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468화 (468/850)

468화

봄기운이 물씬 감도는 3월의 어느 날.

정성국은 집무실에서 행정청장과 커피를 마시다 입을 열었다.

“흠. 별다른 일은 없다고?”

“예. 오랫동안 만반의 준비를 했고, 북미신문을 통해 지속해서 연금 제도를 알렸기에 큰 혼란은 없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연금 지급 대상자가 많았기에 많은 행정력이 필요했고 이 때문에 꽤 시간을 두고 준비했기에 우려했던 것처럼 커다란 혼란 없이 연금 지급 대상자들에게 연금이 지급되었다는 행정청장의 보고에 정성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거 참 다행이네.”

“다만...보고에 따르면 3월 1일에 태어난 아이가 무척 많다고 하더군요.”

행정청장의 이야기에 정성국은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래? 그래서 나름 보완책을 세웠는데도 그렇다니 조금 놀랍군.”

“그러게 말입니다.”

다른 연금이야 혼란을 줄이기 위해 북미신문을 통해 알리기 전까지 그 대상자를 모두 확정해둔 상태였다.

그렇기에 준비 기간이 오래 걸렸지만, 덕분에 큰 혼란을 겪지 않을 수 있었고.

하지만 임산부 지원금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행정청에서 누가 언제 임신했다는 것을 모두 파악하고 있을 턱이 없지 않은가.

문제는 지원금으로 지급하는 100원이 적은 돈은 아니었기에 이를 받으려고 일부러 아이의 생일을 3월 1일 이후로 미룰 수 있을 것 같았고.

해서 원래 출생 신고는 태어난 지 2주 안에 부모가 직접 행정청에 신고하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당분간은 부모뿐만 아니라 아이를 받은 산모나 의원의 확인서를 지참하거나 주변인의 증언이 필요하다고 알렸는데도 불구하고 3월 1일생이 많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산모나 의원이 확인서를 거짓으로 써줄 것 같지는 않은데...결국, 지원금을 받겠다고 산모나 의원도 부르지 않은 건가?”

북미왕국에서는 의원뿐만 아니라 산모도 준 의료인으로 취급받았던 터라 이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거짓으로 확인서를 써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 주변인의 증언으로 출생 신고를 했다는 뜻이었기에 정성국이 중얼거리자 행정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주변인의 증언이라고 해봐야 보통 가족이나 친구다 보니...”

그 말에 정성국은 표정을 살짝 찌푸렸다.

“지원금을 받겠다고 자신과 아이의 위험을 무릅쓰다니...쯧.”

의원도 그렇지만 산모도 아이를 받기 위해 여러 위생 교육을 철저히 받은 전문가였다.

그렇기에 북미왕국에서는 웬만하면 출산할 때 의원이나 산모의 도움을 받으라고 알렸고.

헌데 지원금을 받겠다고 위험을 무릅쓴 것처럼 보였기에 정성국이 혀를 찼을 때 행정청장이 답했다.

“글쎄요. 어차피 예전에는 다들 부모나 출산 경험 있는 주변 사람들이 아이를 받았으니까요. 꼭 전문 산모나 의원을 써야 하는가 싶었겠지요.”

행정청장의 말도 일리는 있었기에 정성국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주제를 돌렸다.

“아무튼, 이제 다자녀 가구 연금을 지급하기로 했으니 태어날 아이들이 많을 거야. 거기에 올해까지는 프랑스인들도, 그리고 아일랜드인들도 많이 이주할 테고. 감당할 수 있겠지?”

새진주에서 계속해서 5천 톤급 여객선을 건조해 대서양 횡단에 투입하면서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는 유럽인들의 수가 점차 많아지고 있었다.

거기에 다자녀 가구에 연금을 지급함으로써 백성들은 아이 양육에 대한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어 신생아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 분명했고.

그런 만큼 정성국은 이 급격한 인구 증가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지만, 행정청장은 꽤 여유로운 표정으로 커피를 마신 후 답했다.

“물론입니다. 저희야 뭐...이번 일로 행정청 관리도 대거 늘렸고 또 지속해서 늘릴 예정이라 별문제 없을 겁니다. 오히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역시 교육청이지요.”

이런 행정청장의 반응에 정성국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건 또 그렇네. 태어나는 아이들이 많아질수록 가르쳐야 할 학생들도 많아지는 셈이니.”

“예. 그것 때문에 교육청장이 필사적으로 사범 대학교의 입학 정원을 늘리기 위해 노력 중이지요.”

“그나마 사범 대학교를 확장할 수 있도록 부지를 넓게 잡아둔 것이 다행이로군.”

사범 대학교의 경우 추후 확장을 고려해 부지를 넓게 잡아둔 만큼 이 빈 부지에 건물을 세우면 정원을 손쉽게 늘릴 수 있었기에 정성국이 중얼거리자 행정청장이 동의하며 덧붙였다.

“예. 그리고 교육청 덕분에 개발청도 일 폭탄이 떨어진 셈이고요.”

“아하. 더 많은 학교를 건설해야 하니까?”

“그렇지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계속 늘려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행정청장의 이야기에 정성국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흠. 알겠네. 이거 교육청장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보긴 해야겠군.”

“그러시지요.”

* * *

교육청장은 집무실에서 보고서와 씨름하다가 갑자기 집무실의 문이 열리자 고개도 들지 않고 소리쳤다.

“급한 보고서가 아니라면 입구 쪽에 내려놓게.”

그리고 정성국은 그런 교육청장의 반응에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날세.”

교육청장은 정성국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정성국을 바라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 전하께서 여긴 어인 행차십니까.”

정성국은 교육청장의 꾀죄죄한 몰골과 볼까지 내려온 다크 서클에 다시 한번 혀를 차며 말했다.

“자네가 워낙 바쁘다는 소문이 있어서 내가 직접 온 걸세. 헌데 그러기를 잘 했군. 자네 제대로 쉬기는 하는 건가?”

이에 교육청장은 민망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허허허. 쉬기는요. 일이 많아서 3일째 이 집무실을 벗어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만...”

정성국은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교육청장을 보고 타박했다.

“쯧쯧. 그러다 자네. 과로로 죽을 수도 있어. 물론 자네가 하는 일이 북미왕국의 발전에 무척 중요하긴 하지만...자네가 그 자리를 계속 맡아 북미왕국의 교육을 총괄하는 것도 몹시 중요해. 그러니 이제부턴 6시에 무조건 퇴근해서 푹 쉬게.”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는 정성국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던 교육청장은 정성국의 명령에 화들짝 놀랐다.

가뜩이나 일이 밀려 있는 상태에서 6시에 칼퇴근을 해버리면 일이 점차 쌓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오나...”

“이건 어명일세.”

“알겠습니다. 전하.”

정성국은 명령이라고 하자 즉각 고개를 숙이는 교육청장을 보고 혀를 차며 덧붙였다.

“물론 자네가 책임자긴 한데 가뜩이나 비대한 교육청의 결재 대부분을 자네가 하면 당연히 감당이 안 되겠지. 내가 자네들에게 적당히 권한과 함께 일을 넘긴 것처럼 자네도 밑에 있는 다른 관리들을 좀 믿게. 보통은 그 정도 일에 시달리면 살기 위해서 밑으로 일을 떠넘기던데 사람이 요령이 없어. 요령이.”

교육청장뿐만 아니라 북미왕국의 청장들은 정성국이 일거리를 줄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떠넘긴 일 폭탄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처음에야 책임감에 정성국처럼 이를 최대한 자신이 처리하려고 했지만 그러다간 과로로 죽기 딱 좋다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정성국에게 넘겨받은 권한을 쪼개 부하들에게 넘겨주며 최대한 재량권을 내어 주었고.

그러나 교육청장은 정성국의 생각 이상으로 일 중독자였는지 아직 일 태반을 자신이 직접 결재하고 있다는 것을 집무실에 쌓여있는 보고서를 슬쩍 살펴보고 파악한 정성국이 이렇게 타박하며 충고하자 교육청장은 딱히 할 말이 없었기에 어색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고.

정성국은 티테이블에도 보고서가 수북해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긴 글렀고 괜히 바쁜 사람의 시간을 많이 뺏을 수도 없다고 생각해 곧바로 자신이 방문한 용건을 밝혔다.

“그보다 행정청장에게 이야기를 들었는데...지금 사범 대학교의 정원을 늘리는데 골몰하고 있다고?”

이에 교육청장은 눈을 빛내며 급히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계속해서 신생아 숫자가 증가해 작년에 태어난 신생아가 30만이 좀 넘습니다. 거기에 행정청장이 이야기하길 3월 1일에 출생 신고한 아기만 해도 5만 명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니 무섭게 늘어나는 신생아 숫자에 맞춰 미리미리 더 많은 학교를 건설하고 선생들을 키워야 하니 사범 대학교의 정원을 늘리기 위해 개발청의 협조를 받아 사범 대학교 확장을 진행할 예정이고요.”

“그런가?”

“다만 아무리 사범 대학교를 확장한다 하더라도 과연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흐음. 그러니 고등 교육 기관인 사범 대학교를 더 짓자?”

“그렇습니다. 그나마 종합 대학교야 하버드 대학교가 있으니 조금 상황이 괜찮습니다만...사범 대학교는 만약을 대비해 크게 부지를 잡고 충분히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워낙 많은 선생을 육성해야 하는 터라 국립 새한성 사범 대학교 하나만으로는 벅찹니다.”

교육청장의 이야기에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그렇긴 하지. 그리고 이전에야 사범 대학교를 건설해도 가르칠 사람이 없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이전보다야 나아졌으니...그럼 이 기회에 사범 대학교를 추가 건설하도록 하지.”

“오오!”

정성국의 허락에 교육청장이 탄성을 질렀을 때 정성국은 교육청장의 집무실 한쪽에 걸려 있는 지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디 보자...일단 새진주에 하나 건설하고. 보스턴...아. 그러고 보니 보스턴엔 하버드 대학교가 있는데 이곳에 사범 대학교까지 건설하는 것은 조금 그러니 뉴욕에 하나. 그리고 이로쿼이 지역에 하나 건설하도록 하지.”

이에 교육청장은 놀란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예? 단번에 3개씩이나 말입니까?!”

“그래. 이제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선생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을 테니 이 기회에 선생 수를 확 늘려서 교육의 질을 높여 보자고. 그리고 사범 대학교 건설이 모두 끝나면 상황을 봐서 종합 대학교를 몇 개 더 건설하고.”

“하하하. 알겠습니다. 허면 곧바로 개발청장에게 이야기해야겠군요.”

어찌 보면 그만큼 자기 일이 늘어나는 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교육청장이 순수하게 기뻐하자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예체능 교육은?”

기존의 교육 과정은 예체능 교육이 비중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정성국은 예체능 교육이 아이들의 인성 교육과 더불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교육청장에게 초등 교육 기관과 중등 교육 기관에서 예체능 교육을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했었고.

“전하께서 말씀하신 취지는 충분히 공감해서 저도 어떻게든 예체능 교육을 시작하고 싶어 알아보았습니다만...당장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흠. 그런가?”

“예. 그나마 체육 교육이야...교육청에서 장비를 지원해주면 선생들이 아이들에게 운동 규칙을 가르치면서 알아서 놀라고 하면 그만인데 예능 교육은...”

교육청장이 말을 흐렸지만, 정성국은 뒷이야기가 짐작되었기에 입을 열었다.

“역시 이를 가르칠 사람이 없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예술을 전공한 대학교 졸업생이 채 천 명도 안 되는데 무슨 수로 모든 아이들을 가르치겠습니까. 사범 대학교에도 문의해봤습니다만 선생들에게 추가로 악기를 다루게 하고 그림을 그리는 법을 익히게 만드는 것은 아무래도 어렵다고...”

교육청장의 말마따나 예능 교육의 경우 그 분야에 종사하는 인물도 얼마 없다는 것은 정성국이 더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체육 교육처럼 기존의 선생들이 적당히 기초만 가르치는 방향을 원했는데 이들은 예능 분야가 생소했기에 그것이 어렵다는 이야기에 곧바로 수긍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허면 일단은 왕실 상단을 이용해 더 많은 미술관과 공연장을 건설해야겠군. 그렇게 아이들이 예능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게 해서 저변부터 넓혀야겠어.’

“흠...그렇긴 하지. 알겠네. 일단은 체육 교육이라도 제대로 시켜 아이들의 자존감과 협동심을 키우고 건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돕게.”

“알겠습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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