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2화
정성국은 조선소 안의 건선거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거대한 쇳덩어리에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토해냈다.
“와. 이건...”
“아. 오셨습니까. 스승님.”
최주명은 이번에 건조 중인 선박을 보고 감탄하는 자신의 스승을 보고 빙긋 웃으며 정성국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이에 정성국은 정신을 차리고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최주명에게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든 후 다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 이게 이번에 실험 삼아 건조하는 1만 톤급이냐?”
“그렇습니다.”
“엄청 크네.”
이번에 건조 중인 1만 톤급 철선은 아직 건조가 다 완료되지 않은 터라 건선거에 물을 채우지 않은 상태였고, 덕분에 물에 가려진 부분이 없어 더욱 거대해 보였기에 정성국이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최주명이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하. 아무래도 그렇지요? 전장이 100m가량 되니 이렇게 옆에서 보면 더 커 보입니다.”
“정말 그러네.”
정성국은 건선거 앞부분으로 들어왔기에 시야를 가득 메우는 높이에 놀랐지만, 최주명의 말을 듣고 발걸음을 옮기자 기다란 옆면이 보였기에 다시 한번 이번에 건조 중인 1만 톤급 철선의 거대함에 감탄했을 때 누군가가 건선거에 달려 있던 임시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정성국은 장인인가 싶었는데 얼굴을 확인하니 강평화였기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어라?”
“스승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뭐야. 네가 왜 여기 있어?”
“일이 있어서 잠깐 들렀지요.”
강평화의 간략한 대답에 최주명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아. 저 배의 무장 때문에요. 어차피 실험 삼아 건조하는 녀석이다 보니 스승님께서 이전에 말씀해주신 회전 포탑을 탑재했거든요. 기동이의 도움을 받아 회전 포탑을 만들어 탑재했으니 그 회전 포탑 위에 올릴 해군용 화포가 필요해서 평화에게 도움을 요청했죠.”
“예. 주명이의 요청에 이전에 개발한 해군용 120mm 화포를 가져와 장착하느라 최근엔 장인들과 함께 여기서 지내고 있었어요.”
이전에 강평화와 연구원들이 훗날을 대비해 100mm 화포, 120mm 화포를 연구했고, 결국 개발에 성공했다는 보고서를 접한 적이 있었기에 정성국이 아는체했다.
“아...전에 개발했다던 그 120mm 화포? 그걸 저 배에 장착한 거야?”
“그렇습니다.”
정성국은 처음으로 장착된 회전 포탑과 120mm 화포가 궁금해 목을 뒤로 꺾어 위를 올려다보았지만, 밑에서는 거대한 선체만 보일 뿐이지 갑판 위에 있는 회전 포탑과 120mm 화포가 보이지 않았기에 투덜거렸다.
“끙. 여기선 잘 보이지도 않는군. 몇 문이나 탑재했어?”
“아쉽게도 기껏해야 4문이 답니다.”
“엥? 겨우?”
120mm 화포라고 해 봐야 크기가 그렇게 큰 편은 아니었다.
헌데 이 거대한 선박의 무장이 고작 120mm 화포 4문이라는 소리에 정성국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자 강평화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회전 포탑이 앞뒤로 달랑 하나씩만 탑재되어 있어서 말입니다. 거기에 회전 포탑이 큰 편도 아니라 회전 포탑 하나에 120mm 화포 2문 이상을 장착하긴 어려웠고요.”
강평화는 자신의 탓이 아니라 배의 문제라고 대답하자 최주명은 강평화를 한번 째려본 후 정성국에게 대답했다.
“뭐 일단 이건 전선이 아니라서요. 물론 배의 크기를 생각하면 무장이 빈약하긴 한데...회전 포탑을 처음으로 채용하는 거라 회전 포탑을 많이 싣기도 애매해서 말이죠.”
그 말에 정성국은 이 배의 거대함과 생김새가 전생에서 사진으로만 접했던 1차 세계대전 이전의 소위 전노급 전함과 묘하게 비슷해 자신도 모르게 전투용 선박이라고 착각했다는 것을 떠올리고 멋쩍게 웃었다.
“아. 생각해보니 전선이 아니지? 그럼 상관없지 뭐.”
그러면서 정성국은 배의 안쪽을 살펴보고 싶어했지만 아직 건조 중인 선박이었기에 위험하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최주명과 호위대장의 등쌀에 결국 포기하고 계단을 통해 건선거 위층으로 올라가 갑판 위를 멀리서 확인하고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 저게 회전 포탑이구나.”
갑판 위의 중앙에는 거대한 상부 구조물이 있었고 그 앞뒤로 반구 형태의 회전 포탑과 그곳에 삐죽하게 나와 있는 120mm 화포의 포신 부분을 보고 정성국이 이야기하자 최주명이 입을 열었다.
“예. 동력으로 움직이는 것 치곤 좀 느리긴 한데...사용하기엔 나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 안에는 밑의 탄약고와 연결된 승강기도 존재합니다.”
“아. 승강기를 통해 탄약을 보급받는다고? 그거 괜찮네. 화포가 커질수록 포탄도 점차 무거워지는 만큼. 그보다 저거 전선은 아니라고 했는데 상부 구조물을 보니 상황에 따라 전선으로 사용할 생각이었나 본데? 저거 포구잖아?”
상부 구조물의 현측에 뚫려있는 구멍을 보고 정성국이 입을 열자 최주명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뭐 용도에 따라서 포구가 될 수도 있고 창문이 될 수도 있겠지요. 물론 이 배에 들어가 있는 여러 신기술을 생각하면 여객선으로 사용하는 것은 조금 아쉽긴 합니다만...오히려 현 상황에서는 여객선으로 사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 같긴 하네요.”
일단 더 커다란 선박을 건조하기 위해 실험적으로 건조한 만큼 이 선박이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해체하기보단 그대로 운용했으면 하는 마음에 상부 구조물을 저런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덧붙인 말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점차 늘어나는 아일랜드 이주민을 생각하면 회전 포탑을 들어내고 여객선으로 개조하는 게 나아 보이기는 하는데...일단 그건 이 녀석이 제대로 물에 뜨고, 이 녀석을 운용하면서 회전 포탑 운용 교리를 확립한 이후에나 고민하도록 하고. 그보다 평화야.”
“예?”
“프랑스 해군이 재건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니?”
정성국의 질문에 강평화는 슬쩍 최주명을 바라보고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이번에 주명이한테 들었지요. 새롭게 전열함도 대거 건조하고 이번엔 작열탄마저 개발했다면서요?”
“그래. 헌데 유럽에 나가 있는 정보기관이 파악하기로는 프랑스에서 새롭게 건조한 전열함은 방어력을 보강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하더구나. 자신들의 포탄을 튕겨내는 우리 전선들의 방어력에 놀라서 말이지.”
그제야 강평화는 정성국이 왜 프랑스 해군의 이야기를 꺼냈는지 짐작하고 입을 열었다.
“아하. 스승님께서는 80mm 화포가 방어력을 보강한 프랑스 전열함에도 효과가 있을지가 궁금하신 거죠?”
“그렇지. 아니라면 다시 무장을 교체해야 하니까.”
이에 강평화는 최주명과 이 문제로 토론한 적이 있었기에 곧바로 입을 열었다.
“프랑스 해군의 이야기를 주명이한테 듣고 이런저런 토론을 해 봤는데요. 결론은 프랑스의 전열함이 기존에 전열함보다 선체를 2배 가까이 두껍게 한 것이 아니라면 80mm 화포의 포탄을 막긴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 그래?”
강평화의 대답에 정성국이 반색하자 강평화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예. 80mm 화포는 관통력이 더 강해서요. 프랑스 해군도 나름대로 방어력을 보강했다고 하지만 저희의 화포를 막기엔 역부족이랄까요. 다만 추측에 불과한 만큼 만약을 대비해 100mm 화포를 양산해 일부 교체하는 것도 괜찮아 보입니다만...”
“흠. 그래. 모두 다 교체하지 말고 혹시 모르니 지급 전선과 천급 전선에 한 2문 정도만 교체하는 것으로 하자.”
“2문이라...그럼 선수포와 선미포를 교체하면 되겠군요. 알겠습니다. 바로 100mm 화포를 양산하도록 하지요.”
정성국은 강평화의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시선을 돌려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최주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주명아.”
“예.”
“프랑스가 작열탄을 개발한 이상 다른 유럽 국가들도 작열탄을 어떻게든 만들어내긴 할 거다. 그리고 기존의 목제 선박은 작열탄에 취약하니 점차 방어력을 보강하기 위해 애를 쓸 테고.”
“방어력이 보강되면 또 이를 뚫기 위해 위력이 더 큰 작열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네요.”
“그렇지. 그렇게 기존보다 더 나은 작열탄을 개발하면 또 방어력을 보강하려 들 테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유럽의 배는 커지고, 더 강한 포탄으로 무장하겠지.”
최주명이 앞으로의 흐름을 짐작한 듯싶었기에 정성국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덧붙이자 최주명은 정성국이 이러한 이야기를 꺼낸 의도를 파악하고 확인차 질문했다.
“어...그러니 우리도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지요?”
“그래. 지금이야 저들의 작열탄이 우리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또 모르는 일이니까. 그때를 대비해서 방어력을 더욱 보강한 새로운 전선을 건조해야겠지.”
“방어력을 보강한 새로운 전선이라...결국, 철선을 개조해 만들어야겠네요.”
번거롭게 목제 전선에 강철을 두르는 기존의 전선보다는 이 기회에 아예 철선으로 새로운 전선을 개발하겠다는 최주명의 이야기에 정성국도 별다른 이견이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렇게 되겠지.”
“흐음...알겠습니다. 그럼 이번에 1, 3함대에 일부 노후화된 전선을 교체하는 사업은 일단 뒤로 미룰까요?”
1, 3함대의 경우 비교적 초창기에 설립된 만큼 전선의 선령이 꽤 되어 슬슬 교체해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 때문에 군사청에서는 최근 전선 교체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철선을 개조한 새로운 전선을 개발하게 되면 차라리 이 철선으로 교체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최주명의 말에 정성국이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흠. 1, 3함대가 담당하는 영역을 생각하면 기존의 인급, 지급 전선도 괜찮을 것 같긴 한데...”
“그렇지만 나중에는 결국 철선으로 교체해야 할 테니 오히려 낭비죠.”
그건 그랬기에 정성국은 수긍하면서도 전력 공백을 우려해 질문을 던졌다.
“그렇긴 한데 새로운 전선을 개발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리지 않나? 이걸 건조해서 회전 포탑도 운용해 개량해야 할 테고.”
“그래도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1, 3함대야 뭐...비교적 후방이다 보니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 같고요.”
최주명의 말처럼 1, 3함대야 후방에 가까운 터라 단순히 주변 해역을 순찰하는 것은 노후화된 전선도 충분히 할 수 있었기에 당장은 전력 공백이 그리 크지는 않으리라고 판단해 결국 이를 허락했다.
“흠...알겠다. 일단 내가 군사청장에게 이야기해둘 테니 넌 새로운 전선 개발에 신경 쓰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신규 전선 개발 이야기를 마무리한 정성국은 다시 고개를 돌려 장인들이 달라붙어 있는 1만 톤급 철선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 그리고 지금 이 녀석의 전장이 100m라고 했지?”
“예.”
“흠. 부족한데...”
정성국이 철선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리자 최주명은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스승을 바라보았다.
“예? 이게요?”
그런 최주명의 반응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최근 비행기를 개발한 것은 알고 있지?”
“아. 예. 기동이한테 들었지요. 정말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 수 있다면서요?”
“그래. 그리고 계속해서 막대한 지원을 통해 비행기의 성능을 더 끌어 올릴 생각이고.”
“어? 설마...”
최주명이 정성국의 의도를 어렴풋이 파악하고 놀란 표정을 짓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비행기가 점차 발전하면 정찰 성능이나 공격 성능도 비약적으로 올라갈 테니...육군뿐만 아니라 해군도 비행기가 필요할 거야.”
해전의 핵심은 정찰을 통해 적 함대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었고 레이더가 개발되기 전까지 정찰에서는 항공기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아는 정성국이 이렇게 이야기하자 최주명은 신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으음...하지만 기동이한테 듣기로는 비행기는 이착륙하기 위해 꽤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고 하던데...”
“맞아. 비행기는 이착륙하는데 기다란 활주로가 필요한 만큼 저 녀석보다 훨씬 거대한 녀석이 필요해. 그리고 갑판 위에 활주로를 장착하는 거지. 항공모함이랄까?”
“항공모함이라...”
정성국이 기억하기로 최초의 항공모함이었던 HMS 퓨리어스의 비행갑판이 200m가 넘었다는 것을 떠올리고 더 거대한 선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자 최주명은 새로운 개념의 선박에 생각이 많은 눈치였다.
이에 정성국은 당장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듯 최주명의 등을 치면서 말했다.
“물론 당장 건조하라는 건 아니고. 미리미리 연구해두라는 거다. 어차피 비행기를 실전에 투입할 정도까지 발전하는데도 시간이 꽤 걸릴 테니.”
“아. 알겠습니다. 일단 새로운 전선의 개발과 더불어 계속해서 더 커다란 배를 연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