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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445화 (445/850)

445화

웅크린 늑대는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외국인 거주 구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외국인 거주 구역의 외무청 건물에서 커피를 내리다가 외무청 관리의 안내를 받고 응접실로 들어오는 덴마크의 외교관인 한스 바인을 보고 반갑게 맞이했고.

“편히 쉬셨습니까?”

“예. 덕분에 편안히 쉴 수 있었습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그러면서 웅크린 늑대는 커피를 커피잔에 따라 한스에게 건넸고 한스는 이를 받아 들고 한쪽에 놓여 있던 통을 열어 설탕을 듬뿍 넣고 한 모금 마시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맛있군요.”

“그렇습니까?”

“예. 커피의 향도 참으로 좋고...이렇게 값비싼 설탕을 듬뿍 넣을 수 있다는 것도 좋군요.”

한스가 커피잔을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웅크린 늑대가 말했다.

“아. 이곳이야 설탕이 싼 편인데 북유럽은 아직 비싼 모양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나마 서인도제도에서 산출되는 설탕 덕에 상황이 조금 나아지기는 했습니다만...대서양을 횡단하는 도중 침몰하는 일도 없지 않기에 아직 설탕 가격은 무척 비싼 편이지요.”

웅크린 늑대는 그렇게 한스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적당히 분위기가 풀렸다 싶을 때 슬쩍 용건을 이야기했다.

“그보다 제가 오전부터 이렇게 찾아온 것은 전하의 훈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 하루...만에 말입니까? 제가 알기로 북미왕국의 수도인 새한성은 이 새진주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아는데...”

한스는 웅크린 늑대의 말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도 이곳에 오기 전 여러 정보를 수집했었기에 북미왕국의 수도인 새한성은 이 새진주에서 기차를 타고 며칠이 걸릴 정도로 먼 곳에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해서 빨라야 일주일은 지나야 대답을 들을 수 있다고 여겼는데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니 이미 연락을 받았다는 말에 어안이 벙벙했고.

그런 한스의 반응에 웅크린 늑대는 어깨를 으쓱했다.

“빠르게 연락하는 방법이 있어서 말입니다.”

관청에서 전화기를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 민간에 개방하지 않고 있었기에 북미신문에도 이에 관한 기사는 실리지 않았고, 그저 실제 전화를 사용하는 관리들에 의해 알음알음 이야기만 도는 상태라 한스가 전화기의 존재를 모르는 것은 당연했다.

다만 이를 시시콜콜 설명할 생각은 없었던 웅크린 늑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전하께서는 일단 협상을 진행해보라고 하셨습니다.”

한스는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연락을 한 것인지 무척 궁금하긴 했다.

북미왕국은 신기한 물품들이 많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호기심을 채우는 것보다 이번 협상을 통해 북미왕국에 아이슬란드를 넘기고 용병을 대거 고용할 수 있는 돈을 가져가는 것이 더 중요했던 한스는 웅크린 늑대의 말에 화색을 지었고.

“오! 그렇습니까?”

“예. 해서 말인데...귀국은 아이슬란드를 얼마에 파실 생각이십니까?”

“으음...”

일단 먼저 아이슬란드의 가치를 이야기하라는 웅크린 늑대의 말에 한스가 신음을 흘리자 웅크린 늑대가 괜찮다는 듯 말했다.

“아. 물론 거래라는 것이 다 그렇듯 협상을 통해 가격을 정해야겠지만...일단 귀국에서 생각한 금액이 있을 것 아닙니까. 이를 말씀해주셔야 협상을 시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뭐 시시콜콜 따지며 아이슬란드의 가치를 정할 수도 있겠지만...그러자면 오랜 시간이 걸릴 텐데 그건 귀국에도 좋을 것은 없지 않습니까.”

그 말에 한숨을 내쉰 한스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단 우리 쪽에선 아이슬란드의 모든 권리를 북미왕국에 넘기는 대가로 200만 크로네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물론 협상을 통해 어느 정도는 조정될 수야 있겠습니다만...”

한스는 웅크린 늑대가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급히 이렇게 덧붙였지만 웅크린 늑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죄송하지만 제가 덴마크 화폐 단위에 익숙하지 않아서 말입니다. 가능하다면 잉글랜드나 에스파냐의 화폐 단위로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만...”

그 말에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한스가 급히 입을 열었다.

“아. 200만 크로네를 잉글랜드의 화폐로 환산하면...약 60만 파운드 정도의 가치입니다.”

“예? 60만 파운드라고요?”

웅크린 늑대가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한스를 바라보자 한스는 헛기침을 하며 품에서 아이슬란드가 그려진 지도를 꺼내 탁자에 펼치며 아이슬란드를 포장하기 시작했다.

“크흠. 이 지도로 확인할 수 있듯이 아이슬란드는 무척 커다란 섬입니다. 거기에 주변은 풍부한 어장이 형성되어 있어 경제적인 가치도 뛰어난 섬이지요.”

한스의 헛기침에 정신을 차리고 감정을 수습한 웅크린 늑대는 한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심드렁한 표정으로 지도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아이슬란드 주변에 풍부한 어장이 형성되어 있다 한들 북미왕국 인근만 하겠습니까?”

북미왕국의 바다에는 물고기가 넘쳐났고 특히 뉴펀들랜드 섬 근처의 경우 유럽의 어부들이 이곳에서 물고기를 잡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 유럽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대구를 잡고 있었으니 아이슬란드의 어장이 좋아 봐야 큰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하자 한스도 이를 모르지 않았기에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한스를 보고 웅크린 늑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는 기온이 낮아 농사를 짓지 못하잖습니까?”

“으음...”

아이슬란드는 고위도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해류의 영향으로 해안가 쪽은 비교적 온화한 기후라 사람이 살기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고위도다 보니 여름에도 비교적 서늘한 편이라 농사를 짓기엔 무척 나쁜 조건이기도 했다.

해서 이전부터 이주민들이 아이슬란드를 개척했지만, 인구 부양력이 워낙 낮은 땅이라 인구가 거의 늘지 않았다.

거기에 이들이 아이슬란드를 개척할 때만 하더라도 조금이나마 농사를 지어 식량을 얻을 수 있었지만, 소빙하기의 영향으로 기온이 낮아져 현재는 농사를 짓지 못해 식량 전부를 덴마크에서 수입해야 했고.

덴마크가 이를 비싸게 팔았기에 아이슬란드의 주민들은 살기 위해 생선을 주식으로 삼아야 했다.

이렇게 생산력이 낮은 땅을 뭐 그렇게 비싸게 받느냐는 듯 웅크린 늑대가 이야기하자 한스가 어떻게든 아이슬란드를 포장하기 위해 무어라 이야기하려 할 때 웅크린 늑대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말입니다. 우리 북미왕국이 북미 동해안 지역과 뉴펀들랜드 섬, 허드슨 만 인근 지역과 모든 권리를 잉글랜드에 사들였을 때 들어간 금액이 대략 200만 파운드였습니다. 헌데...아이슬란드 섬 하나가 60만 파운드라면 너무 비싼 것 아닙니까? 제가 알기로 아이슬란드 섬이 크다고는 하나 기껏해야 뉴펀들랜드 섬과 크기는 비슷할 텐데요.”

이미 잉글랜드가 북미왕국에 북미 대륙에 대한 모든 권리를 넘기고 200만 파운드를 받았다는 사실은 유럽 외교가에 널리 펴져 있었던 만큼 한스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 잉글랜드가 넘긴 땅 크기를 비교하면 아이슬란드를 대략 60만 파운드로 책정해봐야 북미왕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란 사실은 한스도 잘 알고 있었고.

다만 영토에 정해진 가격은 없었고 거래가 다 그렇듯 협상을 통해 값을 정해지는 만큼, 그리고 협상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가격이 깎일 것을 예상해 크리스티안 5세와 의논한 아이슬란드의 가격보다 더 높은 금액을 불렀던 한스였고.

그렇기에 웅크린 늑대의 지적에 어떻게든 아이슬란드의 가치를 높여 가격이 대폭 깎이는 것을 막기 위해 급히 입을 열었다.

“단순히 땅 크기만 생각해보면 비싼 편이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에는 4만 명에 가까운 주민이 있고 우리는 잉글랜드처럼 이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킬 생각이 없습니다.”

“지금 4만 명이라고 하셨습니까?”

아이슬란드가 큰 섬이긴 했지만, 작물을 재배하기엔 적합한 지역은 아니라 인구가 무척 적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4만 명에 가까운 주민이 아일랜드에 살고 있다고 하니 웅크린 늑대는 흥미를 보였다.

이에 한스는 북미왕국은 인구가 부족한 만큼 아이슬란드의 인구수를 들으면 아이슬란드에 관심을 보일 것으로 예상한 크리스티안 5세를 떠올리며 급히 말했다.

“그렇습니다. 제가 알기로 북미왕국은 일할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해 유럽에서 이주민을 모집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이주민을 북미왕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어부들에게 꽤 큰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고 들었고요. 이를 고려하면 4만 명의 주민과 아이슬란드까지 합쳐 60만 파운드가 과한 요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으음...”

북미왕국은 언제나 사람이 부족했기에 4만 명에 가까운 아이슬란드인이 북미왕국의 백성이 된다면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한 웅크린 늑대가 잠시 고민하자 한스는 그런 웅크린 늑대를 보고 계속 아이슬란드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귀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이슬란드는 기온이 낮아 농사를 짓기 어려운 땅입니다만...이 때문에 오히려 북미왕국은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이득이라고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웅크린 늑대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한스가 슬쩍 미소지으며 말했다.

“제가 알기로 북미왕국은 식량이 넘쳐난다고 알고 있습니다. 덕분에 식량의 가격은 싼 편이라고 들었고요. 거기에 북미왕국의 배는 큰 편이라 대량의 식량을 수송하기도 쉽고 아이슬란드는 북미왕국에 가까운 편이지요. 그러니 이 값싼 식량을 가져가 아이슬란드의 주민에게 판다면 꽤 이득을 챙길 수 있을 겁니다.”

덴마크는 이러한 방식으로 꽤 쏠쏠한 이득을 챙겼지만, 북미왕국이라면 덴마크와는 상황이 달랐기에 더 막대한 이득을 챙길 것이 분명했고 그렇기에 아이슬란드의 가치는 높다는 것을 어필하자 웅크린 늑대는 지도를 잠시 바라보다가 그래도 이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60만 파운드는 좀 아닌 것 같습니다. 만약 우리 북미왕국이 아이슬란드를 60만 파운드에 구매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잉글랜드의 불만도 클 테고요. 뉴펀들랜드 섬이야 잉글랜드가 제대로 소유한 섬은 아니었고 허드슨 만 인근도 단순한 권리 포기에 불과하니 그냥 제외하더라도 잉글랜드가 넘긴 북미 동해안 지역의 면적만 해도 아이슬란드의 면적보다 7, 8배는 클 겁니다. 거기에 북미 동해안 지역은 작물을 재배할 수도 있는 좋은 땅이고요. 이를 감안하면...잘해야 15만 파운드 정도?”

그 말에 한스가 즉각 반박했다.

“15만 파운드라니요. 그건 너무 박합니다. 아이슬란드가 북미왕국의 영토가 되면 북미왕국은 직접 유럽에 배를 보내 무역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면 무역으로 인한 이득은 더욱 커지겠지요. 이를 감안하면 30만 파운드 정도는 주셔야 합니다.”

“흐음...”

한스의 말에 웅크린 늑대가 다시 생각에 잠기자 한스는 내심 조마조마했다.

일단 크리스티안 5세는 아이슬란드의 가치를 100만 크로네 정도로 책정한 터라 웅크린 늑대가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덴마크로서는 만족할만한 거래였으니까.

하지만 한스의 기대와는 달리 웅크린 늑대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30만 파운드는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이에 한스는 속으로 탄식하면서도 이를 내색하지 않고 고심하는 표정으로 웅크린 늑대를 바라보다가 더는 물러나지 않겠다는 기색으로 말했다.

“허면...25만 파운드는 어떻습니까?”

이런 한스의 반응에 웅크린 늑대는 아이슬란드의 가격을 더 줄이긴 어렵다고 판단하고 한스가 꺼낸 아이슬란드와 주변 해역이 그려진 지도를 바라보다 손으로 한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페로 제도. 분명 귀국의 소유였지요?”

“어...그렇습니다만?”

갑자기 페로 제도를 가리키는 웅크린 늑대를 보고 한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웅크린 늑대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 페로 제도까지 포함해 30만 파운드. 어떻습니까?”

“어? 페로 제도를 사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귀하께서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아이슬란드가 우리 북미왕국의 영토가 된다면 유럽과의 무역 거점으로 쓸 수도 있을 텐데...페로 제도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중간 거점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더불어 페로 제도 주변에 해적들이 많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그럼 무역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 페로 제도에 함대 일부를 배치해 해적들을 소탕하는 것도 괜찮아 보이고요. 어떻습니까?”

그나마 인구가 어느 정도 되어 상거래를 통해 쏠쏠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던 아이슬란드와는 달리 페로 제도는 애물단지에 불과했다.

거기에 걸핏하면 해적에 시달리는 탓에 페로 제도의 주민들은 이곳에 군대를 배치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덴마크의 국왕들은 즉위하고 페로 제도를 가까운 잉글랜드에 팔기 위해 애를 썼을 뿐이다.

잉글랜드 역시 페로 제도를 사봐야 유지비만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그리고 어차피 페로 제도를 살 나라가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거절하고 있었고.

헌데 북미왕국에서 조금이나마 가격을 쳐 주겠다고 하니 한스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바로 협정문을 작성하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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