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9화
기온이 서늘한 것을 넘어 싸늘해지기 시작한 10월.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던 정성국은 행정청장이 방문해 보고한 내용을 듣고 반색했다.
“드디어 우래건 강 안쪽의 거점 건설이 끝났다고?”
“그렇습니다. 전하.”
북대서양 탐사대가 새남포 남쪽의 우래건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탐사해 우래건 강 유역의 지형을 파악하고 전생의 포틀랜드가 위치했던 곳을 발견하자 정성국은 이곳에 새로운 거점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이 거점 개발이 마침내 완료되었으니 전생의 오리건 주를 개발해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만족하던 정성국은 문득 의문이 생겨 행정청장을 바라보았다.
“흠. 내가 알기로 이 지역 인구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 않나?”
“그렇지요. 일단 북미왕국에 우호적인 치누크 족이나 일부 소부족들이 합류하긴 했습니다만 5천 명 정도입니다. 해서 외무청에서 범 치누크 족을 설득하고 있습니다만...이들을 다 합쳐도 채 1만 명이 되지 않으니 인구가 많은 편은 아니지요.”
“그렇지. 헌데 생각보다 거점 건설이 오래 걸린 것 같은데?”
보통 거점 공사의 경우 반년에서 길게 걸려봐야 1년 정도면 충분한데 이곳의 경우 거의 3년에 가까울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 정성국이 의아할 수밖에 없어 질문하자 행정청장이 답했다.
“아. 전하께서 이전에 태평양 방면도 본격적으로 개발하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전까지는 유럽 때문에 주로 대서양 방면의 개발을 중요시했지만, 이제 유럽 세력은 북미 대륙에서 사라졌고 어차피 대서양 방면 곳곳에 거점 도시를 건설하고 이곳을 기반으로 주변을 개발하고 있었으니 슬슬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태평양 방면의 도시도 개발해야겠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정성국은 행정청장이 이를 거론하자 고개를 끄덕이다 왜 공사가 늦어졌는지 짐작하고 입을 열었다.
“그랬지. 아. 설마 우래건 강 안쪽 거점을 제대로 키우려고 기반 공사에 공을 들인 건가?”
생각해보면 전생의 포틀랜드도 그렇고 이 포틀랜드 남쪽의, 해안 산맥과 동쪽의 캐스케이스 산맥 사이의 분지는 무척 비옥한 지역이었다.
더불어 우래건 강의 지류인 월래밋 강이 이 분지 곳곳으로 뻗어있어 작물을 재배하기 알맞은 장소이기도 했고.
그러니 이곳을 개발하면 자연스레 거점이 발전할 수밖에 없을 테고.
“그렇습니다. 전하. 처음에야 다른 곳과 비슷하게 일단 거점 공사를 하고 점차 확장하는 방식을 사용하려 했습니다만...이 지역이 무척 비옥한 터라 성장 가능성이 무척 커 보였습니다. 해서 훗날을 염두에 두고 여러 기반 공사를 동시에 진행했고 인구가 적기에 일꾼도 적은 터라 거점 건설이 생각보다 지체되긴 했습니다.”
“아. 그런가. 그럼 어쩔 수 없긴 하지.”
현재 북미왕국은 나라 전체가 공사판이나 다름없어 개발청에서는 기술자나 일부 장인만 파견하고 그 외에는 현지에서 일꾼을 고용해 일을 진행해나갔는데 이 지역은 인구가 적어 고용한 일꾼의 수도 적었고, 덕분에 여러 기반 시설을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행정청장의 설명에 정성국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성국도 나중을 생각하면 처음부터 제대로 도시 계획을 세우고 기반 시설마저 제대로 끝내놔야 확장할 때 편하고 비용도 적게 든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거점 건설 완료되었으니 이곳에 이름을 붙여야 하는데...”
행정창장이 말을 흐리며 정성국을 바라보자 정성국은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아직 이름을 안 붙인 건가? 그래서 나한테 붙여달라고?”
“아닙니다. 그게...새송도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엥?”
왠지 모르게 정성국이 직접 지은 것 같은 도시 이름이고, 그가 알기로 조선 출신들은 정성국이 지은 도시 이름을 꽤 무성의한 것 같다고 평가한 것을 잘 아는 정성국이 황당한 표정으로 행정청장을 바라보고 되물었다.
“어...농담 아니고? 정말로?”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행정청장은 슬쩍 고개를 돌려 정성국의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정성국은 그런 행정청장의 반응에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시선 피하지 말게. 난 딱히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자네를 탓할 생각은 없으니까. 헌데 왜 그런 이름을 붙인 거지? 행정청에서 붙인 건가?”
그런 정성국의 말에 행정청장은 다시 정성국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게...처음에는 으레 그래왔듯 부족 이름을 거점 이름으로 지으려 했는데 거점 공사가 길어지면서 주변 소부족들이 북미왕국에 합류했고 이들이 이 거점 건설의 일꾼이 되어 일한 터라 분명 이들의 지분도 없진 않았습니다. 헌데...”
“아. 뒤늦게 합류한 소부족들은 범 치누크 족은 아니었던 모양이지?”
정성국이 상황을 짐작하자 행정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해서 고민 끝에 이 거점 인근에 흐르는 우래건 강이나 그 지류인 월래밋 강의 이름을 따 붙일 생각을 했고요.”
“그거 괜찮은데? 그런데?”
정성국이 왜 그 괜찮은 이름들을 포기했느냐고 묻자 행정청장이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원주민들에게 도시 이름으로 어느 강의 이름을 붙일 거냐고 물어보니 왜 자신들에게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지 않느냐며 따지더군요.”
“음?”
“이들도 3년 넘게 교류하면서 태평양 방면 도시 이름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요. 헌데 아시다시피 태평양 방면 도시 이름은 전하께서 친히 이름 붙인 도시들이 많다 보니...”
생각해보면 원주민들은 주로 태평양 방면 도시 이름을 들었을 텐데 죄다 정성국이 이름 지은 도시들이었다.
새의주, 새남포, 새김포, 새한성, 새목포, 새진도까지.
이를 떠올린 정성국이 실소하며 물었다.
“아. 그런데 자신들은 주변의 강 이름을 그냥 붙이자니 차별이라고 생각한 거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해서 자신들도 비슷한 이름을 붙여달라고 졸라대는 통에 결국 송도에 새롭다는 의미의 새를 붙여 새송도로 정했습니다.”
행정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뭐 이번에 새로 건설한 거점 주변 지역이 무척 비옥하고 발전 가능성이 있으니 송도라는 이름을 쓴 것은 알겠는데...보통은 송도보다 개성이라고 하지 않나?”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은 주로 개경, 송경이라고 불렸지만, 조선이 들어서면서 개경을 버리고 천도하면서 수도를 의미하는 경을 떼어버려 공식 지명은 일단 개성이었기에 정성국이 묻자 행정청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딱히 성도 없고 어감도 썩 좋지 않아서 만장일치로 새송도로 결정했습니다.”
그 말에 피식 웃은 정성국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뭐 원주민들이 그 이름을 원했다면야 딱히 할 말은 없네만...이거 잘못하면 태평양 방면 도시들이 죄다 조선의 지명을 따서 이름 붙이게 될까 봐 겁나는군.”
“그것도 특색이 있으니 썩 나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전하께서 꺼리시는 모양이니 이번처럼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부족 이름을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게. 그럼 새송도 지역의 거점 건설은 끝났으니 이곳을 발전시켜야 하는데...”
정성국이 전생의 기억을 되짚는 동안 행정청장이 입을 열었다.
“일단 기후도 나쁘지 않고 땅도 무척 비옥한 터라 원주민들에게 농업에 종사하도록 유도할 셈입니다.”
“흠. 상황을 봐서 조선의 이주민 일부를 그곳에 정착시키는 것도 나쁘진 않아 보이는군.”
이 지역의 원주민들은 농경 생활보다 수렵에 익숙한 이들이었기에 농업 연구소의 연구원들을 일부 보내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을 테니 농경 생활에 익숙한 조선인을 일부 정착시켜 원주민들을 돕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정성국이 덧붙이자 행정청장이 동의했다.
“그렇지요. 그리고 우래건 강이나 그 지류인 월래밋 강의 수량이 풍부하고 지형도 수력 발전소를 건설하기에 나쁘지 않으니 이곳에 수력 발전소를 건설하고 알루미늄 제련 공방을 건설하는 것도 괜찮아 보이고요.”
그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흠. 그건 당장 급한 것은 아니니 조금 신중 하자고. 그리고 어차피 당장 새송도 인근에 수력 발전소를 건설하기도 어려울 텐데?”
정성국의 지적에 그건 그렇다는 듯 행정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개발청에 문의해보니 워낙 일정이 많아 당분간 새송도에 수력 발전소를 건설하기는 어렵다고 하더군요. 거기에 인력도 부족하고. 해서 당분간은 주로 농업에 집중하면서 이를 통해 다른 주변 부족들이 북미왕국에 합류하길 기다릴 생각입니다.”
그 말에 정성국은 살짝 기대하는 표정으로 행정청장을 바라보았고.
“주변 지역의 원주민들은 많은 편인가?”
그런 정성국의 기대 섞인 눈빛을 받은 행정청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아쉽게도 그리 많은 편은 아닌 듯싶습니다.”
“그래? 우래건 강이나 월래밋 강을 통해 손쉽게 민물고기를 구할 수 있어 인구가 꽤 많을 줄 알았는데...특히 연어도 있잖아?”
“물론 연어가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연어가 넘쳐나는 시기는 한정되어 있고 이때 대량으로 잡는다 하더라도 보관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연어가 가장 넘쳐난다는 주요 요지에 자리한 범 치누크 족이 1만 명을 채 넘기지 못하는 것을 보면...”
식량을 얻기 그나마 편한 장소라 할 수 있는 우래건 강 인근에 자리한 범 치누크 족의 인구가 그 정도라면 다른 지역의 원주민들도 그 수는 뻔했기에 정성국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그럼 주변 원주민들을 북미왕국에 합류시키더라도 한계가 있겠군.”
“그렇습니다. 조선 이주민을 이곳에 정착시키던가...아니면 안정적으로 북미왕국에 합류한 원주민들이 아이를 열심히 낳아 자연스럽게 인구가 증가하길 바라는 수밖에 없습니다.”
“쩝. 어쩔 수 없나. 그리고 새목포의 재개발은?”
정성국은 태평양 방면 지역을 발전시키기로 하면서 기존의 도시와 함께 새송도와 더불어 남쪽의 조그마한 항구인 새목포를 크게 키우기로 정했다.
전생의 기억이 있는 정성국으로서는 서부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였던 로스앤젤레스의 기억 때문에라도 이 새목포를 그냥 작은 항구 도시로 남게 하기엔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기후도 사람이 살기엔 좋은 편이었으니 말이다.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예정대로 내년 초에 재개발이 완료될 예정이고요.”
“그래? 다행이군.”
“다만 이 새목포의 재개발로 새목포 주민들이 이전보다 나은 환경에서 지낼 수야 있겠지만...문제는 일자리입니다. 그동안은 재개발로 인해 많은 일자리가 생겨 큰 문제가 없었지만, 재개발이 완료되면 다시 양질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셈이니까요.”
행정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이 고개를 갸웃했다.
“면직물 공방을 비롯해 몇 개의 공방을 새목포에 건설하기로 하지 않았나?”
균형적인 개발을 위해 공방을 분산하기로 했을뿐더러 계속해서 누에바 에스파냐와의 교역이 늘어나고 누에바 에스파냐 원주민들이 사용할 면직물을 비롯한 각종 수출품이 늘어나는 상황이다 보니 새목포에 공방을 세워 이곳에서 생산하는 품목을 전량 새진도로 보내 수출할 계획을 세워두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성국의 의문에 행정청장이 답했다.
“그 부분 말인데...제가 자세히 파악해보니 새목포에 방직, 방적 공방이 들어서면 원료 수송 문제로 인해 이득이 꽤 줄어들더군요. 그나마 새진도와 가까워 그나마 손해를 보지는 않습니다만...”
“그거야 어쩔 수 없지. 그리고 효율만 생각해 일부 지역에 공방을 집중해서 건설하는 것은 여러 문제를 야기할 수 있거든.”
“그렇기는 합니다만 너무 비효율적인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새목포에 공방을 세워봐야 이득이 큰 편이 아니라 공방의 규모가 그리 큰 편도 아니고 일자리도 적은 편이지요. 하지만 새나주와 새목포가 철도로 연결되어 있으면 오히려 이득이 무척 늘어나니 공방의 규모도 더울 키울 수 있겠더군요.”
그 이야기에 정성국은 행정청장이 무슨 생각으로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지 짐작하고 피식 웃었다.
“그러니 새나주-새목포 구간에 철도를 부설하자 이건가?”
“그렇습니다. 길이도 비교적 짧은 터라 금방 철도를 부설할 수 있고요. 개발청장에게 이야기해보니 150km 정도만 부설하면 그만이라 금방 철도를 부설할 수 있다고 합니다.”
“150km라고?”
북미왕국의 워낙 거대한 땅덩이를 생각해보면 150km 정도의 철도를 부설하는 일은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에 정성국이 흥미를 보였다.
다만 그가 알기로 새나주에서 새목포까지의 직선거리가 그 정도 되지 않나 싶어 고개를 갸웃하자 행정청장이 설명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새나주에서 직선으로 새목포까지 철도를 부설하는 것은 아니고 새목포와 가장 가까운 새나주-새진주 구간 사이의 철도와 연결해 철도 부설 거리를 최대한 줄이는 거죠.”
그러면서 행정청장이 개발청장에게 들었던 노선을 정성국에게 설명하기 시작하자 정성국은 이해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하. 세 방향 교차로를 세우겠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새목포 북쪽의 산을 굳이 깎지 않고 조금 돌아가는 노선이고요. 그러면 약 150km 정도만 철도를 부설하면 된다더군요.”
이에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입을 열었다.
“거의 평지에다 까는 셈이니 생각보다 공사 기간이 길진 않겠네?”
“그렇습니다. 지금 새목포를 재개발하려고 고용한 일꾼들을 그대로 투입하면 늦어도 반년 정도면 철도를 부설할 수 있다고 합니다.”
“흠. 그 정도라면 뭐...알겠네. 새목포를 본격적으로 개발할 생각이니 그러도록 하지. 내가 개발청장과 이야기를 나눠보겠네.”
“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