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6화
“어서 오게. 행정청장.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의 보고 때문에 온 건가?”
일전에 조용한 곰이 덴마크를 방문한 관리가 페로 제도, 아이슬란드를 거치는 항로를 이용해 귀환하면서 이곳으로 파견된 북미왕국 관리들이 넘겨준 약식 보고서를 함께 가지고 왔고, 이것이 기차를 통해 새한성으로 이동 중인데 이 보고서가 도착하면 행정청을 통해 보고가 올라올 거라고 미리 이야기했었기에 정성국이 자신의 집무실을 방문한 행정청장을 보고 이렇게 묻자 행정청장은 잠시 움찔했다가 상황을 파악하고 웃었다.
“아. 외무청에서 이야기한 모양이군요. 그렇습니다. 이건 약식 보고서입니다.”
행정청장이 정성국에게 보고서를 건네자 정성국은 이를 받아들고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어디 보자...이건 아이슬란드의 보고서로군.”
“그렇습니다. 행정청 관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이슬란드에는 5820가구, 총 39120명이 거주하고 있답니다.”
“흠. 조금 걱정하긴 했는데 인구수를 속이진 않은 모양이군.”
이에 행정청장은 살짝 웃으며 괜한 걱정이라는 듯 이야기했다.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했다가 후에 대가를 치른 에스파냐의 이야기가 유럽 외교가에도 잘 알려져 있는데 감히 속이려 들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헌데 역시나 여성이 많은 것을 보면 아이슬란드의 남성들은 어업에 종사하는 모양이지?”
보고서에는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약 4.5:5.5 정도로 여성이 약간 더 많은 편이었기에 정성국이 상황을 짐작하고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지자 행정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아이슬란드는 작물을 재배하기 어려운 땅이고 덴마크가 식량을 판매하긴 하지만 무척 비싸게 판매했기에 식량이 부족한 아이슬란드 성인 남성들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대부분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시대 바다는 꽤 위험한 곳이었다.
그리고 비록 아이슬란드 인근에 풍부한 어장이 있긴 하지만 배가 튼튼한 편은 아니다 보니 파도가 거칠어지면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이를 짐작한 정성국은 혀를 차며 말했다.
“쯧. 일단 제대로 된 어선부터 보급해야겠군.”
“예. 이번에 새롭게 건설한 보스턴의 조선소에서 어선을 건조해 넘기면 될 것 같습니다.”
행정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보고서를 살피다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어? 여성과 아이들은 목축업에 종사한다고?”
“그렇답니다. 아이슬란드는 섬치고는 무척 넓은 편이고 작물을 재배하지 못할 뿐이지 풀 한 포기 없는 섬은 아니니까요. 해서 소와 말, 양을 키운다고 하더군요. 다만 소는 고기를 먹기 위해서라기보단 유제품을 얻기 위해 가구마다 한두 마리 정도 키울 뿐이고 말도 이동 수단으로 어쩌다 한 마리 키울 뿐이라...양을 많이 키운다고 합니다.”
“양모와 양고기를 얻기 위해서 말이지?”
“그렇습니다.”
양은 아이슬란드 주민들의 중요한 재산 중 하나였다.
아이슬란드가 위도 때문에 여름에도 선선한 편이라 면직물보다는 모직물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을뿐더러 의외로 아이슬란드에는 마지막 빙하기 때 아이슬란드를 방문했다가 빙하가 녹아 고립되어 아이슬란드의 터줏대감이 되어 버린 북극여우를 제외한 토착 육지 포유류는 아예 없었기에 고기를 구하기도 힘들어 양모와 양고기를 얻을 수 있는 양은 아이슬란드 주민들이 무척 중요한 가축이었고.
해서 가정마다 여러 마리의 양을 키운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매끈한 턱을 쓰다듬다가 나쁘지 않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흠. 최근 모직물의 수요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 양모를 수급할 곳이 늘어난 셈이니 나쁘지 않은데?”
시베리아 원주민들과 교역을 시작했고 알래스카 지역의 개발이 진행되어 이곳의 인구가 증가하고 있으며 누벨 프랑스에도 여러 이주민이 정착해 계속해서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터라 모직물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축산 연구소에서는 더 많은 양을 키우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고.
해서 정성국은 전생처럼 호주로 양을 보내 원주민들에게 양을 치게 하고 여기서 나오는 양모를 전량 수입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보고서를 살펴보니 의외로 아이슬란드에서도 꽤 많은 양을 키울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정성국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행정청장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곧바로 입을 열었다.
“그렇지요. 아니면 아예 이곳의 산업 구조를 특화하는 것도 나쁠 것은 없어 보입니다.”
“아이슬란드인들이 더 많은 양을 키우도록 지원해주자 이거지?”
“그렇습니다. 그러면 아이슬란드인들은 양모를 팔아 먹고살 수 있을 테니까요. 솔직히 어업에 종사하는 것보다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겁니다.”
“흐음...알루미늄 제련 공방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목축업이라...”
정성국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행정청장은 의아한 듯 질문을 던졌다.
“예? 알루미늄 제련 공방이요? 그거 전기가 막대하게 들어간다고 들었는데요? 아. 아이슬란드에 수력 발전소를 건설하실 생각이십니까?”
“상황을 봐서. 거기에 최근 연구청에서 지열 발전을 연구하고 있거든.”
지열 발전에 관한 연구는 순조로운 편이었고 이미 지열 발전소의 설계도 끝난 상황이었기에 아이슬란드에 파견된 개발청 직원들이 귀환하면 본격적으로 지열 발전소를 건설할 예정이었다.
다만 연구한 것처럼 발전소가 순조롭게 돌아갈지는 미지수였기에 여지를 둔 정성국의 대답에 행정청장이 어리둥절했다.
“지열 발전이요?”
생소한 단어에 고개를 갸웃하는 행정청장을 보고 정성국이 지열 발전에 관해 간략히 설명하자 행정청장은 참으로 놀랍다는 듯 감탄했다.
“허. 참으로 신기하군요. 그런 방식으로도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니. 헌데 그런 방식이면 지열 발전도 수력 발전처럼 발전소만 건설하면 큰 비용은 들어가지 않겠군요?”
“그렇지. 해서 지열 발전소를 건설할 생각인데 아이슬란드의 인구수가 적은 편이니 생산한 전기가 꽤 많이 남을 거란 말이지? 해서 알루미늄 제련 공방을 세워 알루미늄을 대량 생산할 생각이었고. 헌데 목축업까지 제대로 육성하면 내 생각보다 아이슬란드 주민들이 꽤 부유해지겠는데?”
남성들은 알루미늄 제련 공방에서 일하고 여성들은 양을 친다면 아이슬란드 주민들은 훗날 새한성 주민들처럼 무척 부유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정성국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이야기하자 행정청장이 슬쩍 미소지으며 답했다.
“확실히 그럴 것 같습니다. 이것도 다 아이슬란드 주민들의 복이겠지요.”
은근슬쩍 아부하는 행정청장을 보고 피식 웃은 정성국은 다시 보고서를 살펴보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아이슬란드에 귀족이 있었어?”
듣기로 아이슬란드는 덴마크의 식민지에 가까워서 아이슬란드 귀족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한 정성국이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행정청장이 큰 문제가 아니라는 얼굴로 답했다.
“예. 다만...말이 귀족일 뿐이지 동네 촌장이나 추장에 가깝답니다. 예전에는 나름대로 영향력이 있었던 모양이지만 덴마크 왕실에서 아이슬란드를 고립시키면서 이들도 몰락했다고 하더군요.”
“몰락했다 해도 귀족 아닌가. 거기에 가문 소유의 땅도 있을 텐데 우리 북미왕국에서는 귀족 신분을 인정하지 않고 약간의 보상금을 받고 소유한 땅을 모두 포기해야 하니 이들이 반발할 것 같은데...”
옛 북미 동해안의 잉글랜드인 지주들의 신분이 일단 평민이었던 것과는 다르게 이들은 귀족인 만큼 더 반발하지 않을까 싶어 정성국이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이야기하자 행정청장이 보고서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그 보고서 뒤쪽에도 쓰여 있습니다만...처음 북미왕국 관리들이 아이슬란드를 방문했을 때 귀족들은 행정청 관리들을 붙잡고 궁금한 것들을 모두 물어본 모양입니다. 그리고 북미왕국에는 전하를 제외하면 모두 평등해 북미왕국의 백성이 된다면 더는 귀족 행세를 할 수 없다는 것도, 땅도 대부분은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요. 하지만 귀족들은 상관없다는 반응을 보였답니다.”
“뭐? 그게 가능한가?”
기득권을 버린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싶어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정성국을 보고 행정청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이야 마을 촌장에 불과해 귀족의 특권이라 봐야 다른 아이슬란드인과 다르게 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정도라 귀족 신분을 아쉬워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북미왕국은 모든 백성이 평등하기에 능력만 되면 관리가 되는 것도 가능하니 오히려 나쁠 것 없다는 반응이었답니다.”
“허. 그래?”
“예. 아이슬란드 귀족들은 덴마크 왕실의 견제를 받아 덴마크의 하급 관리도 될 수 없었다고 합니다. 헌데 그러한 제약이 풀리는 셈이니까요.”
이런 행정청장의 설명에 덴마크 왕실에서는 아이슬란드를 철저히 식민지로 대했구나 싶어 혀를 차는 와중에 행정청장이 덧붙였다.
“그리고 저들이 땅을 약간 소유하고 있긴 하지만 그 땅을 이용해 별다른 이득도 챙길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북미왕국에서 보상금을 준다는 말에 흔쾌히 넘기겠다고 했답니다.”
“그래도 소나 양을 키운다면서? 목초지를 이용하는 대가로 주민들에게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행정청장은 그러한 정성국의 의문에 고개를 저었다.
“귀족들이 아이슬란드의 모든 땅을 소유한 것은 아니라서요. 거기에 덴마크에서도 귀족들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이런저런 명목으로 산과 들을 공유지로 묶어두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 귀족들이 이용료를 걷으려 하면 주민들은 이런 공유지나 산에 양을 풀어놓고 키웠기에 결국 말이 사유지지 공유지에 가까웠답니다. 그러니 북미왕국이 보상금까지 준다는 말에 오히려 환호한 것이지요.”
덴마크 왕실이 아이슬란드 귀족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여러 정책을 펼쳐 아이슬란드 귀족들이 무늬만 귀족이 되었기에 북미왕국으로서는 오히려 편해진 셈이라 정성국은 묘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음. 정말 귀족들이 반발하지 않는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덴마크 관리들을 통해 바깥소문에 대해 어느 정도 들었기에 북미왕국이 얼마나 강력한 나라인지, 또 부유한 나라인지 모르지 않았기에 이전보다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여긴 모양입니다. 그리고 북미왕국 관리들이 인구 조사를 하면서 아이슬란드 주민에게 밀가루를 비롯해 각종 구호물자를 무상으로 건네자 이를 확신한 모양이고요. 그래서인지 기꺼이 북미왕국의 통치를 받아들이겠다고 확답했답니다. 더불어 이들이 북미왕국 관리들을 돕고 있고요.”
행정청장의 자세한 설명에 정성국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허. 솔직히 좀 놀랍군.”
이에 행정청장이 웃으며 답했다.
“놀라울 것이 있겠습니까. 저들은 뱀의 머리 수준도 아니고 지렁이의 몸통쯤 되는 느낌이라...차라리 용의 꼬리가 더 나아 보일 수밖에 없겠지요. 듣자니 귀족들도 저희가 건네준 새하얀 밀가루로 만든 흰 빵을 먹어보고 눈물을 흘린 자도 있다고 하니 뭐...”
그래도 명색이 귀족인데 밀 빵을 먹고 눈물을 흘렸을까 싶긴 했지만, 행정청장의 이야기나 보고서 뒤편에 적힌 아이슬란드 주민들은 호밀과 이끼를 섞은 빵을 먹고 귀족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아 호밀로 만든 빵을 가끔 먹을 수 있었다는 내용을 보면 자신의 생각보다 열악한 상황이었기에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쯧. 생각보다 상황이 많이 안 좋았던 모양이군. 뭐 덕분에 저들이 북미왕국의 통치를 받아들였으니 다행이긴 한데...저들이 기꺼이 모든 권리를 포기한 만큼 잘 대해주도록 하게.”
“물론입니다. 아이슬란드의 추장들이라고 생각하고 저들을 잘 가르쳐 행정청이나 외무청에 배정할 생각입니다.”
“하하하. 그러게.”
그렇게 약식 보고서를 확인하며 행정청장과 대략적인 아이슬란드 개발계획을 세운 정성국은 밑에 있는 또 다른 보고서를 살펴보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페로 제도는...400가구, 2360명이 다군. 이거 페로 제도 전체가 그렇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곳도 아이슬란드와 상황은 비슷합니다. 주로 어업과 목축업으로 연명하고 있는데...차이점이라면 이곳은 유럽에 가까운 편이라 해적들의 약탈에 시달린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무척 가난한 편이고요.”
그러면서 행정청장이 북미왕국의 배가 도착해 덴마크가 페로 제도를 북미왕국에 팔았다는 이야기를 덴마크 관리에게 전하자 덴마크 관리는 이를 확인조차 하지 않고 드디어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고 곧바로 짐을 싸 본국으로 돌아가려 해 관리들이 진정하라고 말렸을 정도라고 덧붙이자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거참...엄청나게 고생한 모양이군. 헌데 딱 봐도 약탈할 것도 없어보이는구만...”
이에 행정청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해적들이라고 해봐야 결국 태반은 직업 해적이라기보단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어부들로 짐작됩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거창한 보물이나 귀금속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양이나 양털, 주 식량인 말린 생선을 약탈한 모양입니다. 아무튼, 상황이 그래서인지 덴마크 관리들도 기뻐하고...페로 제도 주민들도 강력하다는 북미왕국 해군이 직접 섬을 지켜준다는 이야기에 무척 환호했고요.”
“쯧쯧...”
그 정도면 덴마크 왕실에서 조금만 신경 써서 해군을 배치하기만 해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는데 그동안 방치했다는 이야기였기에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4함대의 전선이 파견되었으니 최소한 해적들에 시달리는 일은 없을 테고...이곳도 식량이 부족해 보이니 정기적으로 수송선을 배정해야겠는데?”
“예. 이곳은 아이슬란드와 비교하면 섬들이 무척 작은 편인데 그만큼 주민도 적은 편이라 이곳에서 목축업을 육성해 양모로 식량을 사도록 만들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북유럽과의 무역은 이곳에서 담당할 수도 있다고 들었으니...남성들은 이곳의 선착장에서 일하거나 어업에 종사하고 여성들은 목축업에 종사한다면 먹고 사는 데는 전혀 지장 없을 것 같습니다.”
“흠. 알겠네. 허면 그런 방향으로 페로 제도를 개발하고 통치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