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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435화 (435/850)

435화

공물 수거인과 러시아 차르국 병사들이 마을을 나가자 상황을 알게 된 에벤 족 사람들은 일제히 창고 주변으로 몰려들어 에벤 족 족장인 투란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족장님! 정말 모피를 넘겨주실 생각이십니까?”

“말도 안 되는 거래라는 것 아시잖습니까!”

“그렇습니다. 거기에 저 모피들은 꼭 사용할 곳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부족원들을 보고 투란이 진정하라는 듯 손짓하며 대답했다.

“알지. 왜 모르겠나. 하지만 우리가 공물을 바치는 것을 거부하는 순간 저 밖의 병사들이 우리 마을을 약탈할 테니 방법이 없지 않나. 그리고 그렇게 되면 문제가 더 커지네. 숨겨두었던 검은담비의 모피라던가 북미왕국의 물품들이 걸리는 순간...”

“끙...”

투란의 말처럼 당장은 저들에 대항할 방법도 없었고 괜히 저들에 대항했다가 약탈당하기라도 한다면, 그리고 자신들이 팔지 않은 물품을 확인하고 이곳에 자신들이 아닌 다른 상인들이 방문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훗날을 기약할 수도 없었다.

해서 부족원들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분위기가 가라앉자 투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 일단 저 모피들은 그냥 내어주자고. 그래도 검은담비의 모피는 남아있으니 이것으로 북미왕국 상인들에게 머스킷을 조금이나마 사고...다른 부족과 연합한다면 내년부턴 저들에게 굽힐 이유가 없겠지. 한 해만 더 참으면 될 일이네.”

투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누군가가 말했다.

“어? 그러고 보면 저들이 평소보다 일찍 방문해 공물을 걷기 시작했으니 잘못하면 북미왕국 상단과 맞닥뜨리는 것 아닙니까?”

“어?”

“헉!”

물론 북미왕국 상단이 용병들을 대동하고 움직인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래 봐야 저 많은 러시아 차르국 병사들을 상대하지는 못하리라 여겼고, 그렇게 되면 머스킷을 구할 방도가 없어지는 상황이었기에 부족원들이 다들 불안한 표정을 짓자 투란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네. 뭐 북미왕국의 상단이 오려면 아직 멀었고 이미 알류트 족에 사람을 보냈으니 알류트 족에서 다시 코랴크 족에 상황을 알릴 거야. 물론 공물 수거인이 코랴크 족에 도착했을 때 북미왕국 상단이 도착하면 조금 곤란해질 것 같기는 한데...뭐 그 경우야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 않나.”

“아. 그건 그렇군요.”

투란의 말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투란은 손뼉을 쳐서 주의를 집중시키고 명령했다.

“그러니 진정들 하고 모피를 꺼내 저들에게 넘기세. 그리고 당분간은 입을 조심하고...특히 아이들을 단속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 * *

쿠나킨은 앞쪽의 아이누 탐사대원들이 잠시 멈추며 만약을 대비해 갑오 소총을 들어 올리자 대화를 멈추고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음?”

그리고 저 앞에서 누군가가 말을 타고 달려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옆에서 쿠나킨과 대화를 나누었던 알류트 족의 족장이 말을 탄 사람의 복식을 확인한 후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에벤 족 사람 같은데...”

쿠나킨은 코랴크 족의 환대를 받은 후 곧바로 물자를 싣고 서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알류트 족의 마을에 도착해 알류트 족에게 머스킷을 넘겼고.

알류트 족의 족장은 무려 1천 자루나 되는 머스킷을 가져온 북미왕국 상인들의 수완에 놀라고 이미 코랴크 족에게는 머스킷을 넘겼다는 이야기와 에벤 족에게도 1천 자루를 넘길 생각이라는 이야기에 에벤 족, 알류트 족과 연합하기로 한 이상 러시아 차르국을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찰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북미왕국 상인들은 당장 머스킷 대금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하고 화약 무기에 익숙한 용병들을 상행 후 이곳에 남겨두어 자신들이 결성한 시베리아 부족 연합을 돕겠다니 기꺼울 수밖에 없었고.

해서 알류트 족은 북미왕국 상인들을 환영하는 의미로 축제를 열었고 북미왕국 상인들은 이 축제를 적당히 즐긴 후 다시 서쪽에 있는 에벤 족에 머스킷과 각종 물자를 거래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리고 알류트 족의 족장은 머스킷도 확보했겠다 이젠 러시아 차르국에 본때를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희희낙락하며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기 위해 북미왕국 상인들과 함께 에벤 족의 마을로 이동하는 중이었고.

“예. 달려오는 방향을 보니 에벤 족의 마을에서 오는 사람 같은데...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걸까요?”

“으음...”

쿠나킨의 말에 알류트 족 족장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질 때 상단의 행렬에 다가온 에벤 족의 부족원으로 짐작되는 사내가 대뜸 소리쳤다.

“도와주십시오!”

“예? 갑자기 그게 무슨...”

쿠나킨과 알류트 족 족장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을 때 에벤 족의 사내가 숨을 헐떡이면서도 필사적으로 외쳤다.

“전 에벤 족 사람입니다! 우리 마을로 러시아 차르국의 병사들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우리 마을을 도와주십시오!”

“잠깐. 그게 무슨 소린가. 러시아 차르국의 병사들?”

족장의 명령에 따라 러시아 차르국의 병사가 도착하기 전 알류트 족의 마을에 러시아 차르국의 병사들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말을 달리던 에벤 족 사내는 눈앞에 큰 규모의 행렬을 확인하고 혹시나 했고.

작년에 자신의 마을에 들렸던 북미왕국 상인들이라는 것을 파악한 후엔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하며 북미왕국 복식을 한 상인만 바라보고 이야기했었기에 갑작스럽게 대화에 끼어든 사람을 바라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알류트 족의 족장님 아니십니까?”

“그렇네. 에벤 족의 족장님과 할 이야기가 있어 이들과 함께 이동 중이었지. 헌데 지금 에벤 족의 마을에 러시아 차르국의 병사들이 있다는 것이 사실인가?”

알류트 족 족장의 물음에 정신을 차린 에벤 족 사내는 이럴 때가 아니라는 듯 다급한 기색으로 급히 말문을 열었다.

“아! 예! 그렇습니다. 못해도 300명은 넘는 러시아 차르국의 병사들이 저희 마을로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병사들이 확실한가?”

“예! 머스킷으로 무장한 병사들이었습니다. 해서 족장님께서는 급히 저를 보내 알류트 족에 이런 상황을 알리라고 하셨고요.”

에벤 족 사내의 대답에 알류트 족 족장은 무척 걱정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허. 갑자기 러시아 차르국의 병사들이 나타났다니...”

이에 쿠나킨이 알류트 족 족장을 바라보고 물었다.

“설마 러시아 차르국에서 연합이나 원주민들이 독립하려는 것을 눈치채고 병사를 보낸 걸까요?”

“흐음...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런 것 같기는 합니다. 아직 공물 수거인이 움직일 시기도 아니고 공물 수거인이 움직인다 하더라도 300명이 넘는 러시아 차르국의 병사들을 대동하고 움직인 적은...우리가 공물을 바치기를 거부했을 때뿐이니까요.”

그러면서 이전의 일을 떠올리고 안색이 어두워지는 알류트 족 족장이었고.

쿠나킨은 알류트 족이 러시아 차르국 병사들에게 무슨 일을 당했는지 짐작했기에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랬습니까? 그럼 러시아 차르국은 에벤 족을 공격하기 위해 병사들을 보냈다고 짐작해도 되겠군요.”

이에 알류트 족 족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럴 겁니다. 다만 저들이 어떻게 이 사실을 알았는지는 조금 의문이긴 합니다만...”

쿠나킨과 알류트 족 족장이 당장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이야기를 주고받자 에벤 족 사내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잖습니까! 제발 우리 부족을 도와주십시오! 당신들이라면 머스킷으로 무장하고 있으니 우리를 도와줄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그 말에 알류트 족 족장은 조금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쿠나킨을 바라보았다.

“흠. 가능하겠습니까? 러시아 차르국의 병사들이 300명이나 있는데...”

이들이 고용한 용병은 200명 수준이었기에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 싶었고 만약 이들이 에벤 족을 돕기 위해 러시아 차르국의 병사들과 싸웠다가 패배라도 한다면 여러모로 곤란했다.

특히 이들이 아니라면 자신들은 화약을 구할 방도가 없었기에 조금 신중히 결정했으면 하는 마음이었고.

“그래 봐야 변방에서 빈둥거리던 자들이니 상대하지 못할 것은 없지요. 다만 아직 마을까지는 거리가 좀 되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쿠나킨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표정으로 대답하고 아이누 탐사대장을 바라보았고 근처에서 에벤 족 사내의 이야기를 함께 듣던 아이누 탐사대장은 조금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모든 짐을 놓고 빠르게 이동한다 해도 반나절은 걸릴 겁니다. 그리고 저 친구가 얼마나 빠르게 이동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러시아 차르국의 병사들이 에벤 족 마을을 공격하기 위해 왔다면 지금쯤은 이미...”

“아아.”

잔뜩 기대하고 있던 에벤 족 사내는 쿠나킨의 말에 기뻐했다가 아이누 탐사대장의 이야기에 절망하며 몸을 휘청거렸고 그런 에벤 족 사내의 반응에 쿠나킨이 급히 그를 달랬다.

“아. 진정하세요.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잖습니까.”

그렇게 쿠나킨은 에벤 족 사내를 달랜 후 그가 조금 진정되었을 때 슬쩍 아이누 탐사대장을 불러 한쪽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러시아 차르국의 병사라는데...상대할 수 있지요?”

물론 아이누 탐사대원 가운데는 예전 왜국과의 독립 전쟁에서 참여한 자들도 있긴 했지만, 대다수는 실전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조금 걱정이 되어 쿠나킨이 묻자 아이누 탐사대장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약탈자들을 상대하는 것이 어려울 것은 없지요. 다만...무리를 나눌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짐을 여기다 놓고 갈 수도 없고 짐과 함께 이동하자니 이동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허면...?”

“일단 50명을 이곳에 남겨두겠습니다. 그리고 남은 150명은 빠르게 에벤 족 마을로 이동한 후 마을의 상황을 살피고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쿠나킨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근처에서 귀를 기울이던 알류트 족 족장은 기겁하며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잠깐만요. 러시아 차르국의 병사들이 300명이래잖습니까. 헌데 일부를 여기 남겨두겠다고요? 용병들과 상인들도 무장해 함께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차피 이들은 머스킷을 가져온 만큼 이를 이용해 일행 전부가 무장하고 함께 이동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 용병 대장은 오히려 일행을 나누었기에 이 사람 제정신이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쿠나킨을 바라보자 쿠나킨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 친구가 괜찮다면 괜찮을 겁니다. 그리고 다들 사격 실력이 무척 뛰어난 친구들이라서 말입니다.”

“하지만...”

“믿어주시지요.”

쿠나킨이 용병 대장을 확고히 믿는 기색을 보이자 알류트 족 족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위험합니다. 눈먼 총알이 어디로 향할 줄 알고요.”

그 말에 아이누 탐사대장이 고개를 저었지만 알류트 족 족장은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어차피 언젠간 저들과 전투를 치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미리 경험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알류트 족 족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쿠나킨을 바라보고 그렇게 이야기하자 쿠나킨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뭐. 그러시지요.”

“오! 감사합니다!”

쿠나킨의 허락에 알류트 족 족장은 기뻐하며 돌아가 말 안장에 걸려 있는 작년에 쿠나킨이 선물로 건네준 머스킷을 만지작거리며 드디어 이전의 원한을 갚아줄 수 있다는 말에 살벌한 미소를 지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이누 탐사대장은 조금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쿠나킨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만약 에벤 족 사내의 말대로 에벤 족이 이미 러시아 차르국에 공격받았다면 알류트 족과 코랴크 족만 남는데 여기서 알류트 족 족장이 눈먼 총알에 맞아 죽기라도 한다면 앞으로의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기는 만큼 지금이라도 말려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조용히 덧붙이자 쿠나킨이 고개를 저었다.

“말려야 듣겠습니까? 그리고 만약 에벤 족이 이미 러시아 차르국에 공격받았다면 결국 알류트 족 족장이 연합을 이끌고 러시아 차르국과 싸워야 할 테니...화약 무기를 사용한 전투 현장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흐음...그렇긴 하지요. 알겠습니다. 다만 잘 아시다시피 실제 전투가 벌어진다면 놀랄 테니 미리 이야기해두시지요.”

고작 머스킷 한두 자루가 발사되는 것과 수백 자루가 일제히 발사되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쿠나킨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물론입니다. 놀라지 않도록 미리 이야기해두도록 하지요.”

* * *

용병으로 위장한 아이누 탐사대는 급히 말을 달려 에벤 족 마을로 이동했고 해가 저물고 밤이 되었을 때 에벤 족 마을 근처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일부만 말에서 내려 조심스럽게 달빛에 의지해 에벤 족 마을로 이동했고 마침내 마을이 보이자 다들 떨떠름한 표정으로 마을을 응시했다.

“음? 어째 마을 분위기가...”

“별다른 일은 없어 보입니다만...”

마을이 불타오르고 주위에 비명 소리가 가득할 거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마을을 평온했기에 일행들은 자연스럽게 에벤 족 사내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고.

“어? 분명 러시아 차르국의 병사들이 몰려왔습니다! 절대 거짓말이 아니에요!”

에벤 족 사내는 당황하며 대답하자 쿠나킨이 알겠으니 진정하라고 손짓한 후 중얼거렸다.

“그러면 러시아 차르국 병사들은 다른 목적으로 이곳을 방문한 것 같은데...”

쿠나킨의 추측이 맞는 것 같았기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자 에벤 족 사내가 나섰다.

“이미 날이 어두워졌으니 제가 마을로 들어가 사정을 알아보겠습니다.”

그 방법 외에는 없었기에 쿠나킨은 이를 허락했다.

“그러시지요. 다만 상황을 파악하면 곧바로 저희에게 알려주십시오. 저희는 30분 정도만 기다릴 테니까요.”

“예. 상황을 파악하고 바로 나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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