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5화
정성국은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커피를 내리던 도중 집무실을 방문한 교육청장을 반기며 말했다.
“급한 일이 아니면 자네도 차나 한잔하지?”
“전하께서 내리신 커피를 어찌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교육청장이 빙긋 웃으며 그렇게 대답하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빈 잔에 커피를 따라 교육청장 앞에 놓으며 교육청장의 복장과 얼굴을 살펴보고 말을 걸었다.
“요새는 꼬박꼬박 퇴근하고 잘 쉬나 보지? 전에 봤을 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얼굴이 좋아졌는데?”
이에 교육청장은 정성국이 내어 준 커피를 마시려다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전하의 어명을 어길 수야 없지 않습니까. 거기에 전하께서 챙겨주신 각종 보양식까지 매 끼니 먹다 보니 혈색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정성국은 교육청장을 만난 후로 그의 건강이 염려되어 몸에 좋다는 조선의 삼을 비롯해 각종 보양식을 교육청장의 집에 보냈는데 교육청장 입장에서 이건 왕의 하사품이었으니 황송해하며 열심히 먹을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몸이 많이 좋아졌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다행이군. 하지만 건강이 좋아졌다고 또다시 예전처럼 무리할 생각은 말게.”
교육청장은 자신의 건강을 무척 염려하는 정성국의 마음 씀씀이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물론입니다. 저도 다른 청장들처럼 부하직원들에게 조금씩 권한을 넘겨주며 업무를 축소하고 있으니 이젠 크게 무리할 필요도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렇게 잡담을 마친 정성국은 커피를 마시며 교육청장의 보고를 듣기 시작했다.
보고 내용은 이전에 논의했던 대학교 설립을 위해 대학교의 위치를 결정, 부지를 확보해 개발청에서 3곳에 대학교를 건설 중이라는 것과 내년부터는 초등 교육 기관과 중등 교육 기관에서 본격적으로 체육 교육을 시행할 예정이라는 것이었고.
대학교 설립 문제야 딱히 지적할 부분은 없었기에 고개만 끄덕이던 정성국은 교육청장이 곧 시행될 체육 교육에 관해 보고하자 이를 유심히 듣다 고개를 저었다.
“매주 2시간? 에이. 그건 너무 적지. 못해도 매주 4, 5시간은 되어야 하지 않겠나?”
전생의 한국은 체육을 딱히 중요한 교육으로 생각하지는 않아 점차 체육의 비중이 줄어들었지만, 서양의 경우 체육을 무척 중요한 교육으로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의 경우 학생들이 배워야 할 3대 교과목 중 하나가 체육이기도 했고 서양에서도 체육이 정신 수양에도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서 서양에서는 1주에 5시간 정도는 체육 시간을 보장해 학생들이 공부뿐만 아니라 운동을 통해 즐거운 학교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떠올린 정성국이 이렇게 이야기하자 교육청장은 조금 당혹스럽다는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예? 4, 5시간이라니요. 그건 너무 많지 않습니까? 매주 2시간을 배정하기 위해 기존의 수업을 줄였는데 여기서 더 줄이라면...”
물론 교육청장도 정성국이 이야기한 체육 교육에 공감하긴 했지만 그건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싶어 반문했다.
하지만 정성국은 의외로 단호했다.
“그래도 2시간은 너무 적어. 체육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신체를 건강하게 만들 생각인데 매주 2시간 가지고 그게 되겠나.”
“으음...그렇긴 한데 체육 시간을 그렇게 늘리면 다른 수업이 부실해질 것이 조금 우려스럽습니다만...”
물론 북미왕국의 경우 미성년자들의 노동을 엄금하고 있었고 가장 수업이 많은 고등학교 역시 3시면 수업이 끝났고 따로 학원도 없는 만큼 학생들의 여유 시간은 풍족한 편이었다.
더불어 아직은 놀 거리가 마땅치 않았기에 아이들 대다수는 공터에서 뛰어노는 편이었고 정성국이 북미신문을 통해 여러 공놀이 규칙을 알리고 국영 상단에서 각종 장비를 제작해 판매하면서 아이들도 이 공놀이를 즐기는 편이었고.
그렇기에 교육청장은 굳이 다른 수업 시간을 줄이면서까지 체육 시간을 더 늘릴 필요가 있나 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최근 정성국은 최근 새한성의 거리를 돌아다니다 본 것이 있었기에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감수해야지. 자네도 알지 않나. 최근 새김포나 새한성의 아이 중에는 뚱뚱한 사람도 꽤 있다는 걸.”
“그렇기야 하죠. 워낙 먹을 것이 풍족하다 보니...”
태어날 때부터 풍요를 누리던 새한성 인근의 아이들은 비교적 발육 상태가 좋았다.
굶을 일도 없고 북미왕국은 아이들에게 아침과 점심을 제공했으며 균형 잡힌 식사가 아이들의 성장과 직결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정성국의 명령으로 아이들은 매일 고기나 생선을 섭취해 단백질을 충분히 보충할 수 있었으니.
이렇게 학교에서 잘 먹은 학생들 대부분은 학교가 끝나면 운동장이나 주변 공터에서 뛰놀면서 시간을 보냈기에 큰 상관이 없었지만, 몸을 움직이기 귀찮아하는 학생들이 문제였다.
이들은 잘 먹기는 하되 몸을 별로 움직이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이 옆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었고.
정성국은 새한성의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하교하는 아이들 가운데는 이런 뚱뚱한 아이들도 꽤 있어서 이 아동비만을 그냥 내버려 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기에 정성국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리고 지금 뚱뚱한 아이들은 먹는 것에 비해 활동량이 적다 보니 자연스럽게 살이 찌는 거지. 그리고 살이 찌면 몸이 둔해져서 활동량이 줄어들어 더 찔 수밖에 없고. 헌데 뚱뚱한 것은 건강에 그리 좋지 않네.”
“어? 그렇습니까?”
“그래. 좋을 것 없지. 여러 병이 생길 위험도 크고.”
정성국이 전생의 성인병을 떠올리며 대충 설명해주자 교육청장은 왜 정성국이 체육 시간 확보에 열을 올리는지 파악하고 중얼거렸다.
“아. 그러니 체육 시간을 늘려서 학생들의 활동량을 늘려보겠다는 뜻이로군요?”
“그렇지. 그리고 어릴 때부터 몸을 움직이다 보면 커서도 몸에 익은 운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신체를 단련할 테고 그렇게 신체를 단련하다 보면 건강하게 오래 살 확률이 오르겠지.”
그러면서 학생들의 체육 교육은 결국 미래의 국력과 직결되어있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는 정성국의 말에 교육청장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알겠습니다. 하지만 매주 5시간까지는 조금 힘들 것 같고...일단 매주 4시간까지 늘려보겠습니다.”
“그래. 뭐 일단은 그 정도로 하자고.”
어차피 당장은 제대로 아이들을 지도할 체육 교사도 없는 만큼, 그 정도로 만족한 정성국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보고한 교육청장은 보고를 끝낸 후 커피를 마시며 지나가듯 한마디 했다.
“아. 그리고 용골이 발견되었습니다.”
이에 커피를 마시던 정성국이 깜짝 놀라 급히 되물었다.
용골이면 용의 뼈, 즉 화석이라는 뜻이었으니까.
“음? 용골?”
정성국이 의외로 관심을 두는 눈치이자 교육청장은 조금 의외라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전하. 아시다시피 미술관 근처에 역사박물관과 과학박물관의 건물은 다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정성국은 왕실 차원에서 미술관을 설립한 이후 교육청장에게 다른 박물관도 설립하라고 지시했다.
교육청장 역시 박물관이 북미왕국 백성들의 교육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해 기꺼이 이 일을 맡았고.
해서 개발청은 미술관 주변 부지에 두 개의 박물관 건물을 건설했고, 최근 정성국은 새로 들어온 미술품의 관람을 위해 미술관을 방문했다가 개발청에서 잘 지어 놓은 역사박물관과 과학박물관을 확인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다만 아직은 전시할만한 것이 많지 않아 문을 열지야 않았지만 말이지.”
개발청에서는 근사한 박물관들을 건설했지만, 막상 이 박물관에 전시할 물품을 채우지 못해 아직 개관조차 하지 못한 상황이라 교육청장이 쓴웃음을 머금고 다시 입을 열었다.
“예. 그렇지요. 해서 박물관을 채우기 위해 꽤 많은 인력을 북미왕국 곳곳에 파견해 여러 유물을 비롯한 전시할 만한 물품을 찾기 위해 예전부터 노력 중인데...최근에 북미 동해안 지역에서 특이한 광물을 찾던 한 지질학자가 이끄는 탐험대가 용골을 발견했답니다.”
아직은 화석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시대였고 화석은 얼핏 보기에 뼈 모양을 하고 있기에 아시아에선 흔히 용골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뼈의 형태에 광물이 스며들어 돌로 변질되어 형태만 남아 있었기에 용골보다는 화석이 적합한 명칭이긴 했다.
그리고 정성국도 이 북미 대륙에 여러 공룡 화석이 묻혀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고.
다만 그가 기억하기로는 아직 북미왕국이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중부 내륙 지역이 주요 화석 출토 지역으로 알고 있었기에 이곳까지 진출한 이후에나 화석을 발굴해 본격적으로 연구할 생각이었는데 북미 동해안 지역에서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에 생각보다 이 북미 대륙에는 화석이 많이 묻혀 있긴 한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하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예. 물론 용골이 약재로 쓰이기야 하는데...이번에 발견한 용골이 꽤 온전한 편이고 이 용골의 크기 또한 범상치 않아 이것을 과학박물관에 전시해두면 꽤 볼만할 것 같다면서 제대로 발굴했으면 한다는 탐험대의 요청이 올라와서 말입니다.”
용골은 그 모양 때문에 뼈로 인식되었기에 동양에서는 이 용골을 약용으로 사용해왔다.
중국도 그렇고 조선도 마찬가지였고.
그리고 정성국이 교과서를 집필할 때 적당히 수정하면서 지질 시대에 관한 내용도 빼버린 터라 교과서에도 공룡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고 그렇기에 북미왕국에서도 용골의 인식은 약재에 가까웠는데, 어차피 과학박물관에 전시할 것은 많지 않았고 생물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주장에 따라 동물의 뼈도 전시할 예정이었기에 이번에 발견한 이 용골도 잘 발굴해 전시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지질학자의 의견을 이야기하면서 교육청장이 슬쩍 덧붙였다.
“다만 제가 보기엔 용골은 과학박물관에 전시하기는 좀 애매한 것 같은데...”
“무슨 소리! 내가 보기엔 과학박물관에 전시해 관람객들의 흥미를 끌기 딱 좋을 것 같은데!”
정성국이 자신의 말에 펄쩍 뛰며 격하게 반응하자 교육청장은 무척 당황한 눈치로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관람객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 상상 속의 동물이나 다름없는 용의 뼈를 과학박물관에 전시한다면 과학박물관의 신뢰성이 의심받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이에 정성국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교육청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용골이 묻혀 있었다는 이야기는 결국 예전엔 용이 존재했다는 뜻이 아니겠나?”
“예? 용...이 말입니까?”
“아. 물론 우리가 상상하던 용과는 조금 다르겠지만 말일세. 온전한 용골이 발견된 이상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겠나?”
“으음...뭐 그렇긴 한데...”
처음에는 정성국의 말에 당황과 혼란을 감추지 못하던 교육청장은 정성국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기에 일단 수긍하면서도 고민이 깊은 눈치였지만 정성국은 개의치 않고 이야기했다.
“아. 아예 더 많은 탐험대를 그 지역에 급파해 주변 지역을 샅샅이 뒤지게. 땅도 좀 파고. 그럼 더 많은 용골을 발견할 수도 있겠지. 그럼 전시할 것도 더 많아질 테고.”
용골을 다른 동물의 뼈와 함께 전시한다는 뜻은 북미왕국은 용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뜻과도 같았기에 교육청장은 정성국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난처하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이거 조금 당황스럽군요. 전하께선 정말로 용이 존재한다고 믿으시는 겁니까?”
이에 정성국은 커피잔을 내려놓고 진지한 표정으로 교육청장을 바라보며 답했다.
“존재한다고 믿는 게 아닐세. 존재했다고 생각하는 거지. 증거가 명확히 존재하잖나.”
“으음...”
정성국의 단언에 교육청장은 신음을 흘리며 생각에 잠겼을 때 정성국이 슬쩍 덧붙였다.
“그리고 이번에 발견한 용골을 잘 연구한다면 용이 언제 번성했고, 지금은 왜 모두 사라졌는지를 알아낼 수도 있을 테고. 어쩌면 이 연구가 진행되어 교과서를 수정할 수도 있겠군.”
정성국은 이번에 화석이 발견되었으니 이 일을 계기로 고생물학을 발전시킬 생각이었다.
정성국이 공룡 화석을 연구하게 하는 것은 공룡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이를 통해 기독교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북미왕국의 학자들이 고생물학을 연구하면서 인간 이전에도 여러 생물이 존재했고 지금은 멸종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혀낸다면 성경은 진리가 담긴 책이 아닌 불완전한 책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거기에 신학적인 관점에서 종의 멸종이라는 개념은 신이 완벽한 생물을 창조했다는 천지창조의 개념에서 어긋나는 것이기도 했고.
그러니 정성국은 이를 통해 기독교의 영향력을 줄일 속셈으로 본격적으로 화석을 연구할 뜻을 밝히자 교육청장은 정성국의 뜻이 확고했고 과학적인 관점에선 정성국의 주장이 맞는 것처럼 생각되었기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탐험대를 추가로 보내서 주변 지역을 샅샅이 살피라고 전하겠습니다. 헌데 용이 존재했다는 내용이 교과서에까지 들어간다면...유럽이 다시 시끄럽겠군요.”
북미왕국의 교과서에서는 천동설은 틀린 가설로 설명하며 지동설이 맞다고 쓰여 있기도 했고 고등학교 과학교과서의 내용 중엔 유전학과 자연선택설도 슬쩍 집어넣었기에 이것이 유럽에 알려지면서 신학자들이 북미왕국의 교과서를 비난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교육청장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정성국이 피식 웃었다.
“그런 건 무시하게. 저들의 눈치를 봐가면서 백성들을 가르칠 수야 없는 노릇이니. 그리고 떠들어대기만 할 뿐이지 저들이 우리와의 거래를 끊을 리도 없고.”
“그거야 그렇지요.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