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7화
오랜만에 정성국의 집무실을 찾아온 김신철을 보고 정성국은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차가운 매실차를 꺼내 김신철에게 따라주면서도 내심 기대하는 눈빛으로 김신철을 바라보았고.
그린란드가 북미왕국의 영토가 되면서 정성국은 개발청에 소속되어 광맥과 자원을 탐사하는 장인들에게 이야기해 그린란드 서쪽의 이비투트 지역을 샅샅이 뒤져 새로운 광석을 찾으라고 명령했다.
물론 빙정석을 찾기 위함이었고.
개발청의 장인들은 정성국의 명령에 따라 기존의 광석과는 다르다 싶은 광석은 모조리 채취해 김신철에게 넘겼고 김신철은 이 광석들을 가지고 알루미늄을 제련하기 위해 연구에 들어갔고 3달 넘게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그런 김신철이 마침내 연구실에서 나와 제일 먼저 자신을 보러 왔으니 연구가 끝난 것이라고 확신한 정성국이었고.
정성국의 짐작대로 김신철은 정성국이 건넨 차가운 매실차를 한 모금 마신 후 품에서 주머니를 꺼내 씩 웃으며 정성국에게 건넸다.
정성국은 급히 주머니를 열어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을 꺼내면서 중얼거렸다.
“이게...?”
“예. 스승님께서 조언해주신 대로 그린란드에서 채취한 광석을 이용해 생산한 알루미늄입니다.”
“오오...”
정성국은 주머니 안에서 꺼낸 반짝반짝 빛나는 동그란 알루미늄 주화를 손에 들고 무게를 가늠해보다 확실히 다른 금속으로 만든 주화에 비해 가볍긴 가벼웠기에 역시 알루미늄이라고 감탄하다 문득 의아한 표정으로 김신철을 바라보았다.
“근데 왜 주화 모양이야?”
정성국의 의문에 김신철을 뭘 묻느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귀금속이잖습니까?”
“아...”
전생에야 알루미늄은 무척 흔한 금속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분명 알루미늄 원소는 철보다 흔하고 여러 광물에 많이 들어있긴 했지만, 이 알루미늄을 광석에서 분리해 순수한 알루미늄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알루미늄은 보통 보크사이트라는 산화된 알루미늄을 제련해서 만드는데 이 산화된 알루미늄을 녹이려면 2050도 이상의 고온이 필요한 터라 막대한 비용이 소모될 수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고대 로마 시절 알루미늄이 만들어진 이후 금보다 고가의 귀금속으로 취급되었고 전생에는 금수저 위에 다이아몬드 수저가 있었다면 현재 유럽에서는 흔히 금수저 위에 알루미늄 수저가 존재했고.
19세기에는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자국의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국제 박람회의 동상에 일부분에 알루미늄박을 씌우기도 했을 정도였고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는 손님들에게는 은 식기를, 자신은 알루미늄 식기를 사용하며 부를 과시하기도 했으니.
그리고 김신철도 정성국이 알루미늄을 이야기하기 전에 유럽의 서적과 유럽에서 입수한 소량의 알루미늄을 먼저 접했기에 당연히 알루미늄은 귀금속이라고 여긴 것이다.
헌데 정성국의 표정이 영 이상했기에 김신철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 어째...스승님의 반응을 보니 이걸 일종의 화폐로 쓰실 생각은 아니었나 보네요?”
“화폐?”
“예. 전 고액 화폐로 사용할 것으로 생각했거든요. 무게도 가볍겠다 거래하기도 쉬울 테고.”
아무래도 금속 화폐를 사용할 경우 큰 거래일수록 무게가 부담될 수밖에 없었다.
헌데 알루미늄은 금보다 고가의 귀금속이고 무게는 훨씬 가벼우니 고액 화폐로 적당하다고 생각한 김신철이었고.
정성국은 김신철의 말에 살짝 혹하기는 했지만, 알루미늄의 경우 순수한 알루미늄을 제련하기가 어려울 뿐이지 광물 자체는 흔했기에 이걸 고액 화폐로 사용하게 되면 나중에 화폐 가치가 급락할 수 있다고 여겨 고개를 저었다.
“글세...뭐 알루미늄은 제련하기가 쉽지 않을 뿐이지 알루미늄이 들어있는 광물은 꽤 흔하잖아? 아마 철광석보다도 흔할 텐데?”
“뭐 그렇긴 하죠.”
김신철이 정성국의 지적에 수긍하자 정성국이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알루미늄을 단순히 귀금속으로 만들어 한정적으로 생산해 사용하는 것보다 대량 생산해 산업 전반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북미왕국의 발전에 더 도움이 될 테고.”
“흐음...그게 가볍긴 한데 생각보다 물러서 산업용으로 사용하긴 쉽지 않을 텐데요?”
김신철이 회의적인 표정으로 그렇게 대꾸하자 정성국은 씩 웃으며 답했다.
“그러니 알루미늄 합금을 연구해야지. 가볍고 녹이 슬지 않으면서도 기존의 알루미늄보다 튼튼한 그런 합금.”
“허...그 정도면 거의 꿈의 금속인데요?”
김신철은 그게 가능하겠냐는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았고, 정성국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연구하다 보면 만들 수 있지 않겠어? 일반적인 합금을 연구한 것처럼 알루미늄에 구리, 망간, 규소 등을 첨가해 연구하다보면...뭐라도 건지겠지.”
일단 제대로 된 비율은 모르더라도 알루미늄 합금에 들어가는 원소 정도는 기억하고 있던 정성국이 슬쩍 이야기했지만, 김신철이 듣기엔 조언이라기보단 일반적인 이야기처럼 들렸고, 결국 이번처럼 자신과 연구원들이 수많은 실험을 통해 합금을 만들어내라는 것처럼 들렸기에 자신의 스승을 빤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정성국은 어쨌든 일 폭탄을 김신철에게 떠넘긴 셈이었기에 그런 김신철의 시선을 슬쩍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크흠. 그리고 당장 순수 알루미늄만 하더라도 써먹을 데가 없진 않아. 가볍고 녹이 슬지 않으며 전기 전도성이 괜찮으니 전선으로 써먹을 수 있을 테고.”
정성국이 전생의 기억을 되살려 이야기하자 김신철을 고개를 갸웃했다.
“예? 전기 전도성이 나쁘진 않지만, 구리에 비하면 저항이 높던데요?”
이미 알루미늄을 입수했을 때부터 이런저런 실험을 다 끝냈었기에 곧바로 반박하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저항이 2배 정도 높은 금속이라 같은 굵기의 전선이라면 구리의 절반밖에 전류를 흘리지 못하지. 하지만 알루미늄의 밀도는 구리에 비해 1/3 정도라 무척 가볍잖아?”
“아...그렇네요. 알루미늄 전선의 굵기를 2배로 만들어서 구리와 저항을 같게 해도 구리 전선보다 조금 더 가볍겠군요?”
정성국은 김신철이 바로 알아듣자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특히 고압 전선의 경우는 전신주 위에 매달아야 하니 무게가 특히 중요하니 알루미늄 전선이 더 효율적이지.”
“허. 그렇군요.”
김신철이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이 덧붙였다.
“그리고 병조림을 대체할 수도 있을 테고.”
북미왕국에선 식량을 장기보관하기 위해 병조림을 이용하고 있었다.
냉장고가 개발되기 전에 장기간 항해를 해야 하는 해군 탐사대를 위해 정성국이 이야기해 개발한 것인데 이것이 민간에 알려지면서 인기를 끌게 되자 이를 전문적으로 생산, 판매하는 상단도 여럿 생겨나기도 했고.
다만 병조림의 밀봉은 고무를 이용해 쉽게 할 수 있었지만, 유리병의 특성상 충격에 깨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정성국은 연구청에 이야기해 통조림을 연구 중이었고.
지금까지야 알루미늄을 생산하기 어려워 양철을 이용한 통조림을 만들 생각이었지만 알루미늄 통조림을 만드는 것도 괜찮아 보여 이야기하자 김신철은 당황한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어...물론 병조림이 파손 우려가 있는 만큼 알루미늄으로 만들면 여러모로 낫긴 하겠습니다만...이 비싼 알루미늄으로 병조림을 대체하겠다고요? 이거 이전보다 손쉽게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고는 하나 제련할 때마다 전기가 꽤 많이 들어가서 단가가 꽤 비싼데요?”
하지만 정성국은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씩 웃으며 대답했다.
“달리 이야기하면 전기를 값싸게 얻을 수 있다면 단가가 꽤 떨어진다는 소리 아닌가?”
“그렇긴 합니다만...아. 알루미늄 제련을 위해 수력 발전소라도 건설하실 생각이세요?”
“그것도 괜찮겠지. 다른 방법도 고민 중이고.”
정성국은 전생의 유명했던 아이슬란드 지열발전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직 제대로 연구한 것은 아니었기에 일단 어깨를 으쓱거리자 김신철이 수긍했다.
“그렇다면야 뭐...”
“다만 그러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테니 일단 북미왕국 곳곳에 들어선 수력 발전소 인근에 알루미늄 제련 공방을 건설해서 알루미늄을 생산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알루미늄 합금 연구에도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하마.”
* * *
정성국은 김신철과 이야기를 나눈 후 박기동을 불렀고 박기동은 해가 질 때쯤 털레털레 집무실을 들어와 얼굴을 비췄다.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괜찮아. 급한 일도 아닌데 뭐.”
정성국은 박기동과 차를 마시며 잠시 잡담을 나누다 박기동을 부른 용건을 꺼냈다.
“그보다 이번에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를 구매했거든?”
“예. 듣긴 했습니다.”
“헌데...이 아이슬란드는 화산이 존재하고 화산 활동도 활발한 것으로 알고 있거든.”
“화산 활동이요? 왜국처럼요?”
“그래. 그래서인지 섬 전체가 화산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땅을 파면 온천이 넘쳐난다는 것을 보면 지열도 높은 것 같고.”
“흠...온천이라...?”
온천 개발 문제야 개발청 소관이니 자신하고 상관없는데 정성국이 이를 언급하자 박기동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온천을 이용해 도시 난방이라도 설계해보라는 뜻입니까?”
“아. 그럴 생각이긴 해. 그뿐만 아니라 아이슬란드는 기후 때문에 작물을 재배하기 어려운 환경이거든. 그러니 온천과 온실을 결합해 아이슬란드에서 직접 작물을 재배하게 연구해볼 생각이고. 하지만 이건 온실은 연구하는 농업 연구소나 도시 난방을 연구하는 개발청, 난방 장치를 개발하는 상돈이에게 맡길 일이지.”
이것도 아니라는 정성국의 이야기에 박기동은 의아한 얼굴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허면?”
“지열을 직접 이용하는 방법을 연구했으면 해서.”
“지열을요?”
“그래. 지열을 이용해 물을 끓이고 이 증기를 이용해서...”
정성국이 설명을 시작했지만, 박기동은 발전소에 들어가는 회전기관의 연구 때문에 이 부분은 빠삭했기에 손뼉을 치며 외쳤다.
“발전기를 돌리라는 거군요! 그럼 수력 발전소처럼 유지비도 거의 들어가지 않을 테고요?!”
“그렇지. 뭐 이 지열 발전소는 설치할 수 있는 지역이 무척 제한될 수밖에 없는 것이 단점이긴 한데...나중을 생각해 지금부터 이것을 연구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아.”
그러면서 정성국은 전생의 지열발전 시스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기 시작했고 이를 주의 깊게 듣던 박기동은 곧 생각에 잠겼다가 답했다.
“흐음...알겠습니다. 어차피 시추 장비를 계속 개량 중이라 땅을 깊게 파는 것도 어려울 것 없으니까요. 생각보다 빠르게 지열 발전소를 건설할 수도 있겠네요.”
그 말에 정성국이 반색하며 이야기했다.
“오! 그래? 그럼 빠르게 연구해서 바로 아이슬란드에 지열 발전소를 건설해 보자고.”
“알겠습니다.”
박기동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이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이왕 새로운 발전 방법을 연구하는 김에 다른 발전 방법도 연구해보렴.”
“다른 발전 방법이라면?”
“바람의 힘을 이용하는 풍력 발전이라던가, 파도의 힘을 이용하는 파력 발전, 해류의 힘을 이용하는 조류 발전,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하는 조력 발전 등이 있겠지.”
정성국이 줄줄이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박기동은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스승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조금 많네요?”
이에 정성국은 씩 웃으며 전생의 여러 발전 방식을 설명해주기 시작했고 박기동은 이를 듣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헌데...이야기만 들어보면 썩 효율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데요? 물론 자연의 힘을 이용하는 발전이니 유지비가 적게 들것 같아 보이긴 하는데...지금처럼 수력 발전과 화력 발전에 집중하는 것이 낫지 않나요?”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이야 그걸로 충분하지. 하지만 계속해서 북미왕국의 인구는 증가할 테고 북미왕국 백성들이 사용하는 전기는 계속 늘어날 거야. 지금이야 기껏해야 전등을 밝히고 냉장고, 냉방장치를 이용하는 정도지만...너도 알잖냐. 전기를 이용하는 각종 물품이 개발 중이라는 것은.”
“흐음...그렇긴 하지요.”
“거기에 백성들이 실생활에 사용하는 전기뿐만이 아니야. 공방마다 증기기관을 돌리는 것보다 전기로 돌리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하기에 공방에서도 점차 전기를 이용해 기계를 돌리고 있으니 산업용으로 사용하게 될 전기도 폭증할 테고.”
“으음...”
정성국이 늘 북미왕국의 인구는 최소 1억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잘 알고 있었기에 박기동은 미래에 전기 사용량이 폭증할 것을 우려하는 자신의 스승을 이해했다.
다만 입지에 많은 제약을 받는 수력 발전소와는 다르게 화력 발전소는 별다른 제약이 없었기에 박기동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화력 발전이라면...”
“화석 연료가 무제한으로 나온다면 가능하겠지만...화석 연료는 한정된 자원이니까 최대한 아껴야지. 거기에 화력 발전소는 환경 오염 문제에 자유롭지 못하고. 그러니 미리미리 다른 발전 방식을 연구해보라는 거고. 어, 내가 말한 건 일단 인력을 배정해 길게 보고 연구해보라는 거야. 지열 발전과는 다르게.”
화석 연료의 경우 매장량은 고정되어 있었고,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편하게 채취할 수 있는 곳의 자원은 고갈되어 점차 채굴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화석 연료를 채굴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환경을 오염시키는 문제도 있었고.
물론 정성국이 이를 신경 써서 연구청에서는 오염물질 저감 장치들을 연구하고는 있었지만, 한계가 있었고.
그렇기에 미리미리 연구는 해두라는 정성국의 설명에 박기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