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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439화 (439/850)

439화

정성국은 집무실을 방문한 조용한 곰의 보고에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그래? 결국, 에스파냐에서도 신식 소총을 수입하기로 했다고? 5천 자루?”

“그렇습니다.”

물론 잉글랜드가 신식 소총을 수입했다는 사실을 에스파냐에 슬쩍 흘리면 자연스레 일이 그렇게 흘러갈 것 같긴 했다.

다만 에스파냐의 경우 경제 사정이 썩 좋지 않았고 무역 적자가 심한 편이라 이렇게 곧바로 수입 의사를 밝힐 줄은 몰랐기에 조금 의외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가뜩이나 무역 적자가 심한데 그게 감당이 되려나?”

“대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에스파냐는 잉글랜드가 신식 소총을 수입해서 이를 연구해 후장식 화포를 만들거나 신식 소총을 복제할 것이라고 무척 우려하더군요. 그래서 무리를 하더라도 일단 신식 소총을 수입해서 자신들도 이를 연구할 목적인 듯싶었습니다.”

정성국은 그런 외무청의 예상에 실소하며 말했다.

“나머지는 장식품으로 쓰고?”

“아마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총알은 딱 50만 발만 수입하고 상황을 봐서 더 수입하겠다는데...”

그렇게 말을 흐리며 고개를 젓는 조용한 곰을 보고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총알의 수입량을 생각해보면 당장 제대로 써먹을 마음은 없는 것이 확실하군.”

50만 발 이래 봐야 인당 100발에 불과했으니 큰 의미도 없고 저들은 신식 소총을 연구해 이를 복제할 수 있으리라 판단하고 있지만, 정성국이 볼 때 그건 헛된 꿈에 불과했다.

어차피 신식 소총의 구조야 비교적 단순한 편이었지만 지금 유럽의 야금 기술로 이를 제대로 복제해서 대량 생산하기는 쉽지 않았다.

또한, 중요한 것은 소총이 아니라 총알인데 유럽의 학자들이 이를 연구한다고 과연 단기간에 뇌홍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의문이었고.

해서 괜히 쓸데없는 곳에 헛돈을 쓴다고 여긴 정성국이 에스파냐를 비웃고 있을 때 조용한 곰이 말했다.

“예. 그리고 별다른 분쟁도 없으니 당장 이를 사용할 마음은 없는 것이 확실하지요. 다만 조금 아쉽긴 합니다.”

“뭐가?”

“저들이 본격적으로 신식 소총을 운용하면 유지비가 더 많이 들 테니...이를 빌미로 약간의 보조금을 내어주고 국경 인근 지역의 원주민들을 이주시키려고 했었거든요.”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이 아는체했다.

“아. 개발청에 고용돼서 북미왕국에서 일하는 친구들 말이지?”

“예. 멕시코 북부 원주민들은 북미왕국에 이주하길 원해서 전에도 슬쩍 이야기를 해봤지만, 저들은 절대 불가를 외쳤던지라...”

북미왕국은 그동안 국경 인근의 멕시코 원주민을 고용했고 이들은 북미왕국의 발전에 일조했다.

그렇기에 외무청에서는 이를 보답하는 차원에서 이들과 이들의 가족을 북미왕국으로 이주시키기 위해 에스파냐와 의논했었지만, 에스파냐는 이를 거절했고 그 때문에 외무청에서는 무척 아쉬워했었다는 것을 떠올린 정성국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면 초창기에 개발청에 고용되어 이곳에서 일한 친구들은 벌써 10년이 넘었지?”

“예. 그리고 북미왕국 말도 익숙하게 하는 만큼 이들을 이주시키면 북미왕국 개발에 무척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만...”

10년 넘게 북미왕국을 위해 일했고 이곳에서 주로 일하고 1년에 한 번 정도 고향에 돌아가 잠시 가족과 시간을 보낸 후 다시 돌아오는 일종의 기러기 아빠 신세인 멕시코 원주민들이다 보니 정성국은 이들의 신세가 조금 안타깝긴 했다.

물론 가족들이 북미왕국으로 이주한다 한들 목화밭에서 일하는 일꾼들을 제외하면 곳곳을 이동하며 일을 하는 터라 가족과 함께 살기는 어렵겠지만 1년에 한 번 가족을 보겠다고 1, 2주씩 이동하는 것보다야 기차를 타고 금방금방 이동하는 것이 나아 보이긴 했고.

다만 에스파냐는 이런 멕시코 원주민들의 사정을 안타까워할 리도 없었고 북미왕국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 허락하기엔 손해가 막심한 것이 문제였다.

“우리야 멕시코 원주민들을 이주시킬 수 있다면 대환영이지. 하지만 에스파냐로선 저들의 이주를 허락하는 순간 국경 인근 마을이 텅 비어버릴 텐데 그걸 허락하겠어? 거기에 멕시코 북부 지역에서 거두는 세금이 제법 된다면서? 인두세부터 별별 명목으로 세금을 엄청 거둔다고 들었는데?”

거의 버린 지역이나 다름없었던 멕시코 북부의 국경 인근 지역은 어느덧 무척 부유한 지역이 되어 있었다.

북미왕국은 이들에게 충분한 급여를 제공했고, 북미왕국의 물자가 워낙 싼 편이라 일꾼들은 이 급여로 여러 생필품을 사서 고향으로 보냈고 고향에선 이를 받아 상인에게 되팔아 차익을 챙겼다.

이 때문에 짐을 대신 수송해주는 사람들과 상인들이 멕시코 북부 지역으로 몰려들며 이곳의 경제는 활성화되었고 이를 알게 된 누에바 에스파냐는 빨대를 꼽기 위해 각종 명목으로 세금을 신설해 거두었는데 이 비중이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다.

“예. 물론 저희는 멕시코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급여를 지급하고 있고 북미왕국의 물가가 싸다는 것을 이용해 급여로 여러 물품을 사서 마을에서 되파는지라 다른 원주민들에 비해선 꽤 풍족하게 사는 편이라고는 합니다만...땡볕에서 힘들게 일해 번 돈의 절반 가까이 그냥 에스파냐에 넘기는 셈이다 보니 조금 안타까워서요.”

확실히 그건 그랬기에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손뼉을 치며 입을 열었다.

“아! 저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역시나 세금 수입이 줄어들까 걱정하는 거잖아? 그럼 그 부분을 해결해주면 되지 않겠어?”

이에 조용한 곰은 의아한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그럼 직접 저들에게 돈을 쥐여주란 뜻입니까?”

“아. 그건 좀 그렇고...고용을 유지한다고 해. 지금 개발청에서 고용 중인 멕시코 원주민들이 거의 15만가량 되지?”

“그렇습니다. 그 정도 되지요.”

초기에야 일꾼을 모집하는 데 여러 제약이 있긴 했지만, 그 후 아카풀코 조약을 빌미로 에스파냐를 강하게 압박해 여러 제약을 없애버리면서 북미왕국은 더 점점 더 많은 멕시코 원주민들을 고용해 이젠 국경 인근의 젊은 멕시코인 남성들은 태반이 북미왕국에 고용된 상황이었다.

그리고 에스파냐도 처음에는 이를 우려했지만, 북미왕국에 고용된 멕시코인들이 가져오는 물품으로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기 시작하고 중간에서 여러 세금을 신설해 가만히 앉아서 수입이 늘어나자 오히려 환영했고.

“에스파냐는 멕시코 원주민들이 이주하면 우리가 고용하는 멕시코 원주민들의 수가 줄어들 것을 걱정하는 거잖아? 하지만 우리가 15만 명의 멕시코인들을 계속 고용하겠다고 한다면...그렇게 결사반대만 하지는 않을걸?”

에스파냐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북미왕국에서 급여를 받는 원주민들이 모두 이주해 멕시코 북부의 경제가 박살 나는 것이었지만 이렇게 하면 에스파냐도 큰 타격은 없을 거라는 정성국의 의견에 조용한 곰도 수긍했다.

“흐음...”

다만 다른 멕시코 원주민들을 고용하기까지 혼란과 차질이 빚어질 테니 에스파냐가 굳이 이 제안을 받아들일까 싶어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정성국이 덧붙였다.

“그리고 이를 허용해주면 누에바 에스파냐에 차관을 제공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면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은데?”

그 제안에 조용한 곰은 눈을 크게 뜨고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예? 차관이요? 조선도 아니고 누에바 에스파냐에 말입니까?”

조선이야 워낙 특별한 관계고 정성국이 조선에 갖는 기묘한 애정과 애착을 짐작하니 이해했지만 누에바 에스파냐는 상황이 달랐기에 무척 의외라는 표정으로 되묻자 정성국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대신 우리가 빌려주는 차관은 구리 광산에 투자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아...”

“다행히 왜국에서 생각보다 많은 구리를 수입할 수 있고 잉글랜드도 구리만 왕창 싣고 오는 터라 숨통이 좀 트이긴 했는데...그래도 부족하잖아? 거기에 잉글랜드나 에스파냐가 신식 소총을 사들였다는 것이 유럽에 알려진다면 다른 나라들도 무리해서라도 일부는 사들일 테고...에스파냐처럼 장식품으로 사용하는 나라도 있겠지만, 실제 사용하는 나라도 있을 거야. 그러면 또 구리가 부족해질 테고.”

이러한 상황은 조용한 곰도 청장 회의에 참석하며 파악하고 있었기에 정성국의 의도를 파악하고 입을 열었다.

“그러니 누에바 에스파냐가 여러 구리 광산을 개발할 수 있도록 차관을 제공하자는 뜻이로군요?”

“그렇지. 물론 북미왕국에도 광맥은 넘쳐나지만 이를 개발할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니...차라리 인력이 넘치는 누에바 에스파냐에 차관을 제공해 더 많은 구리를 채굴하게 만드는 것이 나아. 그리고 저들로서도 이 제안은 나쁠 것이 없을걸?”

어차피 이런 자원들은 언젠가 고갈되기 마련이었으니 최대한 늦게 개발하는 것이 나았다.

더불어 북미왕국의 경우는 개발하고 싶어도 인력이 넘쳐나는 상황도 아니었고.

그러니 누에바 에스파냐에 차관을 빌려줘서 누에바 에스파냐가 멕시코 지역에 있는 여러 구리 광산을 개발해 더 많은 구리를 캐낸다면 북미왕국은 안정적으로 구리를 수입할 수 있으니 좋고 누에바 에스파냐는 무역 적자를 줄일 수 있었으니 나쁠 것이 없었다.

이러한 정성국의 설명에 조용한 곰은 잠시 생각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확실히...괜찮은 제안 같습니다. 그럼 에스파냐 대사와 이를 의논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한 조용한 곰은 다른 안건을 보고했다.

“아. 그리고 아일랜드 리머릭 항구에 임대한 땅에 선착장과 여러 시설의 건설이 대략 끝났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이미 잉글랜드와는 협정을 맺었고 런던에 파견된 외무청 직원 일부가 리머릭으로 이동해 사전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마무리되었다는 보고에 정성국이 반색했다.

“그래? 그럼 이제부턴 아일랜드인을 이주시킬 수 있다는 뜻이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외무청의 관리가 보고하길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면 더는 종교 때문에 핍박받을 일도 없고 일자리도 넘쳐나며 원한다면 비옥한 땅을 경작할 수 있다는 말에 아일랜드인들이 꽤 관심을 보이고 있답니다. 다만 너무 좋은 조건이라 의심하는 이들도 꽤 있다고는 합니다만...”

그 말에 정성국은 이미 유럽에는 북미왕국의 소문이 꽤 많이 퍼졌다고 알고 있었기에 의외라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의심이라...이거 의외로 아일랜드 지역에는 북미왕국에 대한 소문이 퍼지진 않은 모양이군?”

“예. 그렇다더군요. 해서 당장은 많은 이주민이 몰려들 것 같지는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선착장이나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꽤 후한 보수로 아일랜드인들을 고용했기에 이들 중 일부는 북미왕국으로의 이주를 원하고 있고 이들이 이주해서 고향으로 편지를 보내면 상황이 나아지리라 생각하고요.”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대답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다 이거지? 뭐 상관없겠지. 어차피 당장 아일랜드인들이 몰려와 봐야 혼잡하기만 하니...”

새로 건조된 여객선은 시범 운항을 마치고 곧바로 바스크 지역에 투입되었는데 이 여객선은 많은 승객을 탑승시킬 수 있고 배의 속도도 빠른데 대권 항로를 이용해 최단 거리로 대서양을 주파했었기에 단 1척만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이주민을 수송할 수 있었다.

특히 외무청에서는 실제 투입해본 결과 5천 톤급 여객선 단 한 척으로 1년에 못해도 2만 명이 넘는 이주민을 수송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올리기도 했고.

덕분에 이주민들이 정착하기 전 임시 거주하는 뉴펀들랜드 섬은 더욱 혼잡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당장 이주민이 많지 않을 거라는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오히려 나쁘지 않다는 반응이었고.

“그렇습니다. 한 1, 2년 정도면 위그노들의 이주도 확 줄어들 테니 그때 본격적으로 아일랜드인들을 이주시키면 될 것 같습니다.”

“흠...그럼 일단 운항 중인 여객선은 예정대로 아일랜드 지역에 투입하더라도 추가로 건조 중인 여객선은 일단 바스크 지역에 투입하는 편이 낫겠군.”

“예.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한 조용한 곰이 정성국에게 인사하고 집무실을 나가려는 데 문득 정성국이 질문을 던졌다.

“아. 그리고 아직 스웨덴과는 접촉하지 못한 건가?”

“일단 그 문제는 런던에 파견된 외교관들에게 일임했습니다만...당장은 아일랜드 지역에 신경 쓰느라...”

“흠.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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