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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470화 (470/850)

470화

“음? 벌써 노선 측량이 끝났다고?”

정성국은 집무실로 찾아온 개발청장의 보고에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개발청 소속 기술자들이 훗날 부설될 노선 주변의 땅을 자세히 측량하기 위해 작년에 조선으로 향했는데 고작 반년 만에 모든 측량을 끝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다.

이런 정성국의 반응에 개발청장이 웃으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조선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생각보다 빠르게 측량을 끝낼 수 있었다는군요.”

“허. 그래도 그렇지. 반년 만에 노선 전체를 모두 측량할 정도면 기술자들이 무척 고생했겠는데?”

물론 빠른 측량을 위해 꽤 많은 기술자를 보내긴 했지만 그래도 반년 만에 노선 주변 지역의 측량을 끝냈다는 뜻은 결국 개발청 소속 기술자들이 추운 겨울에 조선을 열심히 돌아다녔다는 뜻이었기에 정성국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개발청장은 기술자들을 걱정하는 정성국을 보고 빙긋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럴까 봐 방한 장비를 철저히 준비해서 보냈으니까요. 조선이 춥긴 하지만 설마 알래스카 지역보다 춥겠습니까.”

알래스카 지역은 워낙 추운 편이라 북미왕국에선 난방 장치 개발 외에도 방한 장비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던 만큼 정성국은 개발청장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건 그렇지. 허면 철도 노선은 완전히 정해진 건가?”

“그렇습니다. 물론 세부적인 노선이야 약간 변경해야 하겠지만 전체적인 노선은 미리 계획한 노선에서 큰 차이가 없습니다.”

“흠. 그래?”

이번에 부설하게 될 조선 철도의 노선은 전생과 무척 비슷했다.

의주에서 평양, 개성을 지나 한양에 도착하는 경의선을 그렇다 치더라도 한양에서 수원, 천안, 대전, 대구를 지나 부산에 도착하는 경부선의 경우 정성국은 과연 이대로 노선을 정해야 하는지 조금 고민하긴 했었다.

전생의 경부선은 조선의 경제 활성화나. 조선의 발전이 목적이라기보다는 러일 전쟁을 앞둔 일본 군부가 하루라도 빨리 철도를 건설하길 원했기에 결정된 노선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 군부가 개입해 이렇게 정한 노선은 공사 환경이 편해 빠르게 철도를 부설할 수 있다는 이점은 있었다.

그동안 조선에서 한양과 동래를 잇는 최단 거리의 도로였던 영남대로를 따라 철도를 가설하려면 험난하기로 소문난 조령을 관통해야 하는데 그게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기에.

그렇다고 영남대로의 주요 도시인 충주와 상주에 철도를 부설하며 쉽게 철도를 부설하려면 충주에서 급격히 우회해 추풍령을 넘어 다시 상주로 노선을 깔아야 했는데 이러면 구간이 길어져 효율적인 물자 수송엔 썩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고.

해서 정성국은 개발청에 두 노선을 던져주며 조선과 의논해 노선을 확정하라고 이야기했고, 작년 예조판서가 북미왕국을 방문했을 때 논의해 결국 전생의 노선과 비슷한 방향으로 확정하게 되었다.

예조판서가 생각하기에 철도는 지방의 물자를 효율적으로 한양으로 수송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했기에 경상도의 물자를 빠르게 한양으로 수송할 수 있고 노선이 짧아져 공사 기간과 비용이 줄어드는 전자를 택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렇게 대략적인 노선을 정하고 다시 북미왕국의 기술자가 세부적인 노선 주변 지형을 측량해 노선을 완전히 확정했다는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노선이 완전히 정해졌다면 이제부턴 노선이 지나갈 땅을 매입해야겠군.”

이에 개발청장이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그렇지요. 다만 철도 용지 매입도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될 것 같습니다.”

“음? 설마...”

“예. 하루라도 빨리 공사가 진행되길 원하는 조선 정부에서 나설 모양입니다. 뭐 지방의 관리들도 한성의 소식엔 귀를 기울이고 있는 터라 조정 대신들이 이번 철도 부설 문제를 무척 관심 깊게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기에 굳이 조선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철도 용지 매입은 순조로울 것 같기야 합니다만...”

북미왕국을 상징하는 기물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기차였다.

그리고 조정에서 철도 부설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조선 사람들이라면 다들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작년에 북미왕국과 철도 부설 공사를 위한 협정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지방의 관리들은 한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고.

그런 만큼 굳이 조선 정부에서 나서지 않더라도 지방의 관리들이 알아서 조선철도공사의 편의를 어느 정도는 봐줄 것이 확실했는데 여기에 조선 정부에서 직접 나서서 철도 용지 매입에 관여하겠다는 뜻을 밝혀 생각보다 일이 빠르게 진행될 거라고 개발청장이 보고하자 정성국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뭐 빠르게 진행되는 걸 마다할 이유야 없는데...”

그런 정성국의 표정을 보고 개발청장은 정성국이 무엇을 우려하는지를 파악하고 곧바로 입을 열었다.

“우려하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땅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는다면 모를까 땅값만 주변 시세대로 쳐준다면 조선인들도 불만을 품지야 않을 테니까요. 오히려 조선 정부가 나섬으로써 시세를 조정하거나 철도 용지를 미리 매입해 차익을 챙기려는 거간꾼들을 막을 수도 있고요.”

개발청장의 말처럼 일부는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해 땅을 가지고 장난칠 수도 있는 노릇이었기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렇긴 하네. 솔직히 우리야 땅값이 얼마나 들어가던 큰 상관은 없지만...”

어차피 북미왕국이야 공사 비용이 오른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어차피 투자 비용은 모두 회수할 생각이었으니.

하지만 조선의 경우는 상황이 달랐기에 개발청장이 입을 열었다.

“예. 공사 비용이 올라갈수록 곤란한 것은 오히려 조선이지요. 그 때문에 철도 용지 매입 문제에 나서겠다는 것이고요. 해서 조선철도공사에서는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덕분에 저희의 예상보다 빠르게 부설 공사가 시작될 것 같습니다.”

이에 정성국은 매끈한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예상보다 빠르게 부설 공사가 진행된다? 그럼 내년 중엔 부설 공사를 시작할 수도 있다는 뜻인데...그게 가능한가?”

북미왕국에선 빠르면 1681년, 늦으면 1682년 정도에나 철도를 부설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 일정이 대폭 앞당겨지게 되는 셈이라 정성국이 개발청장을 바라보자 개발청장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예. 가능할 것 같습니다. 건설 장비야 넘쳐나니 이를 수송하면 그만이고 강철 생산량에 제법 여유가 있어 미리 만들어 창고에 비축해둘 생각으로 올 초부터 제철소에서 선로를 생산 중이어서 말입니다.”

“아. 그 부분은 나도 잘 알지. 문제는 그걸 다 수송할 수 있겠냐는 걸세. 조선에 차관으로 내어 줄 식량과 면직물에 철도 용지 매입 대금까지 수송해야 하는 상황 아닌가.”

정성국의 지적에도 개발청장은 괜찮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도 그 부분이 걱정스러워 나름 알아봤는데 관리청장이 이야기하길 계속해서 수송선을 건조하고 있기에 올해면 몰라도 내년이면 충분히 가능하답니다. 정 수송량이 부족하면 연안으로 돌릴 예정이었던 수송선과 지급 함선까지 동원하면 그만이라더군요.”

이런 개발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새삼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허. 5천 톤급 수송선을 건조하게 되면서 확실히 수송능력이 급격히 늘었군. 예전에는 고작 60만 석을 조선에 보내겠다고 엄청 고생했던 것 같은데...”

8년 전만 하더라도 조선에 식량을 수송하기 위해 연안에서 물자를 수송하던 배들도 바리바리 긁어모아 수송 선단을 구성해 식량을 실어날라야 했는데 지금은 그보다 2배가 넘는 식량과 면포 등을 수송하는데도 생각보다 여유로웠기에 정성국이 중얼거리자 개발청장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전하께서 북미왕국의 물동량이 계속 폭증할 거라면서 미리미리 조선소에 관심을 두고 꾸준히 지원하신 덕분이지요.”

개발청장의 말처럼 정성국은 더 많은 배를 건조하기 위해 조선소 증축에 열을 올렸다.

북미왕국의 발전은 빠른 편이었고 북미왕국의 주요 도시는 해안가 도시들이었으며 이 도시들을 모두 철도로 연결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당연히 더 많은 배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해서 조선소를 계속해서 증축하며 더 많은 배를 건조하기 위해 애를 썼고 덕분에 5천 톤급 수송선이 개발되자 이를 대량 건조할 수 있게 되어 수송능력이 급격히 늘어났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보고를 통해 이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 일로 확실히 체감하게 되었기에 새삼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개발청장을 바라보았다.

“아무튼, 내년에 각종 물자를 수송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리고 철도 용지를 매입이 끝난다면 굳이 철도 부설 공사를 미룰 이유는 없겠지.”

그 말에 개발청장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내년에 철도 부설 공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끝내두겠습니다.”

* * *

“대사님!”

집무실에서 커피의 향을 즐기며 티타임을 갖던 잉글랜드 대사는 갑자기 집무실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보좌관의 행동에 잠시 표정을 찌푸렸지만, 보좌관의 손에 들린 북미신문을 보고 표정을 풀고 입을 열었다.

“왜 이리 호들갑인가. 무슨 중요한 기사라도 실린 건가?”

“그렇습니다! 이게 오늘 자 북미신문인데 여기 좀 보십시오. 북미왕국이 동맹을 맺었답니다!”

“뭐? 동맹?!”

잉글랜드 대사는 보좌관의 말에 놀라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북미왕국이 혹시라도 유럽의 나라와 동맹을 맺는다면 여러모로 곤란했기 때문이다.

해서 잉글랜드 대사는 보좌관이 건넨 북미신문을 빠르게 확인하다가 점차 묘한 표정을 지었고.

“허. 시베리아 부족 연합? 이건 제대로 된 나라도 아닌 것 같은데 북미왕국이 이 연합과 동맹을 맺었다?”

야쿠츠크 사령관을 통해 아직 러시아 차르국에서는 원주민들의 뒤에 북미왕국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외무청에서는 러시아 차르국에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북미신문을 이용했다.

그렇다고 모든 사실을 알린 것은 아니고 시베리아 원주민들이 러시아 차르국의 압제에 대항해 시베리아 부족 연합을 결성했고 북미왕국은 이 연합과 동맹을 맺고 일부 물자를 제공했으며 연합은 이 지원을 바탕으로 그동안 자신들을 억압하던 러시아인들을 물리쳤고 결국 러시아 차르국의 동부 시베리아 지역의 거점인 야쿠츠크 요새마저 불태워 버렸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 신문 기사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았기에 신문 기사를 모두 읽은 잉글랜드 대사가 기가 찬다는 듯 중얼거리자 보좌관이 맞장구쳤다.

“맞습니다. 아무리 봐도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지요. 헌데 북미왕국이 이 원주민 부족들로 구성된 연합과 동맹을 맺은 것은 역시 러시아 차르국을 압박하기 위함인 듯싶습니다.”

“그렇겠지. 허. 감쪽같이 속았군. 그동안 우리는 북미왕국이 러시아 차르국의 대응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흑룡강에서의 충돌로 북미왕국은 러시아 차르국에 이 일을 항의했지만, 북미왕국과 별다른 접점이 없는 러시아 차르국은 예상외로 강하게 나왔었고 이런 러시아 차르국의 대응에 북미왕국은 다른 때와는 외교적으로만 계속 항의할 뿐이지 실제로 어떤 행동을 취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아니. 못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게 아니었기에 잉글랜드 대사가 놀랍다는 듯 중얼거리자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러시아 차르국은 항구가 없어 북미왕국이 자랑하는 해군은 무용지물이고 그렇다고 저 안쪽까지 육군을 파견하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우니까요. 물론 페로 제도까지 북미왕국의 영토가 된 이상 잘하면 가능할 것도 같긴 한데...”

“솔직히 난 북미왕국이 페로 제도까지 매입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러시아 차르국을 압박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의심하긴 했네. 페로 제도까지 매입하면서 북미왕국은 유럽에 교두보를 확보한 셈이었으니까.”

물론 북미왕국이 오로지 러시아 차르국을 압박하기 위해서 페로 제도를 사들인 것은 아니겠지만 페로 제도를 사들인 여러 이유 중의 하나는 될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많았기에 보좌관이 동의했다.

“예. 새한성에 머무는 외교관들은 다들 내심 그렇게 생각하긴 했지요. 헌데 북미신문에 적힌 기사를 모두 읽어보면 북미왕국은 러시아 차르국이 사과를 거부하고 오히려 흑룡강 유역에서의 충돌은 북미왕국 때문이라는 답변을 듣자마자 시베리아 지역의 원주민들을 규합한 모양입니다.”

“그러게 말이야. 그리고 생각보다 괜찮은 방법이군. 그 넓은 지역에 병력을 투입하는 것보다 원주민들을 이용해 러시아 차르국의 모피 산업을 방해한다니.”

물론 북미왕국은 시베리아 지역에 영토가 있는 만큼 시베리아 지역에 개입해 러시아 차르국의 모피 산업을 방해할 수도 있을 거라 여긴 외교관도 있긴 했지만, 시베리아 지역은 워낙 넓기에 과연 북미왕국이 시베리아 지역에 병력을 투입할까 싶긴 했다.

특히 내륙 지형의 경우는 원활한 보급이 어려운 만큼.

헌데 북미왕국은 직접 병력을 파견하기보단 가혹한 통치로 러시아 차르국에 원한이 깊은 원주민들을 규합해 머스킷을 건네는 것으로 러시아 차르국의 모피 산업을 방해한 셈이었기에 북미왕국의 외무청은 생각보다 교활하다고 잉글랜드 대사가 평가했을 때 보좌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다만 조금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걱정?”

“예. 그린란드를 떠올려 보십시오. 처음에는 북미왕국은 그린란드의 원주민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다가 결국 이들이 북미왕국에 합류하면서 그린란드는 결국 북미왕국의 영토가 되었잖습니까.”

보좌관이 그린란드를 거론하자 잉글랜드 대사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으음...마찬가지로 시베리아 부족 연합도 북미왕국에 합류하면서 연합이 장악한 동부 시베리아 지역마저 북미왕국의 영토가 될 거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거기에 북미왕국은 이번 일로 재미를 보았으니 계속해서 시베리아 원주민들을 지원하며 러시아 차르국에 반기를 들라고 충동질할 테고 더 많은 시베리아 원주민들이 러시아 차르국에 반기를 들 테니 결국 러시아 차르국은 시베리아 지역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습니다.”

보좌관의 이야기에 잉글랜드 대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러시아 차르국이 시베리아 지역을 잃는 거야 상관없는데 이 시베리아 지역이 북미왕국으로 넘어간다면...”

“예. 유럽은 북미왕국에 둘러싸이게 될 수도 있습니다.”

보좌관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잉글랜드 대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흐음...이건 각국의 대사들과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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