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488화 (488/850)

488화

“그래? 하얀 수리급 양산이 드디어 끝났다고?”

정성국은 자신을 찾아와 보고하는 연구청장을 보고 반색하자 연구청장은 미소지으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총 20대를 만들었습니다.”

그 말에 정성국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문득 처음으로 하늘을 날았던 하얀 수리가 생각나 질문했다.

“그럼 하얀 수리 1호는 잘 정비해서 보관해뒀나?”

하얀 수리급이 양산되기 시작했고, 그 원본이 되는 하얀 수리는 하얀 수리 1호로 명명되었기에 정성국이 하얀 수리 1호에 대해 묻자 연구청장이 조금 곤란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게...하얀 수리와 검은 날개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무슨 요청?”

“첫 공개 시범 비행은 처음으로 만든 하얀 수리 1호로 하고 싶다고 말입니다. 그때까지는 하얀 수리 1호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아...”

정성국은 자신이 간과한 것을 떠올리고 탄성을 질렀다.

생각해보면 역사적인 유물을 보관하는데 만 신경을 쓴 셈이었으니까.

“그래. 생각해보면 여러 기록을 남겨두긴 했지만, 공개 비행에 다른 비행기를 사용하면 좀 그렇긴 하네. 하얀 수리 1호의 의미가 퇴색된다고 해야 할까.”

“예. 그래서 이렇게 말씀드리는 거고요.”

이에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이고 명령을 내렸다.

“알겠네. 그럼 바로 공개 비행을 준비하도록 하지.”

지금껏 하얀 수리 1호는 50번에 가까운 비행을 성공적으로 해냈기에 연구청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비행기를 공개하고 싶어했지만 정성국은 아직 이르다며 고개를 저었는데 드디어 허락하자 연구청장이 반색했다.

“오! 정말입니까?”

그런 연구청장의 반응에 정성국은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그래. 뭐 개인적으로는 현재 개발 중인 알루미늄 합금을 이용한 비행기를 대중에 공개하고 싶긴 한데...어쩌면 몇 년간 미뤄질 수도 있으니 차라리 바로 공개 비행을 하고 우리가 비행기를 개발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낫겠어.”

“어? 하얀 수리급으로 공개 비행을 하실 생각이 없으셨던 겁니까?”

이에 정성국은 묘한 미소를 띄고 연구청장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초기 비행기보단 어느 정도 발전된 비행기를 공개해야 더 그럴싸해 보이고...타국이 따라 하기도 힘들 테니까.”

“아...그래서 활공기도 대외적으로는 기밀로 하신 거군요?”

정성국은 연구청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아무튼, 자네에게 맡길 테니 공개 비행을 준비하게.”

“알겠습니다. 전하.”

* * *

조선에서 초기에 원상을 믿고 북미왕국으로 이주한 개똥이는 어느덧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조선의 유민 출신의 처자와 눈이 맞아 혼례를 올린 것이다.

그리고 혼인 신고를 하면서 행정청 관리의 권유를 받아 이름을 개똥이에서 김개동으로 고치게 되었고.

개똥이는 굳이 이름을 바꿀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혼인 신고를 도와주던 행정청 관리는 개똥이의 이름을 듣고 훗날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면 이름을 바꾸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권유한 것이다.

생각해보니 자식을 생각하면 이름을 바꾸는 것이 좋겠다 싶어, 하지만 너무 생소한 이름은 꺼려졌기에 비슷한 이름으로 지어 달라고 요청하자 행정청 관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김개동으로 지어준 것이다.

그렇게 이름을 바꾼 김개동은 조선에서 소작농으로 살면서 겨우 입에 풀칠하던 자신이 북미왕국으로 이주해 번듯한 집을 얻고 가정까지 꾸린 것은 다 정성국의 은혜라고 생각했고 왕실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그 때문에 김개동은 북미신문을 보고 안사람에게 양해를 구한 후 항상 어울리던 일행들과 거리로 나섰지만, 주변을 둘러보아도 사람들로 가득한 풍경에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어휴. 사람이 많을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이건 너무 많은데? 새한성 사람들이 죄다 몰려온 것 같네.”

이에 옆에 있던 나이든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여. 이거 제대로 구경할 수나 있겠어?”

나이든 사내의 걱정에 일행 중 그나마 키가 제일 큰 젊은 사내가 뒤꿈치를 들고 머리를 쭉 빼서 주변을 둘러보다 고개를 저었다.

“뭐 기차처럼 커다란 크기의 기물이라면 멀리서도 볼 수야 있겠지만...그게 아니라면 구경하긴 어렵겠는데요? 그리고 개동이 형님이 기대하시는 것처럼 전하가 이곳에 친림하신다고 해도 그 모습을 보긴 힘들 것 같고요.”

그 말에 김개동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고 중년 사내는 상황이 이런데 어쩌겠느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전하의 용안이야 나중에라도 볼 수 있을 테니 너무 아쉬워하지 말라고. 그보다 기물은 제발 거대한 기물이기만을 바래야겠는데?”

중년 사내의 말에 젊은 사내가 맞장구쳤다.

“그쵸. 헌데 대체 무슨 기물일까요?”

“그러게. 북미신문에도 오늘 중대한 기물을 선보인다는 내용이 전부였고 기물에 대한 설명은 일절 없었으니 더 궁금한데.”

이에 나이든 사내가 끼어들었다.

“전면 광고에 그렇게 쓰여 있었잖나. 역사에 기록될 순간을 목격하고 함께 하라고. 그럼 이번에 개발한 기물은 역사에 남을 정도로 대단한 기물이라는 거겠지.”

“헌데...그렇게 치면 연구청에서 개발한 수많은 기물도 다 해당되는 것 아녀요?”

젊은 사내의 지적에 중년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렇긴 해. 조선에 있을 때는 여름에 시원한 얼음을 맛본다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했나? 헌데 지금은 어지간한 집엔 냉장고 하나쯤은 있지 않나.”

중년 사내의 말처럼 조선에서야 양반이 아닌 다음에는 여름에 시원한 얼음을 맛본다는 생각은 감히 할 생각도 못 했었다.

그리고 그건 북미왕국에서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북미왕국이 비록 부유하다고 해도 빙고를 대대적으로 운용하며 백성들에게 얼음을 제공하진 않았으니까.

허나 냉장고가 개발되면서 일반 백성들도 집에서 손쉽게 얼음을 구할 수 있게 되었고, 각종 식재료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었으니 냉장고야말로 역사에 남을 발명품이라고 생각해 이야기하자 나이든 사내는 그건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뭐 냉장고가 없어도 찻집에만 가더라도 얼음을 동동 띄운 냉차를 먹을 수 있고.”

“그래. 그뿐인가? 저기 보이는 동력 자전거도 분명 역사에 기록될걸?”

중년 사내는 도로를 오가는 동력 자전거를 가리키자 일행들도 동의하는 표정이었다.

동력 자전거는 기차와 더불어 획기적인 이동 수단이었으니 역사에 기록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때 김개동이 입을 열었다.

“그렇기에 난 오히려 기대되네. 그런 대단한 기물들을 개발했을 때도 이런 기사를 싣고 전면 광고를 실은 적이 없었던 연구청이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라면...정말 대단한 기물을 개발했다는 방증이 아니겠나.”

“어? 그건 또 그렇네.”

김개동의 이야기에 젊은 사내가 동의했을 때 나이든 사내가 푸념했다.

“어휴. 북미신문을 보고 하도 궁금해서 나오긴 했는데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사람도 많아서 쪄 죽겠어. 무슨 기물이든 빨리 좀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 * *

잉글랜드 대사는 새한강 인근 공터에 마련된 귀빈석에 앉아 주변을 살펴보고 중얼거렸다.

“사람이 정말 많군요. 새한성의 백성들이 모두 이곳에 몰려온 모양입니다.”

그 말에 옆에 있던 에스파냐 대사가 당연한 것 아니냐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뭐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번 북미신문의 전면 광고는 기존의 광고와는 전혀 다른 형식이었지만...묘하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광고였으니까요.”

“예. 저도 그 광고를 보고 대체 뭐를 선보이려고 이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으니까요. 아마 저 같은 사람이 많을 테고 오히려 주변 지역에서도 호기심에 새한성으로 온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북미신문의 광고는 광고하고자 하는 대상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헌데 이번에 실린 북미왕국의 전면 광고는 이례적으로 구름 그림 안에 역사에 기록될 순간을 목격하고 함께 하라는 문구가 전부였다.

그러니 자연스레 호기심이 들 수밖에 없었고.

더불어 북미신문 1면 기사는 가장 중요한 기사를 싣는 것이 관례인데 이번 1면 기사는 그저 연구청에서 무언가 대단한 기물을 개발했고 이를 선보일 예정이라는 기사가 전부였으니 기사와 광고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고.

그러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번에 선보이는 기물을 직접 구경하기 위해 새한성으로 왔을 거라는 네덜란드 대사의 이야기에 잉글랜드 대사가 웃으며 답했다.

“하하하. 솔직히 저도 궁금하기는 합니다. 북미왕국이 그동안 놀라울 정도의 새로운 기물들을 많이 개발했지만...북미왕국과 연구청이 이렇게 홍보한 적은 없잖습니까.”

그 말에 두 대사는 동의했고 네덜란드 대사가 경비대원들이 배치된 공터 중앙의 천막을 보고 입을 열었다.

“그러게요. 빨리 확인하고 싶은데...아마 저 천막 안에 기물이 있겠지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12시에 선보인다고 했었지요?”

“예. 5분 남았습니다.”

에스파냐 대사가 북미왕국산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하고 대답하자 잉글랜드 대사는 천막과 그 주변에 일자로 배치된 경비대들을 보고 빨리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고 있을 때 경비대들이 천막의 앞으로 이동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오! 천막이 드디어 열리는군요.”

잉글랜드 대사의 말에 잡담을 나누던 두 대사는 시선을 돌렸고.

거대한 천막의 전면이 열리면서 안쪽에 보이는 거대한 물체의 실루엣을 보고 대사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음? 저게 대체 뭐지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때 거대한 물체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어?”

“움직이는군요?”

아주 느린 속도로 천막을 나온 거대한, 아니 옆으로 넓적한 기물은 점차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귀빈석에 앉아 지켜보던 에스파냐 대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점차 빨라지는군요. 새로운 이동 수단인가 봅니다?”

이에 잉글랜드 대사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북미왕국은 동력 자전거를 양산해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동력 자전거보다는 빨라 보이기는 하는데 저건 부피가 커서 무슨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어?!”

점차 빨라지며 경비대가 비워둔 공터를 빠르게 주파하던 기물은 공터 절반쯤에서 갑자기 허공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세 대사는 입을 쫙 벌릴 수밖에 없었다.

“헉!?”

“저...저?!”

“하늘을...날았다고?!”

* * *

언제나 그렇듯 나이든 사내가 툴툴대는 것을 웃으면서 받아주던 김개동은 문득 앞쪽이 무척 소란스럽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열었다.

“어? 앞쪽이 뭔가 소란스러운 것 같은데요?”

이에 일행들은 뒤꿈치를 들고 목을 최대한 빼서 앞쪽을 바라보았지만 별다른 것은 없었기에 중년 사내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젊은 사내에게 물었다.

“끙...아쉽게도 이번에 선보이는 기물은 크지 않은 모양이야. 전혀 안 보이잖나. 자넨 어때?”

“안 보여요.”

젊은 사내는 최대한 몸을 쭉 빼고 미리 준비한 망원경까지 동원했지만 보이는 것이 없었는지 고개를 흔들었고, 이에 나이든 사내는 짜증을 부렸다.

“에잉. 시간 낭비한 셈이로군. 더워 죽겠는데 바로 돌아가세. 찻집에 들러서 냉차라도 마셔야지 안 되겠어.”

그런 나이든 사내를 보고 중년 사내는 나이든 사내에게 다가가 씩 웃으며 말했다.

“냉차보다 시원한 맥주가 더 낫지 않겠소?”

“오. 그거 괜찮은데?”

나이든 사내가 중년 사내의 말에 빙그레 미소를 지을 때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앞쪽을 바라보단 김개동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어?!”

이에 옆에 있던 젊은 사내가 앞쪽을 바라보고 눈을 크게 뜨며 맥주를 마실 생각에 잔뜩 들뜬 두 사내의 어깨를 쳤다.

“저기! 저길 보소!”

나이든 사내는 젊은 사내의 호들갑에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

“뭔데? 보여? 으잉?”

나이든 사내는 하늘에 나는 무언가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거대한 새인감?”

하지만 젊은 사내는 망원경으로 그 물체를 바라보고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새일 리가 있겠소! 하늘을 나는 기물인 거요! 드디어 우리 북미왕국은 하늘마저 정복했다고!”

“뭐?!”

나이든 사내는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무언가 말하려 했을 때 김개동이 소리쳤다.

“이쪽으로 온다!”

김개동의 말처럼 점차 멀어지던 하늘을 나는 기물은 방향을 바꿔 자신들이 있는 방향으로 접근하기 시작했고 이 하늘을 나는 기물이 자신의 머리 위를 지나가자 이번에 새롭개 개발한 기물이 하늘을 나는 기물이라는 것을 확실한 김개동 일행뿐만 아니라 주변 백성들은 이 상식을 뒤엎는 광경에 열렬히 환호하기 시작했다.

“와!”

“우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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