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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437화 (437/850)

437화

처음에 에벤 족 족장인 투란은 쿠나킨의 제안에 조금 뚱한 표정을 지었다.

낮에 창고에서 모피를 꺼내 저들에게 넘길 때 이를 보고 실실거리며 웃던 러시아 차르국 병사들에게 직접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탓이다.

하지만 쿠나킨은 계속해서 투란을 설득했고, 날이 어두워 잘못하면 용병들이 쏜 탄환에 부족원이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말에는 결국 수긍할 수밖에는 없었고.

곧바로 마을로 돌아가 부족원들을 조용히 깨우기 시작했다.

부족원들을 처음엔 무슨 일인가 싶어 어리둥절했지만, 설명을 듣고 눈을 빛내며 무기를 챙겼고.

혹시 러시아 차르국의 병사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눈치챌까 무척 조심히 이동했다.

그리고 이미 서쪽의 러시아 차르국 야영지 주변을 반원으로 포위하고 있던 북미왕국 상단의 용병들을 만나 그들의 안내로 끝부분에 자리 잡았고.

“이곳에서 기다리다가 저들이 후퇴하면 추격하라 이거요?”

투란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쿠나킨에게 묻자 쿠나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에 투란은 주변 지형을 살펴보다가 고개를 갸웃하며 손을 들어 왼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차라리 저쪽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저들의 퇴로를 완전히 막는 것이 낫지 않겠소?”

투란의 의견에 알류트 족 족장도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쿠나킨은 일부러 저들이 도망칠 수 있도록 완전히 포위하지 않고 퇴로도 남겨두었다는 아이누 탐사대장의 말을 떠올리고 고개를 저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입니다. 퇴로에 적들이 나타나면 혼란에 빠질 수도 있지만 어떻게든 퇴각하기 위해 더 악착같이 달려들 수도 있지요. 그럼 에벤 족의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저들이 퇴각하기 시작하면 이를 추격하면서 저들을 사냥하시면 됩니다.”

처음에는 조금 피해를 보더라도 저들을 완전히 몰살시키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어 뚱한 표정을 짓던 둘이었지만 쿠나킨이 저들을 사냥감으로 이야기하자 표정이 바뀌었다.

“사냥이라...그거 마음에 드는군.”

“그래. 일방적으로 사냥해야겠지.”

그런 둘의 반응에 쿠나킨은 속으로 안도하고 투란이 데려온 활과 도끼, 정글도 등으로 무장한 에벤 족을 바라보다 수가 좀 적은 듯싶어 질문을 던졌다.

“헌데 이게 전부입니까?”

“아. 일부는 마을 근처에서 말을 타고 대기 중이요. 전투가 시작되는 즉시 그들을 불러올 생각이고.”

지금이야 조용히 이동해야 하느라 말을 데려올 수 없었지만 계속 저들을 추격하며 사냥하려면 말이 필요했고 그 때문에 부족원을 반으로 나누어 대기 중이라는 설명에 쿠나킨은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족원들에게 미리 작전 계획을 알려 주십시오. 아마 실제 전투가 시작되면 무척 혼란스러울 테니까요. 그리고 총성으로 인해 무척 시끄러울 테니 너무 놀라지 말라고 꼭 당부하시고요.”

“흐. 걱정하지 마시오. 고작 총성으로 겁에 질릴 머저리들은 우리 부족에 없으니까. 그리고 겨우내 머스킷을 사용했기에 총성에는 익숙할 테고.”

강한 자신감을 보이는 투란을 쿠나킨은 묘한 표정으로 잠시 바라보았고.

“그렇습니까. 그러면 저희는 이미 공격 준비를 마쳤으니 준비가 모두 끝나면 두 족장님께서 전투의 시작을 알려주시지요.”

“그러겠소.”

일단 이번 전투의 주체는 시베리아 부족 연합이 되어야 하는 만큼 두 족장의 공격으로 전투를 시작하기로 이야기해두었기에 투란은 일단 자신 근처에 있던 사내를 마을에 대기 중인 부족원들에게 보내고, 쿠나킨의 말처럼 대략적인 작전을 부족원들에게 전달한 후 러시아 차르국이 야영하고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이에 알류트 족 족장이 손으로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 모닥불 근처에서 낄낄대는 저 두 놈을 공격하는 것이 어때?”

“그러지. 난 오른쪽 놈을 맞지.”

“그럼 난 왼쪽이로군.”

투란과 알류트 족 족장은 그렇게 합의하고 머스킷을 장전하기 시작했고.

‘탕! 탕!’

조용한 숲의 적막을 깨는 총성과 함께 오른쪽에 있던 병사는 쓰러졌지만, 왼쪽에 있는 병사는 총성에 놀란 듯 움츠러들었다가 곧바로 몸을 숙이는 것을 보고 알류트 족 족장이 투덜거렸다.

“젠장. 빗나갔잖아?”

그러면서 둘은 곧바로 머스킷을 재장전하려고 총을 들었을 때.

‘타타타타타타타탕!’

“헉!”

“이 무슨...”

숲을 뒤흔드는 어마어마한 총성에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용병들이 일제히 총을 발사한 건가?”

“허. 괜히 그렇게 경고한 것은 아니었군.”

‘타타타타타타타탕!’

그렇게 둘은 감탄하고 있을 때 다시 일제히 총성이 울렸고.

이에 정신을 차린 둘은 저들을 도와 러시아 차르국의 병사를 한 명이라도 더 죽이기 위해 다시 머스킷을 재장전하기 위해 손을 움직이려 할 때.

‘타타타타타타타탕!’

다시 숲을 뒤흔드는 총성이 울리며 총성에 놀라 밖으로 튀어나온 러시아 차르국의 병사들이 차례차례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허. 이거 우리가 저들을 도울 필요가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러게. 용병들의 사격 실력이 정말 엄청나군. 움직이는 병사들은 태반이 쓰러지고 있으니.”

“뭐 수가 적은데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자신감을 보일 때부터 무언가 있긴 한 모양이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알류트 족 족장의 중얼거림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인 투란은 북미왕국 용병들이 자리 잡은 방향을 바라보며 확인했다.

“저들이 남아서 우릴 돕는다고 했나?”

“그래. 평상시엔 부족원들이 머스킷을 잘 다룰 수 있도록 돕고, 만약의 경우엔 전투에도 직접 참여할 거라고 하던데?”

그 말에 투란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에벤 족이 가장 서쪽에 있는 만큼 저 뛰어난 용병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자신들을 도와줄 테니까 말이다.

“흐. 이거 정말 든든하군.”

* * *

갑작스러운 총성에 잠이 깬 러시아 차르국의 지휘관은 무슨 일인가 싶어 일어나다가 갑자기 사방에서 총성과 비명이 울리기 시작하자 직감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몸을 숙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일제히 발사되던 총성이 조금 잦아들자 조심스럽게 막사 밖으로 나섰고.

이미 야영지는 총알에 맞아 끙끙대는 병사들과 절명한 병사들의 시체들이 흘린 피로 뒤덮여 있었기에 지휘관은 기겁하며 주변을 살펴보았고.

야영지 중앙 부근에 각종 물자를 쌓아둔 곳에서 자신의 부관이 병사들을 독려하며 어떻게든 반격을 하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것을 보고 그쪽으로 이동했다.

총성이 울리자마자 막사에서 튀어나와 병사들에게 주변을 향해 사격하라며 소리 지르던 부관은 드디어 지휘관이 나타나자 반색하며 소리쳤다.

“오셨습니까!”

“젠장!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대체 누가 공격하는 건가!”

계속해서 사방에서 총성이 울리는 탓에 고래고래 소리 질러야만 대화가 통하는 상황이라 지휘관도 목소리를 높이며 상황을 파악하려 하자 부관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어둡기도 하고 적들이 숲에 숨어 있는 터라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부관의 보고에 지휘관은 조심스럽게 목을 빼고 주변을 살폈지만, 이들은 전열을 유지하고 사격하기보다 나무 뒤에 숨어서 사격하는지 가끔 총구에서 보이는 화염을 제외하면 적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해서 러시아 차르국 병사들은 화염이 보였던 곳을 대충 조준해서 사격했지만, 별다른 위협이 되지는 않는지 적들의 사격은 계속되었고.

지휘관은 그런 상황을 파악하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이 정도면 못해도 500명 이상이 머스킷으로 무장하고 우리를 공격했다는 소린데 이 주위에 그런 세력이 있나?”

“원주민들이 전부인 이곳에 무슨 세력이 있겠습니까!”

“젠장...”

만약 얼마 안 되는 총성이 들렸다면 원주민이 어쩌다 머스킷을 입수하고 덤벼드는구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상황은 원주민들의 공격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더불어 주변에 가장 세력이 큰 청나라도 머스킷으로 무장한 병력은 얼마 없었고 그들은 저 남쪽의 알바진에서 대치 중이었기에 자신을 공격한 세력은 청나라도 아니었으니 대체 누가 자신들을 공격하는지 알지 못해 답답하다는 얼굴로 부관에게 상황을 보고받기 시작했다.

그때 막사에 숨어 있던 공물 수거인이 지휘관이 있는 곳이 안전하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그에게 다가왔지만, 지휘관은 대충 짐 사이에 숨어 있으라는 듯 손짓하고 부관의 보고에 귀를 기울였고 상황이 생각보다 좋지 않았기에 안색이 구겨졌을 때 한 병사가 몸을 낮추고 이곳으로 달려와 부관에게 무어라 보고했고.

부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지휘관에게 소리쳤다.

“저 서쪽에서는 총성이 들리지 않았답니다! 적들이 완전히 포위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일단 서쪽으로 퇴각하시지요!”

그 말에 지휘관은 버럭 소리 질렀다.

“저들이 공격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퇴각이야! 퇴각은!”

지휘관은 비록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공격을 받은 지는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지금이라도 상황을 수습해 자신들을 공격 중인 적에게 반격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렇게 소리쳤지만, 부관은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반 포위된 상황이고 지금도 계속 적들에게 일방적으로 사격 당하는 중이라 병사들의 피해가 무척 큽니다! 여기서 계속 버텨봐야 피해만 늘어날 겁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빨리 퇴각해야 합니다!”

“크윽...하지만...”

지금도 총성이 울리며 병사들이 하나둘 차가운 땅바닥에 쓰러지고 있었기에 지휘관이 입술을 깨물고 있을 때 공물 수고인이 조심스럽게 지휘관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일단 살고 봅시다. 나중에 되갚아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머스킷으로 무장한 세력이 있다는 것을 야쿠츠크에 알리는 것도 무척 중요한 일입니다.”

공물 수거인의 말처럼 만약 이곳에서 자신들이 몰살당하면 야쿠츠크는 이 사실을 모르고 방심하다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이 생각난 지휘관은 한숨을 내쉬고 일단은 퇴각하기로 마음먹었다.

“후우. 알겠습니다. 부관! 당장 병사들에게 퇴각 명령을 내리게! 다만 부상당한 병사들은...”

주변에서 총알을 맞고 피를 흘리며 끙끙대는 병사들을 보고 지휘관이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있을 때 부관이 단호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그들까지 챙길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들에게 최대한 적들의 발을 묶으라고 명령하겠습니다.”

“...그러게.”

* * *

“허. 정말 터무니없을 정도로 재장전이 빠른데? 나도 나름 머스킷에 익숙해져서 빠르게 재장전하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들에 비하면...”

알류트 족 족장은 상황이 너무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탓에 머스킷을 재장전하기보다는 야영지를 살피거나 북미왕국 용병들이 자리 잡은 곳을 바라보다 감탄하자 투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발사 속도가 너무 달라. 아무리 익숙하다고 해도 저렇게 빨리 재장전하는 것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라...전투가 끝나면 저들에게 자세히 물어봐야겠어.”

“그러게 말이...어? 저거...도망치려는 것 같은데?”

야영지에서 러시아 차르국 병사들이 서쪽을 향해 이동하는 모습을 확인한 알류트 족 족장의 중얼거림에 투란은 새삼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렇군. 허. 전투가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도망치려는 거지?”

러시아 차르국 병사들은 원주민들에게 있어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헌데 저 러시아 차르국 병사들이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하고 하나둘 죽어 나가다가 결국 도망치는 모습에 투란이 북미왕국 용병들의 전투력에 감탄하자 알류트 족 족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만큼 피해가 크다는 의미겠지. 총소리에 놀라 급히 천막을 나왔던 병사들이 북미왕국 용병들의 집중적인 공격으로 태반이 누웠잖나. 그리고 머스킷을 발사하려는 불빛이 보이면 집중적으로 사격한 탓에 이젠 제대로 반격도 못 하고 있고. 그러니 도망치는 것 외엔 방법이 없겠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투란은 씩 웃으며 다시 머스킷을 재장전하며 중얼거렸다.

“그럼 이제 저들을 사냥할 시간이로군.”

이에 알류트 족 족장도 히죽거리며 머스킷을 들었고.

“그렇지. 이럴 줄 알았으면 나 혼자 움직이지 말고 부족원들을 몇 명 데리고 오는 건데...쳇.”

투란은 그런 알류트 족 족장의 투덜거림에 피식 웃고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며 눈을 빛내는 부족원들을 향해 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자. 그동안 우리를 깔보고 핍박한 저들을 사냥할 준비를 해라. 내가 머스킷을 발사하면 화살을 날리고 그대로 덤벼들어 그동안의 원한을 갚아라. 알겠나?”

이에 부족원들은 일제히 무기를 들어 올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이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본 투란은 고개를 돌려 줄줄이 도망치는 러시아 차르국의 병사들의 행렬을 바라보다 머스킷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가장 앞쪽에서 움직이던 지휘관으로 짐작되는 자를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지금이다!”

“공격!”

“와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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