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화
“좋은 아침입니다. 함장님.”
이번에 덴마크로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구성된 임시 함대의 총 책임자이자 2함대 소속의 지급 전선을 지휘하는 함장은 갑판에서 전방을 응시하고 있다가 뒤에서 들려오는 외무청 관리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 벌써 일어나셨습니까? 아직 새벽인데?”
“예. 조금 일찍 일어났습니다.”
“마침 잘 되었군요. 어차피 선원을 보낼 생각이었는데.”
그 말에 선선한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던 외무청 관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함장을 바라보았다.
“예?”
“저길 보시지요.”
외무청 관리가 갑판 위에서 전방을 바라보니 왼쪽과 오른쪽에 땅이 보였고 그 가운데 좁은 해협이 보였기에 눈을 번쩍 떴다.
“어? 설마 여기가 그 유명한 외레순 해협입니까?”
오늘 중에 도착할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벌써 도착할 줄은 몰랐기에 놀란 표정으로 되묻자 함장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지도가 정확하다면 이곳이 바로 외레순 해협입니다.”
“그럼 저 오른쪽에 보이는 땅이 바로 덴마크의 영토인 셀란 섬이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왼쪽에 보이는 땅이 바로 옛 덴마크 영토인 스코네 지역이고 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가 스웨덴에 깨지고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아국에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를 넘긴 셈이고요.”
함장의 말에 외무청 관리는 왼쪽의 평온한 해안가를 바라보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뭐랄까. 전쟁 중이라고 들었으니 해안가 인근에 스웨덴 병사들이 가득할 것으로 생각했는데...의외로 한적하군요?”
“덴마크 해군이 스웨덴 해군을 격파하면서 이미 스웨덴은 제해권을 상실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해안가 가까운 곳에 주둔시켜봐야 포탄밖에 더 날아오겠습니까. 거기에 스코네 지방만 하더라도 무척 넓은 편인데 이곳의 해안가를 철저히 경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그렇긴 하군요.”
유럽의 병력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기에, 그리고 스코네 지방의 해안선만 하더라도 수백km에 달했는데 현실적으로 이 해안선에 병력을 배치해 지킬 수야 없는 노릇이었기에 외무청 관리는 함장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돌렸고.
오른편에 있는 셀란 섬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뾰족한 첨탑을 보고 중얼거렸다.
“어? 저기 저건...”
함장은 즉각 품에서 망원경을 꺼내 눈에 가져다 대고 잠시 살펴보다 입을 열었다.
“저게 외레순 해협의 통행료 징수를 위해 축성한 크론보르 성인 모양이군요. 근처 선착장에는 덴마크 해군으로 짐작되는 전열함도 정박해 있고...오. 갑판 위가 분주한 것을 보니 우리 배를 발견한 모양입니다. 그래도 전쟁 중이라고 반응은 빠르군요. 일단 아직도 잠자고 있는 덴마크 외교관을 깨우긴 해야겠군요.”
그 말에 외무청 관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함장은 선원을 불러 선실에서 아직도 자는 덴마크 외교관을 깨우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함대의 속력을 늦추라 명령했고.
곧 미리 약속된 깃발이 올라오자 자신이 타고 있는 지급 전선과 대각선에서 따라오는 2척의 인급 전선이 속력을 줄이는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 함장은 다시 전방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함대를 향해 다가오는 프리깃을 보고 있을 때 뒤쪽에서 덴마크 외교관인 한스 바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맙소사...정말 크론보르 성이잖아?”
“잘 주무셨습니까?”
외무청 관리가 갑판 위로 나온 한스에게 인사하자 한스는 정신을 차리고 외무청 관리를 보며 물었다.
“예. 그렇긴 한데...허. 천천히 이동한다더니 런던에서 출발한 지 3일 만에 도착한 겁니까?”
하지만 외무청 관리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전속력으로 항해했다면 더 빠르게 도착했겠지요. 대서양을 횡단했던 것처럼요.”
“아...”
그때 함장이 외무청 관리에게 눈짓하며 어느덧 가까이 다가온 덴마크의 프리깃을 가리키자 외무청 관리가 한스에게 말했다.
“그보다 덴마크 해군의 배가 가까이 왔습니다. 다행히 덴마크 해군도 북미왕국의 깃발을 알고 있는 모양인지 공격할 의사는 없어 보입니다만...”
그 말에 다시 정신을 차린 한스는 입을 열었다.
“아. 제가 직접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러시지요. 일단 배를 멈추겠습니다.”
“예.”
그리고 한스는 갑판 앞쪽에서 가까이 접근한 덴마크 배에 덴마크어로 소리치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덴마크어를 모르는 함장과 외무청 관리는 잠시 멀뚱히 그 광경을 보고 있을 때 한스가 밝은 표정으로 뒤돌아서서 말했다.
“오. 마침 잘 되었습니다.”
“예?”
“국왕 전하께서 현재 저 크론보르 성에 계시 답니다. 그러니 저곳에 입항하면 될 것 같습니다.”
“흠.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 * *
한스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크론보르 성으로 들어갔고 곧바로 자신을 환대하는 크리스티안 5세를 만날 수 있었다.
“한스. 오랜만이네. 그래도 별 탈 없이 돌아와 다행이로군.”
이에 한스는 고개를 숙이며 크리스티안 5세에게 답했다.
“국왕 전하께서 걱정해 주신 덕분입니다.”
“그래. 듣자니 북미왕국의 배를 타고 왔다면서?”
“그렇습니다.”
“그럼 협상은...?”
크리스티안 5세는 북미왕국의 선단이 나타났고 그 선단에 북미왕국을 방문하러 떠났던 한스가 벌써 돌아왔다는 보고를 듣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빨라도 반년에서 1년 정도를 예상했는데 고작 5개월도 되지 않아 돌아왔으니 과연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었는가 싶었던 것이다.
다만 한스가 북미왕국의 배를 타고 왔으니 아예 비관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질문을 던지자 한스가 곧바로 대답했다.
“음...그것이...”
한스는 북미왕국과의 협상을 크리스티안 5세에게 보고했고 크리스티안 5세는 이 보고와 한스가 건네준 협정문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흐음...북미왕국의 무기는 구하지 못했지만,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를 합쳐서 100만 크로네를 받을 수 있었다라...그나마 다행이로군.”
계속된 육전에서의 패배로 덴마크군의 피해가 생각보다 큰 상황이었다.
이미 이번 전쟁에서 동원한 육군 병력 2만 명 가운데 절반을 넘게 잃은 상태였다.
그나마 덴마크 해군이 제 역할을 해 주었고 노르웨이군도 북쪽에서 스웨덴군을 분산시켜 주었으며 브란덴부르크군이 북독일의 스웨덴 영토를 맹렬히 공격하는 중이었기에 스코네 지역의 교두보인 란스크로나 지역은 지킬 수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미 자금은 바닥난 상태라 병사를 모집하지도, 이들을 무장시키기도 버거운 상황이었으니 교두보를 확보했어도 추가로 병력을 모집해 밀어 넣을 수가 없어 꽤 지지부진한 상황이었고.
하지만 이번 협상으로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를 북미왕국에 넘기며 100만 크로네를 받아왔고 이를 처분하면 못해도 1만 명을 추가로 무장시킬 수 있을 테고 이 병사들을 스코네 지역에 투입한다면 병력 규모가 적은 스웨덴 군은 더는 버티기 힘들 테니 이 지지부진한 상황을 일거에 깨뜨리고 스코네 지역을 확실히 장악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크리스티안 5세가 안도하며 중얼거리자 한스가 덧붙였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는 100만 크로네 이상이 될 테고요.”
“아. 북미왕국의 물품으로 받아온 건가?”
지금껏 에스파냐나 잉글랜드가 북미왕국의 수많은 사치품을 수입하긴 했지만, 이 사치품 대부분이 자국에서 소모되면서 북유럽까지 흘러들어온 것은 많지 않았다.
그 때문에 북유럽에서 북미왕국의 사치품은 무척 비쌀 수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크리스티안 5세가 반색하자 한스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특히 최고급 모피, 도자기, 비단, 커피 등은 값비싼 사치품이고 돈이 있어도 물건이 없어서 못 구하는 형편 아닙니까. 그러니 이를 상인들에게 비싸게 넘긴다고 해도 상인들은 기꺼이 사들일 겁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무기를 사고 용병을 구하면 되겠지요.”
“으음. 그래야지. 아무튼, 고생했네. 자네가 예상보다 일찍 귀환한 덕분에 올해 안에 다시 군대를 재정비하고 스코네 지방을 공격할 수 있겠어.”
조금은 침울한 기색이 없지 않았던 크리스티안 5세가 이를 떨쳐내며 눈을 빛내기 시작하자 한스는 그런 크리스티안 5세의 모습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북미왕국이 우리 덴마크의 사정을 알고 나름대로 배려해준 덕분이지요.”
“그래?”
“예. 그래서 협상도 무척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고 북미왕국의 배를 타고 이렇게 도착할 수 있었고요.”
“아. 그러고 보니 북미왕국의 배는 정말 돛 없이 움직이는 건가?”
프랑스 해군을 격파한 북미왕국 해군에 관한 소문은 널리 알려질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크리스티안 5세도 북미왕국의 배가 증기기관으로 움직인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
다만 그가 학자들을 불러 만들었던 조악한 증기기관으로는 아무리 발전해도 과연 커다란 배를 움직일 수 있을까 싶어 회의적이었기에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질문을 던지자 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밖에 정박해있는 북미왕국의 배를 보면 아시겠지만, 북미왕국의 배에는 정말로 돛이 없습니다. 알려진대로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모양인데...무척 빠르더군요.”
“빠르다고?”
“그렇습니다. 대서양을 건너는데 고작 일주일이면 충분했으니까요.”
“뭐? 일주일?”
크리스티안 5세가 무척 놀란 표정을 짓자 한스가 자신도 비슷한 심경이었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뉴펀들랜드 섬에서 마지막으로 연료를 보급하고 딱 일주일 만에 런던에 도착했습니다. 제가 새진주로 향할 때는 대서양 횡단에 거의 두 달 가까이 걸린 것을 생각해보면 북미왕국의 배가 얼마나 빠른지 짐작하실 겁니다. 물론 북미왕국의 배는 바람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최단거리로 항해했기에 직접 비교는 어렵습니다만...”
“허. 정말 빠르군. 이거 가만히 있을 수 없겠는데?”
그러면서 크리스티안 5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한스는 당황한 표정으로 크리스티안 5세를 바라보았다.
“예? 어쩌시려고...”
“일주일 만에 대서양을 주파한 배가 선착장에 정박해있지 않나. 그러니 직접 살펴봐야지.”
“아...알겠습니다.”
* * *
선착장에서 선착장 주변의 덴마크 해군의 전열함과 가까이에 있는 크론보르 성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던 외무청 관리는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무슨 일인가 싶었고.
화려한 복장의 젊은 사내가 병사들의 호위를 받고 다가오고 있었고 크리스티안 5세에게 일단 보고하겠다며 성안으로 들어갔던 한스가 조심스럽게 그 뒤를 따르자 저 젊은 사내가 크리스티안 5세를 직감한 외무청 관리가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반갑네. 내가 바로 덴마크-노르웨이 왕국의 국왕인 크리스티안 5세일세.”
이에 외무청 관리는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이렇게 국왕 전하를 알현하게 되어 참으로 영광입니다. 헌데 어찌 선착장까지 나오셨습니까.”
“아. 유럽에도 북미왕국의 배가 무척 대단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그리고 그 북미왕국의 배가 이렇게 가까이 있으니 당연히 직접 나와봐야 하지 않겠나.”
그 말에 외무청 관리는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크리스티안 5세에게 반문했다.
“음...배를 직접 살펴보시겠다는 겁니까?”
“그랬으면 좋겠는데...안될까?”
“죄송하지만 저 배들은 전선이라...대부분이 통제구역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기껏해야 선실 정도를 살펴보는 것이 전부인데...”
별로 볼 것이 없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표정을 짓는 외무청 관리였지만 크리스티안 5세는 외무청 관리를 바라보기보단 옆에 정박해있는 커다란 북미왕국 특유의 배에 눈을 떼지 못하며 말했다.
“아. 상관없네. 헌데 이게 전투용 배라고?”
“그렇습니다. 안전하게 물품을 운반해야 했기에 전선을 동원했습니다.”
“그럼 뉴펀들랜드에서 프랑스 해군을 격파했다는 그 4함대 소속의 배인가?”
그 말에 외무청 관리는 순간 놀랐지만 생각해보면 북미왕국 해군이 프랑스 해군을 격파하며 유명해졌다는 것을 떠올리고 대답했다.
“아닙니다. 주로 서인도제도의 해적들을 상대하던 2함대 소속 배이지요.”
“오. 그 서인도제도에 넘쳐나던 해적들을 모두 도망치게 했다는 그 2함대 소속이라고? 어? 그러고 보면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서인도제도의 프랑스 섬들을 공격하고 이곳에 배치된 프랑스 해군 일부를 공격하기도 하지 않았나?”
크리스티안 5세가 생각외로 북미왕국의 정보에 박식한 듯 보였기에 외무청 관리는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그렇습니다.”
“흐. 바로 배에 올라도 될까?”
“그러시지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크리스티안 5세는 외무청 관리의 안내를 받아 배 중에서 가장 큰 지급 전선 위에 오를 수 있었고 들은 것처럼 돛은 없고 갑판 위에 상부 구조물이 있다는 것과 이 상부 구조물을 두드려보고 금속으로 씌워져 있어 방어력이 대단해 보였기에 새삼 감탄했다.
그리고 프랑스 해군이 왜 북미왕국 해군에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했는지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고.
그렇게 감탄하며 뒤쪽의 통로를 통해 선실로 내려간 크리스티안 5세는 어두울 거라고 예상했던 복도가 무척 환한 것을 보고 자연스럽게 천장에서 환하게 빛을 내뿜는 물체를 보고 감탄했고.
“허. 이거 무척 밝군. 저게 그...전기를 이용해 만든 빛인 건가?”
“그렇습니다.”
“놀랍군. 등잔불과는 차원이 달라. 이렇게 밝고 환한 빛이라니...북미왕국의 도시에는 이 불빛으로 거리를 환히 밝힌다던데...”
“그렇습니다. 아직은 수도인 새한성만 그렇습니다만 점차 다른 도시들에도 전기를 공급할 예정이니...”
그 말에 크리스티안 5세는 눈빛을 빛내며 외무청 관리를 바라보았다.
“그럼 이 배에도 전기를 생산하는 그 베일에 싸인 물질이 있다는 건가?”
이에 외무청 관리는 빙긋 웃을 뿐이었고 대답을 듣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한 크리스티안 5세가 속으로 혀를 차며 선실을 살펴보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헌데 이게 다 선실이라고? 군함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 선실들은 선원들이 휴식을 취하는 곳입니다.”
“선원들?”
“배를 타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니 잠자리라도 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사관을 제외한 선원들은 대충 아무 데서나 자는 편이었다.
헌데 북미왕국은 선원들의 몸 상태를 위해 선실을 만들었고 이 선실이 좁긴 해도 사관들이 지내는 선실처럼 쾌적해 보인다는 것에 북미왕국의 국력이 새삼 대단하긴 하구나 하고 생각하며 계속 지급 전선 안을 살폈다.
다만 그가 정말 보고 싶었던 증기기관이 존재하는 기관부라던가, 후장식 화포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은 방문할 수 없었기에 조금 아쉬웠지만 잠깐만 확인해도 북미왕국의 국력이 정말 만만치 않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기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급 전선을 둘러본 크리스티안 5세는 외무청 관리를 보고 말했다.
“참으로 인상적이군. 이 배...북미왕국에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살 수 없겠지.”
“송구합니다.”
“어쩔 수 없나...아무튼, 안내해줘서 고맙네. 자네 덕분에 전기를 구경할 수 있었으니 내가 제대로 대접해줘야겠군. 자. 가세.”
“하하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