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7화
1679년 새해가 되자 정성국은 가족들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며 휴식을 취했다.
다만 점차 북미왕국이 직접 통치하는 영역이 증가하고 인구가 많아지면서 각종 업무가 폭증해 청장들의 권한을 늘려도 그가 결재할 일이 워낙 많았기에 이전처럼 오래 쉬지 못하고 곧바로 집무실에 나왔고.
집무실 책상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보고서를 보고 탄식하며 마치 스스로 도살장으로 들어가는 심정으로 책상으로 다가갈 때 뒤에서 집무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여긴 어쩐 일이야?”
정성국은 자신이 집무실로 향할 때 자신을 배웅해줬던 전아라가 자신을 따라 집무실을 찾아왔기에 무슨 용건인가 싶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전아라가 배시시 웃으며 답했다.
“오라버니를 보고 싶어서 왔죠.”
그 말에 정성국은 빙그레 웃으며 전아라에게 다가갔다.
“음...헤어진 지 10분 만에 내가 보고 싶어졌어?”
“네. 그리고 보고할 것도 있거든요.”
그러면서 뒷짐 지고 있던 전아라가 들고 있던 병을 살짝 흔들며 정성국에게 보여주자 정성국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전아라를 바라보았다.
“그건...”
“이번에 연구원들이 개발한 제초제에요.”
“제초제?! 드디어 개발한 거야?”
목화 수확 기계를 만들긴 했지만, 잎이 떨어지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수확 시기를 놓친 겨울에나 사용할 수 있어 수확하는 목화의 절반 정도는 품질이 좋지 않았다.
그 때문에 정성국은 전생의 고엽제 같은 제초제를 떠올리고 화학자들에게 제초제를 만들어보라고 했고.
그렇기에 정성국은 전아라가 들고 있는 병에 든 액체가 연구원들이 개발한 제초제라는 것을 깨닫고 병에 손을 가져다 댔고.
“예. 오라버니. 비소와 구리를 합성해 만든...어?! 안돼요!”
전아라는 정성국에게 제초제에 관해 설명하다가 화들짝 놀라며 급히 정성국에게 떨어졌다.
“왜? 병은 만져도 상관없잖아? 너도 들고 있고.”
정성국이 어리둥절했지만, 전아라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고개를 저었다.
“저야 괜찮아도 오라버니는 안돼요. 혹시 병이 깨지거나 금이라도 가면...”
유난이다 싶긴 했지만, 전아라는 정성국을 걱정했기에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아는 정성국이 두 손을 들며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절대 손 안 댈게.”
하지만 전아라는 뒤로 쭉 물러나 티테이블에 병을 올려놓고 못다 한 제초제의 성능에 관해 설명했고.
이를 듣고 정성국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티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병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저걸 뿌리면 목화의 잎이 대부분 시들어 떨어진다고? 이미 시험해본 모양이네?”
“그럼요. 연구를 위해 조성한 목화밭에 이 제초제를 뿌리자 일주일 안에 목화 잎이 대부분 떨어졌고 그 후 목화 수확 기계를 통해 목화를 수확할 수 있었고요.”
“오! 그래? 연구청에서 만든 목화 수확 기계로 수확까지 했다고? 제대로 작동했어?”
이에 전아라는 당연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럼요. 어차피 겨울에 잎이 대부분 떨어지면 목화 수확 기계를 이용했었고 이를 차가운 기온 대신 제초제로 대신한 것뿐이잖아요? 그래서인지 별다른 문제 없이 수확할 수 있었지요.”
전아라의 대답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그럼 목화의 품질은?”
“나쁘지 않았어요. 그동안 목화 수확 기계로 수확한 목화는 수확 시기가 많이 지나 하품의 목화였고 그렇기에 이 목화로 면직물을 만들어 봐야 좋은 품질의 면직물이 나오지 않았지요. 하지만 제초제를 이용해 적정 수확 시기에 딴 목화는 상품의 목화라 이를 이용해 면직물을 만들면 상품의 면직물이 나온다고 하네요.”
“오오! 그래?”
하품의 면직물이라도 못 팔 수준은 아니었고 가격이 무척 싼 편이었기에 충분히 경쟁력이 있었다.
다만 하품의 면직물이 모두 상품의 면직물이 대면 수익은 대폭 늘어날 테니 나쁠 것 없어 정성국이 반색하고 있을 때 전아라가 그런 정성국의 반응을 보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예. 다만...이렇게 제초제를 이용해 수확하는 방식은 몇 가지 걸리는 점이 있어요.”
“뭔데?”
“일단 생산 가격이 오른다는 점이겠지요. 제초제 가격과 수확한 목화에 묻어있을 제초제를 제거하기 위해 깨끗하게 세척해야 하니까요.”
전아라의 이야기에 정성국은 진정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흐음...다만 인건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으니 그것까지 고려하면...”
“그걸 고려해도 생산 가격이 조금 높아요. 목화를 세척하고 난 후 나온 폐수를 다시 정화해야 하니까요.”
제초제 성분이 남아있는 폐수를 그냥 강에 방류할 수야 없는 노릇이니 이를 환경에 문제없을 정도로 정화해 흘려보내야 하니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아차 싶었다.
“아. 그건 그렇겠네. 그래도 목화밭에 메여있는 수많은 인력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으니 나쁘진 않아 보이는데...”
확실히 북미왕국은 인력이 부족했고 계속해서 북미왕국의 면직물을 원하는 나라가 많아졌기에 더 많은 인력이 목화밭에 매여있어야만 했다.
그러니 제초제를 사용하는 방식이 정성국의 예상과는 달리 비용이 더 들어가더라도 이 인력을 다른 데로 돌릴 수 있다면 차라리 그편이 낫다고 생각한 정성국이었고.
특히 목화 수확 일이 보통 고된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런 정성국의 말에 전아라도 북미왕국의 사정을 모르지는 않았기에 일단 수긍하면서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제초제를 뿌리기가 쉽지 않아요. 사람이 직접 뿌리자니 생각보다 힘들고 제초제의 독성을 생각하면 솔직히 위험하죠.”
정성국은 전아라의 말에 커다란 논밭에 경비행기로 농약을 뿌리는 전생의 미국 농업 풍경을 떠올렸지만 아쉽게도 아직 비행기는 개발 중이었고 설사 비행기를 개발하더라도 곧바로 투입할 수야 없는 노릇이었기에 다른 방책을 생각했다.
“흠. 그럼 기계를 이용해야겠네.”
“기계를요?”
“그래. 제초제를 뿌리는 기계를 만들면 되겠지. 국영 농장에서 대규모로 목화를 재배할 생각인데 그 넓은 땅을 사람이 일일이 제초제를 뿌릴 수야 없는 노릇 아니겠어?”
정성국은 경운차를 적당히 개조하면 제초제를 뿌리는 것쯤은 쉬우리라고 판단했다.
경운차에 제초제가 담긴 통을 올리고 배관을 통해 주변에 제초제를 뿌리면 그만이었으니까.
더불어 경운차 주변을 유리로 적당히 밀폐하면 작업자도 제초제의 영향을 조금 덜 받을 수 있을 테고.
이 설명에 전아라는 이게 과연 효율적인가 하는 표정으로 슬쩍 입을 열었다.
“그렇긴 한데...그럼 생산 가격은 더 오르겠네요?”
하지만 정성국은 어차피 당장은 단가가 높아도 대량 생산을 통해 기계나 제초제 단가를 떨어뜨리면 된다고 판단했기에 어깨를 으쓱했다.
“...뭐 일단은 감수해야겠지. 아무튼, 알았어. 그리고 제초제를 만드느라 고생했고.”
정성국이 전아라를 마치 복덩이로 보고 덥석 껴안자 정성국의 품 안에서 전아라는 배시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에이. 고생은요.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요. 연구원들을 독려하거나 적당히 조언해줬을 뿐이지요.”
정성국은 전아라가 제초제를 연구하는 것을 위험하다고 판단해 이 제초제 연구에선 손을 떼도록 지시했기에 실제 전아라는 이번 제초제 개발에는 큰 지분이 없긴 했다.
이를 떠올린 정성국은 곧바로 물었다.
“아. 이 제초제를 개발한 연구원들에게 충분한 포상을 해 줬지?”
“물론이죠. 그리고 이 제초제 외에도 괜찮은 농약을 꽤 만들었거든요.”
정성국은 제초제를 설명하면서 다른 농약들에 관해서도 설명했었는데 이를 토대로 다른 농약들을 만들어냈다는 이야기에 반색했다.
“정말?”
“예. 병충해를 쫓는 약도 만들었더라고요.”
“어? 병충해를?”
“네. 듣기로 원주민들이 예전 담배를 재배했을 때 담배 농장 근처에는 일부 벌레들이 얼씬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듣고 담뱃잎에서 일부 물질을 추출했는데 일부 벌레에는 효과가 있다고 하더군요.”
담뱃잎의 니코틴 성분은 독에 가까워 벌레들도 얼씬도 하지 않아 이를 토대로 살충제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의문을 표했다.
“아. 그래? 헌데 담뱃잎은 어디서 구했대? 설마...”
북미왕국은 담배 재배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고 농업 연구소에서 일부 종자를 보관하고 있는 것 외엔 발견 즉시 없애버렸기에 연구원들이 담뱃잎을 구했다는 이야기에 설마 하는 표정을 짓자 전아라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연구를 위해 서인도제도에서 들여왔으니까요.”
“그럼 다행이고. 아무튼, 효과가 있다니 다행이긴 한데...일단 다른 작물에 그 약을 뿌려도 작물에 별다른 영향은 없는지 계속 연구해보라고 해.”
“물론이죠. 그리고 목화야 먹는 것이 아니지만 다른 작물을 또 상황이 다르니 각종 실험을 통해 검증해야 할 테고요.”
전아라는 꼼꼼한 편이었기에 정성국이 걱정하는 문제를 미리 파악해 두었기에 정성국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품 안에 있는 전아라의 등을 쓰다듬었다.
“내가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네.”
마치 고양이처럼 정성국의 손길을 즐기던 전아라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덧붙였다.
“아. 그리고 제가 하던 연구에도 성과가 좀 있어요.”
“무슨 연구?”
“석유 화합물 연구요.”
“어? 정말로?”
정성국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전아라를 바라보았다.
정성국이라도 석유화학 쪽에 관련된 지식은 거의 없었고 석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고분자화합물의 종류는 어마어마했기에 정성국은 석유 화합물을 연구하는 전아라에게 연구도 중요하지만, 더 많은 화학자를 키우라고 조언했었다.
해서 전아라는 그동안 더 많은 화학자를 키우기 위해 노력했고.
그리고 새한성 대학교에서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화학자들을 키워내기 시작하자 전아라는 이들과 함께 석유 화합물 연구에 집중했고.
이 연구에 진전이 있었다고 하니 정성국은 새삼 놀란 표정으로 전아라를 바라보았고 내심 기대도 했다.
플라스틱은 쉽게 분해되지 않아 쓰레기 문제가 걸리긴 하지만 열과 압력을 가해 원하는 모양으로 손쉽게 가공할 수 있어 대량 생산에도 적합하고 가벼우며 전기 절연성도 우수하고 녹슬지도 않는 등 수많은 장점이 존재했기에 플라스틱을 합성할 수만 있다면 무척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서 정성국은 기대하며 전아라를 따라 집무실에서 나와 궁 안에 있는 그녀의 개인 연구실로 이동했고.
정성국은 전아라의 개인 연구실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전아라가 구석에서 투명 전선을 가져와 정성국에게 건넸다.
정성국은 이 전선을 만져보니 영락없는 플라스틱 감촉이라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을 때 전아라가 말했다.
“그 화합물은 가공이 쉽고 질기고 유연해서 혹시 이를 이용해 직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건 좀 별로더라고요. 촉감도 그렇고.”
“음...그렇겠지.”
전아라와 연구원들이 발견한 것은 정성국이 보기엔 아무리 봐도 플라스틱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폴리에틸렌이었는데 이걸 직물로 사용할 생각이었다는 말에 정성국은 전생의 비닐 옷과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끄덕였을 때 전아라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다만 그 화합물의 특성 중 하나가 절연성이 우수해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고무 대신 사용해 전선을 만들었는데 예상보다 괜찮았어요. 열에 약한 게 조금 흠이긴 한데...가벼워서 전선의 무게도 꽤 줄어들고요. 현재 사용량이 급증하는 고무를 대체하기엔 최적의 소재 같아요.”
정성국도 플라스틱 피복 전선의 유용성은 잘 알고 있었기에 무척 만족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렇네? 이거 정말 대단한 발견인데?”
“그쵸?”
정성국의 칭찬에 전아라가 기뻐하고 있을 때 정성국이 슬쩍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걸 가공할 때 아예 처음부터 선이 아닌 면으로 만들어도 쓸만할 것 같은데?”
정성국은 투명한 비닐도 결국 이 폴리에틸렌이라는 것을 떠올려 조언하자 전아라가 정성국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그러네요. 직물을 만든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일단 실로 만든 것이 잘못이었나?”
“다만 아까 말한 것처럼 직물의 경우 피부에 닿는 만큼 촉감도 중요하고 통기성도 중요한데 절연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통기성도 좋지 않아 직물로 사용하는 것은 좀 그럴 것 같고...투명하니 유리를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말에 전아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유리를요? 창문을 이걸로 대체하실 생각이세요?”
“아. 그건 아니고...유리 온실보단 이걸로 온실을 덮으면 괜찮을 것 같아. 적당히 두껍게 해서 말이야.”
농업 연구소에서 유리 온실은 연구했지만 넓은 지역에 거대한 유리 온실을 건설하려면 생각보다 큰 비용이 들어갔기에 정말 필요한 지역이 아니면 유리 온실을 건설하기는 어려웠다.
해서 알래스카나 아이슬란드 정도에나 유리 온실을 설치할 예정이었고.
하지만 폴리에틸렌을 만들어낸 이상 이를 이용해 저렴한 가격으로 비닐을 만들어 곳곳이 비닐 온실을 설치한다면 겨울에도 안정적으로 신선한 채소를 공급받을 수 있었기에 정성국이 이를 설명했고 전아라는 생각보다 괜찮게 들렸기에 조금 놀란 표정으로 답했다.
“아! 정말로 그러네요? 알겠어요. 바로 연구해볼게요.”
“헌데 이 화합물에 따로 명칭을 붙이지는 않았어?”
“예. 그냥 숫자를 붙여 분류할 뿐이지요. 수십 개의 화합물에 일일이 명칭을 붙이는 것도 일이라서요.”
원래 공돌이, 공순이가 작명엔 취약했기에 정성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전아라를 보고 피식 웃었다.
“그렇긴 하네. 하지만 이건 상품으로 써먹을 수 있으니 이름을 붙여야겠는데...”
“그럼 오라버니가 지어주세요.”
“그럼...이렇게 얻은 화합물은 일단 플라스틱으로 이름 붙이자.”
원래라면 이 화합물을 발견한 전아라에게 작명을 맡겼겠지만 그랬다간 익숙한 플라스틱이 아닌 다른 이름을 붙일 수도 있어 정성국은 전아라의 제안에 날름 이 화합물에 플라스틱이라는 이름을 붙여 버렸다.
물론 고분자화합물이나 합성수지라는 명칭도 고려했지만, 전자는 백성들이 부르기 복잡해 보였고 후자는 어차피 한자라 북미왕국 백성들에게는 플라스틱처럼 생소할 것이 분명했기에 자신에게 익숙한 플라스틱으로 결정한 것이다.
“플라스틱?”
“쉽게 원하는 모양으로 가공할 수 있다는 의미의 그리스어인 플라스티코스에서 따왔어. 이 화합물들의 성질이 열과 압력을 가하면 원하는 모양으로 쉽게 가공할 수 있어 보이지 적합할 것 같아서.”
정성국의 설명에 전아라는 새삼 놀랐다는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어머...오라버니는 그리스어도 아세요?”
이에 정성국은 머쓱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뭐 몇몇 단어 정도만 아는 수준이지. 그리고 이 녀석은 플라스틱 피복 전선이라고 이름 붙이면 되겠네.”
“플라스틱 피복 전선이라...괜찮네요. 그럼 유리를 대신할 상품은 플라스틱 유리가 되려나요?”
“그래도 될 테고 다른 이름을 붙여도 되겠지.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하고...그보다 다른 건 뭐 없어?”
“아. 또 있죠.”
전아라는 급히 안쪽에 들어가 무언가를 가져왔고.
정성국은 파이프를 보고 추억에 젖어 바라보고 있을 때 전아라가 입을 열었다.
“이건 아까 그 플라스틱을 더욱 쉽게 얻기 위해 연구하던 도중에 발견한 화합물이에요. 촉매를 이용해 기존의 고온 고압보다 낮은 압력과 온도에서 화합물을 중합시키는 데 성공했는데...웃기게도 이렇게 되니 화합물의 성질이 조금 달라졌더라고요.”
“달라졌다고?”
“예. 밀도가 높은지 기존의 플라스틱보다 더 질기고, 딱딱하고 열에 강한 편이에요. 그래서 완전히 다른 물질 같죠.”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밀도 폴리에틸렌의 쉬운 양산을 위해 연구하다 고밀도 폴리에틸렌을 만들어낸 듯 보였기에 정성국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고밀도 폴리에틸렌으로 만든 파이프라면 생각보다 여러 곳에 쓸 수 있었으니까.
“그러네. 이거...배관으로 쓸만하겠는데?”
“예. 화학적으로 안정되어 있어서 그런지 부식되지 않고 비교적 가벼워서 다루기도 편해 보이고요. 가뜩이나 구리가 부족한 상황이다 보니 상품성이 있어 보여요.”
“그렇지. 이거 정말 대단한 발견이네. 정말 고생했어.”
제초제 연구와는 달리 석유 화합물 연구는 전아라가 그동안 꾸준히 연구해왔었기에 이번 발견은 전적으로 전아라의 공이라 정성국이 활짝 웃으며 칭찬하자 전아라가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오히려 그렇게 오랫동안 연구했어도 결과물이 많지 않아 오라버니께 죄송할 따름이죠.”
하지만 정성국은 폴리에틸렌만 하더라도 사용처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고개를 저었다.
“이것만 하더라도 연구에 투자한 비용은 모두 회수하고도 남을 텐데 뭘. 이거 생각보다 새나주가 커지겠는데?”
“예. 원료 문제 때문에 천상 새나주에 공방을 지어야 하니까요.”
“그래. 개발청장과 상의해서 공방을 지어 양산하도록 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