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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453화 (453/850)

453화

정성국은 티테이블에서 집무실을 방문한 조용한 곰을 반갑게 맞이하며 손짓했다.

“아. 마침 잘 왔네. 이것 좀 들게.”

그러면서 정성국은 근처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꺼내 조용한 곰에게 건넸고 조용한 곰은 냉기가 흐르는 도자기를 받아들며 물었다.

“음? 이건 뭡니까?”

“젤라토라고 하는 유럽의 후식 중 하나일세.”

“아. 일종의 유럽식 빙수인 모양이군요?”

젤라토의 어원은 얼렸다는 뜻의 gelatus에서 유래한 만큼 유럽식 빙수가 아니냐는 조용한 곰의 말도 틀리지 않았기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다만 최근 찻집에서 파는 빙수처럼 얼음을 갈아 그 위에 고명을 얹어 먹는 방식이 아니라 과일, 우유, 설탕 등을 섞어 얼린 거라 기존의 빙수하고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더군. 녹기 전에 먹어보게.”

정성국의 말에 조용한 곰은 수저로 붉은빛이 감도는 이 젤라토를 듬뿍 퍼서 입안에 가져간 후 차가움과 달콤함, 부드러움과 쫀득함이 교묘하게 섞인 이 젤라토의 맛에 감탄했다.

“오. 정말이군요. 빙수하고는 전혀 다른데요? 거기에 이렇게 진한 딸기 맛이라니. 이거 생각보다 괜찮군요. 이게 유럽의 후식이라고요?”

“그렇다네. 이탈리아 귀족들이 먹던 후식이라던가? 왕실 숙수들이 에스파냐 대사관의 숙수에게 배웠다고 하더군.”

처음에는 대사관에도 전기를 공급해야 하는 가에 대해 말이 좀 있긴 했다.

전기를 공급하면 전기를 사용하는 여러 물품도 자연스럽게 요청할 테고 이것을 분해해서 무언가 기술을 습득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기에 대사관에는 전기를 공급해서는 안 된다는 청장들이 많았고.

다만 다른 일반 가정도 모두 전기를 사용하는 판에 대사관에 전기를 공급하지 않는 것도 웃기긴 했고 전등의 경우 잘못 만지면 위험했고, 냉장고나 냉방장치 역시 냉매가 암모니아라 잘못 분해하면 죽기 딱 좋았다.

그래서 냉장고나 냉방장치를 판매하는 상단에서는 직접 각 가정에 냉장고나 냉방장치를 설치해주면서 구매자들에게 각종 주의사항을 설명하기도 하고 절대 분해하지 말라고, 잘못하면 큰 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과하게 경고하는 편이었기에 섣불리 분해하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해 정성국이 대사관에도 배전공사를 하라고 명령했고.

덕분에 이렇게 젤라토를 맛볼 수 있게 되었으니 조용한 곰이 무척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저들에게도 전기를 잘 공급했다 싶습니다.”

“그러게 말일세.”

그렇게 담소를 나누며 빠르게 젤라토를 먹어치운 둘이었고, 조용한 곰이 아쉬운 표정으로 빈 접시를 바라보자 정성국은 실소하며 다시 냉장고를 열어 젤라토를 꺼내 건네주며 그가 방문한 용건을 물었다.

“그보다 조선과의 협상은 아직도 진행 중인가?”

조용한 곰은 정성국이 건넨 노란빛이 감도는 젤라토를 보고 활짝 웃다가 대답했다.

“아. 드디어 대략적인 협상을 마무리했습니다.”

“오?! 그래?”

이번 조선 사절단의 정사로 북미왕국과 철도 부설 공사 협상에 임했던 예조판서는 꽤 꼼꼼한 편이었고 그래서 북미왕국에서 진행되었던 철도 부설 공사의 자료 등을 요청하며 어떤 식으로 철도 부설 공사가 진행되는지를 파악한 후 협상에 임했다.

물론 기술 자체야 북미왕국이 가지고 있고 철도를 부설할 재력도 없으니 북미왕국이 하자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긴 하지만 북미왕국에서도 굳이 강압적으로 협상할 이유는 없었기에 예조판서의 의문에 최대한 답을 해주며 느긋하게 협상을 진행했고.

덕분에 협상이 무척 늦어졌고 갑자기 등장해 일주일 만에 영토 협상을 체결한 덴마크와의 협상이 떠올라 정성국이 조금 답답한 표정으로 물었는데 조용한 곰이 드디어 협상을 대략 마무리했다고 하니 정성국이 반색하자 조용한 곰은 젤라토가 녹을까 슬쩍 한 수저 떠먹으며 대답했다.

“예. 전하께서 이야기하신 것처럼 조선철도공사라는 상단을 만들고 북미왕국에서 이 상단에 자금을 지원해서 철도가 부설될 용지를 매입하고 일꾼을 고용해 철도를 건설한 후 이를 운영하고 북미왕국이 지원한 자금을 모두 갚으면 이 상단을 조선 정부에 넘기는 방식으로 협정을 맺었습니다.”

“그래? 잘 되었군.”

“그리고 일단 올해 개발청 관리들이 원상의 도움을 받아 조선 내의 지역을 샅샅이 측량할 예정이고 노선을 정한 후 철도 부설 용지를 매입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끝나야 공사에 착수할 수 있겠지요. 물론 개발청장의 이야기론 철도 부설 이야기가 나온 작년부터 준비해두었기에 이르면 내년에 북방항로가 열리면 곧바로 착수할 수도 있다고 장담했습니다만...제가 볼 때는 철도 부설 용지를 매입하는 데만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그거야 어쩔 수 없지. 다만 돈을 넉넉하게 줘서 조선인들이 불만을 품지 않도록 하게.”

“물론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조용한 곰이 다시 빠르게 수저를 놀려 젤라토를 먹어치우는 것을 피식 웃으며 바라보던 정성국은 잠시 후 다시 질문을 던졌다.

“철도 부설 공사에 착수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테고...노선의 길이는 그리 긴 편은 아니지만, 조선의 지형을 생각하면 완공까지도 꽤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

마지막으로 수저를 놀려 젤라토를 해치워버린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조선엔 산이 많아 이를 모두 우회할 수야 없으니 일부 산을 깎아내야 하는데 아무리 화약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그게 쉽지는 않을 거랍니다.”

“그렇겠지.”

한반도의 경우 산 대부분이 단단한 화강암이기에 산을 깎아내기가 그리 쉽지는 않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던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용한 곰이 덧붙였다.

“거기에 곳곳에 교량도 건설해야 하고요.”

조선엔 기차가 지나갈 정도의 교량은 전무했으니 천상 이 교량도 모두 건설해야 했다.

물론 개발청에서는 북미왕국 곳곳에 지속해서 교량을 건설하면서 교량 건설 기술을 많이 발전시켜나갔기에 한강에도 철교를 세우는 것도 큰 문제는 없으리라 보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막대한 공사비와 시일이 소모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리라.

해서 정성국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뭐 지형이 그러니 어쩔 수 없지. 알겠네. 괜히 일정을 앞당기겠다고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하다 사고가 일어날 바에야 천천히 진행하는 것이 낫겠지. 내가 개발청장에게 따로 말해 두겠네.”

이에 조용한 곰이 슬쩍 입을 열었다.

“다만 조선 관리들은 최대한 빠르게 철도를 부설했으면 하는 눈치였습니다만...”

“뭐 조선으로서야 철도가 빠르게 부설되면 좋기야 하겠지. 그래야 빠르게 조선철도공사를 가져올 수 있고. 하지만 무리하다 사고라도 나면 곤란해. 거기에 일꾼들은 조선인들이니 그러다 우리에게 반감을 품을 수도 있고.”

정성국의 대답에 조용한 곰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경제적인 부분도 없진 않습니다만...그보다는 실제 조선에도 기차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조선 사람들이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해주고 싶은 모양입니다. 더불어 북미왕국 백성들처럼 기술자를 우대하는 풍토도 만들고요.”

꽤 완고한 조선 선비들도 북미왕국에 다녀오면 가치관이 변할 수밖에 없긴 했다.

그리고 이들의 가치관을 강제로 변하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육중한 쇳덩이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스스로 움직이는 모습이었고.

그러니 개화파들은 더 많은 조선인을 북미왕국으로 보내고 싶어했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어려우니 빠르게 기차를 도입해 이를 알릴 생각이라는 말에 정성국이 나쁘지 않은 계획이라고 생각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흠. 그거야 평지 구간을 빠르게 부설하고 기차를 운용하면 되는 문제 아닌가. 그것만 해도 충분할 테고.”

“그렇긴 하지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달래도록 하지요.”

“그리고 차관 문제는?”

철도 부설 협상을 완료했으니 당연히 차관 문제도 협의했을 거로 생각해 정성국이 묻자 조용한 곰이 바로 답했다.

“일단 500만 석에 달하는 쌀과 100만 필의 면포를 5년에 걸쳐 빌리기로 합의했습니다.”

1년에 100만 석과 20만 필의 면포를 빌린다는 뜻이었기에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고작?”

이에 조용한 곰이 살짝 난처한 표정으로 웃으며 답했다.

“예. 저도 규모가 너무 적어 조금 의아하긴 했는데...아무래도 조선은 조금 부담스러운 모양인 듯싶었습니다.”

그 말에 정성국은 조선의 재정 규모가 썩 크지 않다는 것을 떠올렸다.

특히나 현 중앙 정부의 재정 규모는 기껏해야 100만 석에도 미치지 못했고.

물론 이건 중앙 정부에서 거둬들인 세금일 뿐이라 그보다 규모가 큰 지방 정부에서 거둬들이는 세금은 모두 빠져 있는 수치긴 했지만 이를 고려하면 조선에 차관으로 요청한 1년에 100만 석은 조선의 처지에선 생각외로 규모가 큰 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꽤 요청한 편이긴 하구나 싶은 정성국이었다.

더불어 중앙 정부에서 거둬들인 세금은 주로 관리들의 녹봉을 주고 외교 및 제사 등 각종 의례적인 지출에 집중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차관으로 군비나 산업, 기술의 발달에 투자하면 조선이 꽤 달라지겠구나 싶었다.

“흐음...알겠네. 그 정도면 수송하는데도 큰 부담은 없으니 나쁠 것 없겠지. 그리고 필요하면 차관을 더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이미 태평양 방면에는 5천 톤급 수송선이 대거 건조되어 투입되고 있었기에 북미왕국의 수송 능력은 몇 년 전 경신 대기근 당시와는 또 달랐기에 1년에 100만 석 정도 수송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 않아 정성국이 이야기하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미 말해 두었습니다. 뭐 예조판서야 그 정도만 해도 차고 넘친다며 고개를 흔들기는 했습니다만...”

그 말에 피식 웃은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알겠네. 다만 당장 보내기는 어려울 것 같고...내년 초부터 보내면 되겠군. 그리고 철도 부설 용지를 구매할 대금까지 생각하면 조금 부족할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계속해서 수송선이 건조되고 있으니 당장은 조금 차질이 있더라도 큰 문제는 없으리라 봅니다.”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자네가 관리청과 잘 이야기해 큰 문제 없이 일을 진행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그렇게 물자 수송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한 정성국은 잠시 빈약한 조선 재정을 떠올리고 조용한 곰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내가 알기로 조선 사절단을 안내하는 곳 중에 염전은 제외되어 있지?”

“그렇습니다.”

“이번에 조선 사절단에게 염전을 구경시켜주게.”

염전의 경우 한번 방문해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기술을 획득할 수 있었기에 조용한 곰은 정성국의 의도를 눈치채고 입을 열었다.

“염전 기술을 내어주실 생각이십니까?”

“그렇네. 내가 볼 때 철도의 소유권이 조선에 돌아가기까지는 꽤 시일이 걸릴 듯싶고...조선의 체면을 생각하면 계속 우리에게 손을 벌릴 것 같지도 않은데 조선의 발전을 생각하면 지금 수입으론 한계가 꽤 명확해 보이거든.”

북미왕국과는 달리 철도 부설 용지를 매입하는 데만 해도 시간이 꽤 걸릴 테고, 지형도 나빠 그리 길지 않은 노선임에도 불구하고 부설 공사에 꽤 오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었으며 그러다 보니 공사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정성국의 계산과 달리 조선철도공사의 소유권이 조선에 넘어갈 때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일 것 같았고.

그렇기에 정성국이 일단 염전 기술을 넘겨주고 상황을 봐서 조선의 각종 광물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줄 생각을 했고.

“그렇지요. 그래서 염전 기술을 내어 조선 정부에 새로운 수입원을 내어주겠다는 거군요?”

“그렇지. 더불어 전통적인 소금 생산 기술과 비교하면 연료도 필요하지 않아 경제적이기도 하고. 조선 정부는 더 많은 소금을 생산해 조금이나마 재정이 좋아질 테고 백성들은 기존보다 싼 값에 소금을 얻을 수 있으니 나쁠 것 없지. 거기에 소금이 풍부하다면 그동안 버려졌던 물고기들도 내륙까지 유통될 테고.”

그가 알기로 소빙하기 덕분에 18세기까지 조선의 식량 상황이 썩 좋지는 않았다.

물론 자신의 개입으로 감자가 보급되어 전생보다야 낫겠지만 식량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니겠는가.

이에 조용한 곰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어차피 협상도 끝났으니 조선 사절단과 함께 염전을 방문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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