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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466화 (466/850)

466화

에스파냐 대사와 네덜란드 대사는 잉글랜드 대사의 초청을 받아 잉글랜드 대사관을 방문했고 잉글랜드 대사는 두 대사에게 예의상 커피를 대접하고 나서 곧바로 두 대사를 초청한 이유를 밝혔다.

“혹시 두 분. 여기 실린 기사를 읽어보셨습니까?”

네덜란드 대사는 설탕을 듬뿍 넣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가 잉글랜드 대사가 북미신문을 들어 올리는 행동에 왜 잉글랜드 대사가 자신들을 급히 초청했는지 짐작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연금 제도에 관한 기사 말입니까? 물론 읽어보았지요. 그리고 솔직히 놀랐습니다. 북미왕국의 인구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라 북미왕국에서도 인구를 늘리기 위해 많은 애를 쓰고 있다고는 알고 있습니다만 이런 방식을 사용할 줄은...”

그리고 잉글랜드 대사가 연금 제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에스파냐 대사도 이 문제로 두 대사를 만날 생각이었던 만큼 내심 잉글랜드 대사가 꺼낸 화재를 반기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요. 그리고 제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북미왕국은 위생과 청결에 극히 신경을 써서 유아 사망률이 낮은 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1, 20년 정도 후면 인구가 급격히 늘어날 터인데 이런 방식을 사용하면 과연 북미왕국이 이렇게 폭증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있을까 솔직히 우려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이들이야 이곳에서 합법적으로 북미왕국의 정보를 수집하느라 바빴고 그만큼 북미왕국의 사정을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가장 놀란 부분이 바로 북미왕국의 유아 사망률이 무척 낮다는 점과 전염병이 거의 돌지 않는다는 점이었고.

분명 북미왕국의 의원이나 의학서적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청결과 위생이라고 이야기하곤 했지만 이를 위해 필요한 상하수도 시설의 경우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터라 섣불리 설치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유럽 각국이었다.

그리고 과연 상하수도가 정말 그렇게 중요한가 의문을 품기도 했고.

헌데 북미왕국은 큰 도시의 경우 상하수도 시설이 완비되어 있어 쾌적하게 살 수 있을뿐더러 북미왕국이 이 북미 대륙을 장악하기 전까지는 전염병으로 고생하던 원주민들이 이제는 전염병에 시달리지도 않고 아이들도 어지간해선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니 이들은 상하수도 건설이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거기에 북미왕국은 원체 식량이 넘쳐나는 나라였고 식량이 풍족하면 자연스럽게 인구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데 북미왕국에선 청결과 위생을 병적으로 신경 쓴 덕분에 마을마다 아이들이 넘쳐나서 시간이 흐르면 인구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고.

헌데 이러한 제도까지 마련해 더 많은 아이를 낳게 유도하고 있으니 이렇게 급증하는 인구를 과연 북미왕국이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을 품은 에스파냐 대사였고.

이런 에스파냐 대사의 의견에 네덜란드 대사는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잉글랜드 대사는 생각이 다른 듯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뭐 북미왕국이야 현재 넘쳐나는 식량을 감당하지 못해 쌀과 밀로 술을 빚을 정도니 인구가 폭증하더라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늘어난 인구를 먹여 살릴 수만 있다면...이 인구로 더 넓은 땅을 개간해서 다시 식량 생산량을 늘려나갈 수 있다는 계산 하에 이러한 정책을 시행하기로 정한 것이겠지요.”

“으음...듣고 보니...”

네덜란드 대사가 그것도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때 잉글랜드 대사가 입을 열었다.

“다만 전 연금 지급 대상자가 너무 많은 것이 조금 우려스럽더군요.”

“그렇긴 하지요. 장애 연금이야 그 대상자가 많을 것 같지는 않은데...노인 연금과 다자녀 가구 연금은 대상자가 무척 많을 것 같습니다.”

네덜란드 대사가 대꾸하자 잉글랜드 대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예. 식량이 풍족하기 때문인지 노인들도 잘 먹고 건강한 편이고 유아 사망률이 낮기에 어지간한 가정에 아이 서너 명 정도야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어지간한 가정은 연금을 받을 것 같은데...아무리 부유한 북미왕국이라도 이걸 감당할 수 있을까요?”

분명 북미왕국이 무척 부유한 국가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아무리 부유한 국가라고 한들 그들이 보기엔 세금으로 걷는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백성들에게 연금으로 지급하는 것처럼 보였기에 과연 북미왕국이 이 제도를 오래 유지할 수 있을까 싶었고.

이에 네덜란드 대사는 동의하는 듯 보였지만 에스파냐 대사는 이 북미왕국 관리들이 얼마나 유능한지 잘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뭐 북미왕국의 고위 관리들이 바보도 아닌데 감당하지 못할 일을 벌였겠습니까?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겠죠.”

하지만 네덜란드 대사는 이런 에스파냐 대사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지 자기 생각을 밝혔다.

“듣고 보니 저도 조금 우려스럽긴 하군요. 뭐 당장은 어떻게 감당할 수 있다고 치더라도...인구가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연금 지급 대상자도 많아지게 되는 것 아닙니까?”

“어? 그러고 보니...”

그 부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에스파냐 대사가 얼굴을 찌푸리고 있을 때 잉글랜드 대사가 네덜란드 대사를 보고 살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예. 지금 태어난 아이들이 혼인하고 4, 5년만 지나면 그들에게도 연금을 지급해야 할 겁니다. 아무리 북미왕국이 부유하다고 해도 그렇게 되면...”

“뭐 그렇게 오래 이 연금 정책을 유지하겠습니까? 적당히 인구가 늘어났다 싶으면 취소하겠지요.”

에스파냐 대사가 그렇게 대꾸하자 네덜란드 대사는 그도 그렇다는 듯 웃었지만, 잉글랜드 대사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주던 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분명 북미왕국의 백성들은 불만을 품을 거야. 이때 북미왕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일이 커질 수도, 아니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지. 이걸 관찰하는 것도 꽤 재밌을 것 같군. 더불어 혼란스러울 때 무언가 이득을 챙길 수도 있겠고...’

잉글랜드 대사가 그렇게 생각에 잠겼을 때 네덜란드 대사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입을 열었다.

“아무튼, 이 연금 제도가 유럽에 알려지면 학자들이 꽤 시끄럽게 굴 것 같습니다.”

이에 잉글랜드 대사가 생각을 멈추고 이에 맞장구쳤다.

“그러게 말입니다. 가뜩이나 몇몇 학자들은 북미왕국처럼 모든 국민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연금 제도가 알려진다면 이것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요.”

북미왕국이 건국된 지 얼마 안 되는 나라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그리고 조선의 기술 수준이 다른 동아시아 국가 수준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결국 학자들은 북미왕국의 급격한 기술 발전은 오로지 모든 국민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북미왕국 특유의 교육 체계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결론을 내렸다.

해서 학자들은 북미왕국처럼 학교를 건설하고 모든 국민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고.

물론 딱 봐도 국가 전역에 학교를 건설하고 수많은 선생을 육성하는 것은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일이라 왕들은 학자들의 주장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고.

이런 상황에서 연금 제도가 알려지면 학자들이 다시 분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여겨 잉글랜드 대사가 이렇게 대답하자 네덜란드 대사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뭐 다자녀 가구 연금이야 몰라도 노인 연금이나 장애 연금 정도는 괜찮아 보이기는 하는데...”

“차라리 구빈원을 운용하는 편이 싸게 먹힐 겁니다.”

잉글랜드는 종교 개혁을 통해 교회의 권력을 축소하고 재산을 강탈하면서 그동안 교회가 맡았던 노약자, 고아, 장애인들을 구호하는 문제도 국가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인식하고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 구빈법을 제정해 구빈원을 운용하면서 일을 하기 어려운 약자들은 모두 구빈원에 수용해 버렸다.

물론 약자들의 입장에서야 북미왕국처럼 직접 일정 연금을 받는 편이 훨씬 좋겠지만 연금을 지급하면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반면 구빈원을 운용하면 도시를 혼란하게 만드는 이런 빈민들을 도시에서 치울 수 있고 비용도 적게 드는 만큼 차라리 구빈원을 운용하는 것이 낫다는 잉글랜드 대사의 말에 네덜란드 대사가 동의했다.

“그렇기야 하지요.”

그렇게 대화가 잠깐 끊겼을 때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한 에스파냐 대사가 슬쩍 입을 열었다.

“크흠. 전 오히려 이 연금 제도가 유럽에 알려지게 되면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려는 백성들이 생길 것 같아 그게 좀 우려스럽군요.”

“아. 흠.”

에스파냐 대사의 말에 다들 조금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에스파냐 대사가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기사를 자세히 살펴보니 이주민이라도 북미왕국으로 이주한 지 3년이 되었다면 연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다른 건 몰라도 다자녀 가구 연금 정도야 받을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리고 적게 주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10원이면 5인 가족이 풍족하게 지내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가능할 정도니까요.”

자신의 말에 네덜란드 대사가 맞장구치자 바로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에스파냐 대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예. 아이가 셋 이상이면 북미왕국에서 매달 밀가루 10포대는 살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을 지급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아마 어지간한 백성들은 눈이 돌아가서 북미왕국으로 이주하겠다고 나설 겁니다.”

“으음...확실히...”

이때 그동안 침묵하고 있던 잉글랜드 대사도 입을 열었다.

“다행이라면 북미왕국은 해안가를 봉쇄한 상태고 북미왕국 해군이 주기적으로 주변 해역을 순찰하는 터라 밀입국은 어렵다는 점인데...”

“하지만 북미왕국은 인구를 늘리기 위해 연금 제도까지 신설할 정도로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 밀무역은 몰라도 밀입국은 모른 척하지 않겠습니까? 엄밀히 따지면 위그노들을 받아들인 것도 비슷한 사례 아닙니까.”

에스파냐 대사의 말에 잉글랜드 대사는 그건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고민하다 에스파냐 대사가 원하는 대답을 해 주었다.

“그렇지요. 이건 외무청에 이야기하긴 해야겠습니다.”

* * *

정성국은 화로에서 군고구마를 까고 있다가 집무실의 문이 열리고 조용한 곰이 들어오자 피식 웃으며 그에게 손짓했다.

“자네 먹을 복은 있군. 이리 와서 군고구마 좀 먹게.”

그러면서 정성국은 적당히 깐 군고구마를 조용한 곰에게 넘겼고 조용한 곰은 황송하다는 표정으로 군고구마를 받아들고 차가운 손을 데워주는 군고구마의 온기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군고구마를 한입 베어 물고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지자 자신도 모르게 미소짓고 있을 때 정성국이 새로운 군고구마를 까며 입을 열었다.

“헌데 갑자기 자네가 무슨 일인가?”

그 말에 정신을 차린 조용한 곰이 급히 군고구마를 삼키고 입을 열었다.

“꿀꺽. 방금 절 찾아온 유럽 각국의 대사들을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만...”

“대사들이 자네를 찾아왔다고? 아. 북미신문의 기사를 보고?”

정성국은 해가 바뀌자마자 연금을 지급하고 싶어했지만 생각외로 연금 지급 대상자가 많아 행정청에서 이를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고 그 때문에 최근에야 비로소 북미신문에 연금과 관련된 기사가 실렸다.

그리고 이 북미신문은 오늘 발행되어 정성국도 신문을 읽었기에 상황을 짐작하고 피식 웃으며 묻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북미신문에 실린 연금 제도에 관한 기사가 정말인지 확인하고 제가 정말 시행할 제도라고 답해주자 대사들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우리의 정책에 왈가왈부하는 건 내정 간섭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이야기를 했다라...역시 연금 제도가 유럽에 알려지면 자국의 백성들이 이주할 것을 경계하나 보군?”

“그렇습니다. 특히 에스파냐의 경우 무척 민감하게 반응하더군요. 아무래도 이 사실이 알려지면 멕시코 원주민들이 북미왕국으로 집단 이주할 것을 걱정하는 눈치였습니다.”

또한, 잉글랜드 대사도 이 소문을 듣고 서인도제도의 노예들이나 일부 잉글랜드인들이 북미왕국으로 밀입국해서 서인도제도의 생산성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다고 덧붙이자 정성국은 껍질을 다 깐 군고구마를 먹다가 이를 삼키고 물었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나?”

이에 조용한 곰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뭐 일단 저들이 원하는 대로 잉글랜드, 네덜란드, 에스파냐의 백성이라면 공식적인 이주 외엔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약조해주었습니다.”

어차피 지금은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는 프랑스인들과 아일랜드인들을 정착시키는 것만으로도 벅찼고 멕시코 원주민들의 밀입국을 허용했다간 너무 많은 멕시코 원주민들이 북미왕국으로 몰려들어 인구 비율이 급격히 변할 수 있었기에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대답에 만족했다.

“그래. 잘 했네. 지금이 딱 좋고 괜히 그 문제로 저들과 다퉈봐야 좋을 것 없으니까.”

이에 조용한 곰은 군고구마를 먹다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전하. 제가 생각할 때 이 연금 제도가 멕시코 지역에 알려지기 시작하면 멕시코 원주민들이 밀입국을 시도하려 하지 않을까요? 전 그게 좀 걱정입니다만...”

“그러니 멕시코 지역에 확실히 알려야지. 연금 지급은 오로지 북미왕국 백성들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이고 이전처럼 공식적으로 이주하는 것이 아닌 불법적으로 북미왕국에 밀입국해봐야 해당 사항이 없다는 것을 말이야. 내가 정보기관에 이야기해 멕시코 북쪽에 이러한 소문을 널리 퍼트리라고 하겠네. 그럼 불법적으로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려는 자들은 얼마 없을 걸세.”

“알겠습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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