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1화
잔뜩 지친 얼굴로 집무실에서 각종 보고서를 확인하고 있던 아이누 탐사대장은 누군가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자 고개를 들었다.
헌데 집무실에 들어온 부관의 표정은 무척 밝았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부관을 바라보자 부관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대장님! 레나 강 남쪽 원주민 마을로 파견되었던 부대가 돌아왔습니다!”
이에 아이누 탐사대장은 눈을 빛내며 들고 있던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급히 질문을 던졌다.
“오. 그래? 성과는 있다던가?”
“물론입니다! 대장님의 추측이 정확했습니다! 덕분에 450명에 가까운 포로를 더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허. 그래? 다행이군.”
3일 전에 거점을 빠르게 점령하기 위해 달려들던 러시아 차르국의 병사들은 예상치 못한 포격에 사기가 꺾였고 미리 준비해두었던 야쿠트인들이 퇴로에서 나타나자 전투를 포기하고 살기 위해 일제히 레나 강을 향해 뛰어들었다.
물론 일부는 수영할 줄 모르기에 더는 나아가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다 자신들을 따라온 야쿠트인들을 보고 결국 항복했지만, 상당수는 레나 강을 건너기 시작했고.
이는 상황이 불리해지면 항복할 거라 여겼던 아이누 탐사대장의 예측과는 정반대되는 상황이었고 아이누 탐사대장은 폭이 넓은 레나 강을 무작정 건너겠다며 뛰어들었다 힘이 빠져 물살에 떠내려가는 코사크인들을 보면서 탄식하며 지금이라도 나무를 베어 뗏목이라도 만들어서 저들을 구출해야 하나 고민했고.
그때 마침 보급품을 잔뜩 실은 북태평양 탐사대가 레나 강 북쪽에서 나타나자 아이누 탐사대장은 즉각 깃발을 흔들어 북태평양 탐사대에 신호를 보냈고.
북태평양 탐사대는 전투가 벌어진 흔적과 레나 강을 건너기 위해 헤엄치는 사람들, 그리고 힘이 다해 물살에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을 보고 상황을 짐작해 즉각 배를 움직여 이들을 구조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물귀신이 될 뻔한 코사크인들은 구조되었고 이미 강을 건너다 힘을 다 쓴 모양인지 얌전히 포로가 되었지만, 일부는 용케 레나 강을 건너 도주했다.
문제는 그 수가 꽤 되었고, 아직은 레나 강 동쪽으로 이주하지 않은 원주민들도 꽤 있었기에 잘못하면 이 패잔병들이 마을을 습격할 것을 우려해 아이누 탐사대장은 즉각 병사들에게 수색 및 추격 명령을 내렸고.
더불어 탐사선에 병력을 실어 남하시켜 야쿠츠크 남쪽, 레나 강 유역에 있는 원주민 마을에 배치했다.
전투 후 러시아 차르국의 수송선까지 나포한 상태였기에 패잔병들은 물자가 전혀 없었으니 가까운 원주민 마을에서 어떻게든 물자를 확보하려들 것이라 추측했기에.
그리고 자신의 예측대로 이곳으로 패잔병들이 몰려들었고 미리 배치되어 있던 병사들이 잠깐의 교전 끝에 이들의 항복을 받아내어 포로로 삼았다는 말에 안도하며 잠시 머릿속에서 계산해보다 입을 열었다.
“그럼 확보한 포로의 수가 드디어 2천 명이 넘어가는 건가?”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2100명에 가깝지요.”
“헌데 3천 명 중에 아직도 300명가량의 행방은 알 수가 없군. 이들이 다 물고기 밥이 되진 않았을 것 같은데...”
교전 당시에 약 300명가량이 사망했고, 비록 북태평양 탐사대가 최선을 다해 코사크인들을 구조했지만 이미 사망해 시체를 건져 올린 것이 100구가량 되었으며, 자신들을 추격하는 원주민들에 대항하다 죽은 인원이 200명가량 되었다.
이를 모두 합하면 약 2700명 정도였는데 포로들의 이야기하기로는 자신들이 파악한 것처럼 총 병력은 3천 명이라고 한 만큼 아직도 300명의 행방은 불명확한 상태였다.
물론 북태평양 탐사대가 모든 시체를 건지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 같아 아이누 탐사대장이 입을 열자 부관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에 확보한 포로를 통해 알게 된 정보를 이야기했다.
“그게 레나 강에 탐사선을 목격한 일부는 강을 따라 이동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내륙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그런 부관의 대답에 아이누 탐사대장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내륙으로? 허. 그럼 그들을 추격하긴 현실적으로 어렵겠군.”
시베리아 내륙은 무척 넓은 터라 섣불리 저들을 추격하기도 어려웠고 잘못하면 저들에게 당할 위험도 존재했다.
특히, 이들이 거점을 공격했을 때는 60mm 화포의 위력을 앞세워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었는데 오히려 이들이 추격하다가 코사크인들의 거센 저항으로 사망한 인원이 벌써 20명을 넘어간 상황이었으니.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확보한 포로들에게 확인한 결과 저들은 이곳의 지리도 제대로 모르고 물자도 거의 없다고 들었으니 과연 패잔병들이 살아서 이르쿠츠크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요.”
“뭐 생각보다 코사크인들이 독종이라 일부야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 같기야 한데...뭐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니 일단 패잔병들의 수색과 추격 작전은 오늘부로 종료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대장님.”
전투가 벌어지고 10일 만에 드디어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는 뜻이었기에 부관은 활짝 웃으며 앞으로 있을 승전 기념 축제를 떠올리고 있을 때 한 병사가 집무실을 찾아와 아이누 탐사대장에게 보고했다.
“대장님! 에벤 족이 왔습니다!”
“그래?”
이 거점에서 그나마 가까운 에벤 족이 소식을 듣고 왔다는 이야기에 아이누 탐사대장은 부관과의 이야기를 끝내고 집무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거점으로 다가오는 에벤 족의 행렬과 맨 앞에서 주변을 살피는 에벤 족 족장인 투란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투란에게 다가갔고.
투란은 아이누 탐사대장을 보고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여! 용병대장. 오랜만일세.”
“오셨습니까. 족장님.”
투란은 말에서 내리며 말을 건넸다.
“그새 러시아 차르국 병사들을 격파했다면서? 소식을 듣자마자 죽어라 달려오긴 했는데...역시나 이미 전투는 끝난 후로군. 이미 뒷정리까지 끝났나 보네?”
“그렇습니다.”
“헌데 거점이 조금 어수선한 것 같은데...”
“그게...”
아이누 탐사대장은 투란과 함께 발걸음을 옮겨 거점으로 향하며 지금까지의 일을 설명했고 투란은 이를 다 듣고 혀를 찼다.
“허. 독종들이로군. 그 상황에서 항복이 아니라 어떻게든 도망치기 위해 강으로 뛰어들다니.”
“예. 덕분에 상황이 지저분해졌지요. 거기에 패잔병들은 물자도 별로 없는 터라 잘못하면 아직 이주하지 않은 원주민 마을들을 습격할 수 있기에 더 문제였고요. 그래서 패잔병들을 추격하기 위해 상당수가 거점을 나섰고 이들이 복귀하면서 포로를 데리고 오는 통에 조금 어수선합니다.”
“아하. 왜 이렇게 거점이 어수선한가 했더니 그 때문이었나? 헌데 포로가 많나?”
“예. 약 2100명가량 되니까요.”
투란은 아이누 탐사대장의 말에 고개를 새삼 감탄했다.
“휘유. 이곳에 배치된 병력보다 많다니. 헌데 그 정도 숫자에 코사크인들이 독종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포로 관리가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투란의 걱정에 아이누 탐사대장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곳을 적당히 개발한 후에는 곧바로 내륙으로 보낼 생각입니다. 그럼 아무리 독한 코사크인들이라 섣불리 탈출하려고 덤벼들진 않겠지요.”
“흠. 그렇긴 하군. 그보다 이번에 모스크바에서 보낸 코사크인들도 격파했으니...당분간은 안전하겠지?”
이에 아이누 탐사대장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분명 그럴 겁니다. 아무리 이곳에서 나는 모피가 중요하다고 해도 곧바로 추가 병력을 파견하지는 못할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본국에서도 연합과 동맹을 맺었다고 유럽에 알린다고 했으니 어쩌면 러시아 차르국은 이 지역을 포기할 수도 있을 테고요.”
“...정말 그럴까?”
장담하는 아이누 탐사대장을 보고 투란이 되묻자 아이누 탐사대장은 씩 웃으며 덧붙였다.
“그럼요. 그리고 금광 개발도 예정대로 진행 중이니 연합에 참여한 부족들은 부유해질 테고 아마 지금 갓난아이들은 크면서 배고픔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랄 겁니다.”
“허. 꿈만 같은 일이군.”
* * *
“어? 무슨 일 있나? 자네들 둘이 심각한 얼굴로 날 찾아오다니?”
정성국은 자신의 집무실로 찾아온 조용한 곰과 군사청장을 보고 질문을 던지자 서로를 바라보던 둘은 눈빛을 교환한 후에 조용한 곰이 먼저 입을 열었다.
“런던에 있는 대사가 소식을 보내왔는데...조금 우려스러운 보고가 있어서 말입니다.”
“음? 무슨 보고?”
“최근 프랑스 해군과 네덜란드, 덴마크 연합 해군이 외레순 해협에서 맞붙었답니다.”
이에 정성국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통적인 해군 강국으로 유명한 네덜란드, 덴마크 해군과 자신들에 의해 반쯤은 박살 나고 재건된 프랑스 해군이 맞붙은 셈이었으니까.
“그래? 결과는?”
이에 군사청장이 대신 대답했다.
“프랑스 해군이 네덜란드, 덴마크 연합 해군을 격파했다는군요.”
“호오...”
“헌데 중요한 것은 프랑스 해군이 이 해전에서 새로운 신형 포탄을 사용했는데 이게 작열탄 같습니다.”
정성국은 해전 결과에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다가 군사청장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 작열탄?”
“그렇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처음에는 운이 없게 화약통이 맞았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전투를 치를수록 포탄에 맞은 배들이 폭발하자 네덜란드 해군은 저희 북미왕국의 작열탄을 떠올리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급히 퇴각한 모양입니다. 어떻게든 해협을 지키려던 덴마크 해군도 버티지 못하고 퇴각했고요.”
이러한 설명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흠. 어떻게 따라 한 모양이군.”
생각해보면 작열탄의 원리는 그리 복잡한 것은 아니었다.
포탄 안쪽에 화약을 넣어 폭발하게만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조선에서도 이와 비슷한 비격진천뢰를 만들기도 했었고.
그런 만큼 북미왕국이 사용한다는 포탄의 소문만 듣고도 그 원리를 대충은 짐작해 개발하려는 국가도 있었고, 특히 프랑스의 경우는 직접 이 포탄을 경험한 만큼 그 경험을 잘 살릴 모양이라고 생각하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북미왕국의 포탄을 보고 이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 중인데...프랑스가 한발 빨랐습니다. 덕분에 지금 유럽은 난리라더군요.”
이에 정성국은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 호전적인 루이 14세에게 신무기가 주어졌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 그보다 프랑스가 개발한 작열탄의 위력은 어느 정도인지 파악했나?”
“유럽에 나가 있는 정보기관의 보고로는 원시적인 형태의 작열탄이랍니다. 그래서 유럽의 배들은 이 작열탄에 취약할 거라고 하더군요. 다만 방어력을 보강하기 위해 선체에 강철을 얇게 두른 우리 북미왕국의 전선에는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 같다는 판단입니다만...”
군사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전생의 흐름을 떠올렸다.
프랑스에서 작열탄을 개발하면서 유럽의 해군들은 작열탄의 위력에 반해 너도나도 작열탄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목제 군함은 이 작열탄에 취약해 점차 철판을 두르면서 소위 철갑함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거기에 북미왕국의 존재로 유럽은 증기기관의 개발에도 전력을 쏟고 있으니 어쩌면 생각보다 빠르게 철갑함과 근대식 군함들이 탄생할 것 같아 슬슬 이를 준비해야겠다고 여기며 정성국이 입을 열었다.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저들이 작열탄을 개발한 이상 더 위력이 강한 작열탄을 개발하려들 테니 우리도 이에 맞춰 전선의 방어력을 올리긴 해야겠군.”
“예. 그랬으면 합니다.”
“알겠네. 그 건은 따로 주명이한테 이야기해두도록 하지.”
정성국의 말에 군사청장이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 있던 조용한 곰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상황이 그렇게 되어 버려서 덴마크와 에스파냐, 네덜란드에서 지원 요청을 해왔습니다만...”
“지원? 무슨 지원? 설마...”
조용한 곰은 정성국의 예측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북미왕국의 포탄을 팔아달라고...”
당장 프랑스 해군이 활개 치는 것을 막으려면 역시 북미왕국의 포탄을 수입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
그렇기에 신식 소총처럼 북미왕국의 포탄을 수입하려고 한 모양이지만 이건 상황이 전혀 달랐다.
“불가. 포탄뿐만 아니라 후장식 화포까지 함께 팔아야 한는데...그건 무리지.”
군사청장은 정성국의 단호한 대답에 안도한 표정을 지었고 조용한 곰은 예상했던 답변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에스파냐는 내년에 받기로 예정되어 있던 5천 정의 신식 소총의 인도를 조금 앞당겨달라고 요청했습니다만...”
“현실적으로 물량이 없는 걸 어찌하나. 그러니 그 문제는 잉글랜드와 상의하라고 해.”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