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442화 (442/850)

442화

이번에 조선 사절단의 정사로 북미왕국을 방문한 예조판서는 해가 뉘엿뉘엿할 때쯤 새한성에 도착해 주변을 훑어보고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토해냈다.

“허어. 고작 3년 만에 풍경이 완전히 바뀐 것 같구려...”

예조판서는 3년 전에도 조선 사절단의 정사로 북미왕국에 방문했었다.

그리고 당시에도 처음 배에서 내려 새한성의 거리 풍경을 보고 중간에 그가 들렀던 다른 북미왕국의 도시와는 확연히 달랐기에 감탄했었고.

헌데 3년 만에 다시 방문한 새한성의 선착장은 확장 공사 덕분에 더욱 거대해졌고 저 멀리 보이는 새한성의 거리 풍경은 그의 기억과는 확실히 달랐기에 예조판서가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부사인 공조참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습니까? 전에 듣기로 새한성은 계속 개발 공사를 진행 중이라고 들었습니다만...3년 사이에 많이 변한 모양이군요?”

그 말에 예조판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몇몇 건물이 더 들어서긴 했지만, 그보다는 거리의 풍경과 분위기가 전혀 다르군요.”

“분위기...라고요?”

예조판서의 말에 공조참의가 고개를 갸웃하자 예조판서가 손을 들어 새한성 대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선 저 도로들을 보시지요.”

공조참의는 그동안 방문했던 새한성의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거대한 도로와 그 도로를 가득 메운 자전거를 보고 감탄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오. 자전거로 가득하군요.”

재작년에 국영 상단에서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판매하면서 북미왕국 백성들은 너도나도 자전거를 사기 시작했다.

새한성 내에서 움직일 때는 걷거나 공용 마차를 이용해야 했는데 둘 다 불편한 부분이 조금은 있었고 개인 마차나 말을 이용하기엔 따로 축사를 건설해야 하고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았기에 대부분은 불편을 감수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국영 상단에서 새로 개발해 판매하는 자전거는 간단한 교통 규칙만 숙지하면 말처럼 관리하는데 따로 신경 쓸 것은 없었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으니 너도나도 자전거를 사서 타기 시작했고.

그리고 이렇게 도로를 누비는 자전거를 본 조선 사절단은 이 자전거를 몇 대 사서 조선에 가져와 이를 소개했기에 호조참의도 자전거를 알고 있었다.

여담으로 조선에서는 처음 이 자전거를 접하고 그 효용성을 짐작해 자전거를 복제하기도 했었고.

물론 이 조선에서 만든 자전거는 고무도 없고 야금 기술이 떨어져 북미왕국에서 만든 자전거에 비해 무겁고 사용하기 불편해 조정 신료들은 무척 아쉬워하긴 했다.

다만 아예 못 써먹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조금씩 만들어 사용했고 이 자전거가 돌아다니자 일부 장인들도 자전거 생산에 뛰어들었으며 그러다 보니 자전거의 숫자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고 작년에는 한 장인이 자전거의 뼈대를 대나무로 만들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가볍고 튼튼해서 호평받고 있기도 했고 일부 상단에서는 일꾼을 고용해 이 대나무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기도 했다.

아무튼, 조선의 거리에서도 간혹 보이기 시작하는 자전거가 이 북미왕국의 거리에는 가득했기에 공조참의는 역시 자전거를 처음 발명한 나라답다는 생각에 감탄하면서도 별로 놀라지는 않았지만 3년 전 새한성을 방문했던 예조판서의 감상은 달랐다.

“제가 방문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인도는 북적거릴지언정 도로는 한산했습니다. 물론 사람이나 물자를 수송하는 공용 마차가 어느 정도 있긴 했습니다만 북미왕국의 도로가 워낙 넓은 터라 무척 한산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요. 헌데 고작 3년 사이에 도로는 자전거로 가득 찼군요.”

“뭐 북미왕국의 백성들이 부유하다는 것은 잘 아시잖습니까. 그러니 자전거가 나오자마자 너도나도 샀겠지요. 그리고 북미왕국이야 기계를 이용해 대량생산하니 단기간에 막대하게 생산했을 테고요.”

조선에서야 장인들이 일일이 제작해야 했으니 대량생산이 어려웠지만, 북미왕국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잘 아는 공조참의가 뭐 그렇게 놀라냐는 표정으로 대답하자 예조판서가 다시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전에 방문했을 때와는 달리 사방이 훤하군요. 당시에는 도로와 인도 사이의 가로등이 전부였는데...곳곳마다 가로등을 추가로 세웠군요. 거기에...건물에도 전등이 설치되었나 봅니다.”

곳곳마다 새롭게 설치된 가로등도 그렇지만 대다수의 건물에 전등을 설치했는지 건물 안 전등의 불빛이 유리창을 통해 바깥을 밝혀주었기에 호조참의는 호롱불의 밝기와는 전혀 다른 저 환한 빛에 새삼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허어. 확실히 전등이 밝긴 한 모양입니다. 슬슬 해가 져서 어둑어둑한데 가로등과 건물에서 나오는 불빛 덕분에 인도가 무척 환하군요. 이거 해가 완전히 지면 무척 볼만하겠는데요?”

“전에 방문했을 때도 저녁에 가로등을 따라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이젠 더하겠군요.”

공조참의는 그런 예조판서의 말에 솔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숙소에 가서 짐을 풀고 잠시 쉬면 해가 완전히 떨어질 테니 그때 다시 나와 산책해봐야겠...음?”

공조참의가 눈을 부릅뜨고 놀란 표정을 짓자 예조판서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십니까?”

“저..저기 저건 뭡니까?”

공조참의가 손을 들어 가리킨 곳을 바라본 예조판서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마차 아닙...어라?”

도로에서 움직이는 마차의 앞부분에는 말이 아닌 자전거가 달려있었기에 이를 확인한 예조판서도 당황한 표정을 짓자 공조참의가 말했다.

“저...저거 자전거 아닙니까?”

그 말에 예조판서는 그게 말이 되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자전거로 어떻게 저 커다란 수레를 끈단 말입니까.”

“물론 그렇기는 한데...”

공조참의는 실제 움직이는 마차를 보고 그런 소리를 할 거냐는 표정을 지으며 다른 마차를 가리키자 예조판서는 도로를 오가는 다른 마차들을 모두 확인했지만, 작년에 본격적으로 동력 자전거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어느덧 새한성의 도로에는 말이 모두 사라지고 동력 자전거가 이를 대체했기에 말은 보이지 않아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중얼거렸다.

“허어. 다른 마차들도 다 말 대신 자전거가 앞에 매달려 있군요.”

“저걸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말이 끌지 않으니 마차라고 할 수도 없고...”

그 말에 예조판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수레를 끄는 자전거와 그 위에 올라탄 사람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입을 열었다.

“헌데...자전거와 비슷하기는 한데 자세히 살펴보니 다르군요.”

“뭐 자전거에 비해 크기가 크고 바퀴도 두껍긴 한데 그거야...”

이에 예조판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것도 그렇지만 저 자전거에 올라탄 사람의 하체를 보시지요.”

“어?! 발판을 밟지 않는군요!”

정성국은 처음 자전거를 장인에게 설명했을 때 대략적인 구조만 설명했을 뿐이지 각 부분의 명칭까지 세세히 지칭하진 않았기에 장인들이 알아서 각 부분의 명칭을 이름 붙였고, 페달은 발판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자전거는 저 발판을 밟아 움직이는 구조였고 뒤에 거대한 수레가 달려있다면 당연히 자전거에 올라탄 사람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발판을 밟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자전거와 수레가 움직이고 있음에도 자전거 위에 올라탄 사람은 평온한 표정이었고 발로 힘들게 발판을 밟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발판에 발을 대고 있을 뿐이었기에 공조참의가 탄성을 지르자 예조판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저 마차. 아니 커다란 수레를 끄는 것을 보면...”

“흠. 증기기관이라도 부착한 걸까요?”

북미왕국의 증기기관 기술은 대단했고, 이들은 증기기관을 이용해 배나 기차, 경운기를 움직였으니 호조참의는 이제 자전거에도 조그마한 증기기관을 만들어 부착했나 싶어서 중얼거리자 예조판서가 물끄러미 수레 앞에 달린 자전거를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음...증기기관은 커다란 보일러가 필요한데 그게 가능할까요? 외관상으로는 딱히 보일러가 보이지 않습니다만...”

“그럼 북미왕국에서 또 새로운 무언가를 만든 모양이군요.”

호조참의가 새삼 감탄스럽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예조판서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동력 기관이라...후우. 아직 조선은 증기기관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는데...”

“그래도 처음에 북미왕국의 설계도를 받아 만든 증기기관에 비하면 성능이 많아 나아졌지 않습니까. 물론 아직은 많이 부족하기도 하고 이를 응용하기에도 한계가 있지만 이렇게 천천히 발전하다 보면 분명 우리 조선도 북미왕국처럼 발전하리라 믿습니다. 올 초 건조된 증기기관을 장착한 조운선을 생각해 보시지요. 처음에만 하더라도 북미왕국처럼 증기기관을 이용해 움직이는 배를 과연 만들 수 있을까 싶었지만, 어느덧 이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조선의 장인들은 처음으로 증기기관을 제작한 이후로 이를 개량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고, 그 덕분에 최근에 제작한 증기기관은 처음 만들었던 증기기관에 비하면 마력도 높아졌고 효율도 조금이나마 나아졌다.

그리고 이 증기기관을 이용해 조운선을 움직이는 데도 성공했고.

물론 속력이 워낙 느렸고 정비하는데도 손이 많이 들어가는 편이라 조선의 해안가를 돌아다니며 물자를 수송하는 일에 투입되지는 못하고 한강을 건너려는 백성들을 수송하는 일에 투입되었지만, 나름대로 쓸모는 있었고 개화파와 장인들은 드디어 증기기관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고무된 상황이었고.

그러니 호조참의는 북미왕국의 발전을 너무 의식하지 말라는 듯 이야기하자 예조판서가 호조참의를 보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음? 왜 그러십니까?”

“예전 제가 이곳에 방문했을 때 푸른 안개께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셨거든요. 자신들은 그동안 열심히 발걸음을 옮겨 속력이 붙었기에 달리는 중일 뿐이고 조선은 이제 막 발걸음을 옮기는 상황이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꾸준히 걷다 보면 결국 자신들처럼 빠르게 달려나갈 거라고. 당시에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북미왕국의 발전이 워낙 빠르다 보니 자연스레 조급해졌었는데...”

“하하하. 제가 다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거지요? 뭐 그게 세상의 이치 아니겠습니까.”

웃음을 터트리는 호조참의를 바라보고 예조판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안내하기 위해 다가오는 외무청 관리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렇군요. 지금처럼 계속 조선의 발전에 매진하다 보면 언젠간 우리도 북미왕국처럼 발전할 테지요. 그러니...어떻게든 이번 협상을 잘 마무리해 조선의 발전에 보탬이 되도록 해야겠군요.”

* * *

해가 지기 시작하자 집무실에 있던 정성국은 남은 업무를 지금 처리할지, 아니면 내일로 미룰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조용한 곰이 집무실을 찾아와 조선의 사절단이 새한성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조선의 사절단이 도착했다고?”

“그렇습니다. 전하. 오후 늦게 도착한 터라 일단은 숙소로 향했습니다.”

그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일정은 조금 비워둬야겠군.”

“예. 그리고 저녁에는 조선의 사절단을 환영하는 만찬을 열고 잉글랜드, 에스파냐 대사도 초청할 생각입니다만...”

이에 정성국은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그러도록 하게. 그보다 이번에 사절단의 정사는 누가 왔나? 역시 이조판서인가?”

이조판서인 유철이 개화파의 실세 중 하나라는 것은 정성국도 잘 알고 있었다.

정태화가 있긴 하지만 그는 고령이었기에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고 정태화가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는 것을 현종이 허락할 리도 없었기에 논외였고.

그리고 이번에 방문하는 사절단은 북미왕국과 철도 부설 문제를 협의해야 했기에 정성국은 유철이 직접 방문했을 것으로 생각해서 이야기하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예조판서가 왔습니다.”

“음...의외로군. 이번 사절단은 철도 부설 문제를 협의해야 하는 터라 이조판서 그 양반이 직접 올 줄 알았더니.”

“아무래도 사절단의 정사가 되면 거의 반년 가까이 자리를 비워야 하니 움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 뭐 누가 오든 큰 상관은 없겠지.”

정성국의 중얼거림에 조용한 곰이 웃으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어차피 조선은 철도 부설을 원하고 있으니 협상은 순조로울 겁니다.”

“그래. 그보다 조선에 철도를 부설하는 것은 북미왕국에서 철도를 부설하는 것과는 많이 다를 거야. 일단 땅 문제도 그렇고.”

“아...그럼 조선 조정의 도움을 받긴 해야겠군요.”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은 급히 덧붙였다.

“그렇다고 조선 조정의 도움을 받아 헐값에 사들일 생각은 하지 말고.”

전생의 일본은 경부선, 경의선을 부설하면서 약 2천만 평에 해당하는 선로용지를 무상, 또는 시가에 10분의 1에서 20분의 1에 해당하는 헐값에 강제로 사들여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

덕분에 땅을 빼앗긴 조선의 백성들은 분노하고 철도 부설 공사에 적대감을 보였고.

이를 기억한 정성국이 혹시나 해 이야기하자 조용한 곰은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지요. 그리고 조선은 아직 쌀과 면직물 등을 화폐로 이용하니...넉넉히 값을 치러도 크게 부담되지도 않고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지요.”

“그래. 그리고 조선 백성들을 직접 고용하도록 하고.”

전생의 일본은 조선 백성을 강제로 동원해 인건비를 아꼈기에 당시 철도 건설 비용을 평균보다 3분의 1로 줄일 수 있었지만, 덕분에 조선 백성들은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는 사실을 떠올려 다시 당부하자 조용한 곰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희야 건설비가 얼마나 들어가던 큰 상관은 없으니까요. 물론 조선에서는 건설비가 많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철도의 소유권을 받는 시기가 늦춰지는 만큼 조금 반대할 수야 있겠습니다만...잘 설득해보겠습니다.”

“그래. 부탁하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