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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444화 (444/850)

444화

웅크린 늑대가 집무실의 문을 열자 집무실 창문 근처의 탁자에서 커피를 마시며 바깥 풍경을 감상하던 김봉길은 고개를 돌려 웅크린 늑대를 보고 반갑게 맞이했다.

“오. 왔나?”

웅크린 늑대는 떡하니 자신의 집무실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김봉길을 보고 피식 웃었다.

“어? 아직 계셨습니까?”

“똑같이 냉방장치를 설치했는데 이곳이 더 시원한 느낌이고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경치를 감상하는 것이 일품이라 뭉그적거리고 있었지. 그리고 덴마크가 외교관을 보낸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고. 그린란드 문제가 얽혀있지 않나.”

외무청 관리가 보고할 때 김봉길도 함께 있었기에 덴마크의 외교관이 방문했다는 것과 이 덴마크 외교관이 책임자급을 찾는다는 이야기에 그린란드 문제 때문인가 싶어 뒷이야기가 궁금해 남아 있었다는 김봉길의 말에 웅크린 늑대가 생각을 정리할 겸 커피를 내리면서 입을 열었다.

“아. 일단 그린란드 문제도 꺼내긴 했습니다만...예상대로 단순히 찔러보는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오. 그래? 그거 다행이군. 헌데 단순히 찔러보기 위해 외교관을 파견한 건가?”

“그게...신식 소총을 구매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김봉길은 신식 소총을 언급하는 웅크린 늑대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했다.

“신식 소총을? 아. 북유럽은 전쟁 중이라더니...덴마크의 사정이 썩 좋지 않은 모양이군. 갑자기 외교관을 파견해 신식 소총을 구매하고 싶다고 하다니.”

김봉길도 새진주에 드나드는 유럽인들 덕분에 유럽의 사정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덴마크의 사정을 짐작했고.

“예. 그런 것 같습니다.”

“헌데 이미 신식 소총의 주문은 밀려 있지 않아? 거기에 전하께서는 러시아 차르국을 견제하기 위해 스웨덴을 지원할 생각이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김봉길도 시간 날 때마다 이곳에 와서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었기에 어지간한 사실은 다 알고 있었기에 묻자 웅크린 늑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해서 신식 소총의 판매는 어렵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헌데...”

“음? 또 뭐가 있나?”

“그게...아이슬란드 매각 문제를 꺼내더군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는 웅크린 늑대를 보고 김봉길은 놀라 물었다.

“뭐?! 아이슬란드 매각?”

“그렇습니다.”

“잠...잠깐만. 그러니까 덴마크에서 아이슬란드를 우리 북미왕국에 판매하겠다...그렇게 얘기 한 건가?”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싶어 다시 한번 물었지만 웅크린 늑대가 자신도 비슷한 심정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김봉길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중얼거렸다.

“허어. 덴마크의 상황이 많이 안 좋은 모양인데? 자국의 영토를 팔 정도라니...그 정도면 그냥 스웨덴과 종전 협상을 하면 그만 아닌가? 내가 알기로 유럽의 국가들은 자주 그런다면서? 싸우고 불리하다 싶으면 적당히 조건을 걸고 종전하고.”

“그렇지요. 헌데 현 덴마크의 국왕은 국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스웨덴과 전쟁을 치른 터라 패배하면 위신에 타격이 좀 있을 겁니다. 거기에 이대로 종전한다면 별다른 이득 없이 손해만 막심하겠지요. 그러니 관리가 어려운 섬을 팔고 용병을 대거 고용해 스웨덴을 꺾겠다는 속셈 같습니다.”

웅크린 늑대의 설명에 김봉길은 덴마크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인 후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허어...그럼 좀 애매한데?”

그 말에 웅크린 늑대도 동의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하께서는 아이슬란드에 딱히 관심이 없으시다고 이야기하긴 하셨습니다만...그건 아이슬란드가 덴마크의 영토가 확실하기에 이를 차지하겠다고 덴마크와 전쟁을 벌이기는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지요. 유럽 각국이 북미왕국을 적대할 수도 있고요. 허나 이 경우는 상황이 다르니 이 기회에 아이슬란드를 구매하는 것이 나아보입니다만...”

“그렇게 되면 덴마크를 도와주는 셈이지. 거기에 덴마크가 승전하면 스웨덴도 동쪽의 러시아 차르국에 신경 쓰기보단 남서쪽의 덴마크를 경계하며 이쪽에 힘을 투사하려 할 테고.”

“그러게 말입니다.”

정성국은 러시아 차르국의 성장 잠재력을 꽤 경계했고 그래서 스웨덴을 이용해 러시아 차르국을 견제할 뜻을 밝혔는데 아이슬란드를 구매하면 이러한 계획은 어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해서 고민이라는 표정을 짓는 웅크린 늑대를 보고 김봉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흐음...그래도 이 기회에 아이슬란드를 얻는 것이 나아 보이는데...”

“그런가요? 아이슬란드를 얻게 되면 그만큼 해군이 담당해야 할 영역이 넓어지는 것 아닙니까?”

이에 김봉길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거야 해군의 규모를 키우면 해결될 문제고. 다만 나중을 생각하면 유럽과 가까운 곳에 거점이 있어 나쁠 것 같지는 않단 말이지?”

“흐음...그렇기야 합니다만...뭐 전하께서 현명하게 판단하시겠지요. 일단 보고서부터 쓰고 새한성에 전화해야겠습니다.”

그러면서 웅크린 늑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김봉길 역시 마시던 커피를 단번에 마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네. 난 이만 가도록 하지.”

* * *

정성국은 갑자기 당황한 표정으로 찾아온 조용한 곰을 보고 무슨 일인지 묻자 조용한 곰은 지금 새진주에 덴마크 외교관이 와 있다는 사실과 이 덴마크 외교관이 아이슬란드를 북미왕국에 판매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알렸다고 보고하자 정성국은 갑자기 이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 아이슬란드?”

“그렇습니다. 방금 막 웅크린 늑대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그러면서 조용한 곰은 웅크린 늑대가 전해 준 이야기와 더불어 현 북유럽의 사정을 자세히 설명하자 정성국은 속으로 혀를 찼다.

‘허. 처음 덴마크와 스웨덴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는 이야기에 역사가 조금 틀어졌는데도 스코네 전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신기하기도 했었는데...들어보니 전생과 비슷하게 흘러가는 건가?’

전생에는 프랑스가 네덜란드를 지원하는 신성로마제국과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를 견제하기 위해 스웨덴에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를 배후에서 공격해달라고 강력히 요청했고 섭정단이 이에 응해 덤볐다가 대패를 하면서 크리스티안 5세가 기회다 싶어 전쟁을 벌였지만, 현생에선 프랑스가 북미왕국에 해군이 박살 나면서 네덜란드가 해군을 이용해 해안가 곳곳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버틸 수 없어 종전 협정을 체결하면서 프랑스-네덜란드 전쟁이 조기에 끝나버렸다.

그래서 정성국은 스코네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여겼지만, 크리스티안 5세의 야심이 생각보다 큰 탓인지 결국 전쟁은 일어났기에 이 보고를 접하고 정성국은 속으로 혀를 찬 적이 있었다.

헌데 이 스코네 전쟁의 진행 상황도 전투를 치렀던 위치나 시기는 다를지언정 전생과 비슷하게 무능한 섭정단이 군을 지휘했을 때는 패배했고, 이를 보다 못한 칼 11세가 직접 나서자 연전연승을 거두었고, 그러나 스웨덴의 영토가 넓고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통에 칼 11세가 이를 모두 감당하긴 어려워 전쟁이 장기전으로 흐르며 상황이 지지부진해진다는 것은 전생과 동일했기에 정성국은 새삼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아이슬란드를 먼저 팔겠다고 나서다니...덴마크의 상황이 썩 좋지 않은 모양이네.”

물론 현대 이전까지는 유럽에서 나라의 영토는 국왕 개인의 재산으로 치부되었기에 많은 영토가 매매되곤 했었다.

덴마크도 아이슬란드는 아니지만, 본토와 아이슬란드 사이에 있는 페로 제도를 관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가까운 잉글랜드에 판매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판매하지 못하기도 했었고.

그렇기에 덴마크에서 아이슬란드에 비교적 가까운 북미왕국에 아이슬란드를 매각할 뜻을 밝힌 것은 어떻게 보면 이해할 수 있긴 했다.

다만 아이슬란드는 비교적 큰 섬이라 인구도 제법 되는 편이고 이 때문에 덴마크는 아이슬란드를 일종의 식민지처럼 여겨 다른 국적의 선박이 아이슬란드를 방문하는 것을 막아 아이슬란드의 무역을 독점하면서 소소하게 이득을 보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를 팔아 큰돈을 챙기겠다고 결심을 할 정도면 덴마크의 상황이 정말 좋지 않다는 뜻이었기에 정성국이 의외라는 듯 중얼거리자 조용한 곰이 말했다.

“애당초 이번 전쟁을 반대하는 세력이 꽤 있었고 이 반대 세력을 숙청해가면서 전쟁을 일으킨 크리스티안 5세입니다. 헌데 이렇게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종전 협정을 맺게 되면...좋을 것이 없지요.”

“그래서 어떻게든 승리를 거둬야 할 필요가 있고 그래서 이렇게 무리를 하는 거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는 기후 때문에 발전 가능성이 크지 않으니까요. 이를 북미왕국에 큰돈을 받고 팔아 무기나 용병을 구해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이전처럼 외레순 해협에서 통행세를 거두고 비옥한 땅을 되찾는다면 이전처럼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으니 크리스티안 5세로서는 해볼 만한 도박이겠지요.”

조용한 곰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여긴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고민하다 질문했다.

“흐음...웅크린 늑대는 뭐라던가?”

“별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유럽과 가까운 곳에 거점이 생기는 셈이니 나쁠 것은 없지만...이전에 전하께서 아이슬란드엔 별다른 관심이 없다고 말씀하셨고, 또 스웨덴을 지원해 러시아 차르국을 견제하겠다는 계획이 어그러지는 셈이다 보니...”

그래서 웅크린 늑대는 섣불리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말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을 때 조용한 곰이 정성국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다만 제 개인적인 생각은 이번 저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아이슬란드를 북미왕국의 땅으로 만드는 것도 나쁘진 않아 보입니다.”

“그래?”

“예. 이 기회가 아니라면 이렇게 아이슬란드를 평화적으로 얻긴 힘들어 보이니까요.”

“그렇긴 하지.”

정성국의 반응을 보고 조용한 곰은 고무되어 계속 이야기해나갔다.

“그리고 아이슬란드가 북미왕국의 영토가 되면 유럽과 가까운 곳에 무역 거점이 생기는 셈이고 특히 이곳에서 북해가 가까우니 국영 상단을 이용해 직접 스웨덴과 교역하기도 편할 테지요.”

“흐음...”

“그리고 어차피 스웨덴을 지원해 러시아 차르국을 견제하는 계획은 장기적인 계획 아닙니까? 그리고 스웨덴과는 아직 별다른 접촉도 없었으니 당장은 아국의 이득을 우선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전생에는 칼 11세가 분투해도 결국 한계가 있어 북독일 영토를 모두 잃어버리자 루이 14세는 동맹인 스웨덴의 세력이 약해질 것을 우려해 힘으로 중재에 나서면서 스웨덴은 잃었던 영토를 모두 되찾을 수 있었지. 그걸 생각해보면...’

“그리고...스웨덴이 이번 전쟁에서 패배하면 타격이 클 테니 자연스럽게 이를 복구하기 위해 저희와의 교역에 더욱 매달리지 않겠습니까? 스웨덴의 넘쳐나는 광물을 제한 없이 사줄 나라는 우리 북미왕국뿐일 테니 말입니다. 그러면 저희로선 싼값에 양질의 광물을 얻을 수 있을 테니 나쁠 것 없지요.”

“허...”

조용한 곰은 지금 의도적으로 덴마크를 지원해서 스웨덴의 상황을 악화시키고 이런 스웨덴에 접촉해 북미왕국의 이득을 극대화하자는 뜻이었기에 정성국이 새삼 놀란 표정으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자 조용한 곰은 그저 빙긋 미소지을 뿐이었다.

이에 정성국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때 조용한 곰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만 이렇게 일이 흘러가면 가장 큰 문제가 스웨덴이 피해를 복구하고 나면 덴마크를 공격해 잃었던 영토를 되찾겠다고 나서는 것이 문제인데...”

“그렇지. 그건 어떻게 해결할 건가?”

정성국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묻자 조용한 곰이 슬쩍 그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가장 편한 방법은 전하께서 덴마크 왕실과 혼인 동맹을 맺는 것입니다. 그러면 스웨덴은 결코 덴마크를 공격하지 못할 겁니다.”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물론 필요하다면 혼인 동맹을 못 맺을 것은 없지만 유럽의 나라와 섣불리 혼인 동맹을 맺었다가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유럽 각국의 이해관계에 휘말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니까.

“유럽의 나라와 동맹을 맺고 그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라고? 관심 없네.”

이에 조용한 곰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허면 차선은 두 나라의 국경 부근에 국영 상단이 돈을 투자하는 겁니다. 아마 스코네 지역에 돈을 투자한다면...”

“아. 전쟁이 벌어지면 우리 북미왕국이 큰 손해를 보니 함부로 싸우지 말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이를 빌미로 전쟁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린다면 전쟁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다고 봅니다.”

“호오...”

괜찮은 방법이었기에 정성국이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조용한 곰이 덧붙였다.

“그리고 스웨덴이 우리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폴란드나 오스만 제국을 이용해 러시아 차르국을 견제할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 차르국을 견제할 방법은 많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은 결정을 내렸다.

“...알겠네. 그럼 웅크린 늑대에게 연락해 아이슬란드를 구매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진행하라고 전하게.”

“알겠습니다.”

정성국이 협상을 허락하자 조용한 곰이 반색했을 때 정성국이 덧붙였다.

“다만...이왕 협상하는 김에 페로 제도도 함께 구매하라고 하게.”

“페로 제도라면...”

정성국은 유럽의 지도를 꺼내 아이슬란드와 덴마크 사이, 잉글랜드의 북쪽에 자리한 작은 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이 페로 제도네. 내가 알기로 덴마크는 이 페로 제도를 관리하기 어려워 잉글랜드에 몇 번이고 판매하려 했으니 우리가 사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기꺼이 팔 걸세.”

여전히 자신은 파악하지 못한 정보를 턱턱 이야기하는 정성국이었지만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기에 조용한 곰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알겠습니다. 전하.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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