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4화
정성국은 새한성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하얀 들꽃의 집무실을 찾았다.
자기 일을 하얀 들꽃에게 떠넘기고 예정보다도 늦게 도착했으니 미안하기도 했고.
해서 정성국은 호위대원을 시켜 하얀 꽃다발까지 준비했고.
하얀 들꽃은 집무실에서 보고서를 살피다가 정성국이 집무실로 들어오자 보고서를 내려놓고 활짝 웃었다.
“아! 전하! 오셨어요?”
“그래. 좀 늦었지? 미안. 그리고 이건 선물.”
“어머!”
하얀 들꽃은 정성국이 건넨 꽃다발에 처음 놀란 표정을 짓다가 무척 기뻐하면서 꽃의 향기를 맡다가 물었다.
“갑자기 웬 꽃다발이에요?”
“늦어서 바치는 뇌물이랄까?”
“쿡쿡쿡. 헌데 제 것만 준비한 것은 아니죠?”
정성국은 하얀 들꽃의 마음 씀씀이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라 것도 준비해뒀으니 걱정 말고.”
그 말에 하얀 들꽃은 빙긋 웃으며 다시 꽃향기를 맡다가 입을 열었다.
“그보다 실험은 잘 끝났나요?”
하얀 들꽃도 정성국이 왜 새한성을 비웠는지는 모르지 않았기에 비행 실험에 관해 묻자 정성국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연구청에서 만든 비행기는 성공적으로 하늘을 날 수 있었어. 정말 역사적인 순간이었지. 그리고 그걸 보고 있자니 아라나 너, 아이들의 생각이 나긴 하더라. 함께 왔으면 좋았을 걸 하고.”
하얀 들꽃은 정성국의 말에 빈말이라도 기분이 좋았기에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후후후. 그렇네요. 다만 비행이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조만간 새한성의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함께 구경하면 되지 않겠어요?”
“아. 그렇네. 나중에 비행기가 새한성에서 시범 비행을 하면 그때는 꼭 같이 구경하자고.”
정성국이 웃으며 대꾸하자 하얀 들꽃은 의아한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어? 비행에 성공했으니 곧바로 새한성에서 시범 비행을 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보네요?”
솔직히 하얀 들꽃이 보기에 현실적으로 비행기는 그리 쓸모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사람이 기계를 이용해 마치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역사에 남을 정도로 대단한 일이었고 북미왕국의 기술력을 전 세계에 과시할 수 있었기에 하얀 들꽃은 시범 비행에 성공한 이상 곧바로 새한성에서도 시범 비행을 진행해 북미왕국이 하늘까지 정복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을까 싶었고.
헌데 정성국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았기에 질문하자 정성국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당장 급한 일은 아니잖아? 그리고 아무래도 비행기는 추락의 위험이 없지 않다 보니 아직은 사람이 많은 도시 주변을 날게 하긴 조금 그래서. 조종사들도 비행에 더 익숙해져야 하고.”
“아. 하긴. 안전이 제일이죠. 그럼 신문에도 당분간은 비행기에 관한 기사는 실리지 않겠네요?”
“그럴 생각이야. 어느 정도 준비되었을 때. 그때부터 기사를 실어야겠지. 그보다는 비행기를 개발했으니 미래를 대비해 북미왕국 곳곳에 활주로부터 만들 생각이고.”
“활주로요?”
생소한 단어에 하얀 들꽃이 고개를 갸웃하자 정성국이 설명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하는 장소. 안전하게 이륙과 착륙을 하려면 제대로 포장된 활주로가 필요하거든.”
“아하. 헌데 북미왕국 곳곳에 활주로를 건설한다고요? 비행기를 마구 양산하실 생각이세요?”
“당장은 아니지만, 훗날엔 그렇게 되겠지. 그러니 미리미리 준비하는 게 낫지 싶어서.”
정성국의 이야기에 하얀 들꽃은 정성국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음...분명 비행기가 대단하긴 한데 실제로는 정찰 용도 외에는 딱히 쓸모가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비행기의 효용성을 의심하는 하얀 들꽃을 보고 정성국이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비행기가 생각보다 빠르거든.”
“어? 그래요?”
“그래. 지금도 기차보다는 조금 빠르고...점차 더 빨라질 거야. 그러면 사람들은 오히려 먼 거리는 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수도 있겠지.”
정성국의 말에 하얀 들꽃은 눈을 깜빡이다 중얼거렸다.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다고요? 그게 정말 가능할까요?”
“그럼. 충분히 가능하고말고. 아마 우리가 늙기 전에 비행기를 타고 북미왕국 곳곳을 방문할 수 있을걸?”
정성국의 말에 하얀 들꽃은 새삼 놀랍다는 표정을 짓다가 순간 멈칫했다.
“놀랍고 무척 기대되기는 하는데...조금 위험하게 들리기도 하는데요?”
비행기를 타다 추락이라도 하면 어쩌나 싶은 표정이었기에 정성국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물론 충분히 안전하다는 보장이 있을 때 탑승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정성국의 확답에 안도한 하얀 들꽃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정말 그렇게 비행기가 발전한다면, 그래서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다면 그때를 대비해 처음부터 활주로 부지를 무척 크게 잡아야겠네요. 수많은 사람이 활주로를 방문해 비행기에 탑승할 테니 이들이 머물 시설들도 건설할 자리까지 고려해야 하니까요.”
“그렇지. 그리고 나중엔 여러 화물도 옮길 테니 생각보다 부지를 크게 잡아야 할 테고. 그러니 최대한 빠르게 부지를 선정하는 게 나아. 나중에 이 부지를 선정하겠다고 애먹을 바에야.”
한창 북미왕국 곳곳을 개발 중이니만큼 정성국의 말처럼 미리미리 도시 주변에 활주로 부지를 잡아두는 것이 낫겠다 싶은 하얀 들꽃이 문득 정성국에게 질문을 던졌다.
“헌데 비행기도 연료가 필요한 만큼 곳곳에 이 활주로가 있어야 하지요?”
“그렇지. 뭐 나중이 되면 항속 거리가 더 늘어나긴 하겠지만...계속 하늘에 떠 있을 수야 없는 노릇이니까.”
“그럼 다른 나라에도 미리 활주로 건설을 위한 땅을 확보해둬야 하는 것 아니에요?”
“흐음...그건 그렇지.”
물론 다른 나라도 비행기를 운용하게 된다면 그들도 활주로가 필요한 만큼 그때 공항의 개념을 알려주어 공항을 건설하게 하고 이를 이용하면 그만인데 정성국이 보기엔 꽤 오랫동안 북미왕국에서만 비행기를 운용할 것 같았다.
그런 만큼 비행기를 이용해 외국을 방문하려면 결국 북미왕국에서 외국에 공항을 건설하긴 해야 할 테고.
해서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흐음...그건 그렇지. 다만 비행기의 존재도 알리지 않았는데 활주로 건설을 위한 땅을 확보하는 건 조금 그렇고...훗날 비행기를 공개하고 비행기의 성능이 좋아져 이를 이용해 외국을 방문할 수 있을 때쯤에 이 문제를 논의할 생각이니 그건 당장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야.”
“아. 그렇네요. 그럼 북미왕국의 각 도시에 활주로를 건설할 정도의 부지를 마련해 두라고 개발청에 공문을 보낼게요.”
정성국이 건넨 선물이 기뻤던지 몇몇 업무를 더 해주겠다는 하얀 들꽃의 이야기에 정성국은 가끔은 선물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래 주면 고맙고.”
* * *
정성국이 자신의 연구실로 들어오자 김신철은 정성국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스승님.”
“그래. 전화를 받고 바로 오지 못해서 미안하다. 예정된 일정이 있어서 조금 늦었다.”
정성국이 조금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하자 김신철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그 비행기 시범 비행 말이죠? 성공했다면서요? 그것도 3번이나?”
“음? 기동이와 통화했나 보네?”
“예. 어제 통화했어요. 알루미늄 합금 개발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스승님께 들었다면서 합금에 대해 꼬치꼬치 묻더라고요. 그러다 알게 되었지요.”
김신철의 말에 정성국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처음으로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 수 있는 비행기를 개발하긴 했지만...아직 갈 길이 멀지. 헌데 네가 개발한 알루미늄 합금이라면 그 먼 길을 조금 단축할 수 있을 것 같고.”
이에 김신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기동이에게 들어보니 비행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무게라면서요? 그 때문에 나무와 천을 사용하는 터라 한계가 명확하다면서 제가 알루미늄 합금을 자세히 설명하자 무척 기뻐하더라고요.”
“그럴 수밖에. 그리고 꼭 비행기가 아니더라도 강도가 높으면서도 무게가 덜 나가는 금속이라면 어디든 쓸 수 있을 테고.”
전생에서 두랄루민이 항공기 소재뿐만 아니라 꽤 여러 분야에서 쓰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정성국이 이렇게 대답하자 김신철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글쎄요. 생산비용을 생각하면 그냥 강철을 쓰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뭐 상황에 따라 결정하면 되겠지. 그보다 네가 이번에 만들었다는 합금의 실물을 구경 좀 해보자.”
“하하하. 그러세요. 저기 있거든요.”
정성국이 김신철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옆 방으로 이동했고 옆 방에는 은빛의 금속판이 책상에 올려져 있었기에 정성국이 급히 다가가며 물었다.
“오, 이거야?”
“예. 그게 그동안 연구를 통해 발견한 여러 알루미늄 합금 중 강도가 제일 높은 녀석이에요.”
정성국은 알루미늄 합금이기에 기존의 금속판보다는 훨씬 가벼운 이 알루미늄 합금을 몇 번 만져보다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허. 진짜로 단단하네. 물론 두께도 좀 되기야 하지만...”
“그죠? 다만 이 합금을 본격적으로 양산해 사용하기에는 솔직히 조금 불안하긴 해요.”
“음? 왜?”
이런 대단한 합금을 만들어놓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표정으로 정성국이 김신철을 바라보자 김신철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정성국이 들고 있는 합금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대체 왜 시간이 지나면 강도가 강해지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요.”
“현미경으로 자세히 살펴봤어?”
“그럼요. 다만 딱히 알아낸 것은 없고요.”
“그래?”
정성국이 알기로 원자가 이리저리 움직여 무르고 강도가 낮은 알루미늄에 비해 두랄루민은 알루미늄 결정 격자 내부에 녹아있던 합금의 불순물이 온도가 내려감에 따라 석출되어 원자의 이동을 방해해 강도가 올라가는 것으로 기억했다.
그렇기에 현미경으로 이를 파악하지 못했다면 아직 현미경의 수준이 부족하다는 뜻이었기에 현미경의 개발을 더욱 독려해야겠다고 여기며 얼버무렸다.
“그래도 이렇게 좋은 합금을 만들어놓고 시간이 흐르면 강도가 증가하는 원리를 모르겠다며 사용하지 않으려고? 옛날 사람들은 뭐 자세한 원리를 알아서 여러 합금을 만들어낸 건가? 그건 아니잖아? 그러니 이유는 천천히 알아내도록 하고 일단 양산부터 하자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성국의 말도 틀리지 않았기에 김신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그렇긴 하지요. 알겠습니다.”
이에 정성국은 만족하며 덧붙였다.
“그리고 여기서 만족할 건 아니지? 이거보다 더 강한 합금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
“어...여기서 더요?”
“그럼. 더 강하고 튼튼한 합금을 만들어야지.”
두랄루민이 개발된 이후 미국에서는 두랄루민보다 강도가 더 높은 초 두랄루민을 개발했고, 일본에서는 그보다 강도가 높은 극초 두랄루민을 개발했다.
그러면서 이 합금들은 항공기 재료로 요긴하게 쓰였고.
그렇기에 정성국은 여기서 멈추지 말고 더 좋은 합금을 개발하라고 독려하자 김신철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휴. 알겠습니다. 어차피 충분한 연구원들을 배치해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니 뭐...언젠가는 만들 수 있겠지요.”
김신철의 말마따나 당장은 두랄루민만 하더라도 충분했기에 정성국이 히죽 웃었다.
“그래. 그래. 이것만 하더라도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으니까. 그보다 다른 합금은 없어?”
“아. 몇 개 더 있긴 해요. 물론 이 합금보다 강도야 떨어지지만, 내식성이나 내열성이 더 우수한 특징을 가진 합금이나 가공하기 무척 편해서 써먹기 좋은 같은. 해서 몇몇 합금들은 양산해 사용할 생각이고요. 이게 그것들이죠.”
박기동이 책상 밑에서 상자를 꺼내 열자 그 안에는 여러 알루미늄 합금들이 나왔는데, 솔직히 외관은 죄다 은빛의 금속이었기에 딱히 구별되지는 않았다.
다만 강도가 낮을지라도 특별한 성질이 있다면 써먹을 수야 있었기에 정성국이 반색하며 상자 안의 알루미늄 합금을 살펴보다 입을 열었다.
“오. 그래? 헌데 다들 제대로 된 이름은 붙이지 않았나 보네? 이 숫자는...”
상자 안에는 0472, 0732 같은 숫자만 쓰여 있었기에 정성국이 이를 가리키며 묻자 김신철이 어깨를 으쓱했다.
“예. 그냥 실험한 횟수에 맞는 숫자를 붙이는 게 다 인데...흠. 따로 이름을 붙이긴 해야 하려나요?”
“그거야 너 편한 대로 하고. 다만 번호로 분류하더라도 체계적인 분류법 정도는 만들어. 난잡하게 그냥 번호만 붙이지 말고.”
전생에선 수많은 알루미늄 합금을 주요 성분에 따라 분류했던 것을 떠올린 정성국이 이렇게 충고하자 김신철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질문을 던졌다.
“음...그러니까 어떤 규칙을 정하고 그에 따라 분류하라 이거죠?”
“그렇지. 그게 더 효율적이잖아? 아니면 쓸만한 합금을 발견할 때마다 이름을 붙이되 알루미늄 합금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이름을 붙이던가. 이 번호들을 그대로 쓰기엔 좀...”
“흠. 그렇긴 하네요. 알겠습니다. 어떤 방식을 택하든 기준을 세워 이름을 붙이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