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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451화 (451/850)

451화

덴마크와 영토 협정을 맺은 후 갑작스러운 일 폭탄에 행정청은 기겁했다.

그러나 행정청은 그동안 수많은 원주민의 북미왕국 합류로 늘어난 영역을 정리하고 관리하는데 이골이 나 있었고, 원주민의 합류를 제외하더라도 북미 동해안 지역이나 누벨 프랑스 지역, 서인도제도의 섬들을 북미왕국의 영토에 편입시켰던 경험이 다수 있었기에 익숙하게 이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덴마크 외교관인 한스가 건네준 아이슬란드 자료는 그런대로 봐줄 만했지만 갑작스럽게 결정된 페로 제도의 자료는 무척 조악한 수준이었기에 곧바로 현지 사정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관리들을 보냈고.

그렇게 더워지기 시작한 새진주를 떠나 비교적 선선한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행정청 관리는 더위를 피해 이곳에 오길 잘했다고 여기며 갑판 위에서 아이슬란드의 선착장을 바라보았다.

웅장한 아이슬란드의 자연풍경과는 달리 꽤 조악한 선착장의 풍경과 뒤쪽의 허름한 마을의 모습에 행정청 관리가 속으로 안타까운 마음에 혀를 찼을 때 함께 배를 탔던 개발청 관리가 한숨을 쉬며 투덜거렸다.

“어휴. 인구가 4만 명 정도 된다고 해서 괜찮은 도시는 될 줄 알았는데...생각보다 많이 열악하네요.”

“예. 좀 조악해 보이기는 하는군요.”

“이거 싹 뜯어고치려면 고생 좀 하겠네요.”

그렇게 행정청 관리가 개발청 관리와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 선단은 천천히 나무로 만들어진 선착장에 접근해 정박했고.

이미 북미왕국의 배들이 접근할 때부터 부산했던 선착장은 북미왕국의 배가 정박할 때쯤 되자 수많은 주민들이 선착장으로 나와 거대한 북미왕국의 배를 바라보며 감탄하거나 놀라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고 여긴 행정청 관리는 배에서 내렸고 그런 행정청 관리를 향해 관리로 보이는 인물이 다가왔다.

행정청 관리는 키가 크고 푸른 눈이 인상적인 관리를 보고 물었다.

“혹시 프랑스어 하실 줄 아십니까?”

비록 아이슬란드가 어느 정도 고립되어 있었지만, 덴마크 본국과 꾸준히 교류하고 있었던 만큼 북미왕국의 존재를 모르지 않았다.

특히 가까운 그린란드가 북미왕국의 영토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슬란드인들은 어떻게 보면 이웃 나라나 다름없었기에 북미왕국에 호기심을 갖고 가끔 방문하는 덴마크 상인들을 통해 북미왕국의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그렇기에 덴마크 본국에서 파견되었던 관리는 북미왕국의 배라는 것을 알고 혹시 이들과 말이 통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저들이 먼저 프랑스어로 말을 하자 안도하며 답했다.

“휴. 그렇습니다. 배를 보아하니 북미왕국 같은데...맞습니까?”

“예. 북미왕국에서 왔습니다.”

행정청 관리가 빙긋 웃으며 대답하자 덴마크 관리는 뒤쪽의 거대한 배들을 보고 잔뜩 움츠러든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죄송하지만 여기 아이슬란드는 덴마크의 영토입니다. 그리고 덴마크 국적 이외의 선박들은 이곳에 정박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죄송하지만 바로 떠나주셨으면 합니다만...”

그 말에 행정청 관리는 눈을 크게 뜨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 설마 모르십니까?”

“무엇을 말입니까.”

덴마크 관리가 고개를 갸웃하자 행정청 관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 아이슬란드는 북미왕국의 영토가 되었습니다만...”

이에 덴마크 관리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농담이시지요?”

하지만 행정청 관리는 진지한 표정으로 덴마크 관리를 바라보았고 덴마크 관리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자 입을 열었다.

“이곳까지 와서 농담할 이유가 있습니까?”

이 대답에 덴마크 관리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멍하니 행정청 관리를 바라보다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이라고요?”

“예. 한 달 전쯤에 덴마크와 정식으로 영토 협정을 체결했고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그때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가 북미왕국의 영토가 되었습니다만...얼굴을 보아하니 전혀 이야기를 듣지 못한 모양이군요.”

행정청 관리의 설명에 덴마크 관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잔뜩 당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그렇습니다. 처음 듣는 이야긴데요?”

그런 덴마크 관리의 반응에 행정청 관리는 속으로 덴마크의 일 처리를 씹어댔다.

‘젠장...페로 제도야 그렇다 쳐도 먼저 제의한 아이슬란드에도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았을 줄은...일 처리 진짜 개판이네. ’

그러면서 행정청 관리는 상황을 짐작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뭐 정식으로 영토 협정을 체결하기 전까지는 알리지 않은 모양이군요. 갑작스러운 거래였으니 이해는 합니다만...이거 좀 곤란하군요.”

“예?”

“전 본국의 명령을 받고 이곳의 상황을 파악하러 왔거든요. 물론 협정을 맺은 후 덴마크에서는 여러 자료를 넘겨주긴 했습니다만...이것이 정확한지 확인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아...”

덴마크 관리는 행정청 관리의 이야기에 당황을 감추지 못하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을 찰나 뒤에서 풍채가 좋은 한 인물이 덴마크 관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뭐야? 무슨 일인데 그래?”

이에 덴마크 관리는 행정청 관리를 보고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양해를 구했다.

“저기...잠시만 제 동료와 이야기를 하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좀 주시겠습니까?”

행정청 관리가 보기에도 지금 덴마크 관리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보여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러시지요.”

행정청 관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자 덴마크 관리는 풍채가 좋은 자신의 선임에게 방금 행정청 관리가 했던 이야기를 전해주었고.

선임 관리 역시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 본국에서 아이슬란드를 북미왕국에 넘겼다고?”

“그렇답니다. 페로 제도와 더불어서요.”

“....처음 듣는데?”

“그러니까요...”

덴마크 관리와 선임 관리는 잠깐동안 서로를 바라보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린 선임 관리가 급히 고개를 돌려 북미왕국의 배들을 바라보고 질문을 던졌다.

“잠깐만. 그럼 저들은 이곳을 통치하려고 온 거야?”

“일단 그 전에 이곳의 정확한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왔다는군요.”

“허. 진짠가?”

“모르겠습니다. 이거 어쩌지요?”

“흐음...”

처음 듣는 이야기를 어디까지 신용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에 그저 침묵만이 감돌고 있을 때 이대로는 답이 없겠다고 생각한 선임 관리가 뒤쪽으로 물러났던 북미왕국의 행정청 관리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죄송한데 저희는 본국에서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해서 말입니다. 그러니 조금 시간을 주셨으면 합니다만...”

“이곳에서 본국에 배를 보내 확인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요?”

“음...아마 두어 달 정도 걸리겠지요.”

그 대답에 행정청 관리는 고개를 저었다.

가뜩이나 일이 많은데 두 달이나 허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럼 어렵겠습니다. 저희도 일정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번 협정을 체결한 덴마크 외교관이 아마 지금쯤이면 덴마크 본국에 협정문을 들고 복귀했을 겁니다. 그러면 본국에서도 이곳에 사람을 보내 이를 알리겠지요.”

“그...렇습니까?”

생각보다 단호하게 거절하자 선임 관리가 잠시 당황하고 있을 때 행정청 관리가 말했다.

“예. 해서 말인데 저희들은 예정대로 할 일을 좀 하고 싶습니다만 괜찮겠습니까?”

“할 일이라면 인구 조사를 하시겠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더불어 아이슬란드의 정확한 지형을 파악하고 식량을 비롯한 각종 구호 물품도 배급할 예정입니다.”

“구호 물품이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덴마크 관리가 끼어들자 행정청 관리가 답했다.

“이곳의 물자가 썩 풍족하지 않은 편이라고 덴마크 외교관이 이야기하더군요. 더불어 작물도 재배하기 어려운 환경이고. 그래서 아국의 국왕 전하께서 급히 이곳에 식량과 각종 구호물자를 보내라고 명령하셨기에...”

“어? 그럼 식량을 비롯한 물자를 판매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예. 말 그대로 지원입니다. 돈을 받고 파는 것이 아닌.”

이에 선임 관리와 행정청 관리는 잠시 양해를 구하고 뒤로 물러나 덴마크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쩌지?”

“식량을 판매하겠다면 교역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무상으로 지원하겠다면 사기도 아닌 것 같고...”

“그렇지?”

만약 저들이 식량을 비롯한 물품을 돈을 받고 팔겠다면 혹시 사기가 아닐까 의심해볼 수도 있었지만, 무상으로 푼다면 정말 아이슬란드가 북미왕국의 영토가 되었고, 그래서 북미왕국이 아이슬란드인들의 민심을 얻기 위한 행보라고 볼 수 있었기에 선임 관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덴마크 관리가 선착장에 정박해있는 배들을 슬쩍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리고 우리는 어차피 저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나요? 저 거대한 배들을 보세요. 아무리 봐도 군함 같은데...우리가 저들의 요구를 반대하면 우리를 공격할지도 모릅니다.”

“아.”

아쉽게도 이곳엔 제대로 된 군대가 주둔하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주민들로 구성한 자경대로는 저들을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그리고 방금도 우리가 본국에 먼저 사정을 알아볼 수 있게 시간을 좀 달라고 했어도 그냥 무시한 것을 보면 저들의 요구를 일단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귀족들에게 알리고요.”

이 아이슬란드에도 귀족이 있긴 했다.

지금이야 기온이 낮아져 제대로 된 작물을 재배할 수 없었지만 9세기경에만 하더라도 작물을 재배할 수 있었고 그래서 인골푸르 아르나르손이라는 노르웨이인이 처음으로 아이슬란드에 정착지를 세우면서 정착민의 수가 늘어났고 10세기경에 일부 가문이 아이슬란드의 곳곳을 장악하면서 아이슬란드 귀족이 생겨났고 그러면서 아이슬란드 연방이 탄생했다.

다만 그 이후 노르웨이가 아이슬란드를 정복하려 들었고, 13세기경에 아이슬란드 귀족끼리 내분으로 내전이 일어나자 아이슬란드 귀족들은 결국 노르웨이의 통치를 받아들였고.

그러다 14세기 말에 덴마크와 노르웨이가 통합하면서 아이슬란드의 지배권이 덴마크로 이양되었고, 처음엔 어느 정도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받았으나 17세기에 들어 덴마크 왕실은 아이슬란드의 통제권을 강화하며 귀족들은 아이슬란드에서 영향력을 잃기 시작했다.

거기에 기후변화로 인해 평균 기온이 내려가면서 제대로 작물을 키우기도 어려워져 기근과 역병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경제는 파탄 나면서 아이슬란드의 귀족은 평민과 별반 다른 바 없는, 신분만 귀족인 존재로 전락해버렸고.

다만 이전까지 아이슬란드를 정치적으로 이끌어갔던 이들이었기에 그들에게 일단 알리자는 덴마크 관리의 말에 선임 관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멀뚱히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행정청 관리를 보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의논이 조금 길어졌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답변은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이에 행정청 관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양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

북미왕국의 배가 선착장에 정박해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더 많은 아이슬란드 주민들이 레이캬비크의 선착장으로 몰려들어 거대한 북미왕국의 배를 구경하기 바빴지만, 아이슬란드의 귀족들은 마을 중앙에 위치한 한 건물에서 덴마크 관리의 설명을 듣고 도저히 믿기 어렵다는 듯 되물었다.

“그게 대체 무슨...본국에서 이 아이슬란드 섬의 모든 권리를 북미왕국에 넘겼다고?”

“저들의 말에 따르면 그렇답니다.”

“아니. 우리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그래. 자네들은 뭐 들은 것 없나?”

귀족들의 질문에 덴마크 관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희도 이번에 처음 듣습니다.”

그 대답에 수염이 덥수룩한 한 노인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물었다.

“헌데 저들이 이곳을 조사하게 허락했다고? 먼저 본국에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에 덴마크 관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보셨겠지만 저들은 군과 함께 왔습니다. 반대했다가 저들이 이곳을 공격하기라도 하면 어쩝니까.”

“아...”

페로 제도보다야 규모가 있어 덜하긴 하지만 이 아이슬란드도 이전에 해적들에게 약탈당한 경험이 없지는 않았다.

해적들을 제대로 상대하지도 못했는데 강하기로 소문난 북미왕국 해군을 상대로 과연 싸울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다른 귀족들도 자연스럽게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고.

“저번 달에 본국에서 배가 왔었으니 다시 오려면 2달은 더 기다려야 하지?”

“그렇습니다. 다만 저들이 이야기하기론 지금쯤이면 본국에서도 협정이 체결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테니 바로 사람을 보내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그 대답에 귀족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말을 주고받았다.

“그럼 정말인가 본데...”

“북미왕국은 신교도 국가가 아니지 않나?”

한때 이들은 모두 가톨릭을 믿었지만, 16세기 중엽 루터교의 교리가 알려지면서 주민들이 전부 개종했다.

그렇기에 북미왕국이 신교도 국가가 아닌 만큼 종교 문제로 핍박받을 수도 있다고 여겨 한 중년 사내가 걱정스럽다는 듯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덩치 큰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신교도 국가는 아니지만, 종교의 자유는 인정한다고 들었는데?”

“으음...그럼 다행이기는 한데...”

“차라리 잘 되었어. 북미왕국은 부유하기로 유명하지 않나. 그러니 정말 북미왕국이 이곳을 통치한다면 사정이 좀 나아지겠지.”

“그래. 그리고 북미왕국의 해군은 무척 강력하기로 소문났으니...이곳이 북미왕국의 영토란 것이 알려진다면 이곳에서 행패를 부리는 자들이 사라지겠지.”

“거기에 예전처럼 해적들이 이곳을 약탈하지도 못할 테고.”

“어찌 되었건 간에 지금보다야 낫긴 하겠지.”

“암...”

이전보다 아이슬란드의 상황도, 자신들의 상황도 썩 좋지 않았기에 덴마크 왕실에서 멋대로 아이슬란드를 북미왕국에 팔아버린 것은 기분 나빴지만, 북미왕국이 이곳을 통치하면 상황이 조금은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있어 귀족들이 다들 그렇게 이야기하자 괜히 찔렸던 덴마크 관리는 헛기침하며 말을 돌렸다.

“크흠. 아무튼, 상황이 그렇고 저도 북미왕국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으니...자세한 것은 저들에게 물어보세요.”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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