청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은 행정청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보다 이번에 합류한 미주리 족, 아이오와 족의 영역에 세울 거점의 위치는 정했나?”
“그렇습니다. 이 두 곳으로 정했지요.”
행정청장은 미리 준비한 지도를 정성국에게 건넸고 정성국은 지도에 표시된 거점 위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흐음...역시 미주리 강에 거점을 세우는 건가?”
두 거점 모두 미주리 강에 접하고 있었는데 미주리 강은 미주리 족의 영역을 거의 관통하는 터라 이번에 세울 거점이 미주리 족 영역의 중앙에 위치해 있었지만, 아이오와 족의 경우는 서쪽으로 무척 치우쳐 있었다.
그렇기에 정성국이 슬쩍 이를 묻자 행정청장이 대답했다.
“예. 미주리 강에 거점을 세우게 되면 아무래도 아이오와 족의 거점은 서쪽으로 치우치게 되는 만큼 미시시피 강이나 미주리 강의 다른 지류에 거점을 세우는 방안도 고민은 했습니다만 주기적으로 배가 드나들 것을 고려하면, 비교적 큰 강인 미주리 강에 거점을 세우는 편이 낫겠다 싶었습니다.”
그 말에 정성국은 잠시 고민했지만 크게 상관없겠다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게. 그럼 이번에 건설하는 거점의 이름은...”
“그냥 부족 이름을 따서 미주리, 아이오와로 정했습니다.”
행정청장의 말에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정성국은 고개를 돌렸다.
“개발청장?”
정성국이 자신을 부르자 개발청장은 즉각 보고했다.
“이미 거점 공사를 위한 각종 장비와 자제를 가득 실은 배가 새진주를 떠났습니다. 그러니 곧바로 미주리, 아이오와에 여러 시설을 건설할 수 있을 겁니다.”
계속해서 원주민 부족을 받아들이고, 영역을 확장하며 거점을 건설한 만큼 개발청에서는 미주리 족, 아이오와 족이 북미왕국에 합류했다는 보고를 전해 받고 곧바로 새로운 거점을 건설할 준비를 다 끝내두었다는 보고에 정성국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 옆에 앉아 있는 교육청장을 바라보았다.
“교육청장?”
“이미 일리노이 지역의 선생 중 두 부족의 말을 할 줄 아는 선생들을 선발해 보냈습니다. 이미 행정청에서 저희의 요청에 따라 젊고 영특한 두 부족의 젊은이들을 모아두었으니 이들을 중점적으로 가르쳐 임시로나마 선생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교육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조금은 부족하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흠...나쁘지 않아. 하지만 듣기로 미시시피 강 서쪽에 자리한 부족들은 언어 체계가 다 비슷하다고 들었네. 그러니 미리 일리노이 지역에서 이들의 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을 뽑아 교육하는 것도 괜찮아 보이는데?”
정성국의 지적에 교육청장은 정성국의 의도를 파악하고 중얼거렸다.
“흐음...훗날을 대비하자는 거군요.”
“그렇지. 이미 외무청에 합류한 일부 추장들이 열심히 활동 중이라고 하니...미리 대비해두는 것이 나아 보여서 말이네.”
그 말에 교육청장은 이전에 외무청 관리들이 주변 부족을 설득해서 북미왕국의 영역이 빠르게 확장하던 시절을 떠올리고 한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휴우. 알겠습니다. 언어와 기초적인 지식을 가르칠 수 있도록 선생들을 미리 선발해두겠습니다.”
그때 행정청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헌데 전하. 두 부족 모두 이제 북미왕국의 백성이 되었잖습니까. 그럼 연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아. 그러고 보면 그 문제도 고려해야 하는군.”
“예. 지금도 꾸준히 합류하는 소규모 부족들은 1년의 유예를 두고 연금을 지급하긴 합니다만...이번처럼 대부족이 통째로 합류하는 경우는 1년 안에 해당 부족을 완전히 파악하고 연금을 지급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서...”
물론 북미왕국이 그동안 수많은 부족을 받아들였기에 이번에 대부족인 미주리 족과 아이오와 족이 동시에 북미왕국에 합류했어도 큰 잡음이 없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이 지역의 인구조사를 완벽하게 끝내기가 쉽지는 않았다.
해서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흐음...그럼 이렇게 하지. 보통 북미왕국으로 이주한 이주민들의 경우 3년의 유예기간을 두지 않나. 그러니 이제부턴 이 기간을 통일하도록 하지. 이주민이든, 북미왕국에 합류한 부족이든, 무조건 3년의 유예기간 후에 연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3년이라...”
“설마 더 달라고 할 셈인가?”
정성국의 질문에 행정청장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요. 알겠습니다. 3년 안에 연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조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