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446화 (446/850)

446화

정성국이 점심을 먹은 후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조용한 곰이 집무실의 문을 벌컥 열고 나타났고.

정성국은 그런 조용한 곰에게 손짓하며 빈 커피잔에 커피를 따르기 시작했다.

이에 조용한 곰이 조금 진정한 표정으로 다가와 의자에 앉자 정성국은 커피잔을 넘기며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헐레벌떡 뛰어온 건가?”

“아. 덴마크와의 협상이 마무리되었다고 합니다.”

그 말에 정성국은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하는 표정으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았다.

“뭐? 벌써 협상이 끝났다고?”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조용한 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아. 물론 대략적인 협상이 마무리되었을 뿐이고 지금은 협정문을 작성 중이라고 합니다만...”

하지만 정성국은 그런 조용한 곰의 말에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영토 협상을 하루 만에 끝냈다고?”

분명 어제 오후에 아이슬란드 매각 문제에 대해 보고받았는데 채 24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협상을 대략 마무리했다고 하니 정성국은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조용한 곰을 바라보자 조용한 곰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덴마크 외교관으로서야 하루라도 빨리 협상을 끝내고 영토 매각 대금을 본국으로 가져가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빠르게 협상한 모양입니다.”

그래도 영토 협상인데 고작 하루 만에 모든 것을 끝낸 이 상황이 황당했던 정성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참...크흠. 그럼 협상 내용은?”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의 영토를 30만 파운드에 매입하기로 했습니다.”

“30만 파운드?”

정성국이 괜찮은 거래인가 감이 오지 않아 고개를 갸웃하자 조용한 곰이 조금 아쉽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북미 동해안 지역과 뉴펀들랜드 섬, 허드슨 만 인근 지역의 권리를 모두 합해 잉글랜드에 약 200만 파운드 정도에 해당하는 현물을 건네준 것을 생각하면 무척 비싸게 주고 산 셈입니다만...”

“뭐 그 액수는 제대로 된 가치는 아니었잖나.”

엄밀히 말해 당시의 책정된 금액은 북미 동해안 지역, 뉴펀들랜드 섬, 허드슨 만 인근 지역의 가치를 정확히 따졌다기보다는 북미왕국이 무력을 앞세운 탓에 실제 가치보다 싼 값에 권리를 넘겨받은 셈이었기에 이와 비교하기엔 좀 모호한 부분이 있었다.

정성국이 이를 지적하자 조용한 곰은 수긍했다.

“그건 그렇지요.”

이에 정성국은 커피잔을 들어 커피를 마시며 중얼거렸다.

“30만 파운드로 조선 절반만 한 섬을 사들였다라...나쁘지 않네.”

아이슬란드의 면적은 전생의 대한민국 면적과 비슷했다.

물론 조선과는 달리 썩 좋은 땅이라고 볼 수야 없지만 나름대로 활용할 방법은 있었고 특히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30만 파운드를 주고 이 섬을 얻은 것은 분명 이득이었기에 정성국이 만족하고 있을 때 조용한 곰이 말했다.

“그리고 의외로 아이슬란드에 사는 주민들이 꽤 되는 모양입니다.”

“오. 그래?”

“예. 덴마크 외교관의 말로는 4만 명가량이 살고 있다는군요.”

그 말에 정성국은 조금 놀랐다.

“허어. 의외로 많네? 아이슬란드는 작물도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것으로 아는데...”

전생에서 아이슬란드의 인구는 30만 명 수준이었다.

이것도 기술이 발전해서 지열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온실을 이용해 작물을 키우고 식량 사정이 나아지면서 인구가 증가했기에 가능한 인구수였고.

그렇기에 정성국은 기껏해야 1만 명도 안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4만 명이나 거주하고 있다고 하니 놀라자 조용한 곰이 슬쩍 덧붙였다.

“그렇습니다. 그래서인지 덴마크는 이곳에 식량을 공급하며 아이슬란드에서 나는 부를 착취한 모양입니다.”

그 말에 정성국은 표정을 확 구기며 벼룩의 간을 빼먹는 꼴이라고 투덜댄 후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그보다 인구가 4만 명가량이라면 결국 5천 톤급 수송선을 배정해 열심히 각종 물자를 날라야겠네.”

이에 조용한 곰은 정성국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음...작물을 제대로 키우지도 못하는 곳이고 별다른 자원도 없는 것 같으니 그냥 본토로 이주시키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글쎄? 아이슬란드 주민들이 본토로의 이주를 원한다면야 마다할 이유야 없겠지만...굳이 강제로 이주시킬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괜히 아이슬란드의 주민들이 반발할 수도 있고.”

물론 4만 명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켜 인력 부족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야 있겠지만 이미 여러 유럽 이주민을 받아들여 그 부분을 해결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아이슬란드 주민들을 이주시키려다 이들이 반발하기라도 하면 골치 아팠기에 정성국이 회의적인 표정을 짓자 조용한 곰이 정성국의 뜻을 파악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알겠습니다. 허면 먼저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에 관리를 파견해 현지 상황을 자세히 파악해야겠군요.”

다른 곳과는 달리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는 방문한 적이 없었기에 현지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 조용한 곰의 이야기에 정성국이 덧붙였다.

“그러는 것이 맞겠지. 아. 어차피 관리를 파견할 때 수송선에 식량과 여러 물자를 가득 실어 함께 보내도록 하게. 저들은 가만히 있다가 나라가 바뀐 셈이라 당황하고 또 불안해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런 정성국의 명령에 조용한 곰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각종 물자를 실어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30만 파운드는 현물로 넘기는 건가?”

“그렇습니다. 상황이 상황이라 웅크린 늑대는 덴마크를 위해 현물보다는 은으로 줄 수 있다고 제의한 모양입니다만 덴마크의 외교관은 모피, 도자기, 설탕 등의 현물을 원한 모양입니다. 어차피 본국으로 무사히 가져가기만 한다면 북미왕국 물품의 가치가 높아 파는 것은 순식간이라면서요.”

이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뭐 나쁠 것 없겠군. 그럼 협정을 맺으면 바로 지급...아.”

“왜 그러십니까?”

“혹시 모르니까 협정을 맺으면 바로 현물을 넘기지 말고...덴마크의 외교관이 정말 공식 외교관인지, 그리고 전권을 가진 것이 확실한지 확인 후 넘기도록 하게. 뭐 저들의 사정이 급하다면 우리가 직접 현물을 수송해준다고 하고 확인해도 되겠지.”

너무 빠르게 상황이 진행되는 것을 경계한 정성국이 당부하자 조용한 곰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었다.

“아. 물론입니다. 이미 기차를 통해 덴마크 외교관이 제출한 문서가 오고 있고 이를 각국 대사들에게 보여주고 문서가 진짜인지 확인받을 생각이니까요. 그리고...이젠 런던에서 석탄을 보급받을 수 있으니 전하의 말씀대로 저희가 직접 현물을 운반해 주겠다고 제의하겠습니다. 이 기회에 발트해 안쪽으로 들어가는 항로를 파악할 겸 말입니다. 덴마크 외교관도 북미왕국의 배가 무척 빠르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고 북미왕국의 배로 옮긴다면 현물을 안전하게 수송할 수 있으니 이를 마다하지 않겠지요.”

“그래. 그게 좋겠네.”

* * *

“부르셨습니까?”

정성국은 조용한 곰이 집무실을 나선 후 군사청장을 불렀다.

그리고 군사청장이 집무실을 방문하자 그때까지 티테이블에 앉아있던 정성국은 군사청장을 향해 손짓했고.

“왔나? 앉게.”

군사청장이 자리에 앉자 정성국은 커피를 건네주며 바로 군사청장을 부른 용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덴마크에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를 매입하기로 했네.”

“예? 갑자기 그게 무슨...”

군사청장은 정성국에게 커피잔을 받아들다 당황한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았고, 그런 군사청장의 반응에 정성국은 자신도 이런 반응을 보였나 싶어 피식 웃으며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허. 덴마크에서 외교관을 보내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의 매각 문제를 논의했다는 겁니까? 전 처음 듣습니다만...”

영토 협상을 진행했다면 당연히 자신에게도 이에 관한 보고가 올라와야 하는데 군사청장은 이를 처음 듣기에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짓자 정성국이 괜찮다는 듯 손짓했다.

“아. 그럴 수밖에 없지. 어제 도착해서 오늘 협상까지 끝냈으니.”

“예? 그게 가능합니까?”

“뭐 어차피 웅크린 늑대야 전권을 가지고 있으니까 전화로 적당한 지침만 전달하면 그만 아닌가. 그래서 어제저녁 협상을 진행하라고 연락했는데 웅크린 늑대가 오늘 오전에 덴마크 외교관과 만나 협상을 마무리해버려서 조용한 곰이나 외무청에서 미처 다른 청에 제대로 알리지 못한 모양일세. 아마 이 소식을 접하게 되면 행정청장이나 교육청장도 자네와 비슷한 반응일 테고.”

이에 군사청장은 기가 막힌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허허허...정말 전화가 대단하긴 하군요.”

전화선이 깔리면서 정보 전달의 속도가 어마어마해졌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 일로 이를 체감한 군사청장이 혀를 내두르자 정성국이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지. 아무튼,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4함대의 영역을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까지 넓혀야겠어.”

그러면서 정성국은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지도를 가리키며 이야기하자 군사청장이 지도를 살펴보고 중얼거렸다.

“으음...지금도 4함대의 담당 영역이 넓은 편인데...”

그린란드가 북미왕국의 영토가 되면서 4함대는 기존의 북미 동해안 지역부터 그린란드까지 담당해야 했던 터라 최근 군사청에서 나서 2함대와 4함대의 담당 영역을 조정한 끝에 2함대가 버지니아 지역까지, 4함대는 남쪽으로는 뉴욕 지역의 해안가부터 북쪽으로는 그린란드까지 담당하고 있었다.

헌데 여기서 담당 구역이 다시 늘어나는 셈이었기에 군사청장이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리자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다고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를 지키겠다고 새로이 함대를 창설할 수도 없지 않나.”

“그렇긴 하지요.”

“그리고 내가 알기로 아이슬란드도 그렇고 페로 제도도 해적에 시달린다고 알고 있거든?”

그 말에 군사청장은 표정을 찌푸리며 곧바로 입을 열었다.

“끙. 그럼 바로 전선을 파견해야겠군요.”

“그러면 좋긴 한데...가능할까?”

이미 4함대는 뉴펀들랜드 섬과 그린란드에 분함대를 배치한 상태였기에 당장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까지 전선을 급파할 수 있겠느냐는 듯 묻자 군사청장은 곧바로 대답했다.

“뭐 계속해서 4함대의 규모를 늘리고 있었으니까요. 당장 분함대를 창설해 배치하진 못하더라도...전선 한두 척 파견하는 거야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이 지역의 해적이 많다면...”

“아. 그거면 충분할 걸세. 어차피 이곳의 해적 규모는 작은 편이고...일부는 해적이라기보단 타국의 어부들이 행패를 부리는 것에 가까우니까.”

간혹 아프리카의 바르바리 해적들이 북쪽으로 올라와 페로 제도나 아이슬란드를 약탈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일반적으로는 어업을 위해 나선 어부들이 수확이 좋지 않을 때 해적질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알고 있었기에 정성국이 설명하자 군사청장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것 참...덴마크군이 아예 없는 모양이군요.”

“저들이 돈도 안 되는 곳에 군을 배치하겠나.”

이에 군사청장은 다시 한번 혀를 차고 곧바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곧바로 이정운 4함대 사령관에게 명령해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에 전선을 한 척씩 배치하라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이미 유럽에 북미왕국 해군에 대한 소문이 자자하니 그런 상황이라면 선착장에 정박해 있는 전선만으로 해적들은 도망치고 어부들은 얌전해질 겁니다.”

유럽의 어부들은 거칠다는 소문이 자자했지만 뉴펀들랜드 섬을 드나드는 어부들은 무척 온순하고 친절했다.

그게 다 북미왕국의 해군이 강력하기 때문이었고.

그런 만큼 두 섬에 인급 전선 한 척씩만 배치하더라도 해적들은 그대로 배를 돌리고 어부들은 행동거지를 조심할 거라는 이야기에 정성국이 웃었다.

“하하하.”

“그리고 차후에 분함대를 창설하면 되겠지요. 헌데 전하. 두 곳에 경비대를 파견해야 할까요?”

그 말에 정성국은 잠시 지도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분함대의 시설들을 방어하기 위한 경비대를 제외하고 말이지? 그래야 할 걸세. 아이슬란드의 인구가 4만 명가량 된다고 하고 페로 제도에도 2, 3천 명은 있는 모양이니 치안 유지를 위해 일부 배치할 필요가 있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준비하도록 하지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