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5화
제이콥은 난방을 위해 창고에 있는 등유를 가져오려고 밖으로 나섰다가 찬바람이 자신의 얼굴을 때리자 몸을 움츠리면서도 혹시 이 차가운 공기가 집 안으로 들어갈까 두려워 급히 문을 닫고 중얼거렸다.
“어째 올해는 더 추운 것 같은데? 아직 겨울이 지나려면 멀었으니 등유를 좀 더 사놓아야 하나...”
제이콥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창고로 발걸음을 옮겼을 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제이콥!”
제이콥이 절친이자 이웃인 잭의 부름에 뒤를 바라보다 자신을 부르고 뛰어오는 잭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했다.
“어? 잭? 이른 아침부터 대체 무슨 일이야?”
이에 잭은 들고 있던 신문을 제이콥의 눈앞에서 흔들며 말했다.
“이거 봤어?”
북미 동해안 지역의 주민들이 북미왕국의 백성이 된 지도 꽤 시간이 흘렀기에 다들 북미왕국의 말과 글에는 익숙해졌고, 최근에는 일상생활에서도 북미왕국의 말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북미왕국이 이를 강제한 것은 아니고 의사소통의 편의 문제 때문이었다.
북미 동해안 지역이 북미왕국의 영토가 되었을 당시만 하더라도 성비가 무척 불균형했고 덕분에 남성들은 결혼을 위해 원주민 여성을 두고 원주민과 싸우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그 때문에 북미왕국에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잉글랜드, 에스파냐의 여성들과 더불어 바르바리 해적에게 붙잡혀 노예가 되었던 여러 나라의 여성들을 사들여 해방해 북미 동해안 지역의 성비를 맞추었고.
그러다 보니 북미 동해안 지역의 대다수 가정은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모국어보다는 북미왕국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잭과 제이콥은 둘 다 에스파냐 출신 이주민과 혼인했기에 자연스럽게 가정 내에서도 북미왕국어를 사용하다 보니 어느덧 이들도 모국어인 영어보다는 북미왕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편했고 그렇기에 잭과 제이콥은 영어가 아닌 북미왕국어로 대화를 나누었고.
그러다 보니 이들은 자연스럽게 한글에도 익숙해졌고 북미신문이 발행되자 북미왕국 내의 정보도 쉽게 파악할 수 있고 유익한 기사들도 많았기에 자연스럽게 애독자가 되었기에 제이콥은 잭이 들고 있는 신문에 호기심을 보였다.
“북미신문? 그거 이번 주 신문이라면 아직 못 봤는데 왜? 또 뭐 흥미로운 기사라도 있어?”
“흥미로운 기사? 아니야. 우리에게 무척 중요한 정보가 실려 있다고!”
대체 무슨 기사가 실려 있길래 잭이 저렇게 흥분했나 싶은 제이콥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자. 여길 봐.”
잭은 제이콥이 볼 수 있도록 신문의 1면을 얼굴 근처에 가져다 댔고 제이콥은 1면에 적힌 큼지막한 기사 제목을 읽었다.
“내년 3월부터 연금 지급? 연금이 뭔데?”
생소한 단어에 제이콥이 고개를 갸웃하자 잭이 입을 열었다.
“나라에서 정기적으로 주는 돈이래!”
“나라에서 돈을 준다고? 우리한테?”
제이콥은 잭의 말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되묻자 잭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아무나 주는 것은 아니고 대상이 정해져 있긴 한데 이 기사에 따르면 너희 가족은 연금 지급 대상인 것 같아.”
“엉?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연금은 총 3가지인데 여기서 다자녀 가구를 위한 연금은 우리 가족은 해당 사항이 없어도 너희 가족은 연금 지급 대상이라고. 여길 봐.”
잭이 손으로 기사 중간 부분을 가리키자 제이콥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일단 잭이 가리킨 부분을 읽었다.
“아이가 셋이면 나라에서...10원을 지급한다고?! 그것도 매달?!”
“그렇다니까? 제수씨는 다음 달이면 산달이니 내년이면 너도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잖아? 그럼 이 연금 지급 대상자가 되는 거라고!”
하지만 제이콥은 잭의 말에도 도저히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잭의 손에서 신문을 빼앗아 자신이 읽은 부분을 다시 한번 확인한 후 정말이었기에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니...대체 왜 나라에서 돈을 주는 건데?”
세상 어느 나라에서도 나라가 백성들에게 세금을 걷으면 걷었지 백성들에게 돈을 주는 경우는 없었기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잭이 그런 제이콥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제이콥이 들고 있는 신문을 가리켰다.
“그 기사 맨 앞부분에 나와 있는데 노인과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지급하는 연금은 당사자와 그들을 부양하는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이유에서 연금을 지급하는 거라면 다자녀 가구를 위한 연금은 아이를 제대로 키우려면 비용이 들어가니 이를 지원하기 위함이래. 하지만 내가 볼 때 나라에서 이러한 명목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이유는 역시 인구가 부족하기 때문이겠지. 너도 잘 알잖아? 우리 북미왕국은 영토에 비해 인구가 무척 적다는 것 정도는?”
북미왕국에 인구가 부족하니 아이를 많이 낳아 기르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는 기사는 종종 올라왔었기에 제이콥도 잭의 말에 공감했다.
“그렇긴 하지. 당장 우리보다 영토가 적은 프랑스도 거의 2천만 명에 가까운 인구라는데 우리 북미왕국은 그 절반 정도잖아? 우리의 영토를 생각하면 조금...”
북미신문에서는 절대 정확한 북미왕국의 인구수를 언급하지 않았을뿐더러 정보기관에서 북미왕국의 인구는 약 천만 명 수준이라는 소문을 널리 퍼트린 지 오래였기에 북미왕국의 백성들은 대부분 북미왕국의 인구수가 천만 명 수준으로 알고 있었고.
해서 제이콥의 말에 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땅에 비해선 턱없이 부족한 인구지. 그 때문에 우리 북미왕국은 지금껏 유럽에서 이주민들을 받아들였고. 하지만 이렇게 이주민을 받아들여 인구를 늘리는 것도 한계가 있잖아?”
“그럼 우리보고 더 많은 애를 낳도록 유도하기 위해 연금을 지급한단 뜻이야?”
이에 잭이 볼을 긁적이다 어깨를 으쓱했다.
“꼭 그렇다기보단 아이가 많아질수록 이런저런 명목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상당히 늘어나잖아. 그리고 북미왕국에선 식량도 넘쳐나고 위생을 신경 쓰기 때문인지 아이들도 건강하게 자라는 편이라 자식이 많은 집은 아이들에 들어가는 비용 때문에 꽤 부담스러워하는 편이고.”
유럽에서야 워낙 유아 사망률이 높아 아이를 여럿 낳아도 실제 이 아이들이 제대로 자라 성인이 되지는 못했다.
이건 귀족이든 평민이든 가리지 않았고.
하지만 북미왕국에서는 위생과 청결에 병적으로 신경 쓰기도 하고 식량이 넘쳐나는 터라 영양 섭취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어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질병에 시달리기보다는 별 탈 없이 자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할 것을 생각하고 이전처럼 많은 자식을 낳은 집에서는 늘어나는 입이 꽤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그렇긴 하지. 고향에서야 다섯 살만 넘어도 조금이나마 일을 시킬 수 있었지만, 북미왕국에선 성인이 되기 전에는 절대 일을 시킬 수 없으니까.”
더불어 고향에서야 이렇게 자식들이 죽지 않고 잘 자란다 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
이들에게 일을 시키면 그만이니까.
보통 유럽에서는 5살부터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보았기에 귀족의 자식들은 가업을 이어받기 위한 혹독한 교육을, 수공업자들의 자식들은 도제가 되어 엄격한 훈련을, 농민의 자식들은 부모님을 따라 밭에 나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잡초라도 뽑고 이삭이라도 주워야 했다.
하지만 북미왕국에서는 성인이 되지 못한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존재로 규정하며 절대로 일을 시키지 못하게 했고 만약 일을 시키다 걸리면 막대한 벌금을 물렸다.
거기에 아이들을 의무적으로 초등학교에 보내야 하니 아이들에게 일을 시킬 시간도 많지 않았고 이를 무시하고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지 않고 밭일을 시켰다가 행정청 관리에게 적발되어 가중 처벌받아 무려 1000원의 벌금을 낸 어느 한 남성에 관한 기사가 북미신문에 실리자 백성 대다수는 간단한 심부름이나 집안일 외엔 일절 아이들에게 일을 맡기지 않았고 말이다.
“그래. 그나마 학교에서 아침과 점심을 제공하니 다행이긴 한데...그래도 부담되는 것은 사실이지. 그래서 간혹 이 때문에 아이를 갖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계산을 하는 집들도 있고. 그래서 나라에서 돈을 지원해주는 모양이야. 최소한 아이를 키우는 비용 때문에 아이 갖는 것을 망설이지는 말라고. 여기 보면 아이가 셋에서 더 늘어날수록 연금 지급액도 오른다고 적혀 있거든.”
잭의 말에 제이콥은 기사를 확인하고 새삼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매달 10원만 주더라도 부담을 대폭 덜 수 있었는데 아이가 늘어나면 지원금이 늘어난다니.
“허. 정말이네? 그럼 자식을 갖는 것에 큰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되겠는데?”
제이콥 역시 이번에 아내가 임신하면서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자 셋까지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이 되면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는 것이 부담될 수밖에 없어 아무리 자식을 많이 낳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도 슬슬 자제해야겠구나 싶었는데 이렇게 나라에서 연금을 지급한다고 하니 만족스러워 미소를 짓자 그런 제이콥의 고민을 모르지 않았던 잭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이제 자식이 더 생길까 봐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거야. 거기에 임산부 지원금이라는 것도 있더라. 다만 이건 제수씨에겐 해당 사항이 없지만, 우리 안사람에게는 지급될 것 같고.”
잭의 아내 역시 둘째를 임신한 상태였고 출산 예정일은 내년 4월이었기에 잭이 덧붙이자 제이콥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원금? 그건 또 뭐야?”
“연금이 매달 나라에서 지급하는 돈이라면 지원금은 딱 한 번 지급하는 돈인데...말 그대로 임산부를 지원해주기 위해 나라에서 지급하는 돈이야. 취지는 임신하고 배가 불러올수록 거동이 불편해 일하기 어려운데 생계를 위해 일하다가 임산부와 아이가 잘못될 수도 있으니 이를 막기 위해 모든 임산부에게 돈을 지급한다더라. 100원을 지급한다던가?”
이에 제이콥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뭐? 100원? 임신만 해도 100원을 준단 소리야?”
“아니. 그건 아니고 출산 후에 행정청에 아이의 출생 신고를 하면 그때 준다고 하네. 그러니 당장 생활비가 필요한 임산부는 일단 국영은행에서 생활비를 대출받고 출산 후 지원금을 받아 이 대출금을 갚으라고 기사에 쓰여 있고.”
“헌데 우리 아내는 왜...아. 이것도 연금처럼 내년 3월부터 지급하는 거야?”
그런 지원금이라면 자신의 아내도 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었던 제이콥은 연금 지급이 내년 3월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묻자 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물론 출생 신고를 늦게 하는 방법도 있긴 한데...”
잭이 말을 흐리자 제이콥은 조금 고민하긴 했다.
100원이라는 돈은 꽤 큰 편이었으니까.
다만 100원을 받자고 아이의 출생 신고를 두 달 넘게 미뤘다가 행정청 관리에게 걸리기라도 하면 벌금을 물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고개를 저었다.
“흠...물론 100원이 큰돈이긴 한데 그러다 걸리면 막대한 벌금을 물어야 하니 썩 매력적이진 않네. 그거 못 받는다고 당장 굶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 그러니 일단 지원금은 포기하라고. 뭐 연금만 해도 충분하잖아? 그리고 나중에 또 아이를 갖게 되면 그땐 지원금도 받고 연금 지급액도 올라갈 테니.”
잭이 웃으며 이야기하자 제이콥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암. 충분하고말고. 헌데...이거 정말 우리에게도 지급되는 것 맞을까? 솔직히 우리는 세금도 얼마 안 내는데...매달 10원씩, 일 년에 120원이나 받으면 우린 나라에 내는 세금보다 더 많은 돈을 받는 셈이잖아?”
북미왕국은 그동안 북미 동해안 지역으로 이주해 땅을 일구던 잉글랜드인들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 당대에 한해 그들에게 배정한 땅에서 나는 소출에 대한 세금은 걷지 않았다.
물론 그 외에는 세금을 걷긴 했는데 농민인 이들은 해당 사항이 없어 직접 내는 세금은 거의 없었고.
그렇기에 연금을 받게 되면 나라에 내는 세금보다 더 많은 받게 되는 셈이니 과연 나라에서 이를 정말 지급할지 걱정스럽다는 얼굴을 하자 잭도 그를 걱정한 모양인지 곧바로 입을 열었다.
“나도 그게 좀 걸려서 기사를 살펴봤는데...행정청이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곳을 제외하면 모두 지급한다고 적혀 있더라.”
그러면서 기사의 한 부분을 가리키자 제이콥은 기사를 읽어보고 안도했다.
“휴. 정말이네? 그럼 정말...내년 3월부턴 매월 10원씩 받는 건가?”
제이콥이 꽤 기대 섞인 눈빛으로 신문을 읽고 있을 때 잭이 그런 제이콥을 보고 웃으며 답했다.
“그렇겠지. 북미신문이 뭐 허튼소리를 한 적이 있나?”
“그치? 하하하. 정말 고마워.”
제이콥이 웃으며 잭에게 고맙다고 인사하자 잭이 고개를 갸웃했다.
“음? 아. 연금에 대해 알려줘서? 어차피 너도 북미신문을 보니 곧 알았을 텐데 뭐.”
하지만 제이콥은 그런 잭의 반응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7년 전에 총독의 명령에 따라 이곳을 떠나 서인도제도로 갔다면 내가 어떻게 살았을까를 생각해보니 새삼 널 따라 북미왕국에 남아있기로 한 결정이 정말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꾼 것 같아서 말이야. 누가 알았겠어? 잉글랜드에선 농노와 다를 바 없었던 내가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자식들과 가정을 꾸리고 매일같이 흰 빵과 고기를 뜯으며 살 줄은?”
“아. 크큭. 그렇긴 하지. 솔직히 나도 이렇게까지 일이 잘 풀릴지는 몰랐지만 말이야.”
잭 역시 제이콥과 비슷한 심경이었기에 웃음을 참지 못하며 수긍하고 있을 때 제이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헌데 다른 연금은 그렇다 치더라도 다자녀 가구 연금을 받는 가정이 생각보다 많을 것 같지 않아?”
“그렇긴 해. 아이가 셋일 때부터 연금을 지급하니까. 아마 어지간한 가정은 대부분 연금을 받을 것 같은데...”
“그치? 헌데 우리 북미왕국이 무척 부유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이러다 나라 망하는 거 아니야?”
제이콥은 북미왕국이 정말 좋았다.
북미왕국의 백성이 되면서 세금도 거의 내지 않아 돈도 모을 수 있었고, 가정을 이뤘으며 가족과 함께 굶을 걱정 없는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제이콥은 자신과 자식들,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북미왕국이 영원했으면 해서 조금 걱정스럽다는 듯 중얼거리자 잭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걱정하지 말라고. 북미왕국의 국왕 전하도 그렇고 이를 보좌하는 고위 관리들도 모두 유능하다잖아. 헌데 설마 나라를 망할 정책을 시행하겠어?”
“그...그렇겠지?”
제이콥은 잭의 말에 불안감이 줄어들며 중얼거리자 잭이 제이콥의 등을 팡팡 치며 말했다.
“그래.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연금을 받으면 어디다 사용할지 고민이나 하라고.”
“그래. 그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