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6화
정성국은 잔뜩 흥분한 기색으로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오는 군사청장을 보고 피식 웃었다.
군사청장이 왜 저렇게 흥분한 것인지 대충 짐작했기에.
“여. 군사청장. 비행기는 잘 보고 왔나?”
물론 아직 공개적으로 비행기의 존재를 알리지야 않았지만, 청장급이라면 연구청에서 한창 비행기를 개발 중이라는 것을 모르진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연구청에서 비행기를 개발했고 시범 비행까지 마쳤다는 것을 알게 되자 활공기를 봤을 때부터 이를 군사적인 목적으로 써먹기 위해 고민하고 비행기가 하루라도 빨리 개발되기를 기다렸던 군사청장은 시간이 나자마자 곧바로 비행장을 방문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고.
정성국은 군사청장을 찾았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기에 흥분한 군사청장을 보고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묻자 군사청장은 머릿속에서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모습을 떠올린 것인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즉각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입니다! 정말 놀라웠습니다! 활공기를 처음 봤을 때도 충격이었지만 하늘을 자유자재로 나는 비행기는 정말로...”
정성국은 군사청장이 흥분해서 계속 떠들 것으로 보여 대꾸했다.
“그래. 대단하지. 쓸만하기도 할 테고.”
“그렇습니다! 아쉽게도 아직은 비행기의 성능 문제로 공격용으로는 써먹기 어렵겠지만 정찰용으로 충분히 써먹을 수 있어 보였으니까요. 들어보니 연료를 가득 채우면 1시간은 족히 비행할 수 있다면서요? 거기에 그 1시간이면 100km 정도를 이동할 수 있고요?”
“그렇지. 뭐 귀환하는 것까지 고려해야 하니 이동 거리야 절반으로 확 줄어들기야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쓸 만은 할 거야.”
“예. 공중에서 직접 정찰하는 만큼 손쉽게 지형지물과 부대 규모 등을 파악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말인데...크흠. 제가 듣기로는 그 하얀 수리급을 양산한다고 들었습니다만...”
군사청장이 슬쩍 정성국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자 정성국은 그런 군사청장의 반응에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왜. 하얀 수리가 양산되면 군사청에 배속해 달라고?”
“그렇습니다! 정찰용으로 완벽하잖습니까!”
이에 정성국은 턱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분명 비행기의 군사적인 가치가 높긴 한데 당장은 비행기의 성능 때문에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기는 아무래도 꺼려졌으니까.
물론 당장 사정이 급하다면야 또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니었고.
“흠. 일단 하얀 수리의 양산 결정을 내린 건 조종사들의 훈련 때문이었지 실제 하얀 수리를 써먹기 위해서가 아닐세.”
정성국이 부정적으로 대답하자 군사청장은 조금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건 저도 들었습니다만...너무 아까워서 말입니다. 막상 비행기를 만들어놓고 제대로 이용하지도 못하는 것은.”
“그렇긴 해. 하지만 아직 비행기의 성능이 실전에 투입할 정도로 좋지는 않다는 게 문제지. 그리고...솔직히 비행기를 실전에 투입할 일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비행기를 실전에 투입하려면 북미왕국이 침공당해 타국의 군대가 북미왕국 본토에 상륙한 상황이라는 뜻인데 과연 그런 상황이 벌어질까 싶은 군사청장은 정성국의 말에 공감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음...그건 그렇군요. 타국과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해군 선에서 해결할 테고 에스파냐는...절대 저희와 전쟁을 벌이지 않을 테니까요.”
북미왕국이 내심 가장 경계하는 나라는 역시 에스파냐였다.
만약의 경우 바다를 통해 북미 대륙에 상륙해야 하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에스파냐는 멕시코 지역을 통해 곧바로 북미왕국의 남쪽에서 치고 올라올 수야 있었으니까.
다만 이건 반대로 북미왕국에서도 군을 남하시켜 에스파냐의 자금줄인 누에바 에스파냐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뜻이라 북미왕국의 국력을 잘 알고 있는 에스파냐는 절대로 북미왕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지는 못할 거라고 확신한 군사청장이었고.
“그렇지. 누에바 에스파냐의 안전 때문에라도 저들은 결코 우리와 척을 지질 않을 테니까. 그러니 당장은 군사청에 배속한다 해도 쓸 곳이 없네.”
이에 군사청장은 수긍했지만 그래도 이번에 개발한 비행기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까워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음...탐사대에 배속하는 건 어떻습니까? 물론 기존의 탐사대야 탐사 업무에는 손 놓긴 했습니다만...”
하지만 정성국은 군사청장의 말에 실소하며 되물었다.
“탐사대에 배속시켜 비행기로 내륙을 정찰하겠다고? 50km마다 활주로를 건설하게?”
“아...”
정성국은 자신의 말에 좌절한 군사청장을 보고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자네 마음은 알겠는데 아직은 시기상조야. 비행기의 성능이 더 좋아지면 그때 상황을 봐서 군사청에 배속하도록 하지.”
“휴우. 알겠습니다.”
드디어 군사청장이 자신의 말에 수긍하고 당장 비행기를 이용할 뜻을 버리자 정성국은 군사청장에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5함대 창설은 어떻게 되어가나?”
현재 외무청장인 조용한 곰이 에스파냐, 네덜란드 대사와 남태평양 문제에 대해 의논 중인 만큼 남태평양의 정보가 유럽에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런 만큼 남태평양을 담당하게 될 5함대 창설 진행 상황을 묻자 군사청장이 허리를 꼿꼿이 펴며 대답했다.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이미 새한성의 조선소에서 5함대를 구성할 천급 전선 3척과 지급 전선 4척을 건조해둔 상태고 이 전선에 탑승할 병사들이 해군 훈련소에서 열심히 훈련 중이지요.”
“아. 그러고 보니 5함대 소속 병사 중 상당수는 하와이 원주민들이지?”
올 초에 수병을 모집했을 때 하와이 제도 전체가 들썩였다는 보고를 들은 적이 있었던 정성국이 묻자 군사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들은 섬사람들이라 배에 관심이 많아 예전부터 하와이 제도에 배치된 1함대 전선을 동경했으니까요. 거기에 이번에 창설되는 5함대의 모항이 오아후 섬인지라 수병이 되더라도 고향을 자주 들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하와이 제도의 혈기 왕성한 남성들이 많이 지원한 터라...”
물론 병사들의 급여나 이들의 사회적인 시선과 대우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원주민 남성들은 북미왕국의 통치 이후 함부로 힘을 쓰기 어려웠기에 합법적으로 힘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병사에 많이들 지원했다.
특히나 훈련만 죽어라 하고 실제 전투에 참여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육군보다 해적들과 전투를 치를 수 있는 해군을 더 선호하는 편이었고.
그 때문에 이번에 해군에서 병사를 모집했을 때 어마어마한 지원자가 몰려 이들 중에서 일부 인원을 선발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군사청장이 자세히 설명하자 정성국은 피식 웃었다.
“하긴. 하와이 제도의 모든 부족이 북미왕국에 합류하면서 더는 싸울 일 없을 테니 옛 전사 계급은 좀이 쑤시긴 했을 거야.”
“하하하. 그렇지요.”
“헌데 5함대의 규모가 생각보다 작은 것 같은데?”
정성국은 프랑스까지 북미 대륙에서 밀어낸 이후에 해군 강화에 더욱 신경을 썼다.
아무래도 바다를 통해 북미 대륙을 방어하는 것이 효율적이었기에.
그래서 다른 함대들은 꾸준히 규모를 늘려왔고.
지금에선 가장 규모가 적은 1함대도 20척 규모는 되었고.
헌데 모든 함대 가운데 가장 넓은 지역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하는 5함대의 규모가 생각보다 적었기에 정성국이 조금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자 군사청장이 답했다.
“아. 5함대가 창설되면 현재 하와이 제도에 배치된 1함대 소속 전선 중 지급 전선 2척도 5함대로 소속을 변경할 생각입니다.”
현재는 1함대의 분함대가 하와이 제도를 지키고 있었는데 이 분함대 중 일부가 소속을 변경할 거라는 군사청장의 대답에도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와야 천급 전선 3척과 지급 전선 6척. 총 9척에 불과하잖아. 너무 적지 않아?”
이에 군사청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예. 함대 규모가 적긴 하지요. 다만 현실적으로 저 넓은 남태평양을 철저히 감시하려면 5함대의 규모는 다른 함대를 합한 것보다 더 많아야 할 겁니다만...”
“솔직히 그건 불가능하지.”
이 시대에 남태평양을 철저히 감시하려면 외곽의 모든 섬에 최소한 인급 전선이라도 배치해야 했는데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전선을 건조하는 것도 문제였고 이 전선에 태울 수병들을 채우는 것도 문제였으며 모든 섬에 보급 물자까지 수송해야 했으니.
그 때문에 정성국도 남태평양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5함대의 규모가 너무 작은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할 때 군사청장이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남태평양의 경우 남태평양 탐사대가 주기적으로 이 지역을 돌아다니고 있는 터라 5함대가 남태평양의 순찰을 담당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성국도 5함대와 탐사대가 연계해 남태평양을 지키는 것이 제일 나은 방법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예 역할을 분리할 줄은 몰랐기에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흠. 결국, 순찰은 남태평양 탐사대에 맡기고...만약의 경우엔 5함대에 연락해 5함대가 해결하겠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수동적이고 대응이 느릴 수밖에 없긴 한데 그것 외엔 딱히 방법이 없어서 말입니다.”
“뭐 수동적인 방법이긴 한데 썩 나쁘진 않아. 그리고 어차피 남태평양에도 머스킷을 풀어 원주민들이 스스로 외부 세력에 저항할 수 있게 도울 생각이니까. 거기에 가끔 돌아다니는 탐사선이 있으니 어지간한 해적들은 충분히 격퇴할 수 있겠지. 함대 구성에 인급 전선이 없는 것도 다 그 때문인 모양이군.”
보통 북미왕국 함대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인급 전선이었다.
인급 전선이 주변 해역 순찰을 담당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탐사대가 이 역할을 가져간다면 굳이 5함대에 인급 전선이 필요 없으니 인급 전선이 한 척도 배치되지 않았고 그 때문에 함대 규모가 무척 적어 보였던 것이라는 점을 깨달은 정성국이 군사청에서 왜 5함대를 이렇게 창설한 것인지 납득한 눈치이자 군사청장은 내심 안도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예. 그리고 5함대의 천급 전선 1척과 지급 전선 2척을 묶어 호주와 타히티에 파견하고 계속해서 교대시킬 생각이고요.”
이에 정성국은 남태평양 지도를 머릿속에서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5함대의 모항인 오아후 섬은 남태평양과는 거리가 좀 떨어져 있으니까?”
북미왕국이 발견한 남태평양의 섬들은 주로 하와이 제도, 호주, 핏케언 제도를 연결하는 커다란 삼각형 안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오아후 섬에만 5함대를 배치해두면 멀리 떨어져 있는 호주나 핏케언 제도에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해도 아무래도 대응이 느릴 수밖에 없었고.
해서 군사청에서는 만약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조금이나마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5함대를 3등분 해서 이 삼각형 끝에 배치할 계획을 세운 모양이었다.
다만 남동쪽 끝에 있는 핏케언 제도의 경우 섬도 작을뿐더러 이곳에 5함대의 일부를 배치하려면 각종 시설 공사가 필요했기에 이미 여러 시설을 건설해 둔 서쪽의 타히티 섬으로 파견 장소를 바꾼 듯 보였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해적들이 동남아시아나 파나마 운하, 혹은 마젤란 해협을 통해 남태평양으로 올 테니 호주와 타히티에 함대 일부를 배치해야 즉각 지원할 수 있기도 하고요.”
“그럼 오아후 섬에서는 개인 정비와 휴식이 주 임무겠군.”
어차피 하와이 제도는 이미 북미왕국의 땅이라고 유럽에 알려진 만큼 아무리 간 큰 해적이라 하더라도 하와이 제도 인근에 알짱거리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 정성국이 묻자 군사청장도 비슷한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비록 8개월은 이국의 섬에서 지내야 했지만, 호주나 타히티의 풍경도 나쁘지 않았고 이동 시간을 고려하더라도 2, 3개월 정도는 충분히 쉴 수 있을 테니 5함대 병사들도 당장은 큰 불만은 없을 것이라 예상한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리고 5함대의 사령관은?”
“아무래도 5함대의 담당 구역이 남태평양이고 5함대는 남태평양 원주민과 원활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 만큼 그동안 남태평양을 탐사하며 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현 해군 탐사대장 외엔 적임자가 없습니다. 더불어 5함대의 특성상 남태평양 탐사대와의 관계도 무척 중요한 만큼...”
정성국도 예상했고 적합한 인물이라고 판단했기에 수긍하면서도 해군 탐사대장을 떠올리고 조금은 의문이라는 듯 중얼거렸다.
“역시 그런가. 헌데 해군 탐사대장이 과연 5함대 사령관 자리를 받아들일지 모르겠군. 그 친구. 해군 탐사대에 만족하는 눈치던데...”
정성국의 말에 군사청장은 슬쩍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5함대 사령관을 맡을만한 인물이 자신 외엔 딱히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고집을 부릴 친구는 아니지요. 그리고 이젠 새롭게 탐사할 지역도 없는 터라 그가 남태평양 탐사대를 고집할 이유도 없고요.”
“아. 그렇긴 하군. 어차피 남태평양을 순찰하는 업무가 주 업무가 될 테니.”
“그렇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겠네. 그럼 5함대는 올해 가을 정도면 창설할 수 있다고 알고 있으면 되나?”
이에 군사청장은 잠시 시기를 따져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못해도 9월 정도엔 창설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북미신문을 통해 남태평양도 우리 북미왕국의 해군이 지킨다는 것을 널리 알려 해적의 접근을 차단할 생각이고요.”
해적이라면 북미왕국 해군에 치를 떤다는 사실을 잘 아는 정성국은 피식 웃었다.
“그럼 맡기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